|
몽기미 풍경
송 기 숙
눈앞에 고향이 어른거린다. 푸른 하늘에 맞닿은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과, 그 수평선에 멀고 가까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푸른 바다를 헤치고 가는 갈매기처럼 하얀 연락선과, 이런 고향 풍경들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바닷가 바위에 부딪쳐 허옇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소리며, 은은하게 울려오는 동네 솔바람 소리며, 그 하얀 연락선이 울리고 가는 뱃고동 소리, 이런 고향의 소리들도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온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차는 서울을 뒤로 밀어내며 고향을 향해서 달리고 순자는 멀거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강 다리를 지나고 영등포를 지난다. 공장의 굴뚝들이 지나가고 저만치 순자가 다니고 있는 장난감 공장도 지붕 한쪽이 보였다가 뒤로 밀려간다. 서울을 빠져나온 기차는 기적을 길게 울리며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기적소리는 이 기차에 타고 있는 수많은 귀성객들이 서울을 벗어난 후련한 기분과 고향에 대한 설렘이 한데 뭉쳐 터져 나온 소리같다.
내가 고향에 가면 반겨줄 사람이 누구일까, 순자는 새삼스럽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반겨줄 것 같았다. 그러나 특별히 얼싸안고 반겨줄 사람은 없다. 그 조그마한 몽기미 섬에는 증조할아버지 내외의 묘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 내외의 묘가 있을 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대에는 아들만 한 분씩이었고, 아버지 대에는 순자 혼자뿐이라 대가 끊겨 지금 고향에는 가까운 일가붙이 한 사람도 없다.
순자는 여태 그랬듯이 이번 구정에도 고향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회사는 휴가를 닷새나 주었고, 그래서 공원들은 환성을 지르며 예매표를 사러 간다, 선물을 사러 간다, 야단법석이었다. 그렇지만, 순자는 좀 쓸쓸한 대로 기숙사에 혼자 남아 한가하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었다. 이 델레비전은 노랑이* 사장이 얼마 전에 모처럼 선심을 써서 기숙사에 한 대 들여놓은 것이다. 순자는 연휴기간 동안 이 텔레비전이나 독차지하고 실컷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순자는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다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고향에 가려고 예매표를 사는 인파가 너무도 엄청났던 것이다.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 엄청나게 몰려들어 밀치고 닥치고 수라장이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터져 피난 가려고 죽기 살기로 덤비는 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단순히 고향에 가려는 아귀다툼이었다. 멀뚱하게 보고 있던 순자는 저렇게 기를 쓰고 가는 고향에 가지 않고 이렇게 혼자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엉뚱하게 느껴졌다. 한참 보고 있던 순자는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서울역으로 뛰었다. 마치 무슨 중대한 일을 깜빡 익곤 있었던 것처럼 허겁지겁 내달았다.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밀치고 닥치고 악착스럽게 나댔다.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매표구 쪽으로 밀려가자 비로소 자기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고, 자기가 고향에 가는 것도 그만큼 절박하고 당연한 일 같았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자니, 자기는 지금 어디를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은 차표를 사고 수선을 피울 때도 마음 한쪽에 그런 허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기차에서 혼자 한가해지자 고향에는 자기를 얼싸안고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안겨오고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달리고 있고 자기는 그 기차 안에 앉아 있었다.
순자 곁에 앉은 사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고향이 어디냐, 서울에서 무얼 하느냐, 축축한 얼굴에 음충맞은* 웃음을 흘리며 추근추근 수작을 걸더니, 순자가 냉랭하게 대하자 혼자 무료하게 앉았다가 잠이 든 것이다. 고향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을 테니, 그 처자식들과 반갑게 만나는 꿈이나 꾸라고 타이르며, 순자는 자기 어깨에 기대고 있는 사내의 고개 무게를 지그시 견뎌주고 있었다.
순자는 몽기미가 떠오르며, 저만치 난바다로 지나다니는 연락선을 안타깝게 건너다보며 손을 흔들었던 어렸을 때의 자기 모습이 다가왔다. 지금은 몽기미도 명령항로(命令航路)*가 되어 연락선이 닿지만, 옛날에는 스무 가호 남짓한 몽기미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몽기미 사람들이 육지에 나가려면 연락선이 닿는 큰 섬까지 전마선*을 타고 가서 거기서 연락선을 탔다. 그래서 몽기미 아이들은 하루에 두 번씩 오고가는 연락선 뱃고동 소리가 나면, 마치 학교에서 그러라고 종이라도 친 것처럼 섬 저쪽 쇠머리 부체바위로 몰려가서 연락선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몽기미는 섬을 빙 둘러 모두가 시커먼 바위뿐이고, 동네 앞에 예삿집 마당 두 개 넓이로 모래사장이 하나 틔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이나 쌓고 노는 것이 고작이라 하루 두 번 지나다니는 그 연락선은 그만큼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저 연락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어디서 어디로 무엇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일까? 연락선이 목포에서 저쪽 큰 섬들로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부시게 하얀 연락선이 한없이 넓고 아득한 바다 저 끝 까치놀 속으로 사라져갈 때면, 동화처럼 꿈같은 데서 사는 사람들이 그런 꿈같은 일로 그렇게 오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몽기미 아이들은 그런 먼 나라를 한번 가보고 싶었고, 목포라도 한번 가보고 싶은 것이 소망이어서 날마다 그렇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런데 그런 소망이, 이건 정말 꿈이 아닐까 싶게 한 번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 사 학년 때 서울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서울 어느 회사 사장이 몽기미 분교(分交)하고 자매결연을 하여 몽기미 어린이 삼십 여 명을 몽땅 서울 구경을 시켜준 것이다.
