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운동하러 강변에 나가면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무언가를 손으로 열심히 퍼 나르는 분이 있어 뭐 하는 가 했더니
개구리란 놈이 빗물 고인데다 알을 낳아 놓아서 물이 마르기 전에 웅덩이로 옮기는 중이랍니다.
연세도 지긋 해 보이셨는데요. 같이 했죠.
그게 인연이 되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목례만 주고 받다가 덕담으로 이어지고 그게 발전해서.,,,
다섯시 반에 집을 나와 살곶이 다리까지 천천히 걸어가면 그 분이 나오십니다.
되돌아 동호대교 아래 체육공원에 와서 같이 운동을 합니다.
나란히 하기도 하고 차례로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크로바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개구리 몸통에 매달아주고
풀숲 뒤져 맹꽁이 찾아내서 뒤집어 놓고 엎어지려 할 때마다 배 간지르기.
달팽이 경주 시키기도 하고.
지네 잡아 다리 세어 보기.
아카시아 꽃잎 갯수 헤기. 등등.
지금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개구진 장난들을 숨넘어가게 웃어가며 했습니다.
언젠가
뜬금없이 친구 하자고 하더라구요.
환갑 지난 노인네하고 무슨 친구냐고 했더니,
세상에나
환갑지난 자녀가 셋이나 된답니다.
오십까지는 나이가 드는거고 그 다음부터는 나이를 먹는 거라며
백살까지 11년 남았으니 나이가 열한 살이라네요,
많이 봐줘서 고맙다며 금호동 시장 해장국 사 줘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가지.
운동을 마치면 꼭 담배를 피우시는데요.
얼마나 맛있게 태우시는 지 감탄이 절로.
그래도
건강을 위해 운동하면서 이게 뭐냐. 공기 오염된다. 하고 잔 소리를 했더니.
"당신 짖꿎어. 나도 하고 싶은 것 좀 하며 살게 놔 둘 수 없나?"
하고 토라집니다.
얼른 뒤로 돌아가서 등허리 토닥토닥,어깨 주물럭주물럭,
"어 시원하다!"
금세 풀어집니다.
물어 볼게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 하면서 신발이 넋가래 같다고,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
아들이 안 신는거 아까워서 신는다고 했습니다.
아들 나이를 묻기에 군대 갈 때라고 하자.
제 나이가 삼십 중반쯤 보여 결혼 했을까 긴가민가 했다며 깜짝 놀라십니다.
기분 좋아 해장국 샀습니다.
나이 어려 보이는 것도 공통점이라며 자꾸 친구 하자기에 그러자고 했더니 뛸듯이 기뻐합니다.
그 후.
제가 경어를 쓰면 "네." 알았습니다." "그러십시다."
장난 삼아 반말을 하면 "응." "왜?" "그래"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하니까
친구 사이에도 서로 존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어느 날.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는다며
벤치로 저를 데려 가더니 무릎베게를 해 주면서 제 손을 꼬옥 잡고 속 상한 거 있으면 다 얘기 하라고 하기에,
속내를 털어 놓으니 그렇게 편 할 수가 없더라구요. 마치 고해라도 하는 양.
"친구란 가장 편안 해야 하는 거야.
누구에게 하지 못 할 얘기도 진정한 친구 사이라면 털어 놓을 수 있어야겠지.
그걸 판단하는 기준도 본인 몫이고."
그 때 진정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아프지 마시라고, 건강 하시라고.
왜냐고 묻는 그에게
아프면 내 마음이 더 아플거라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그럴 일은 없을 거랍니다.
그렇게 우정이 깊어졌나 봅니다.
그냥
그렇게.
첫날엔 사정이 있겠지 했습니다.
둘쨋날엔 무슨 일일까 했고.
셋째날부터는 전전긍긍입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도 비를 맞으며 살곶이 다리까지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래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오실 것만 같아서,,,
그렇게
몇 날이 흘렀는지,
살곶이 다리 앞에서 검은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메고 액자를 안고 오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는데,놀랍게도 사진 속의 인물은 다름아닌 그 분이었습니다.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려 애쓰며 다가가 물었습니다.
"돌아 가셨나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서 영정을 받아 가슴에 꼬옥 안았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면서 엄청난 슬픔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라도 소식을 알게 되어서,,,'
급성폐렴이라네요. 나이 드신 분들은 건강 하더라도 노회한 부분에 손상이 오면 손도 쓸 수 없어,유언도 못 할 정도로 진행이 빨랐답니다.
유품을 정리 하다가 일기장을 발견 했고 누군지도 모르는 저를 만나려고 며칠째 영정을 모시고 강변을 돌아 다녔답니다.운동을 하시는 건 알았지만 언제 어디서 하는 지 몰랐기에
엄청난 정성입니다. 하기사 모시고 살아도 무얼 하시는지 모를 일을 따로 살았음에야,
건네 받은 종이 가방 속에는 일기장과 새 운동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새 운동화를 신고 일기장을 펼쳐 보았습니다.
