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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자리는 바른 자리인가? 아니면 내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인가? 국민스포츠 축구경기는 11명 선수가 정해진 포지션에서 경기 합니다. 그런데 경기중에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지 않고 공을 가지고 골문을 벗어나는 일이 있다면 포지션에서 이탈하였기에 책임완수를 못하게 됩니다. 누구든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말씀하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응답해야 합니다.
복음송가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내 영혼 거룩한 은혜를 향하여 내 마음 완전한 하나님 향하여 이 곳에서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2002년 월드컵축구 4강주역 독실한 크리스찬 이영표선수가 쓴 책 “생각이 내가 된다” 이 책에서 이영표 선수가 신앙의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을 찾지 못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은 이영표 선수 마음에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너 에게 맡기신 사명은 특별한 장소에서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이나 직책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너의 사명은 누군가의 아들로써 세 딸의 아빠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써 누군 간의 친구로서 이웃으로서 축구선수 이영표로써 그리스도인 이영표로써 오늘 허락한 하루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다며 자신이 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영표선수처럼 어다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한 사람 모세 이야기입니다. 그의 삶은 120년 생애를 3단계로 나눈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애굽왕궁에서 살던 화려한 왕자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인을 죽인 살인자로 광야로 도피했습니다.
모세는 40살이후 광야 생활속에서 많은 고난과 연단가운데 멘토인 이드로 제사장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는 이드로 제사장을 만나 고난의 여정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이드로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우리처럼 평범한 가정생활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졌을까요? 1절 말씀을 보면.......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양을 치는데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 앞에 특별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아카시아 종류인 떨기 나무가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떨기나무가 타는 것은 흔한 일인데 놀랍게도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세 귀에 들린 소리인지 아니면 내면에서 들려오는 영적인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세야, 모세야” 두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사울(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사울아 사울아 부르는 소리에 사울(바울)이 엎드려지는 것처럼 모세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떨기 나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떨기나무 가운데서 “이리로 가까이 오지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선포하신 멧세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상이 본문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성도여러분!!.......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때 모세가 서 있는 자리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곳일까요? 모세가 서 있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체험해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응답하고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신앙생활은 교양생활이요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흥에 갔다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체험한 성도가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보다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체험한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사람 따라 교회에 왔다 갔다 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분도 있습니다.
21일간 다니엘기도회 20일째 일명 탱크 프로골퍼 최경주장로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최경주장로님께서는 2023년 장로로 임직하기까지 그가 처음 교회 나가게 된 동기를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하여 골프를 칠 때만 탱크가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탱크처럼 기회가 올 때 그 일이 분명하다 하면 불도져 처럼 뒤를 보지 않고 밀고 나간 것들이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되었다는 것을 간증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난 때는 서산 골프장에서 잠시 코치로 있으면서 용돈을 모으는데 어느날 특이한 분이 골프치러 왔는데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니까, 개장사라고 하는 겁니다. 개 장수와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고 골프 백을 차에 실어드리는데 트렁크를 열었더니 성경책 두 권과 부흥집회 전단지가 있는 것을 본 겁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날 트렁크를 다시 열 기회가 있어서 열어 봤더니 이 분이 목사님이란 사실을 알고 최경주 장로님이 “왜 개장사라고 했습니까?” 물으니까 목사님 “최 박사, 내가 골프 친다고 하면 성도님들이 뒤에서 수군거려요.” 그 당시에는 골프가 귀족스포츠라 이상하게 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최경주 장로님을 잘봤는지 지금 아내(김현정 권사)를 소개시켜 주었는데, 중매쟁이 역할을 하시는거예요 목사님이 지금 아내에게 가서는 최경주 청년이 아내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골프치려오면 목사님은 최경주에게 아내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서로에게 호감가는 이야기를 해셨답니다. 목사님이 나름 생각하기를 최경주 청년이 신앙은 없지만 돈 잘 버는 사람이고, 자매는 신앙이 좋은 사람이니까 둘이 엮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 목사님이 최경주장로에게 아내 전화번호를 주었답니다. 장로님은 비 오는 날 손님도 없고 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현정씨 !~~ “비도 오는데 뭐 하십니까?” 아내도 한가하다고 해서 만났는데 그것이 첫 데이트였는데 만약 장로님 하시는 말씀이 만약 제가 서산에 안 갔다면, 제 아내를 만나지도 못했고 신앙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데이트 후 사랑의 불꽃이 튀면 누구나 못 견디죠 최경주 장로님은 이제 아내와 데이트를 하려면, 교회에 가야 하니까 교회에 나가기 시작 한 것입니다. 교회가 가서 느낀 것은 참 교회는 다른곳이구나 호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지금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신혼 때 대만 골프대회를 나갔는데 제가 잠자는데 아내가 내 엄지발가락 2개를 붙들고 기도해 주는 모습에 장로님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내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아주 자유분방한 사람이고, 그냥 두면 낭떠러지로 갈 사람인데, 아내가 중간중간 신앙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주어서 현재 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이 바뀌어서, 시합에 나가면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기도 받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처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때가 일본 골프대회때인데 아는 장로님에게 전화해서 기도해달라고 요청을 했돼요~~~ 이 때가 장로님! 골프대회 첫 중보기도의 시작이었답니다. 그런데 대회 마지막 날, 마지막 퍼터(그린위에서 공을 굴리는 용도로 쓰이는 도구) 가 오르막 4m 정도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모자를 누르고 기도를 신중하게 하고 홀을 봤는데, 하얀 분필로 가는 길이 그려져 있는 겁니다. 제 눈에만 보이는 자국이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골프대회에 가서 많이 헤맸습니다. 미국에서 프로선수로 뛰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었습니다. “주님, 이거 꼭 넣어야 합니다. 이거 못 넣으면 저 한국 가야 합니다.”라고 기도하고, 홀을 봤는데, 공 가는 길이 호미로 그어준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것이 두 번째 기적이었다고 간증합니다.