멀리서 안타깝게 손만 흔들던 그 연락선이 드디어 몽기미에 닿았다. 몽기미 생기고 처음이었다. 연락선에 올라간 아이들은 모두 이층으로 우르르 올라가 난간을 붙잡고 먼 데 바다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멀리 까맣게만 보이던 섬들이 차츰 가까워지며 동네가 나타나고, 더 멀리 회색으로만 보이던 섬들도 차츰 가까워지며 포구 모습이 드러났다.
“와, 기와집이다.”
연락선을 대는 포구에 말로만 듣던 까만 기와집도 있었고, 크고 작은 배들이 스무 남은 척이나 몰려 있었다.
목포에 닿자 아이들은 멍청하게 입만 벌렸다. 크고 작은 배들이 수백 척 부두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차 있었으며, 큰길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거리고 자동차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내달았다. 색색으로 예쁘게 꾸며놓은 간판 아래 수많은 상점과, 거기 빼곡히 쌓여 있는 갖가지 상품들이며, 모두가 꿈에도 보지 못했던 광경 이었다. 몽기미 아이들은 밤에 꾸는 꿈도 기껏 연락선을 탄다거나 벼랑에서 바다로 곤두박이는 따위였지, 이런 엄청난 세상은 꿈속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야, 저 비단 좀 봐.”
순자의 손을 잡고 가던 두 학년 아래 남분이가 걸음을 멈추며 손가락질을 했다. 길가 포목전에서 주인이 손님 앞에다 비단을 활짝 펼친 것이다. 가게 벽에는 그런 비단이 천장이 닿게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남분이는 그 비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도시의 모든 것이 꿈만 같았고, 더구나 서울의 며칠 동안은 무슨 동화 속의 세상을 헤매는 것만 같았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남분이는 어째서 우리는 이런 세상을 놔두고 그 작은 섬에서 살아야 하는지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순자는 바로 그 서울에 다시 와서 지금까지 오 년을 살았다. 그 오 년이라는 세월은 그 동화 같던 서울에 대한 소녀의 꿈이 뼈마디가 저미는 고통으로 조각조각 조각이 나는 기간이었고, 그 조각난 꿈을 딛고 살벌한 현실에 뼈마디를 부딪치며 자신을 추슬러온 기간이었다. 어려서 왔을 때는 따뜻하게만 웃어주는 것 같던 그 서울이 제 발로 들어오자 너무도 싸늘하고 매정스럽게 돌아앉아 있었다.
그때마다 순자는 자기 집에서 기르던 돼지새끼 무녀리* 가 떠올랐다. 다른 새끼들은 어미 젖꼭지를 두 개 세 개씩 차지하고 걸퍼지게 빨아대지만, 그 무녀리는 힘센 녀석들이 거세게 내두르는 주둥이에 깩깩 베돌기*만 할 뿐 젖은 한 모금도 빨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런 새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널퍼덕 퍼질러 누워 젖꼭지만 내맡기고 있는 어미가 얼마나 미웠던지 모른다. 저러니까 잡아먹는 짐승이겠지 싶었다. 서울에 온 자기는 바로 그 무녀리가 되어 있었고, 그 어미 돼지처럼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순자는 그 무녀리처럼 이 공장 저 공장 떠돌다가 지금 다니는 장난감 공장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숙련공으로 월급도 사만 원이나 받고 있다. 그사이 그럭저럭 오 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순자는 하루도 고향을 떠올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모두가 가난하게는 살지만 깔보는 사람도 없고 쳐다볼 사람도 없으며, 무엇에 쫓기는 절박감도 없었다. 무엇보다 몽기미의 그 포근한 인정이 그리웠다.
그러나 몽기미에는 어머니 묘를 비롯한 선조들의 묘만 남았을 뿐 다른 연줄로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추석과 설이 돌아오면, 증조할아버지부터 삼대가 줄줄이 묻혀 있는 묘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더구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그 묘들 앞에 술잔이라도 따라놓고 싶었다. 그러자면 하릇밤을 자고 와야 하는데, 그런대 명절에는 집집마다 자기 가족끼리만 모여 차례를 지내므로, 그런 날은 다른 사람은 끼여들 자리가 없었다.
또 한 가지 몽기미 가는 발길을 더디게 하는 일이 있었다. 자기한테 혼담을 넣어왔다가 거절당한 명식이란 그 동네 젊은이의 눈길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일손을 놓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 누워 있다가, 나중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멍청하게 먼 바다나 건너다 보고 있었다. 순자가 서울 가는 연락선을 탈 때도 산꼭대기에 앉아서 연락선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순자는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순자가 오 년 동안 한 번도 몽기미에 가지 않은 건 절반은 그 젊은이 때문이었다.
