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가슴,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 김윤자
시베리아는 아직도 신비한 곳으로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현대인들의 문화와 전통과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은 곳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시작하여 바이칼 호수 유람선, 시베리아 대평원, 바이칼 호수 알혼섬, 환바이칼 열차를 탑승하는 여정이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 남단에 있고, 한국의 포항 같은 도시다. 역사적 명소가 많고 시베리아 문화의 보물창고로 여기는 곳이다. 세계 문화유산 지정협회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로 인정했다. 모스크바와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어 있고, 앙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를 잇는 여객선이 있어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동부의 교통 요충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소득은 광활한 가슴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한 것이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고, 가장 청정한 담수호다. 바이칼 유람선도 타고, 환바이칼 열차도 타고, 바이칼 호변에서 물도 만져보며 잠시나마 큰 가슴을 키웠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달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알혼섬에 간 것도 장엄한 기행이다. 시베리아에 가보아야, 바이칼에 가보아야 그 막막한 광원에서 인생의 소중함을, 나에 대한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고, 눈앞 전개되는 바이칼을 만났으니 생의 깊은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닫는 체험을 한 소중한 여행이다.
* 욜로츠카 통나무집
러시아의 전통가옥 욜로츠카 통나무집에서 유숙했다. 좁은 산길을 버스가 진입하지 못해 약간 걸어서 갔다. 2층으로 계단, 복도, 실내 모두 나무로 지었다. 온통 나무로 지은 집의 방안이 원시의 향수에 젖는 기쁨을 준다. 창밖의 푸른 나무들이 커튼만 열면 한가득 가슴팍에 안겨온다. 수종이 소나무와 자작나무뿐이며, 위로만 뻗어 자란다. 북극의 독특한 숲 풍경이다. 바이칼 주변에는 지진이 1년에 2천 번 정도 일어나서 지하시설을 설치할 수 없어 수도시설은 미비하다. 이르쿠츠크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아침식사 식당으로 갔다. 아침식사는 유럽식으로 빵과 햄, 치즈, 통밀밥이다. 음식이 정량제라서 갖다 주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양이 넉넉하여 먹고 남는다. 팁을 놓아도 가져가지 않는 러시아 천연자연 속의 아름다운 숙소, 욜로츠카 통나무집의 순수한 숨결이 시베리아의 영롱한 회억으로 남으리라.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간/ 오솔길 끝에서/ 고요히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태고의 전설로/ 따뜻한 포옹을 합니다./ 나무의 살점과 향기로 가득 채워진/ 그윽한 품에서/ 때 묻어온 문명의 발이 부끄러운 밤입니다./ 칼날 같은 추위에 몸을 얽동이다가/ 북극 백야에 생존의 목울대 늘여/ 치솟아 오르다가/ 검푸른 맥으로 땅을 채우고, 하늘을 채우고/ 죽어서야 시름을 내려놓은/ 어머니 품속 같은/ 시베리아의 붉은 둥지입니다. -김윤자 시 [욜로츠카 통나무집] 전문
* 딸찌 박물관
한국의 민속촌 같은 곳이다. 앙가라강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로 인해 수몰위기에 있던 유물과 목조건물들을 옮겨 놓은 옥외 민속마을이다. 짧은 시베리아 역사에서도 다양하게 혼재해 있는 복합적인 건축양식과 주거문화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 있는 목조건축물과 민속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1980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딸찌란 '봄'이란 뜻이다. 러시아 소수민족인 브랴트족의 전통가옥들이 많다. 브랴트족의 전통 가옥은 위에 창문이 있고 아래에는 반드시 구멍을 내어놨다. 아래의 구멍으로 시베리아의 겨울 찬 공기가 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목조로 지어져 있다. 꼭대기에 십자가가 2개인데 하나는 천국, 하나는 지옥을 가르친다. 건물마다 생활풍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다. 학교, 옷감 짜는 도구, 나무 미끄럼틀, 낙타 목장,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또한 외세 침입을 감시하는 높은 망대도 있고 나무 울타리의 성벽도 있다. 샤머니즘의 종교 유적도 있다. 박물관 끝부분에서 앙가라 강물이 파랗게 보인다.
삭막하고, 거칠 것 같은 예감은/ 산길 초입/ 나무기둥 더미의 도란거리는 무덤에서 사그라지고/ 물레방아 집으로 끌어들이는/ 숲속 물관이, 어찌나 정겨운지/ 지구의 동일한 마디에서 교감하는/ 포근해진 혈관이다./ 차가운 땅에서/ 바이칼 호수의 어부가 되어 살아온/ 브랴트족의 고기잡이 도구들/ 나무판에 기대에 집을 짓고, 울을 치고/ 천국과 지옥을 가리키는/ 두 개의 십자가 러시아 정교회에서/ 선한 길을 찾고/ 때론 샤머니즘의 색색 조각 천에 마음을 다독이고/ 평원 한 자락 옮겨놓은 아담한 목장까지/ 겸손한 머리와 소박한 발가락이 전시된/ 시베리아의 훈훈한 역사의 장이다. -김윤자 시 [딸찌 박물관] 전문
* 샤먼 바위
원래는 5, 6층 건물 높이의 바위인데 앙가라강 댐 건설 이후 수위가 높아져서 지금은 윗부분 조금만 보인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리스트비얀카 지역의 바이칼호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는 강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아주 큰 바위였으나 현재는 거의 물속에 가라앉아 낮게 솟아 있다. 500~600년 전에 알혼섬에 정착한 브랴트족이 신성시하여 이곳을 찾아와 소원을 빌고 제사를 지냈다. 바위 주변의 물은 얼지 않는다. 이곳이 바이칼 호수의 종점이며, 앙가라강의 시작점이다. 앙가라강은 336개의 강 중 유일하게 바이칼 호수의 물이 나가는 강이다. 나머지 335개의 강은 강물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된다. 이곳 전설로는 335명의 아들과 1명의 딸로 여긴다. 브랴트 종교는 저 샤먼 바위에 죄인을 묶어놓고 다음날 없어지면 무죄, 죽었으면 유죄로 여겼다. 잘 보이지도 않는 물속 바위지만 깊은 뜻이 담긴 명소다.
