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신현기 열사 제5주기 추모제
인천지역 철거민, 노점상 연대 단체인 "인천빈민연합"에서 지난 2006년 3월14일 강제철거를 항거하다 순직한 고 신현기열사 추모제를 거행 하려 합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같이 열사동지의 뜻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추모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대 동지들을 초대 합니다.
▶◀ 고 신현기열사 제5주기 추모제
□ 일시: 2011년 3월 13일(일요일) 오전 11시
□ 장소: 부평묘지공원 내 고 신현기열사 묘역
□ 누가: 인천지역 철거민, 노점상 등 연대동지들
□ 오시는길: 인천지하철 부평삼거리역 하차, 동암역은 539번 마을버스이용 부평묘지공원 입구 하차
□ 연락처: (인천빈민연합.준) 032>8686-186
=열사의 염원이다 주거권을 쟁취하자!= =살인적인 강제철거 투쟁으로 끝장내자!=
故 신현기 열사 약력
□ 1957년 3월9일 수원 출생(평산 신씨)
□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11세 과수원으로 이적
(과수원에서 학업을 하며 과수원에서 일을 하였음)
□ 19세 과수원에서 나옴
□ 어선 선원생활 막 노동으로 생활
□ 2002년 3월 인천시 남동구 만수2동 81-113으로 이주
(만수향촌부락)
□ 2002년 6월 인천 남동구소재 “청솔의 집” 근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봉사, 무료 집수리 봉사 활동
□ 2005년 5월 만수향촌 세입자 철거주민 대책위원회 가입
□ 2006년 인천시청, 남동구청, 주택공사 인천본부가 주거환경 개선사업이란 미명아래 용역깡패 300명을 동원 만수향촌 세입자들에 대한 무차별 강제철거
□ 2006년 3월14일 강제철거의 부당성에 항의투쟁 중 철거가 안 된 옆집에서 시신으로 발견
□ 2006년 3월17일 인천 남동구청과 남동경찰서은 열사의 시신을 탈취 인천부평공원에 강제 매장
★동지의 삶과 죽음
2002년 12월 인천시청, 남동구청, 주택공사가 만수동 향촌지구에 2,852호 뉴모의 아파트를 새로건설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결정하였다. 이에 향촌에 거주하던 세입자들은 05년 2월 10일 향촌세입자 철거주민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세입자를 위한 국민임대, 영구임대아파트 건립과 주거가 보장되는 가수용단지와 임대아파트 입주보장 할 것을 요구했다.
만수향촌의 세입자 대다수가(70%) 월세의 경우 보증금 300만원 월세10만원 이하, 전세보증금은 500만원 이하의 열약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50%의 주민이 월수입 60만원이하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았었다.
2006년 3월13일 새벽에 남동구청과 주택공사는 사전의 계고도 없이 철거깡패 300명,포크레인 4대, 살수차3대, 리프트2대, 2.5t트럭 4대릉 동원하여 50여 세대가 살고 있던 세입자의 가옥을 살인적인 강제철거를 자행 하였고, 이날 고 신현기열사가 살고 있던 집도 철거 되었다, 망연자실하던 동지는 다음날인 3월14일 새벽에 목이 매어 사망한 상태로 발견이 되었지만, 남동경찰서는 동지의 시신을 빼돌리기를 하였고 철거민들은 수소문 끝에 인천중앙병원에 안치 되어있던 동지의 시신을 보듬게 되었다,
이후 타살의 의혹을 확산되자 인천경찰은 동지의 시신을 탈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부검을 하였고 부검 후 3월17일 오후6시경에 인천남동구청과 남동경찰서가 동지의 시신을 강제로 탈취하여 부평공동묘지에 강제 매장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후 적국빈민연합과 인천지역 사회단체는 “고 신현기열사장례와 만수향촌 철거민 생존권해결을 위한 인천시민사회단체”를 결성하여 철거민들과 공동 투쟁을 하였고, 동지의 시신도 없이 불교인권위 인천지부가 주축이 되어 49제와 1주기 추모제를 진행 하였다,
이후 만수동 철거민들은 개별적으로 이주대책을 받고 이주를 하였고, 2007년 5월31일에 만수향촌지역에서 남아있던 철거민들이 민중장으로 장례를 거행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인천지역의 철거민, 노점상 연대단체는 “인천빈민연합”은 충추절, 구정,등 명절에 제사를 지내었고, 열사동지의 강제철거반대와 주거권쟁취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열사 묘역 순례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