순자는 삼대가 묻혀 있는 묘가 떠오르면 무슨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고, 그 가운데서 증조할아버지와 어머니 묘가 유독 덩실하게 떠올랐다. 몽기미에 처음 들어와 뿌리를 내린 증조할아버지는 별난 분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귓속말로 속삭여주던 증조할아버지 행적은 지금도 어머니의 숨결과 함께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 순자의 마음속에 엄청난 거인의 모습으로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느그 할아버지는 원래 고향이 전라북도 고부였더란다. 갑오년 동학군에 나갔다가 동학군이 천쟁에 져서 저 멀리 제주도로 도망치시다가 폭풍에 배가 뒤집혀서 이 섬으로 떠밀려 그냥 여기에 주저앉았더란다. 동학군이 뭣이냐 하먼…….”
어머니는 동학농민전쟁 이야기를 한참 늘어놨다. 처음 고부에서 일어났던 봉기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할 때, 일본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비롯한 스무 남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거센 풍랑에 배가 뒤집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느그 증조할아버지도 그 엄청난 파도에 횝쓸려 정신을 잃었는디, 눈을 떠본게 널찍한 바위에 누워 있더란다. 첨에는 내가 시방 죽어갖고 저승에 온 것 같은디, 저승이 이렇게 생겼다냐 으쨌다냐 하고 뚤레뜰레 돌아봤더란다. 그런디 그것이 저승이 아니고 저기 쇠머리 느그들이 자주 노는 그 부체바우에 얹혀 있더란다. 깔깔.”
“뉘*가 떠밀 어다 거기다 얹혀놨구나.”
“그랬겄제. 그래도 그런 일이 그냥은 어디 쉽겄냐? 하여간, 그래서 여기서 눌러 사셨는디 이 양반 성질이 어찌나 대쪽 같던지 누구든지 션찮은 짓 했다가는 큰 벼락이 떨어지는 통에 동네 사람들은 어른 애기 할 것 없이 느그 할아부지 앞에서는 부쩌지를 못했더란다.* 별호가 호랭이였다면 알만 하잖냐? 한 번은 왜놈 칙량선*이 이 근방 물길을 칙량하다가 닭이나 돼지를 사러 왔다란다. 그러자 그 할아부지가 그 사람들 보는 앞에서 누구든지 이놈들하고 상종을 하먼 다리몽뎅이를 분질러 놓겠다고 을러방망이로 호통을 치자, 일본 놈들이 겁을 묵고 줄행랑을 치더란다. 그 할아부지가 두고 쓰는 말이 있었다는디,
‘두 목소리 쓰는 놈 믿지 말고, 힘센 놈 앞에 알랑거리는 놈 사람 취급 말라’는 말이었더란다. 그래서 느그 할머니는 느그 아부지가 쪼깐 션찮은 짓을 하먼, ‘너 그따위 짓 하고도 명절에 할아부지 묏등에 성묘 갈래? 그 양반이 묏등에서 벌떡 일어서실 거여.’ 이러먼 꼼짝을 못 하셨다. 깔깔.”
“두 목소리는 어떤 목소린데?”
“보통 목소리가 한 목소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갖고 대단한 일이라도 된 것같이 속닥속닥하는 목소리가 또 한 목소리제 뭣이겄냐.”
순자는 그 할아버지 말씀 중에 션찮은 짓 하고 성묘 가면 죽은 묏등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 무섭게 남아 있었다. 자기도 션찮은 짓 하고 가면, 그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묏등에서 벌떡 일어나서 노려볼 것 같았다.
순자는 시름시름 않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다섯 마지기* 밭을 위토(位土)*로 동네 사람한테 묘를 맡기고 나온 뒤, 지금까지 오 년 동안 몽기미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삼식이도 진즉 장가를 갔을 것이고, 오 년 만에 가는 길이므로 묘를 맡긴 집에서 하릇밤쯤 신세를 져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부랴부랴 집을 나서려다 보니 손에 아무것도 든 게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자기 방에 여기저기 진열해놓은 장난감으로 눈이 갔다. 저런 장난감을 고향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너무 좋아할 것 같았다. 공장에서 신제품이 개발될 때마다 자투리 천을 조금씩 모아 정성들여 만든 것들이었다. 그게 스무 가지도 넘었다. 그 가운데는 유독 솜씨 있게 만들어 친구들이 침을 삼키는 것도 여러 개였지만 아낌 없이 가방에 챙겼다. 그것을 하나씩 받아들고 좋아할 고향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레 신이 났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 교재용으로 장난감 사슴이며 곰 등을 사다가 교실 한 쪽에 진열해두었을 때 순자는 그것들이 어쩌면 그리도 귀엽고 가지고 싶었던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저질의 비닐 제품들이었지만, 그때는 모두가 귀엽기만 했고, 그 가운데서도 까만 눈이 유독 예쁜 아기 인형이 너무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순자는 그런 장난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이렇게 가방에 가득히 담고 나서자 고향에 가는 것이 아주 떳떳하게 느껴졌다.