* 바이칼 호수 생태학 박물관
바이칼 호수의 생태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바이칼에 서식하는 민물 어종과 여러 가지 자료를 전시한 곳이다. 리스트비얀카에 위치해 있는데 이르쿠츠크 남동쪽 68km의 마을로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도시다. 가장 가까이에서 바이칼을 볼 수 있다. 바이칼호는 '풍부한 호수'라는 의미로 담수호로는 세계 최대의 크기와 세계최고의 수심이다. 약 3000만년 정도의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세계제일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여기는 호수다. 바이칼 호수의 수량은 북아메리카 5대호의 물과 맞먹을 정도다. 지구의 담수 20%를 차지하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의 호수다. 바이칼 호수의 청정 이유로는 암석이 많고, 수심이 깊고, 광천수가 솟고, 물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원자조류 갑각류가 서식해서다. 박물관에서 주목받는 것은 고등어와 비슷한 오물이라는 물고기와 바이칼 민물에 사는 재롱둥이 물개다. 2004년 개관한 수족관에는 2마리의 물개, 네르파가 물속을 헤엄쳐 돌아다닌다. 바다에만 사는 물개가 민물인 바이칼 담수호에 와서 사는 것이다. 바이칼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박물관이다.
* 체르스키 전망대에서 본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 오르는 곳이다. 올라 갈 때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올 때만 걸어서 내려왔다. 리프트는 완만한 산능선을 천천히 오른다. 아래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곱게 피어 있다. 산길을 따라 바이칼이 잘 보이는 곳으로 조금 걸어서 내려간다. 가는 도중 산길에서 브랴트족의 종교인 샤먼을 보았다. 한국의 성황당 같은 개념이다. 나무에 울긋불긋 천과 비닐 조각 등을 매어 놓았다. 이색 풍경이다. 바이칼 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바위에 앉아 바이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라보기조차 두려울 만큼 넓고 크고 아득한 호수다. 어찌 저 물이 호수일까, 바다라 하여도 범상치 않은 풍경이다. 산 절벽 아래 아찔한 호수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웅대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망대 난간도 샤먼의 성황당 같은 형상이다. 천 조각과 비닐 조각들을 칭칭 매어 놓았다. 조망 후 걸어서 산길을 하산했다. 완만하고 숲속 공기가 상큼하여서 산책으로 걷기에 좋았다.
* 바이칼 호수 유람선
리스트비얀카에서 바이칼 호수 유람선을 승선했다. 1층에는 선실이 있고 2층에는 갑판이 있다. 2층에 올라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수변 도시 풍경도 보고 바이칼 풍경도 보았다. 어느 해변처럼 높은 호텔 건물이 아름답고 호숫가에는 배들이 많다. 배가 출발하자 바이칼 호수에서만 서식하는 담수어인 민물고기 오물 훈제구이와 보드카 술을 주었다. 드넓은 바이칼 호수를 보며 한층 낭만을 더하여 준다. 오물은 고등어 맛이다. 보드카를 마시며 먹었다. 바이칼 호수는 장엄하다. 한가득인 물이 그렇고, 끝없는 수평선이 그렇다.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비경이다. 바다도 아닌데 파도가 심하여 유람선이 기우뚱거린다. 유람 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러시아는 여름에는 백야로 낮이 길지만 겨울이 길어 햇볕이 부족한 나라다. 러시아 사람들은 햇빛이 나오는 곳이면 옷을 벗고 살갗을 소독한다. 바이칼 호숫가에도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많다. 긴 모래사장, 사람들 모습이 우리나라의 해수욕장 같은 풍경이다.
우람한 신랑의 품에 안긴/ 신부의 소슬한 그리움이다./ 사랑한다고 외치기엔 너무 아득하여서/ 가슴 먹먹한 열정으로/ 눈멀고, 귀 먹은 애타는 순간이다. / 바이칼 호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 오물 훈제구이와 보드카 한잔에/ 시베리아의 진한 연정은 불꽃을 지피고/ 바다도 아닌데/ 파도는 어디서부터 발원한 걸까/ 물을 흔들고, 배를 흔들고, 온몸을 흔들어/ 절정으로 요동친다./ 푸르다가, 푸르다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 저 청빛 나신/ 절벽이라 하여도 후회하지 않을/ 천상의 상면이다. -김윤자 시 [바이칼 호수 유람선] 전문
* 우스찌아르다 성황당
브랴트족은 러시아의 소수민족이며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한국의 무당과 같은 개념이다. 러시아 소수민족은 인구 10만 명 이하의 민족을 말하며, 70여종의 소수민족이 있다. 브랴트 민족마을은 소수민족이 사는 자치공화국이다. 우스찌아르다는 브랴트 자치구다. 러시아 고유의 전통가옥 양식과 생활모습을 지지고 있다. 이 마을이 샤먼의 기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성황당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에서 보았던 성황당과 유사하다. 도로변에 기둥을 세우고 천을 매달아 놓고 있다. 입구의 안내간판에는 ‘이곳은 우스찌아르다 자치구 가운데 가장 기가 센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하늘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왔다. 주민들이 경의를 표하는 곳이니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각자의 종교나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우리처럼 경의 표해주기 바란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차량들도 멈추고 고수레를 하는 등 무사여행을 기원한다. 브랴트족은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언젠가 말을 타고 구원의 용사가 올 거라는 믿음으로 산다. 기둥에는 말을 매어 두도록 홈을 파 놓았다. 맨 위의 뾰족한 모양은 말을 탄 용사를 상징하고 항상 그 꼭대기 자리는 그 분의 말을 매어두는 곳으로 비워둔다. 나무에도 성황당처럼 천 조각을 많이 매어 두었다. 그 주변에는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성황당에 돈을 던지면 행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 시베리아 대평원
