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어떤 사본에는(P46) 두 번째에 나오는 '축복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이테'가 빠져 있다. 또한 '너희를'의 헬라어 '휘마스'가 빠진 사본도 있다.. '율로게이테'의 원형 '율로게오'는 '좋게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이다. 이 말을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쓸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사용하면 복주신다는 뜻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하면 축복하는 것이 된다. 본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것이다. 핍박하는 자, 즉 원수를 축복한다는 것에는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이것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나의 본성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따라 행해야 한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14절과 본절은 자신을 잊어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본절은 우리가 슬픔 중에 있을 때에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즐거워하며 우리가 즐거울 때에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과 슬퍼하라는 권면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 즉 감정과 처지와 조건을 같이 하는 것은 사랑으로써 가능하며,
성령으로 인도받아야 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14절과 관련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선한 것을 즐거워하는 자들과 선한 것을 함께 즐거워하며 곤경과 불행으로 우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지체로서 같은 슬픔을 갖는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 '마음을 같이한다'는 표현은 15:5;고후 13:11;빌 2:2;4:2에 나오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우토 프로네인'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을 뜻한다. '서로'를 나타내는 헬라어 '에이스 알렐루스')에서 '알렐루스'는 대개 전치사 '엔'과 함께 사용된다.
이 차이는 '엔 알렐루스'가 '너희 중에', '너희 가운데'라는 범위의 의미가 강하다면 '에이스 알렐루스'는 '서로를 향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에 강조점이 있다. 또한 14절이나 17-20절로 비추어 보아 저자가 특히 신자들의 행동이 외부에 나타남으로써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빛된 선행으로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이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 '높은 데'의 헬라어 '타 휴셀라'는 중성 명사이면서 목적격으로 '높은 것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수준을 망각하고 분에 넘치는 기이한 일에 뜻을 품는 것이다. '낮은 데'의 헬라어 '타페이노이스'는 '비천한', '겸손한'의 뜻이다.
따라서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은 자신을 생각함에 있어서 겸비하라는 것이며, 3절의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며 처신하라'는 권유를 반복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자들 즉 지혜없는 자들의 생각이다. 이를 히브리어식으로 표현하면 '높은 것에 대해 심사 숙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뛰어나길 원하고 우월 의식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중(珍重)하게 대하고 온순함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오만함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이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제한시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으로 악행하는 자에게 보다 큰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이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 욕구를 제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공식적인 형벌을 말한 것이며 이런 규정을 세운 것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들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1:21)을 잘 알았으므로 인간에게 이런 교훈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또한 본문과 살전 5:15;벧전 3:9은 서로 유사한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마 5:38ff.)을 따라 일정한 교리가 형성되어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본절 전반부의 소극적인 권면에서 발전하여 이제 적극적인 권면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에 대칭되는 말로 신자나 불신자 모두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 앞에서'는 또한 '주님 앞에서'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사람들과의 현상적인 관계와 별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는 '선한'이라는 말을 7:12에 나오는 헬라어 '아가도스' 대신에 '칼로스'를 사용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름다움, 즉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선한 일'을 나타낸다. '도모하다'의 헬라어 '프로노에오'가 본문에서는 분사형 '프로노우메노이'로 쓰여 명령을 나타낸다. '프로노에오'는 '미리 생각하다',
'간구하다', '몰두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어떤 일에 반응하여 선을 행하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고, 미리 솔선 수범하여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는 '선한 일'에 너희 자신을 몰두하라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