자기한테 죽자 사자 했던 명식이도 그동안 장가를 가서 벌써 애를 두엇 낳았을는지 모른다. 그 집 애한테는 까만 눈이 유독 똥그란 예쁜 아기 인형을 주어야지. 어머니가 새로 사다 준 고무신을 바다에 빠뜨리고 엉엉 울고 있을 때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서너 번이나 자맥질을 하여 신을 찾아주었던 닻줄이는 지금쯤 아이들이 두엇 되었을 것이다. 그 집 아이들에게는 사슴과 곰을 주자. 항상 무서운 도깨비 이야기로 아이들을 벌벌 떨게 하셨던 꿀병이 할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실까? 그 집 손자들한테도 예쁜 걸 골라 줘야지. 나를 따라 서울 가겠다고 목포까지 도망쳐 나왔다가, 자기 아버지한테 덜미를 잡혀가면서 그 까만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돌아섰던 남분이는 지금도 고향에 늘러 있을까? 그 동생들한테도 예쁜 걸 골라 줘야지. 순자는 골목을 누비며 장난감을 나눠주고 다니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웃고 있었다. 그 장난감들을 차지하고 좋아할 동네 아이들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어마, 순자 언니 아냐?”
“아니 , 네가 어˙떻게?”
금방 떠올랐던 남분이가 몽기미가 아니라 이 기차간에서 웃고 있었다.
“서울서 그렇게 만나고 싶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남분이는 발을 구르며 반가워 못 견뎠다.
“언제 왔지? 지금 무얼 하고 있어?”
순자는 거푸 물었다.
“재작년 봄에 왔어. 그러니까 벌써 이 년이나 됐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차차 이야기할게.”
남분이는 꽤나 그럴듯한 데 취직한 듯 매무새도 말쑥하고 얼굴도 환했다. 식모나 공원 같은 막일로 고생하는 얼굴은 아니게 보였다. 남분이는 순자 곁에 자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혹시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눈을 찔끔해 보였다. 장난스럽다기보다 음충맞게 느껴져 순자는 기겁을 하며 사내 고개를 밀어냈다.
“아저씨, 아저씨, 죄송해요.”
남분이는, 잠에 곯아떨어져 망가진 인형 머리처럼 고개가 처져 내려가는 사내 어깨를 당돌하게 흔들었다. 사내는 잠에 취한 눈을 씀벅였다.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오랜만에 고향 언니를 만나서 그래요. 제 자리는 저쪽 창간데요, 주무시기는 거기가 훨씬 편할 거예요. 자리 좀 바꿔 주세요.”
너무 당돌한 순자 행동이 위태로웠으나 그는 그만큼 삽삽하고* 넌덕스러웠다.*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이었으나 부스스 일어나 짐을 내려 들었다.
“인 주세요.”
남분이는 재빠르게 짐을 채들고 팔랑팔랑 앞장섰다. 그 당돌한 행동이며 말씨는 이미 몽기미 촌티를 싹 벗어버리고 있었다.
“언닌 정말 너무했다고. 그 뒤에 편지라도 한번 해줘얄 게 아냐? 언니 편지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혼자 무작정 올라왔지 뭐야.”
“그때는 나도 서울 살이가 자신이 없어 올라오라고 할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언닌 그 뒤로 고향이 지금 첨이야?”
“응, 넌 지금 서울서 뭘 하고 있어?”
“그럼 명식이 죽은 거 알아?”
“명식이가 죽어?”
순자는 눈이 둥그레지며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순자한테 혼담을 넣어 왔던 젊은이였다.
“나도 지난 추석에 가서야 알았는데 빚 때문에 자살했대.”
“아니, 무슨 빚을 얼마나 졌길래?”
순자는 멍청하게 묻고만 있었다.
“자기 동생만은 이런 섬 구석에서 살게 하지 않겠다고 목포로 중학교를 보내면서 그 학비를 벌려고 목포 상회(商會: 客主) 에서 빚을 내다가 섬을 하나 샀더래. 그게 적잖이 삼십만 원이었는데 하필 그 해에는 갯것이 씻어낸 것같이 안 자라서 본전은 고사하고 이자 턱도 안 나왔다잖아. 이자는 다친 데 붓듯 길어나고 노린 동전 한 푼 나올 데는 없고, 그 꼼꼼한 성격에 고민고민 하다가 일을 저지른 모양이야.”
순자는 멍청하게 듣고 있었다. 그는 배우지 못한 것을 유독 한탄했었다. 순자가 청혼을 뿌리치고 서울로 가버린 것도 자기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꼼꼼하기만 할 뿐 애바루지도* 못한 성격에 그런 투기를 했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섬을 산다는 것은 근처 무인도의 일 년간 해초 채취권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 해에 갯것이 잘 자라면 상당히 재미를 보는 수도 있지만, 흉작일 때는 본전도 못 건지기 일쑤였다. 듣보기장사 애 말라 죽는다*고, 그런 투기를 한 사람들은 이른 봄부터 미역은 포자가 제대로 붙나 톳은 제대로 자라나, 부등가리 안 옆 초이듯* 가습을 조이며 날이면 날마다 그 섬을 들락거렸다. 순자는 몽기미 집집마다 굴쩍*처럼 너덜너덜 달라붙은 그 가난이 새삼스레 가슴을 후볐다.