우랄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러시아 땅이 시베리아다.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여 있을 땅이 7월 여름이라서 초원이다. 집 주변에 목장이 있다. 초원에는 소떼가 많다. 가끔은 초원 사이로 물이 흐른다. 가축의 식수로 요긴한 물이다. 물줄기를 따라 식물이 자라고, 식물을 따라 가축이 자라는 생활상이다. 마을은 브랴트 전통가옥이 대부분이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가로지르며 버스가 줄기차게 달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 선착장까지는 7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곳 시베리아 스텝지역은 버려진 땅이다. 누구나 말뚝만 박으면 자기 땅이다. 나무 군락으로 경계선을 지어 놓기도 한다. 여기는 땅을 줍는 곳, 막막하고 아득한 대평원 시베리아다. 광활한 땅 시베리아 평원에는 산도 없다. 자작나무나 소나무 숲이 더러 보인다. 산이 없고 ‘~언덕’이라 칭한다. 바람이 많고 기후 변화가 심하다. 소금기 있는 호수도 있다. 물가에 하얗게 소금기가 보인다. 어찌하여 육지의 호수에서 염분이 발생하는지 신기하다. 주위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산 모양의 구릉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여전히 건조한 살점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나 막대기만 꽂으면/ 거기까지가 자기 땅이 되는 영토/ 나무 막대기로, 나무 군락으로 마음껏 울을 치고/ 사람과 동물이 기대어 사는/ 이것이 버려진 땅, 시베리아 스텝지역에서 만나는/ 유일한 생명의 깃발이다./ 지천이어서 고달픈 땅아/ 가자, 내 조국으로/ 내 가슴에 품고 가마/ 널 데려다가 곱게 다듬어 주마/ 차가운 시베리아 땅에서 태어나/ 나의 심장이 뜨거우면/ 차가운 나의 머리에 널 이고 가마/ 너른 평원 한 도막만이라도 날 따라 가자/ 서럽도록 좁은 나의 조국 땅에 널 이식하여/ 대평원의 피와 살이 자라거든/ 서러운 너와 내가 광활한 가슴으로 얼싸안고/ 시베리아와 대한의 맥을 잇자 -김윤자 시 [시베리아 대평원] 전문
* 사휴르따 선착장에서 알혼섬 가는 연락선
알혼섬에 가는 연락선을 타는 선착장이다. 바이칼, 바다 같은 호변이다. 선착장의 모든 시설이 나무로 되어 있다. 나무가 삭으면 또 다시 나무로 건설하는 이 나라의 공법이다. 대부분 자작나무를 사용한다. 파란 하늘과 한가득 물이 들어찬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여정을 빛내고 있다. 사휴르따 선착장에서도 바이칼 호수 저 건너의 알혼섬이 보인다. 연락선 또는 바지선으로 부르는 이 배에는 자동차도 같이 승선한다. 배에 사람과 차가 함께 서 있다. 배는 서서히 알혼섬을 향해 나아간다. 바이칼,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란 뜻의 ‘나모’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람이 심히 불고 푸른 물이 완전 바다와 흡사하다. 암벽이 많아 바이칼호가 청정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호수의 곳곳 절벽에서 암벽이 보인다. 흙이나 모래가 아닌 암벽이 바이칼 호수를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배는 10분 정도 달려 알혼섬에 도착했다. 이 호숫길은 겨울이면 얼어 육지와 이어진다. 얼음 위로 차가 다닌다. 얼음 두께가 기본이 50m다. 신비로운 바이칼 호수다.
* 알혼섬 풍경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이다. 바이칼 호수에는 2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알혼섬은 그중에 가장 크다. 한국의 거제도 2배 크기로 1500명이 거주한다.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이라면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300km 떨어져 있다. 알혼섬 선착장에서 하선하여 이곳 알혼섬에서 운행하는 전용버스를 탔다. 세계대전 때 환자와 물자를 실어 나르던 군수용 차량을 개조한 차다. 알혼섬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정부에서 아스팔트로 포장해 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비포장도로다. 알혼섬은 발전을 거부하여 도로 외 여러 가지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브랴트족의 옛 풍습을 유지하려는 생활상이다. 알혼섬은 수많은 전설이 깃든 바이칼의 성스러운 중심지다. 17세기 바이칼을 탐험하던 러시아인이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딛은 후, 지리학적,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알혼섬은 우리 민족의 발원과 유력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샤머니즘의 흔적도 신비로운 곳이다. 알혼섬은 징키스칸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있고, 징기스칸이 탄생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과 같은 전설이다. 과거 몽골제국의 역사에도 등장했고, 같은 몽골족의 일원이었던 브랴트족의 기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혼섬은 일조량이 세계에서 1위인 땅이다. 그래서 알혼섬은 ‘메마르고 황폐한 곳에 태양이 비추는 땅’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비가 오면 축복인 땅이다. 산이 없는 알혼섬의 높고 낮은 언덕 구릉은 갈색 살점만 보인다.
* 알혼섬 한호이 호수
알혼섬 안에 있는 한호이 호수는 바이칼 호수에서 모래가 밀려와 경계선을 지으며 생성된 호수다. 바로 곁에는 바이칼 호수가 있다. 호수 주변에는 소와 양 등 가축이 많이 모여 풀을 뜯고 있다. 어김없이 물줄기를 찾아 가축을 기르고 있는 목축 풍경이다. 또한 브랴트족의 민가도 보이고 여행 온 러시아인들도 보인다. 바이칼 호수는 여름에도 섭씨 4도의 냉온으로 못 들어가기 때문에 이곳 한호이 호수에 들어가서 물을 즐기며 일광욕을 하는 것이다.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활보하기도 한다. 이곳 호수는 알혼섬의 주요 관광지다. 한호이 호수에서 모래사장만 건너가면 바이칼 호수를 만난다. 바이칼 호수의 물을 만져보고, 던져보고, 바다 같은 먼 수평선을 응시하고, 기막힌 환상이다. 어쩌다 갇힌 물은 섬 속의 호수가 되어 또 하나의 명소가 되고, 그 사이 모래밭에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질긴 생명력의 풀이 빳빳하게 고개 들고 있다. 두 호수에 손을 넣어보니 확연히 수온이 차이 난다. 한호이 호수가 훨씬 따뜻하다. 많은 양떼들이 호수의 낭만을 더해주며 이색 풍경을 선사한다.