처음 만나던 날부터 하루도 빼 먹지 않고 그 날 그 날 했던 운동이며 장난친 일,
대화까지도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간간이 내게 하고 싶은 말도 곁들여 가며.
아드님 되시는 분이 어떻게 인사를 하고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일기장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걱정 해주는 대목에서는 고마움이, 격려 해주는 글을 읽을 때면 감동이 몰려 왔습니다.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합니다.
선물이 고맙지만 곁에 두면 볼수록 슬픔만 더해지겠지요.
지금 보내기엔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리움은 세월속에 차츰 잊혀질 겁니다.
신발 포장 박스와 종이 가방을 뜯어 배를 만들었습니다.
신발을 얹고 일기장을 담아 강물에 띄웠습니다.
안녕.
나를 사랑했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친구여.
안녕.
그렇게 모든 걸 담아 보내고 체육 공원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데 뒤에서 정겨운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친구, 잘 가시게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돌아서니 보이는 건 낯선 사람들 몇몇 뿐.
순간 눈을 질끈 감아 버렸지만 이미 그리움에 젖은 참고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삽시에 고독이 온 몸을 엄습,,,,,,,
어렵게 점포를 마련하여 가게에 보탬을 하려다가 실패로 힘겨워하는 예전 울 회원님과 교중미사 후 줄곧 허심탄회 속내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돈을 쫓아간다고 경제가 여유로지는 것도 아님을... 생활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빈첸시오 활동을 한다는 것도 아니며, 그 모든 것의 첫 번째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주어진 환경 내에서 주님사랑 증거사업인 사도직 삶이 우선임을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명예회비 수납 때문에 아침은 물론, 점심도 못 먹은 체 보낸 시간들이었지만 모처럼 성령으로 꽉 찬 기쁨을 간직한 채 집에 돌아와 도드람님의 글을 접하니...오늘은 모두가 환희에 벅찬 시간뿐입니다. 저녁 때 노력봉사 마치고 돌아올 우리 청년빈첸시안들과의 미팅 예정 또한, 성령께서 기꺼이 함께 하시리라 것도 확신하며 허기진 배를 채워야겠습니다.
살아 가는 게 소설 아닐런지요.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 몇 권은 쓸 거라는,,,, 단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것 뿐이겠지요. 레지오 주회 참석 때문에 잠깐 들어 와 보았습니다. 어제는 미사도 빠뜨려 성사 봐야 하네요. 바쁘다고 이러면 안 되는데.
대단한 것은 그 분 아드님이지요. 단지 일기장에 적힌 선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막연히 그렇게 나서는 성의. 그리고 마지막 말. "어차피 부모님 유품이라 하더라도 다 끌어 안고 살 수는 없지요.정리해서 버릴 건 버려야 하는데 이것은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선 겁니다. 아버님도 원하셨을 거구요." 만약 그냥 버려졌더라면 저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요. 긍금하긴 하겠지만.
언젠가 저보구 감성이 넘쳐서 걱정이라기에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주변인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본인, 특히 사회생활에서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다네요. 이성적 판단보다 순간 기분에 치우쳐 일을 그르칠 경우가 많을 거라며 천성이라 고치긴 힘들겠지만 유념하라고 하셨습니다.근간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런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살아 가면서 나이,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하고 절실히 원했었는데 저도 모르는 새 다녀 가 버리셨네요. 막상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조차 못 했었는데,,,,,,,현실을 조금만 파악했어도 아쉬움은 훨씬 덜 했을겁니다. 에휴. 당금 직시도 못하는 좁아터진 소견머리.
오늘 돌아 가신분은 췌장암으로 발견 한지 두 달도 채 안 돼 가셨네요.진행이 너무 빨라 자매님이 경황이 없을 정도 였답니다. 다행인 것은 본인이 현실을 빨리 파악하고 신변정리를 했다는 겁니다.가톨릭 의대에 시신 기증 하셨구요. 마지막으로 양복입고 가시겠다고 해서 옷도 갈아 입혀 드렸답니다. 아쉬움은 남아 있는 사람들 몫일 뿐.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외로울 때면 가만히 친구를 불러 봅니다. 이럴 때 그라면 어떤 말을 해 줬을까. 아마 아무 말도 안 했을 겁니다.한참 있다가 '친구가 옳을 거야. 왜냐. 내친구니까. 난 내 친구를 믿거든. 힘 내!' 하겠지요. 일기장만큼은 버리지 말 걸 그랬나 봅니다. 자꾸 미련이 남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위대한 주님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무슨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며칠동안 밀린 잠이라도 푹 잤으면 했는데 궁금함을 못 이기고 졸린 눈 비비며 들어 왔습니다. 지나온 날들의 반성과 후회에 연민까지 더 해져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집 사람 말대로 공연히 오지랖만 넓어서 이 일 저 일 끼어 들어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켜 보자니 답답하고 끼어 들어도 별무신통입니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지경입니다. 미련때문이겠지요.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생각이 나네요.무릎베개 해 주시던 날, 희망이 오는 것에 대한 기대라면 미련은 지나 간 것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라고요. 희망은 쉽게 깨지지만 미련은 바위보다 더 단단해서,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많이 안고 간답니다.