“나는 작년에 우리 집에 삼십만 원 송금했어. 그러고도 또 그만치 저축은 저축대로 따로 했거든. 언니, 우리 동네 한 집 일 년 수입이 통틀어 얼만 줄 알아? 어촌계에서 갯것을 똑같이 나누니까 뻔한데, 미역·톳·우뭇가사리·돌김, 이런 것들을 상회에 넘긴 값을 촘촘히 계산해보니까, 일 년 수입이 꼭 십이만 원이야. 내 한 달 벌이도 못되더라고. 깔깔.”
남분이는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며 큰소리로 깔깔거렸다. 시골뜨기 계집아이가 한 달 수입 이 십이만 원이 넘는다면 이것은 자랑할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데 벌이가 그렇게 좋아?”
“히히. 언니 실망하지 않을래?”
남분이는 야살스럽게* 히들거렸다.
“실망하긴?”
“운전하고 있어. 히히.”
“운전? 아니, 계집애가 어떻게 운전을 다 배웠어?”
“히히. 기술이 별로 필요 없는 운전이야?”
“기술이 필요 없는 운전?”
“주전자 운전 있잖아?”
“주전자 운전이라니?”
순자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도무지 어리둥절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어이구, 칵 막혔구먼. 서울 헛살았어. 깔깔.”
“아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손에다 쥐어 모셔야 알겠구먼. 술주전자 운전이란 말이야. 술주전자! 깔깔.”
“그러니까…….”
순자는 그제야 웃물이 도는* 듯 눈을 거슴츠레하게 떴다.
“어때? 서울서야 돈만 벌면 그만이잖아. 지금 서울에 주전자 운전사가 몇 만 명인 줄 알아? 그것도 당당한 직업이야. 그사이에 식순이 공순이 다 해봤지만, 그건 남의 종살이밖에 안되더라고. 몸뚱이 도사리고 더런 새끼들한테 구박받으며 붙박여 하루 종일 뼛골 빼봐야 하루벌이가 그게 얼마야? 서울서 사람값은 하나도 돈이고 둘도 돈이야. 국장이 과장보다 월급이 많고 서기가 급사보다 월급이 많은 건, 그만치 층하 가려 사람대접을 달리 하는 게 아니고 뭐야?”
남분이는 조금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니까 십만 원 넘게 번다는 자기가 과장이라면 공순이들은 급사 턱 이나 된다는 본새였다.
“나는 서울 가서 재수가 좋았어. 첨에는 고생을 좀 했지만, 얼마 안 되어 그런 속으로 기똥찬 언니를 만난 거야. 남자 하나 주물러 깝대기 벗기는 데는 도사지만, 우리끼리 의리는 끝내주는 언니야. 내가 그사이 그만치 돈을 잡은 것도 모두가 그 언니 덕이라고.”
순자는 그런 언니를 만난 게 다행이라 할 수도 없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언니, 서울서 구경 많이 다녔어?”
“아니 별로. 창경원은 한 번 가봤지만.”
“아이 시시해. 나는 법주사도 가고 지난여름에는 대천으로 바캉스도 갔다고. 그 언니가 어수룩한 놈팡이 몇을 꼬셔가지고 가면서 그 언니가 나보고 숫처녀 행세만 하라는 거야. 그래서 새침한 얼굴로 눈을 아래로 깔고 다녔더니, 놈팡이 한 녀석이 화끈 달아올라 돈을 물쓰듯 하잖아? 깔깔.”
남분이는 제물에 한창 신이 났다.
“나는 이제 시골서는 죽어도 못 살겠어. 시골에서는 아무리 뼛골 빼도 그 더운 여름에 쭈쭈바를 하나 먹어, 콜라 한 병을 마셔? 전기가 들어와, 냉장고가 있어? 그렇게들 같잖게 살면서도 뉘 계집애는 골로 빠졌느니 말았느니, 시시콜콜 되잖은 소리나 아갈거리고 있으니, 어이구, 정말 못 봐 주겠어.”
고향에 남분이 소문이 이미 난 모양이었다. 서울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계집애가 섬사람 한 집 삼 년 벌이에 가까운 돈을 보냈으니 그런 소문이 열 번 날 법 했다. 그러나 남분이는 공장생활과 식모살이를 종살이라 단정하며 자기 생활을 스스럼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그 기똥차다는 언니 곁붙이*로 그렇게 사는 게 그만치 세상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런 직업을 주전자 운전이라 우스개로 노닥거릴 만큼 자기 직 업에 대해 그의 말대로 시시콜콜한 생각을 말끔히 씻어버린 것 같았다.
순자는 뭐가 뭔지 얼른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 집 일 년 벌이가 십 이만 원밖에 안 되는 몽기미 사람들과, 장난감 공장에서 숙련공으로 우대받는다는 게 기껏 사만 원 받는 자기와, 한 달에 십이만 원 이상을 벌면서 해수욕장으로 관광지로 휘줄거리고* 다니는 남분이와, 도대체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남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멋대로 떠벌리고 또 잠깐 사이에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순자는 요령이 기똥차다는 그 여자가 떠올랐다. 순자에게도 얼마 전까지 자기를 그렇게 보살펴주던 혜선이라는 언니가 있었다. 정읍이 고향인데 얼마 전 공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회사와 맞설 때 앞장을 섰다가 개 끌리듯 끌려 회사를 쫓겨난 언니였다. 그 일은 순자가 서울 와서 겪은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지금도 언뜻하면 공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으로 분위기가 싸늘해질 만큼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원들이 모두 노조 결성에 동조할 기세였다. 그러나 회사의 공갈과 회유에 겁을 먹고 시적시적* 뒤로 물러서서 엉거주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게다가 앞장섰던 공원 한 사람이 회사에 매수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칠팔 명은 여자로서는 더 견딜 수 없는 수모를 당하면서, 머리끄덩이를 끌려 회사문밖으로 내동댕이쳐져버렸다. 이게 혜선이가 순자 눈에서 마지막 사라진 모습이었다.