* 알혼섬 후지르 마을
알혼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브랴트족의 전통가옥이 보인다. 모두 나무로 지었다. 알혼섬에서는 큰 도시인 후지르 마을은 2005년도에야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온 낙후된 마을이다. 바이칼 호수가 곁에 있어 물이 풍부한데도 그 물을 끌어다 쓸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수도나 펌프도 없다. 공동으로 쓰는 물을 길어다가 수도처럼 장치한 통에 넣어 사용한다. 브랴트족은 발전을 거부하며 옛 전통을 중요하게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후지르 마을 통나무집은 오늘 밤 유숙할 호텔인 셈이다. 바이칼 호수가 눈앞에 보이는 위치에 있다. 호수변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고 통나무집 앞에는 모래와 초지, 그리고 노란 들꽃이 피어 있다.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정경이 참으로 목가적이다. 바이칼 호수를 감싸는 시베리아 육지 쪽 커다란 줄기의 산자락이 비경이다. 구름은 바로 산 위에 내려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통나무집 숙소에서 기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가 도착하자 다리를 감싸 안으며 반가워하더니 2층의 각 방마다 돌아다니며 재롱을 부린다. 고독한 땅에서 사는 이곳 시베리아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까지도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이다.
* 알혼섬 불한 바위
알혼섬에 오는 것은 불한 바위를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에 불한 바위를 향해 갔다. 아직도 해가 지지 않고 있다. 백야로 밤 11시나 되어야 어두워진다. 후지르 마을 언덕을 넘어 바이칼 호수변으로 걸어갔다. 마을 언덕에 올라보니 석양에 물든 바이칼 호수가 비경이다. 언덕 아래 바이칼 호수변에는 커다란 불한 바위가 있다. 언덕 정상에는 샤먼의 성황당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천 조각을 매어 둔 곳도 있다. 언덕을 내려가서 바이칼 호숫가에 우람하게 서 있는 불한 바위를 만났다. 절벽을 바라보며 알혼섬과 이어져 있다. 위에서 보면 두 개의 바위가 이어져 있는데 원래는 하나의 바위였다. 중간에 굴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무너졌다. 바위는 참으로 웅장하다. 바이칼을 닮았는가. 결코 범상치 않은 풍광이 시리도록 가슴을 흔든다. 해변처럼 바이칼 수변에는 조약돌이 있다. 소나무에도 돌 위에도 샤먼 종교의 흔적인 천 조각을 매달아 두었다. 하늘 높이 솟구친 바위가 장엄하다. 이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기는 단군설화처럼 코린 브랴트 민족의 탄생신화가 서려있는 바위다. 브랴트족에게 매우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종종 제사를 지낸다. 징기스칸 탄생설화가 얽힌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민족의 시원지다. 아시아에서도 중요한 성소로 꼽히는 불한 바위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정원에서 감자를 구워 먹었다. 러시아의 낭만이 깃든 외딴 섬에서 정겨운 시간이다.
북극 꼭지점을 맴돌듯 긴 휘파람으로/ 시베리아 대평원을 가르고/ 태평양 바다를 타는 환상으로/ 바이칼 호수를 건너고/ 어느 유성을 찾아 길 떠나던 동심으로/ 알혼섬에 다다르고/ 그 마지막 남은 한자리/ 러시아 민족의 시원지라고/ 브랴트족의 탄생설화가/ 징기스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다고/ 아시아의 소중한 성소라고/ 그 육중한 사명의 너울 속에/ 달빛은 떨어져도, 별빛은 떨어져도/ 시초의 빛, 한 점 스러지지 않을/ 바이칼을 붙들고 있는 / 알혼섬을 붙들고 있는, 저 고요한 바위 -김윤자 시 [알혼섬 불한 바위] 전문
* 알혼섬 선착장
어제 바지선을 타고 알혼섬에 왔다가 여행을 마치고 이르쿠츠크로 돌아간다. 황폐한 언덕을 넘고, 황막한 들길을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협을 왕래하는 바지선이 들어와 있다. 선착장 주변은 건조함이 극심했다. 산 모양의 마른 언덕, 마른 들녘이다. 뽀얀 신작로가 현대의 감각만 빼면 아름답다. 유년을 회억하는 풍경들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라져가는 옛 정취를 먼 땅 시베리아 알혼섬에서 보고 있다. 바이칼 호수는 선착장에서도 호변을 만들어 어느 바다 해변을 연상케 한다. 모래사장과 일렁이는 파도가 그렇고, 짙푸른 물빛이 그렇고, 많은 물의 양이 그렇다. 바이칼 호수 안의 알혼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락선은 차도 태우고, 사람도 태우고 사휴르따 육지의 선착장을 향해 서서히 출항한다.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로 깊이 배가 진입하자 바람이 한가득 밀려온다. 바람도 싣고 가라고 배의 품에, 사람의 품에 안겨오는 듯하다. 누가 이 비경 앞에서 호수를 건너간다 할까. 태평양 바다 어느 마디를 건너가는 환상이다.
* 데카브리스트 박물관(발콘스키의 집)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파리다. 바이칼의 관문으로 러시아의 주요 역할을 하는 도시다. 프랑스는 1812년 러시아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고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프랑스군을 몰아내기 위해 프랑스까지 진격했다. 러시아의 젊은 혁명가들은 프랑스에서 머물며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하여 알게 된다. 자국의 전 근대적인 봉건제도의 부패와는 다른 면을 본 것이다. 모스크바로 돌아와 농민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혁명을 꿈꾸었다. 이것이 12월 데카브리스트 대반란이며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러시아 말로 12월이 데카브리다. 그러나 1825년 12월 혁명이 실패로 미수에 그쳤고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진다. 젊은 장교에게는 프랑스에 두고 온 아내도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11명의 여인들이 이곳에 왔다. 발콘스키는 데카브리스트 혁명 주역 중 한 사람이고 그때 이르쿠츠크로 유배된 사람이다. 발콘스키의 아내 예카체리나도 왔다. 이 집은 발콘스키의 생가로 그의 생활모습을 재현한 박물관이다. 그 당시 푸쉬킨과 톨스토이도 있었다. 푸쉬킨도 데카브리스트들의 친구였다. 푸시킨이 구석진 벽면에 서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은 발콘스키가 모델이라는 말도 있다. 발콘스키는 톨스토이의 숙부인데, 어떤 방법으로든 그의 삶을 그려주고 싶어 했다. 벽면에는 그날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해 두었다. 발콘스키의 아내를 비롯한 데카브리스트들의 11명 아내들 사진도 있다. 음악회, 시낭송, 가면무도회 같은 공연이 자주 열려 이르쿠츠크의 문화센터였다. 쇠고랑을 차고 젊은 시절 유배되었던 발콘스키, 그는 90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흔적이 배인 개인 소유의 집에서 아픈 상처와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높은 문화를 보았다.