많은 체험적인 간증이야기가 있지만 40분 간증이 근방 지나갔는데 간증을 들으면서 중매쟁이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최경주장로님에게 붙혀주셨던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첫 번째 접촉점이 되어 지금의 아내인 김현정권사님을 만나게 되고 오늘 교회 장로님으로 섬기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 중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방황하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양을 몰고 다녔기에 오늘 온 이 길이 처음 온 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목동이 양을 몰고 나갈 때 늘 다니던 길을 다니는 것처럼 이 길도 익숙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익숙한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길이 거룩한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잘못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한 길을 정해 놓으시고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어느 특정한 장소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체험적으로 만났던 장소도 집을 떠나 낯선 친구집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잠을 자던 새벽 성령님이 깨우시고 성령님 이끄신대로 밖으로 그냥 나갔는데 제가 왜 2층 교회로 갑니까? 그때 교회 마루바닥 자리는 정말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자리였고 그래서 오늘 김승권을 여기 있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성도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목사님~~ 저는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예배드리러 나올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때는 한번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예배하는 이곳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곳입니다....... 지금 이 예배시간 하늘을 향해 경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순간이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난 자리가 거룩한 자리로 고백한다면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자기를 포기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5절말씀을 나누어서 다시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랑하시기에 모세의 신발을 벗겨주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처음 죄를 지은 인간 아담에게 가족옷을 입혀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모세의 신발을 벗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신발을 벗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몫입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내 의지와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옷을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 누우라면 누워야 합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 생각과 노력으로 자기 동족을 구원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인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디안 광야에 쫓겨나서 양을 치며 이제 더 기대할 것 없는 비참한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자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모세를 만나주신 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난 때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주장, 나의 교만, 나의 고집, 나의 방법, 인생은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됩니다.
누가복음5장 베드로를 처음부르실 때 베드로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어부 베드로가 생계를 위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습니다. 오늘도 만선의 기대를 품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그 날 따라 밤이 맞도록 이곳 저곳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으러 했지만 한 마리 고기를 잡지 못한 채 피곤한 가운데 그물을 씻고 챙기며 실패자의 모습으로 배에 앉아 있습니다. 낙심입니다......생계가 걱정이 됩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깊은곳에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깊은 뜻을 이미 베드로 생각을 뛰어넘어 베드로가 고기잡았던 곳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그렇까요? 갈릴리바다를 원히 들어다 보며 고기가 집히지 않으면 더 깊은 곳 깊지 않은 곳 다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깊은대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부정을 보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눅5:4-5....말씀을 마치시고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한 것은 자기생각 자기 지식을 포기하고 이젠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가서 그물을 내린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배에 만선이 된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여전히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발을 벗지 못한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모세가 거룩한 자리 신발을 벗고 자기를 포기한 것은 새 사람으로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늘 신고 다닌 신발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걷지 못한 아이 때는 어떠습니까? 신발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엄마 등에 업혀 있으면 됩니다. 엄마가 곧 발이 되어 줍니다.
모세가 태어나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뛰울 때 그의 발에는 신이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때에도 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와 함께 걷고 어머니 품에서 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성장하면서 이제 바로 공주의 아들이 되었을 때 그는 발은 화려한 애굽의 신을 신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의 문화, 교육으로 그의 인격이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꼿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거룩한 자리에서 애굽에서 경험했던 삶의 전체를 송두리째 벗어 던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믿음의 장에 모세의 변화를 이렇게 소개 했습니다.
히 11:24-26...믿음으로모세는 장성하여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뿐 아니라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새 출발한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창조된 존재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므로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재창조’(re-creation)를 말합니다.
재창조란 이런 것입니다. 고철상에 가면 다 찌그러지고 깨지고 더러워진 고물 널려 있습니다. 수집해서 용광로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금속으로 신품이 탄생합니다. 이를 가리켜 재생산이라고 부른 것처럼 예수님 안에서 재창조가 바로 그런 겁니다.
사랑하는 주향 성도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예배의 자리가 거룩한 자리임을 믿으십시오......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이 자리가 신발을 벗고 자기를 포기하는 자리임을 믿으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 자리가 신발을 벗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출발점임을 믿으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