순자도 처음에는 공원들 앞줄에 서서 주먹을 내두르며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구사대란 이름으로 독기를 피우는 깡패들의 뭉둥이에 주춤주춤 물러서다 보니 결국 구경하는 쪽에 끼여 있게 되었고, 그게 부끄러워 그 뒤부터 혜선이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소식도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혜선이는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도 많았고, 무슨 일의 시비를 가릴 때도 범상한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을 만큼 사리가 반듯했다. 그가 공원들을 찾아다니며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는 순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비록 한 달에 백만 원을 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가 단독으로 결정한 임금일 때 그것은 노예에게 주는 임금이며, 그것이 단돈 만 원이 못 되더라도 노사간의 대등한 협상으로 결정된 임금이래야 그게 인간에게 주는 임금입니다.’
‘우리 투쟁은 단순히 임금 몇 푼 더 받자는 것보다 노예나 벌레가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입니다. 기업주의 온정에 빌붙어 처우개선의 시혜가 내리기를 바라는 노예근성을 버립시다. 기업주와 대등한 관계로 맞서는 노동조합을 조직하면, 임금 인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은 벌레에서 인간으로 승격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혜선이가 다른 회사 노조 결성과정을 낱낱이 예를 들어 설명하자 모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쥐었다. 그렇지만 앞장섰던 그들은 개 끌리듯 쫓겨났고, 함께 나서기로 약속했던 자기는 공장 건물 뒤에 숨어서 그들이 끌려가는 꼴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배신자, 순자는 이 말을 입속으로 가만히 뇌어봤다. 어렸을 때 밭둑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따먹다가 뱉어버린 아그배처럼 쓰고 떫게 씹히는 말이었다. 그들은 끌려 나가며 구경하는 공원들에게 안타깝게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안타깝게 지르던 고함소리는 무슨 말이었을까? 도와달라는 애원이었을까, 배신자라는 질책이었을까? 순자는 그들의 고함소리를 멀리 들으면서, 우리는 거들어줄 힘 이 없다고, 그들에게 변명 하고 자신에게 변명 하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들이 끌려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게 얼마나 큰 배신이었던가는, 회사에 출퇴근할 때마다 그들이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주변을 두렷거리는 그 두려움이 말해주고 있었다. 배신, 그것은 모르고 덜퍽 신은 신속에서 따끔하게 가시가 찔릴 때 그 지늘킬* 듯한 혼겁*이었고, 살인자의 싸늘한 눈빛 이었다.
순자가 서울 와서 맨 먼저 느낀 자신의 모습은 돼지새끼 무녀리였고, 그 다음 공장에 자리를 얻어 이만치라도 살아가게 되었다고 감지덕지하기만 했던 그 생활은 혜선이 말에 따르면 노예나 벌레의 생활이었다. 노동조합 결성에 자기도 같이 싸우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기는 바로 그 결심과 함께 한몫 사람이 되었지만, 거기서 한발을 더 내딛지 못하고 멈춰버리자 그건 배신자였다. 배신자, 마치 입안에 보리가시랭이처럼 뱉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목구멍 속으로 밀려오는 말이었다.
순자는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 하자고 머리를 저으며 그 푸근하고 따스한 몽기미를 떠올렸다. 그때 증조할아버지 묘가 먼저 떠올랐다. 그 순간, 시원찮은 짓 하고 성묘 가면 묘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던 할머니 말이 머리를 쳤다. 순자는 작자기 몽기미 가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췄다. 정읍이었다. 혜선이 고향이었다. 순자는 깜짝 놀라 유리창의 성에를 바삐 문지르며 밖을 내다봤다. 혜선이가 다른 데 취직해서 서울서 지내다가 혹시 이 차를 타고 오지나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혜선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설은 꼭 자기 집에 가서 쇠자고 찰떡같이 약속을 했던 말이 지금도 귓결에 남아 있었다. 자기 집은 정읍 읍내에서 서북쪽으로 오 리쯤 조그마한 정자나무가 있는 작은 동네라고 했다.
“우리 엄마도 널 좋아할 거야. 나더러 덜렁거린다고 우리 이웃집 계집애처럼 좀 찹찹하라고* 항상 그 소리였거든. 네가 꼭 그 애같이 찹찹하니까 우리 엄마는 너를 나보다 더 좋아할 거야.”
혜선이는 늘 이렇게 남의 좋은 점을 치살렸고* 자기를 낮추었다. 덜렁거린다기보다 활달한 성격이라 혜선이는 누구한테도 호감을 샀다.
기차가 목포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네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통금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거리는 싸늘한 냉기와 어둠 속에 꽁꽁 얼어 있었다.