* 즈나멘스키 수도원
앙가라강은 한강처럼 이르쿠츠크의 도심을 감싸 안은 채 넓은 품사위로 흐른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앙가라강이 흘러드는 강변에 있다. 하얀 건물에 초록색 돔 지붕, 그리고 금색 첨탑의 예술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1762년 수녀에 의해 탄생한 이 수도원은 데카브리스트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단에 발콘스키의 부인 무덤도 있고, 가족 합장묘도 있다. 러시아 정교를 이르쿠츠크에 설립한 자의 묘도 있다. 알래스카를 처음 발견하여 러시아에 편입시킨 러시아의 콜럼버스라 불리는 항해사의 묘도 있다. 러시아 정교는 금색을 좋아해서 창문에 금 도색하고 외벽에 그림을 그린다. 수도원 내에서는 엄숙해야 되어서 조용히 둘러보고 나왔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는 꼴착 제독 동상이 우람하게 서 있다. 꼴착을 앙가라강에서 총살했는데 그 시체를 수녀들이 건져다가 수도원 안에 아직도 시체를 보존하고 있다. 꼴착 동상과 즈멘나스키 수도원이 포근한 시선으로 담겨진다.
* 꼴착 제독 동상
꼴착 제독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내전인, 10월 혁명시 볼셰비키 혁명군에게 대항하며 황실을 보호하려던 백군 총사령관이다. 1차 세계대전의 제정 러시아 전쟁영웅이기도 하다. 혁명군 적군에게 밀려 이르쿠츠크까지 오게 되고 그는 체포되어 바로 총살당하여 앙가라강에 버려졌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의 수녀가 그것을 보고 건져다 놓은 장소가 바로 지금 꼴착 제독 동상이 서 있는 이곳이다. 이 동상은 그가 이르쿠츠크에서 체포되어 처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 세운 것이다. 꼴착은 생시에는 바람둥이로 알려지기도 했고 역사적 평가가 낮았는데 현재는 우리나라의 안중근격으로 추앙받고 있다. 단순히 해군장교가 아닌 조국애를 맹세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제독의 여인, 영화 실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었는데 그의 사랑과 용맹은 남아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 동상 앞의 화환은 생생한 모습으로 그를 조명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그를 포근히 보듬고 있다.
* 스파스카야 교회
스파스키야 교회는 이르쿠츠크 키로프 광장 근처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다. 시베리아를 정벌하러 온 초기 카자흐인들에 의해 1706년~1710년에 건축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로 전해진다. 바깥 부분 벽도 그림으로 장식되었는데 공사 중으로 하얀 천을 둘러쳐 놓았다. 그림은 브랴트인들의 세례, 이르쿠츠크 최초의 주교 임명, 예수의 세례 받는 장면이다. 건축의 조형미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처럼 상당히 아름다웠다. 동 시베리아에서 유일한 형태의 건축양식이다. 구 소련시대에는 영화 기구를 수리하는 장소로 쓰였고, 1982년 이후에는 시베리아의 동물들과 수공예품들이 전시된 이르쿠츠크의 민속문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건너편에는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가 있다.
* 시베리아 유일의 림스끼 성당
림스끼 성당은 이르쿠츠크에 단 하나뿐인 카톨릭 성당이며 시베리아 유일의 폴란드 카톨릭 교회다. 유럽에서 쫓겨나 이르쿠츠크로 유배 온 폴란드인들이 세웠다. 작지만 붉은 색 성당 건물이 나무 사이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자리에 목조 성당이 있었는데 이르쿠츠크 대화재 때 타버렸다. 그 후 이르쿠츠크로 유배된 유럽의 카톨릭 신자들이 헌금으로 석조 성당을 지었다. 1987년에 성당의 건물을 수리한 후에 성당 안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다. 특별히 주문해서 독일에서 가져왔다. 성당은 오르간 홀이 되었다. 지금은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회가 자주 있으며 신부님이 미사를 보고 있다. 이 건물은 100년 전에 지었는데도 지금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성당이 예술적인 면모로 유럽의 향수를 머금고 있다.
*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
이르쿠츠크는 동 시베리아의 중심에서 산업과 무역교역으로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다. 주정부청사는 중심 대로변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중심지여서 건물도 웅장한 것들이 많고 바로 앞 대로에는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원래는 이 일대가 모두 카잔 교회 자리였다. 정문 곁에는 아직도 카잔 교회의 마리아 잔상이 남아 있다. 금색 돔 지붕의 십자가 첨탑 작은 건물 안에 마리아상이 있다. 정원의 꽃 화단이 매우 아름답다. 이르쿠츠크는 430년의 역사적 도시로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곳인데 주정부청사도 그것을 대변하듯 회색 석조 건물이 탄탄해 보인다. 또한 이 도시에는 문화유적이 많이 있는데, 러시아의 역사적인 큰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많다. 세계 문화유산 지정협회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로 인정했다. 뒤편에는 세계2차 대전 승전을 기리는 승리 기념광장이, 앞편에는 키로프 광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뒤로 앙가라강과 이어져 있어 아름다운 정경이다.
