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우리 집에 어디서 났는지 엽전으로 점치는 책이 굴러다녔다. 엽전 6개를 손안에 모아 흔들어서 차례로 놓고는 그 모양이 같은 그림을 찾아 일진(日辰)을 알아보는 책이다. 별다른 오락이 없던 시절이라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그저 재미로 누가 더 좋은 점괘가 나오나 내기를 하며 엽전을 흔들어 대었다. 혹시라도 나쁜 점괘가 나올라치면 좋은 점괘가 나올 때까지 엽전을 흔들어 대었으니 점을 쳤다기보다 일종의 오락이었다. 그때 식구들이 얼마나 그 놀이를 즐겼던지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던 막냇동생까지 백과사전에서 엽전 그림을 보더니 흔들어대는 흉내를 내는 통에 배꼽을 잡고 웃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외할머니가 화투로 재수 점을 치는 것을 등 넘어 구경하곤 하였다. 일명 '9자 떼기'라는 것이다. 화투를 세로 다섯 줄로 계속 늘어놓다가 옆으로 3장의 합이 9가 되면 떼어내는데, 그렇게 해서 화투장을 다 떼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하셨다. 재수야 어쨌든 그림을 보자마자 척척 떼어내는 재빠른 손놀림이 너무 재미있고 멋져 보여 나도 어른들 몰래 화투장을 떼며 놀았는데, 수학이 젬병인 내가 지금도 계산기 없이 속셈을 잘하는 걸 보면 그 덕분이지 싶다. 며칠 전에 둘째 아들이 놀러 와 요즘은 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지 않는가 묻는다. 한동안 아들과 같은 게임들을 깔아놓고 점수 경쟁을 했는데, 문득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자신에 놀라 다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좀 허전하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저냥 잊게 되었다. 아들은 늙은 엄마가 저희랑 게임을 한다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중단해 버리니까 좀 서운했던가 보다. 게임이 어려워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아줌마들도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며 굳이 내 스마트폰에다 새 게임을 깔아놓고 갔다. 몇 번 해보니 너무 단순해 흥미롭지도 않은 데다가 자꾸 돈을 쓰게 하려고 유도하는 게 얄미워서 그만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게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어쩌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마작게임을 내 카페 방에다 옮겨놓고 거의 매일 시간 날 때마다 한 번씩 하곤 한다. 140장의 그림의 짝을 맞춰 다 지우면 이기는 게임인데, 고도로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단계를 오르는 게 만만치 않다. 몇 단계까지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 5단계 이상 올라가 보지 못했다. 어떤 날은 1단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날도 있는데, 그러면 나도 모르게 '오늘은 일이 술술 풀리지 않겠는데.'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옛날에 엽전 점이나 화투 점으로 게임을 했듯이 지금은 나 자신과 승부를 겨루는 게임을 하면서 그날의 운세를 점치고 있으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나의 운세는 늘 괜찮은 편이다. 왜냐하면, 만족할 만큼의 점수가 나올 때까지 게임을 멈추지 않으니까 말이다. 윗대부터 우리 집안에 치매 환자가 없었던 이유가 치매 걸릴 정도로 오래 살지도 못했지만, 유달리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하는 피의 내력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첫댓글 뇌를 자극하는 게임을 적당하게 즐겨도 좋겠단 생각이 들긴해도.
게임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 앉자서 시간만 나면 시간을 내서라도 승부근성으로 게임에 빠지는 일이 제게는 왜 없는건지.... 자극코드.ㅎㅎ 뇌를 반짝이게 하는 글 잘 보옵니다.
나는 게임 할 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