“어떡하지?”
순자가 물었다.
“여관에 들러 한숨 더 자고 가지 뭐.”
“오늘이 섣달그믐이라 새벽 같이 나가서 표를 사야 할 거야.”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거리를 조심조심 걸어 선창가로 갔다. 거기 아무 여인숙에나 들러 아침에 일찍 깨워달라는 당부를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남분이는 또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는 열심히 떠들고, 또 이렇게 눕기만 하면 잘 자고, 세상이 마냥 즐겁고 만사가 천하태평이었다.
순자는 아까 기차에서 잠깐 눈을 붙여 그런지 눈이 말똥말똥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잠시 명식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다. 원체 너울가지*도 없고 냅뜨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투기를 할 만한 위인이 못되는데, 그런 모험을 했다가 그 꼴이 된 것 같았다. 명식이가 자살한 이유 가운데 내가 차지해야 할 몫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순자는 명식이 생각으로 내내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가 일곱 시에 남분이를 깨워 선창으로 갔다. 매표구에는 줄이 여러 개가 바깥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들도 몽기미 가는 줄을 찾아 꽁무니에 붙었다. 여기저기서 새치기 말라는 악다구니가 쏟아지며 열이 옥조여왔다. 한참 만에 차례가 왔다.
“몽기미 두 장이요.”
“오늘 몽기미 배 안 대.”
“안 대다니요?”
“파도가 심해서 오늘은 거기 배 못 대.”
“아니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댁네 사정을 누구한테 묻고 있어? 빨리 비켜!”
남분이는 열에서 나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순자는 되레 잘 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순자는 매표구 곁에서 징징거리는 남분이를 달래어 다시 여인숙으로 갔다. 아침을 먹구 나자 금방 깔깔거리며 두 개나 되는 가방을 열고 짐을 몽땅 꺼내 놨다. 거의가 옷이었다.
“언니, 이 스웨터 예쁘지?”
남분이는 방글거리며 노란 스웨터를 제 가슴에 펴 보였다. 옷도 예쁘고 웃고 있는 남분이도 한결 앳되고 예뻤다. 남자들이 저런 얼굴에 혹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분이는 잠깐 다녀오려면서 자기 옷만도 한두 벌이 아니었다. 국민학교 때 서울 구경 가며 목포 선창 비단전 앞에 서서 켜켜이 쌓인 비단을 얼빠진 꼴로 보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니는 이건 다 뭐야?”
순자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장난감이라고 하자 제 가방이라도 된 듯 대번에 자크를 죽 갈랐다.
“어머나.”
남분이는 입을 떡 벌렸다. 환성을 지르며 장난감을 모조리 방안에 늘어놨다. 방안은 장난감들로 금방 흐믓한 동화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근데 말이야.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이런 장난감 하나도 제대로 간수할 줄 몰라. 글쎄, 지난 추석에 나도 남동생들한테 큼직한 강아지장난감을 사다줬더니 한나절도 못 가서 시커멓게 만들어버리잖아?
흙 묻은 손으로 만지고 흙밭에 떨어뜨리고, 나중에는 글쎄 목에다 줄을 매서 숫제 땅바닥으로 끌고 다니는 거야.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막 패 줬어.”
남분이는 지금도 속이 상한다는 표정이었다.
“이걸 애들 주지 말고 모조리 학교에다 기증을 하면 어때? 그래야 오래 갈 거야.”
순자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깨끗하게 간수하라고 잘 이르면 될 것 같았다.
“뭘 하고 시간을 보낼까?”
남분이는 가방에다 장난감을 챙기며 순자를 봤다. 순자는 말없이 남분이만 건너다보고 있었다.
“가만있자. 극장? 시골이라 프로가 형편없을 거야.”
“그럼 바닷가에나 한번 가볼까?”
“바닷가? 거 좋지. 언니는 꽁생원인 줄만 알았더니 이럴 때 보면 아주 낭만 이야. 깔깔.”
남분이는 가살*을 떨며 대번에 옷을 입었다.
“아, 잠깐! 존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언니,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이건 또 무슨 주책인가 싶게 수다를 떨며 이쪽에서 뭐라 물어볼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 만에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손에는 웬 엽서가 여러 장 들려 있었다.
“편지 할 데가 있니?”
“신나는 편지야.”
“누구한테?”
남분이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배를 깔고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구정을 맞아 고향에 가던 순자와 남분이가 목포까지 왔다가, 연락선이 제대로 다니지 않아 서울로 다시 돌아가면서 저 멀리 외딴섬 몽기미에 계신 부모님들과 그리고 길례, 옥분이, 길남이 등 친구들과 함께 듣고 싶어 노래를 청합니다. 아나운서님, 우리는 슬픈 소녀들이랍니다. 꼭 들려주세요. 노래는…….’
“우리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건 아니 잖아?”
“언닌 이럴 때 보면 칵 막혔다니까. 이렇게 써야 슬프게 보인단 말이야. 방송국에서는 이런 슬픈 사연을 좋아하거든. 지난 추석에도 이렇게 슬프게 썼더니 내가 몽기미에 가자마자 방송이 나왔었다고. 깔깔.”