* 카잔 교회의 잔상 마리아상
상실과 위험 속에서 고난 받던 어려운 시절에 이르쿠츠크에 교회를 세울 것을 신에게 맹세했던 사람이 있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맹세는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그 염원은 이루어졌다. 1875년 거대한 카잔 교회가 이르쿠츠크의 큰 상인이었던 금광채굴업자의 거금으로 세워졌다. 이르쿠츠크 건축가가 설계했고 러시아 비잔틴 형식의 장식으로 마무리해서 완공했다.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장엄하고 훌륭한 교회 건축물이었다. 카잔 교회는 5천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었고 높이 6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공산당이 신도를 몰아내고 교회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1932년 교회는 철거되었고 건물 잔해는 현재 주정부청사 바로 앞에 있는 키로프 광장을 메우는데 사용했다. 그 결과 키로프 광장은 거의 1m가 더 높아졌고 많은 시민들의 발길에 짓밟혔다. 카잔 교회가 있던 자리에는 주정부청사가 세워졌다. 주정부청사의 정문 곁 한적한 곳에 황금색 돔 지붕의 하얀 작은 건물이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하늘 향해 있고, 조촐한 교회 건물 속에는 그날의 카잔 교회 잔상 마리아상이 들어앉아 있다. 현대식 주정부청사 건물과는 겉도는 느낌의 건물인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카잔 교회의 거룩한 유적으로 주목받는다.
* 영원의 불꽃 베츠늬이 아곤
주정부청사 뒷면 벽에는 세계대전 전몰자 명단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그 바로 앞 열린 공간은 역시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광장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그 광장 중앙에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은 불꽃, 영원의 불꽃, 베츠늬이 아곤이 있다.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 추모 불꽃이다. 희생 없이 이루어진 국가가 어디 있던가. 스러져간 군인들의 영혼 앞에서 소슬한 슬픔이 감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용사를 기리는 영원의 불은 1년 내내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힌다. 이 순간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영원의 불꽃은 활활 용감한 숨결을 내뿜는다.
* 앙가라 강과 이르쿠츠크 강이 만나는 곳
바이칼호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강이 앙가라 강이다.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청명한 물줄기가 흘러와서 이르쿠츠크 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도심에 있다. 두 강이 한 지점에서 만난 광폭의 강물이 이르쿠츠크 도시를 가르며 비경을 자아낸다. 1960년 앙가라 강가에 석축을 쌓고 정비하여 강변 산책로를 조성했다.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이르쿠츠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앙가라 강을 순회하는 유람선도 운항한다. 앙가라 강변에 타일로 지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동화 속 궁전처럼 곱다. 이 교회는 이르쿠츠크의 시민들에게는 아주 의미 깊은 곳이다. 역사적인 고비 때마다 여기서 모임을 갖고 중요한 성명을 발표할 때는 항상 이 교회 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1934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교회는 문을 닫았고 대신 빵 공장, 기숙사, 소금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이 교회는 몇 년에 걸쳐서 재건축 중이며 이르쿠츠크에서는 신도수가 비교적 많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교회다. 앙가라강과 함께 외형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 키로프 광장
주정부청사 앞의 큰 대로 건너편에 위치한 매우 아름다운 광장이다. 맨 끝의 주황색 건물은 석탄공사인데 그 또한 한껏 고운 정경을 더해 준다. 한국의 삼성건물도 근처에 우람하게 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교회와 카페, 정원이 있어 결혼한 신랑 신부들이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광장에서 앙가라강을 바라보고 서면, 정면에는 건물이 주정부청사가, 오른쪽 대각선으로는 붉은 건물의 로마 카톨릭 성당이 있다. 주정부청사 뒤편으로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이르쿠츠크 시민 기념비가 있다. 주변을 다 돌아보고 여기에 왔다. 이르쿠츠크의 중앙공원으로 산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밤낮 없이 모여드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 가꾼 꽃 화단이 절경이다. 오스트리아 쉔브른 궁전의 뒤 뜨락 꽃 정원을 연상케 한다. 꽃 정원 끝의 분수까지도 유사하다. 양쪽으로는 이르쿠츠크의 역사적 건물 사진 자료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쌈지 공원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이르쿠츠크 도심 앙가라강변의 공원에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커다랗게 서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철도를 건설한 사람이다. 쌈지 공원의 노동자 광장에 있는 이 입상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1908년에 세워졌다. 1897년 시베리아 철도는 이르쿠츠크까지 부분 개통되었고 철도 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비가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졌다. 이르쿠츠크는 모스크바에서는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어 있고, 앙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 있어 러시아의 극동지역과 우랄 지역,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동부의 교통 요충지이다. 당시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이 세워졌으나 혁명 때 철거 되었고 1960년 이르쿠츠크의 오랜 명물인 오벨리스크가 세워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3년 그 오벨리스크를 치우고 원래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을 복원시켰다. 동상 아래에는 러시아 상징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가 조각되어 있다. 앙가라강은 곁에서 교교히 흐르고 알렉산드르 3세는 도도한 면모로 러시아의 굵은 맥을 보여주며 이르쿠츠크 도심을 붙들고 있다.
* 환바이칼호 열차 탑승
환바이칼 열차는 이르쿠츠크역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내륙 들녘을 거슬러 바이칼호 최남단 마을인 슬류지얀카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바이칼 호수를 아주 가까이 접하며 달려 앙가라 강변의 뽀르트 바이칼역까지 매주 2회만 왕복하는 관광열차다. 이르쿠츠크의 기차역은 아담하고 예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구간 중에서 이르쿠츠크역에서부터 슬류지얀카역까지는 철로가 좋아서 빠른 운행으로 2시간 소요된다. 슬류지얀카에서 뽀르트역까지의 구간은 환바이칼 코스로 시속 20Km의 저속운행이 이루어진다. 슬류지얀카역에 잠시 정차한 후 바이칼 호수변을 따라 저속으로 달려 올라가는 여정이다. 슬류지얀카-앙가솔까-뽀르트 바이칼역까지 80km의 바이칼 호수 구간은 아무런 장애 없이 잘 달릴 때 약 7시간 소요된다. 오늘은 비가 와서 환바이칼 열차의 승차 시간은 총 10시간 이상 소요 예정이다. 시간이 무슨 문제일까. 내 생애 꼭 딛고 싶었던 영토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지르며, 간간이 내려 그 땅을 밟으며, 그리고 바이칼호를 곁에서 보는데, 그 물을 만져도 볼 텐데, 열차의 긴 승차 시간은 오히려 행복이 아닐까. 마주 보는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시베리아 들녘을 달릴 때, 산모퉁이 너머로 바이칼 호수가 보인다. 바이칼 호수는 안개비를 헤집고 광활한 품사위를 드러내고 있다.
