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리스본에서 개최된 청년대회에 참석한 부산교구의 어느 청년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노달리타스라는 것을 모든 신자 안에서 시행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이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교구별로 매년 발표하는 사목 지침조차 잘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은데, 뭔가 어마어마한 것을 해야 한다는 느낌에 감도 잡히지 않는 이 외국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생경했고, 교구 청년연합회 회장이던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한 시노달리타스를 교구 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했고 자료를 취합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해 모든 청년이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제시한 방법에 따라 생각하고 나눔과 논의를 진행하면서 청년들은 알게 모르게 성령의 활동하심에 영감을 받고 그 바람에 마음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결과지에서는 ‘서로를 경청하고 마음을 알아가고 용기와 위로를 주고받음, 다름을 경험하고 인정함, 수용, 인내, 공감, 성찰, 이해, 기쁨’ 등 좋은 열매들이 개개인 마음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청년들이 하느님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었고 젊은이의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성령의 바람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따라가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함께 느끼는 체험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소중했습니다. 이후 시노달리타스 나눔을 경험한 청년들과 청년회장단 연수를 진행하거나 다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아, 역시 엔딩은 시노달리타스네’, ‘청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각의 바탕이 시노달리타스였네’,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했어야 하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또 하나의 씨앗들이 심어졌음을 보았습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단어 안에 공동체, 경청, 동반, 소통, 성령, 식별, 사랑 등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시노달리타스를 알기 전에는 이런 요소들을 따로 생각하고 고민했는데, 시노달리타스를 이해하면 각 개인과 공동체에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지 진단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준도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신앙에 대해서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떄가 많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사제의 가르침대로 따르는것이 가장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청년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들이 세상속에서 늘 바쁘고 경쟁속에서 허득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본당에서 이런일을 위해서 눈높이를 청년들에게 맞추어서 바꾸기는 어려운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청년들을 지도하기 위한 지식이나 체험을 가진이들을 찾는것도 어려운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라는 일단 청년들을, 청년층이 없다면 나이를 더 늘여서라도 청장년층이 생각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 신앙생활을 위해서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말할 기회를 줘야하고 들어줄 준비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의 의견을 들어줘야 할것입니다 어떤 사제는 영적분별력이 없는 이들의 의견을 듣는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하십니다 떄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본당신부가 자신이 말하는 사목방침에 순종하라고 합니다 청년들이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이 옳고 그르고간에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본당을 떠나거나 교중미사를 결하거나 제단체활동을 그만둔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것은 그 이전에 열성적으로 봉사하고 활동하는 이들중에서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 교회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먼저 발언할 기회를 줘야 할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르더라도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지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이나 본당생활에서 민주적으로 다수결에 의해서 정해져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못하는 사람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