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마트의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몇몇과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부산 쪽에서도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직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직원을 만나 힘을 합치기로 하고 우리가 준비해왔던 내용들을 공유했다. 허나 알고 보니 그는 회사 쪽에서 심은 프락치였다” 지난 1월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노조 설립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이마트 사측이 ‘프락치’를 심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당시 프락치를 통해 노조 설립 일정을 파악한 이마트는 서둘러 전 노조위원장 등에 인사 조치를 내려 노조 설립을 방해했다. 지난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이마트 노조탄압’이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떠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이마트판 ‘무간도’, 프락치까지 동원된 노조설립 방해
전 노조위원장이 밝힌 ‘이마트 노조 프락치 사건’은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7일 이마트 노조탄압 혐의로 기소된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 등에 대한 재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두 번째 공판이었던 이날 재판장에서는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졌다. 바로 ‘프락치’ 역할을 했던 장본인 박모 씨의 양심 고백이었다. 그는 “하루에 4~5번씩 인사관리팀 백모 과장을 만나 노조 설립 관련 서류는 물론 동료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도 보고했다”며 “이후 노조 설립이 신고되자 ‘이제 그만하면 되겠다’며 8,000여만원을 받고 희망퇴직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 2003년부터 이마트에서 근무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인사고과에서 불공정한 일을 겪은 뒤 2012년 8월 노조를 설립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박씨는 수도권의 일부 직원들도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을 백 과장에게 전했다. 박씨는 “처음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 설립을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봐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그러자 백 과장은 노조 설립 관련 정보를 주면 희망퇴직을 시켜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인사관리팀 백 과장이 ‘프락치’ 역할을 잘 수행한 박씨에게 희망퇴직금 명목으로 8,000여만원을 전달한 정황도 포착됐다. 박씨는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백 과장이 알아서 줬다”며 “5만원권 지폐로 전달받았고, 이를 계좌에 입금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마트는 노조탄압과 관련해 당국의 조사가 벌어지고 있던 지난해 4월에도 박씨를 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는 “2013년 4월 노동청 조사를 받을 때 백 과장이 답변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1·2차 조사 때까지는 이를 따랐지만, 3·4차 조사 때부터는 진실을 말했다”고 고백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마트는 수사에 착수한 당국마저 농락한 것이 된다. 끝으로 박씨는 “진실을 말하기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냐”는 검찰의 질문에 “죄송하다. 바로 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 노조탄압 사건에서 사라진 정용진 부회장…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이마트
아직 설립조차 하지 않은 노조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프락치’까지 심은 이마트는 ‘노조탄압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시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마트의 공동 대표이사였다. 이마트의 노조탄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그러자 정 부회장은 같은 해 2월 부랴부랴 이마트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지만, ‘오너의 비겁한 책임회피’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뿐만 아니다. 정 부회장은 노동청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정 부회장이 이마트의 대외전략을 담당했고, 노조탄압을 지시하거나 개입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노동청이 정 부회장을 소환조사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고, 검찰은 아예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 부회장은 꼬리자르기에 성공한 후 커튼 뒤로 숨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충격적인 발언과 증언이 이어지면서 또 다시 도의적 책임론에 휩싸이고 있다. 전 노조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마트는 20년 넘게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게다가 최 전 대표이사까지 기소된 상황인데 정 부회장이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사에서는 빠져나갔지만, 도덕적 책임이란 게 있다. 그러나 이마트는 오히려 기소 유예된 이들을 3월 1일자로 승진시켰다. 이는 회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마트 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인사 조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수위에 대해 시각차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재판 및 증언에 대해 “현재 재판 진행 중이고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아울러 정 부회장의 도덕적 책임론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사항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