* 바이칼호의 최남단 슬류지얀카 기차역
이곳은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 슬류지얀카 마을이다. 기차는 호변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바이칼 호수 쪽으로 달린다. 바이칼 호숫가로 민물이 넘실거리는 수변 마을인데 바닷가 마을 같다. 슬류지얀카 기차역 건물이 초록색 지붕과 함께 아름답다. 슬류지얀은 대리석이란 뜻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근처에 대리석을 캐내는 산이 있다. 슬류지얀카 기차역은 1년에 3만 5천명 드나드는 역이다. 역 안은 조용한 시골 기차역 향수가 서려있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낭만이 먼저 파고들어 행복한 걸음으로 다시 환바이칼 열차에 탑승했다. 기차는 슬류지얀카역을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에 아주 가까이 달린다. 창밖으로 바이칼 호수가 드넓게 전개된다.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 수변이다. 시베리아의 여름, 키 작은 파란 풀들이 일어서고, 물결은 바다의 파도처럼 하얗게 밀려온다. 호수변의 초지에는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운무 서린 호수, 구름 드리운 하늘, 모두 장엄한 바이칼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기차는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을 돌아 올라간다. 바다의 어느 항구 같은 풍경이다.
* 철교가 아름다운 앙가솔까 마을
철교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비가 내린다. 아치형 다리와 아름다운 조형의 철교가 나란히 있다. 다리를 걸어도 보고, 다리 아래 바이칼 호수로 흘러드는 물도 보았다. 철교 끝에는 굴도 있다. 청색과 하얀 색으로 채색된 시원한 모양의 기차는 승객을 내려놓고 긴 몸체로 서 있다. 호숫가에는 어촌 민가가 몇 채 있고 작은 배가 놓여 있다. 마을입구에는 화가가 이 지역의 자연을 그려 그림을 전시한 래리호 갤러리 미술관도 있다. 산자락 아래, 바이칼 호수를 눈앞에 둔 아담한 마을이다. 환바이칼 열차는 가끔씩 기관사 마음대로 멈추곤 한다.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도 정차하여 승객에게 기쁨을 준다. 이곳도 일정에는 없는 순서인데 갑자기 안내방송과 함께 약간의 시간 동안 나가서 구경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끼르깨리 강물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되는 곳이다. 작은 강이지만 바이칼호를 구성하는 물줄기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강물이다. 아치형 다리 아래로 흘러들고 있다. 비가 계속 내린다. 기차의 창문을 심히도 두드리며 점점이 빗물을 그려놓는다. 산을 돌아가기도 하고, 호수 가까이 지나가기도 하고, 환바이칼 열차는 아주 서서히 달리며 곳곳의 비경을 선사한다.
* 끼르깨리 강과 터널
조금 전에는 끼르깨리 강물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것을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끼르깨르 강물이 낙차하는 것을 보여준다. 터널을 따라 내려온 물이 시멘트 수로를 따라 힘차게 내려온다. 곁에는 터널도 있다. 또 정자도 있다.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철로를 건설할 때 지휘하던 곳이기도 하다. 바이칼 호수가 야생화 가득 핀 언덕 아래 절경으로 전개된다. 망망한 호수는 바다 같은 환상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망망대해라고 일컫는다. 위험하다는 표식으로 철선을 쳐둔 절벽, 그 아슬한 바위에 걸터앉아 바이칼 호수와 하나로 잠시나마 숨결을 잇는다. 바이칼 호수변에 감자 밭이 아름답다. 기차가 서서히 달리므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고독한 바이칼 호수와 도란거리며 싱싱한 숨결의 고운 정경이다.
* 아름다운 경관의 고립된 빨라빈늬 마을
고립되고 경관이 아름다운 바이칼 호변 마을이다. 빨라빈늬 마을은 바이칼 호수에서 아주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 앞에 또 하나의 작은 호수가 있다. 배도 매어 있다. 목조의 건물들이 푸른 산자락 아래 자리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베리아 고전의 향수를 자아낸다. 마을에 들어가서 돌아보니 작은 식당도 있고, 가게도 있고, 학교 건물도 있다. 마을 건너편 바이칼 호숫가에도 내려가 보았다. 기차는 바이칼 호숫가에 길게 서 있고 바이칼 호수는 파도치며 해변을 자아내고 있다. 하얗게 밀려오는 물결이 호수변에서 부서지는 모양은 바닷가를 연출한다. 시베리아 물들이 한가득 고여 하늘 향해 출렁인다. 달이 이끄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아닐 텐데 정녕 누구의 입김으로 저리 살아 숨 쉬는 걸까. 수많은 상념이 교차할 때, 둔덕에는 야생화가 시베리아의 낭만을 선사하고 있었다. 빨라빈늬 마을은 고립되었어도 철도 너머 바이칼 호수가 잘 지켜주고 있다.