첫댓글 소설 한토막인지, 현실속의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찌 이런 사연이...?? 오늘은 본당협의회 노력봉사에도 조그만 밭에 가 김 메는 일도(빈첸시오 대상가족 방문은 어제 토요일 다 했기에) 다 제켜두고,
어렵게 점포를 마련하여 가게에 보탬을 하려다가 실패로 힘겨워하는 예전 울 회원님과 교중미사 후 줄곧 허심탄회 속내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돈을 쫓아간다고 경제가 여유로지는 것도 아님을... 생활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빈첸시오 활동을 한다는 것도 아니며, 그 모든 것의 첫 번째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주어진 환경 내에서 주님사랑 증거사업인 사도직 삶이 우선임을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명예회비 수납 때문에 아침은 물론, 점심도 못 먹은 체 보낸 시간들이었지만 모처럼 성령으로 꽉 찬 기쁨을 간직한 채 집에 돌아와 도드람님의 글을 접하니...오늘은 모두가 환희에 벅찬 시간뿐입니다. 저녁 때 노력봉사 마치고 돌아올 우리 청년빈첸시안들과의 미팅 예정 또한, 성령께서 기꺼이 함께 하시리라 것도 확신하며 허기진 배를 채워야겠습니다.
살아 가는 게 소설 아닐런지요.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 몇 권은 쓸 거라는,,,, 단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것 뿐이겠지요. 레지오 주회 참석 때문에 잠깐 들어 와 보았습니다. 어제는 미사도 빠뜨려 성사 봐야 하네요. 바쁘다고 이러면 안 되는데.
대단한 것은 그 분 아드님이지요. 단지 일기장에 적힌 선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막연히 그렇게 나서는 성의. 그리고 마지막 말. "어차피 부모님 유품이라 하더라도 다 끌어 안고 살 수는 없지요.정리해서 버릴 건 버려야 하는데 이것은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선 겁니다. 아버님도 원하셨을 거구요." 만약 그냥 버려졌더라면 저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요. 긍금하긴 하겠지만.
언젠가 저보구 감성이 넘쳐서 걱정이라기에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주변인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본인, 특히 사회생활에서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다네요. 이성적 판단보다 순간 기분에 치우쳐 일을 그르칠 경우가 많을 거라며 천성이라 고치긴 힘들겠지만 유념하라고 하셨습니다.근간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런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살아 가면서 나이,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하고 절실히 원했었는데 저도 모르는 새 다녀 가 버리셨네요. 막상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조차 못 했었는데,,,,,,,현실을 조금만 파악했어도 아쉬움은 훨씬 덜 했을겁니다. 에휴. 당금 직시도 못하는 좁아터진 소견머리.
오늘 돌아 가신분은 췌장암으로 발견 한지 두 달도 채 안 돼 가셨네요.진행이 너무 빨라 자매님이 경황이 없을 정도 였답니다. 다행인 것은 본인이 현실을 빨리 파악하고 신변정리를 했다는 겁니다.가톨릭 의대에 시신 기증 하셨구요. 마지막으로 양복입고 가시겠다고 해서 옷도 갈아 입혀 드렸답니다. 아쉬움은 남아 있는 사람들 몫일 뿐.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외로울 때면 가만히 친구를 불러 봅니다. 이럴 때 그라면 어떤 말을 해 줬을까. 아마 아무 말도 안 했을 겁니다.한참 있다가 '친구가 옳을 거야. 왜냐. 내친구니까. 난 내 친구를 믿거든. 힘 내!' 하겠지요. 일기장만큼은 버리지 말 걸 그랬나 봅니다. 자꾸 미련이 남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위대한 주님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무슨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휘몰아 칩니다.
스테파노회장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등촌3동 빈님들과 쏘주해야겠지요...벌써 옛날(?)이 그립네요.안부전해주십시오
며칠동안 밀린 잠이라도 푹 잤으면 했는데 궁금함을 못 이기고 졸린 눈 비비며 들어 왔습니다. 지나온 날들의 반성과 후회에 연민까지 더 해져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집 사람 말대로 공연히 오지랖만 넓어서 이 일 저 일 끼어 들어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켜 보자니 답답하고 끼어 들어도 별무신통입니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지경입니다. 미련때문이겠지요.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생각이 나네요.무릎베개 해 주시던 날, 희망이 오는 것에 대한 기대라면 미련은 지나 간 것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라고요. 희망은 쉽게 깨지지만 미련은 바위보다 더 단단해서,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많이 안고 간답니다.
스트레스의 주범이라며 항상 마음의 상자를 비우라고 하시기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마 미련없이 사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걸.' 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더군요, 미련이 없으면 후회도 그리움도 없을 거라고,,,,,,,,,,,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 반성과 상대를 위한 배려가 항상 따르는데요.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감정에 가려지네요. 저만 그런 건가요? 아님 기도가 부족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