남분이는 벌써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지난번처럼 방송이 되면 네가 정말 서울로 돌아가버린 줄 알고 식구들이 진짜로 슬퍼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더 재밌잖아. 가버린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나타나면 얼마나 더 반갑겠어? 지난 추석에도 그렇게 엉터리로 썼던 거야.”
남분이는 깔깔거리며 지난 추석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배를 타기 직전에 이런 엽서를 띄웠었는데 그것이 방송에 나오자 몽기미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몽기미란 섬 이름이 방송에 나온 것은 그게 처음이라 남분이 때문에 섬사람들이 출세라도 한 것처럼 동네가 떠들썩했던 것 같았다.
남분이는 똑같은 내용으로 엽서를 두 장이나 써서 각각 다른 방송국 주소를 썼다. 그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제 나름대로 얼른 터득하고 거기에 알맞게 맞춰 엉너리*를 치며 살아왔듯, 방송국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고, 슬픔까지도 이렇게 화장하듯 쉽게 지워내어 즐기고 있었다. 남분이가 이렇게 설치고 나설수록 순자는 자기가 남분이하고 몽기미에 가는 게 마치 그의 데림추*로 묻어가는 느낌 이었다.
남분이가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나자 그들은 바닷가로 나갔다. 시내버스를 타고 북적대는 선창가를 한참 지나 유달산 뒤편 해수욕장이 있는 호젓한 도린곁*에서 내렸다. 바닷가에 서자 오랜만에 가슴이 툭 트이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 개흙이 시커멓게 뒤집힌 바다는 낭만적 이기는커녕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쪼그맣게 옹송그리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파도는 저만치 시커먼 바다에서 꿈틀꿈틀 밀려와 바위에 부딪혀 허옇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졌다. 이 파도에서 순자는 몽기미를 본 것 같았다. 몽기미의 가난과 바다에 빠져 죽은 명식이의 한숨과, 옛날 태풍에 몰살당한 동학농민군 아우성까지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파도는 허연 이빨을 번득이며 순자와 남분이 발밑에서 무섭게 부서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일찍 선창으로 나갔다. 그러나 어제처럼 사람이 몰려 있지 않았다. 갈 사람들은 거의 가버린 것 같았다.
“남분아, 표는 한 장만 사!”
남분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봤다.
“나는 못 가겠어. 나는 휴가기간이 짧은데 몽기미에서 다시 나올 때 어제처럼 거기 배가 못 대면 결근을 해야 돼.”
“그런다고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간다는 말이야?”
“나는 여태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어.”
“그럼 어제 가잖고?”
“너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어. 어제 보니 네 가방에 빈 보자기가 있더구나.”
순자는 한쪽으로 가서 보자기에 장난감을 모두 옮겨 싸며 동네 아이들한테 고루 나눠주라고 했다.
순자는 기차시간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남분이가 배 타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짐작했던 대로 역사도 손님들이 북적 거리지 않았다.
“정읍이요.”
순자는 표를 쥐고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디 먼 데를 바쁘게 떠돌다가 차근하게* 집에라도 가는 기분이었다. 순자는 실없이 기차 안을 한번 둘러봤다. 자기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자기 집에서 편히 설을 쇠지 않고 설날 이렇게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기 탄 사람들은 엊그제 서울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몰려 드잡이판을 벌이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 같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들떠도 그런 데 휩쓸리지 않고 제 생각대로 살아갈 것 같은 사람들로 느껴졌다. 승객들의 느긋한 표정을 보고 나자 순자도 여태 어디 엉뚱한 데를 떠돌다가 제대로 가는 것 같은 안도감마저 들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거리에는 세배 가는 때때옷 행렬이 여기저기 한가로웠다. 멀리 가까이 보이는 시골 마을 초가집 지붕 밑에는 설날 아침의 느긋한 화목이 가득가득 담겨 있을 것 같았다. 혜선이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는 처음부터 혜선이 집 가려고 서울을 떠났던 것 같았고, 목포까지 간 것은 거기 가는 길이 그렇게 에워가게*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기차가 들판을 기세 좋게 달리고 있었다. 순자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옆자리에서 낮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에 귀가 번쩍 했다.
“구정을 맞아 고향에 가던 순자 씨와 남분 씨가·…….”
순자는 웃으며 귀를 모았다.
“참 안 됐습니다. 자칭 슬픈 소녀들이라 했군요. 하하. 그런대로 즐거운 여행이 되기 바랍니다. 서울 생활이 더욱 보람 있기 빌며 노래 보내드립니다.”
저 소리를 듣고 좋아할 남분이 표정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기차는 들판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순자는 너무 오랫동안 어디로 잘못 떠돌다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문학』 57호(1978.7): 2005년 10월 개고
송 기 숙
송기숙(宋基淑)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 에 평론(「李箱 序說」)으로 등단하고 이듬해 같은 잡지에 단편 「대리복무」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7, 80년대 교육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구수하고 질박한 민중 정서가 전편에 깔린 그의 소설들은 농민계층의 피폐한 삶과 잘못된 현실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혈연의식에 근거한 설화적 상상력으로 분단극복 의지를 드러낸 「당제(堂祭)」를 비롯해 「백의민족」 「개는 왜 짖는가」 『암태도』 『녹두장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