* 바이칼 호수
빨라반늬 마을에서 바이칼 호수를 가장 가까이 바라보았다.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다. 해변 같은 수변을 걸어보고, 물을 만져 보고, 거대한 호수를 감싸고도는 운무를 감상하고, 네가 정녕 호수냐고 물어도 보고, 바다에 대한 향수로 애련한 환상에 젖었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다. 2500만년~3000만년 나이의 호수는 길이가 640km, 폭은 넓은 곳이 80km, 초승달 모양으로 길쭉하다. 336개의 하천이 흘러들지만 호수에서 나가는 강은 오직 앙가라 강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담수호다. 물이 투명해 동전을 은쟁반에 담아 40m 깊이에 놓았는데 그 반사하는 빛이 보였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천연 광천수의 저장고다. 정녕 바이칼은 바이칼이라는 감탄을 연발케 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호수다. 샤머니즘 사상을 잉태한 호수이기도 하다. 호수 안에는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의 알혼섬을 비롯해 크고 작은 26개의 섬들이 있다. 바다에만 사는 물개 네르파가 약 10여만 마리 서식한다. 바다에서 호흡하며 사는 물개가 민물을 마시며 어찌 사는지 신기한 일이다. 바이칼은 냉호수로 여름에도 물이 차갑다. 12월부터는 완전히 얼어 얼음판이 된다. 호수 위에 교통 표지판이 세워지고 화물트럭을 비롯한 이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로다. 저 찬연한 호수가 겨울이 되면 숙명 같은 고독을 내려놓고 단단한 등짝을 사람에게 내밀어 허락하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도도한 평원과 바이칼 호수의 단단한 집념이 만나는 겨울, 그 하얀 설경을 그려보며 그때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뼈 속까지 시린 영하 40도 혹한의 일기가 받아주지 않음을 나는 잘 안다. 소설 같은 환상을 목전에 그려보며, 오늘 저 바이칼 호수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여서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 환바이칼 열차
열차가 멈추어 섰을 때, 환바이칼 열차는 얌전히도 머리의 상단을 승객에게 내어준다. 사다리 계단을 타고 열차의 머리 부분에 오름을 허락한다. 기막힌 환상이다. 바이칼 호수의 전경을 감상하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기차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보는 기쁨은 가슴 훈훈한 선물이다. 환바이칼 열차는 여름에는 6량 정도의 칸을 달고 운행하고 여울에는 2량 정도를 달고 운행한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객차가 많다. 우리는 1호차다. 1호차의 내부는 우리나라의 KTX 열차 수준으로 훌륭하다. 발 앞의 간격도, 통로도 넓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화장실도 있고, 객실 뒤편에서는 승무원이 계속 물을 끓여서 제공한다. 무료로 제공되는 그 물로 커피, 컵라면 등을 먹을 수 있다. 우리도 그 물로 한국에서 가져간 커피와 컵라면을 앞 사람과 마주보며 함께 먹었다.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는 기차다. 하지만 객차마다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어떤 칸은 딱딱한 의자만 한쪽 방향으로 놓여 있고, 어떤 칸은 마주 보지만 테이블이 없다. 현지 주민의 이동은 시설이 좀 불편한 칸에 승차하고 바이칼 여행자들은 좋은 시설의 칸에 승차한 것 같았다. 이 기차는 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바이칼을 타고 달린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열차는 결코 아니다.
세계인구의 사십년 식수가, 여기 있다는/ 세계제일의 청정 담수호라는/ 세계유일의 민물 물개 네르파가, 여기 산다는/ 그건 바이칼 호수 철문의 빗장일 뿐/ 환바이칼 열차를 타 보시어요/ 비가 오는 날, 빗물 섞어 타 보시어요/ 삼천만년 나이의 광활한 저울에/ 지구를 밟고 살아온 무게를 달아 보시어요/ 얼마마한 티끌로 찍히는지/ 그 막막한 살갗에/ 하늘을 이고 지켜온 자아를 던져 보시어요/ 몇 개의 점으로 탑을 쌓는지/ 기차가 어느 마을에 정차하거든 내려가 보시어요/ 야생화 가득 피워놓은 천진한 호변의 잣대에/ 남은 심장을 올려 보시어요/ 터널을 지나며, 산모롱이를 돌아가며/ 굽이굽이, 나란 존재를 비춰주는/ 정확한 거울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김윤자 시 [환바이칼 열차] 전문
* 굴속 도보 슈미하 마을
열차가 운행되는 동안 많은 터널을 지난다. 슈미하 마을은 옹벽과 터널 구조가 특이한 마을이다. 내려서 터널과 산비탈에 조성된 옹벽을 관찰해 보았다. 터널도, 옹벽도 모두 아치형이다. 이곳 철도를 건설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옹벽을 조성해도 산에서 토사가 내려와 연구 끝에 이런 공법으로 건설했다. 유럽식으로 이탈리아 사람이 설계한 것이다. 아치형 터널을 한동안 걸었다. 캄캄한 굴속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아주 가까이 바이칼 호수변에 놓인 철도가 대단하다. 아득한 호수와 함께 수평을 이루고 있다. 호수의 수평선은 점 하나 없는 바이칼 무원의 선을 그려내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슈미하 마을이 보인다. 시베리아의 전통적인 마을 풍경이다. 아버지처럼 큰 품으로 보듬는 산과 어머니처럼 품어 안는 바이칼 호수가 있어 슈미하 마을은 외롭지 않으리라. 우리가 걸어서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뒤에서 기다렸던 기차가 슈미하 마을로 들어온다. 간이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두 승차하여 승무원이 기차의 문을 닫으려할 때, 마을의 검은 개 한 마리가 달려와 바라본다. 고독한 영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려 반가웠다가 떠나는 순간 아쉬움으로 붙들려는 서글픈 배웅이다.
* 뽀르트 바이칼역
뽀르트 바이칼역은 환바이칼 열차의 종착역이다. 바이칼호 열차 탑승을 마치고 기차에서 내렸다. 뽀르트 바이칼 기차역은 목조 건물로 아담하고 예쁘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바이칼 호수다. 러시아 사람들과 섞이어 걸으며, 우리는 앙가라 강을 건너가는 연락선을 타기 위해 부두로 갔다. 벌써 앙가라 강을 건너갈 연락선이 들어와 있다.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불어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배의 출입문 입구에 서서 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강을 보며 문 입구에 서서 갔다. 잠시 후 앙가라 강을 건너서 하선했다. 운무 서린 시베리아에서 마무리 되는 시베리아, 바이칼 여정이다. 시베리아 특식 메뉴로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산자락에 운무가 가득 서려있다. 이것이 시베리아라고 외치는 것 같다.
캄캄한 밤하늘을 힘차게 날아 나의 조국에 도착했다. 시베리아에 대하여, 바이칼에 대하여 이제는 좀 더 가까이 다가선 내 가슴이다. 시로, 문학기행 자취록으로 완성하여 개인소장 자료로 저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널리 알릴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기행은 그래서 나에게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광활한 가슴,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작가와문학 2014년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