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함께 하신 이민용 교수님은 저희 동양고전연구회의 전 이사이셨고 이장우 교수님의 절친이기도 하십니다. 이번 여행에 대한 단상을 보내주기로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용한 사진은 대부분 장세후 교수님 작품이며 이민용 교수님 작품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교수님과 함께 다시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시죠. ^^
돈황을 환상하기 1.
이민용(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전 동양고전연구회 이사)
1] 하나이며 두 개의 지역(一卽二, 二卽一).
나는 돈황을 다녀왔다. 그리고 중국도 다녀왔다. 지리상의 당연한 위치 지움이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이다. 엉뚱한 상상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시절 이노우에 야스시의 “敦煌“이란 소설을 읽고 빠져든 세계이었다. 나에게 돈황은 중국이기보다 고대 어느 국제도시에 관한 환상적 이야기이었다. 그래서 소설속의 한 장면에 나를 위치시키고 돈황이 펼치는 이야기에 끝 모르게 빠져들며 헤매었다. 나의 불교에 대한 공부는 이런 환상적 헤맴을 더욱 확대시켰다.
돈황 석실에서 발굴된 문서와 프레스코화 이미지속의 불보살의 모습, 부처님 스토리에 깃든 장면들, 이미 재현될 수없는 지난 시절의 불교모습을 추적하는 장소로 돈황이 떠올랐을 때 나의 환상과 학문이 일치됨에 전율했다. 그래서 나는 돈황과 연관되는 몇 개의 고전어를 배운 것을 뿌듯해 했고 더욱 불교에 천착했다. 나 보다 앞서 당나라를 떠돌며 정신세계를 유력(遊歷)한 신라의 원측(圓測)스님을 학문상의 아이돌로 삼았다. 원측 스님이 실크로드의 주인공인 현장스님 문하에서 서역의 6개 국어를 달통하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는 기록을 접했을 때 “나의 아이돌 만세”하고 외쳤다.
이후 실크로드를 거쳐 돈황에 당도한 서양의 문헌 탐색가들의 엉뚱한 행적을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겠지만 결국 동양학(돈황학)을 기초 지은 공로자로 승화된 이들. 또 하나의 서세동점의 형태일 수밖에 없는 이들을 중국은 일컬어 ”서방의 악마들(洋鬼子)“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차피 새 것과 신기한 것을 좇아 헤맨 사람들이었다.
이 천방지축으로 떠돈 대표적 인물들, "실크로드(Die Seidenstrassen)"란 환상적인 이름을 붙여 뭇 서양인들을 끌어들인 지리학자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Lichthofen, 1833-1905), 오지 탐험의 선구자이며 타클라마칸 탐험기록과 불교고문서를 서구에 소개하여 문헌학자들을 불러들인 스벤 헤딘(Sven Hedin, 1865-1952), 고문헌 색출과 그 판독 작업이 희대의 학문적 사기극으로 끝나게 한 문헌학자 A. 훼른레(Augustus Frederic Hoernle, 1841-1918), 돈황 문서수집=동양문화 약탈의 장본인이 된 A. 슈테인(Aurel Stein, 1862-1943)과 돈황문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우리의 영웅 혜초스님을 떠오르게 한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에 대해 계속 읽었다. 그런 나의 환상의 돈황, 나의 내면화된 실크로드의 한 자락을 다녀왔다.
그러나 그 돈황은 중국에 위치해 있고 오늘이란 중국의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해 있
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막의 황량함을 전제로 한 여행이었으나 미세 먼지와 무질서한 교통과 휘황한 건물 군(群)들이 마구 뒤섞인 우리의 시발지인 상해는 현대의 메갈로폴리스가 지닌 또 다른 근대성의 삭막함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강안에 위치한 청말(淸末) 열강들의 조차지(租借地)에 난립된 동서양 혼합 건물들, 그것마저 네온으로 장식되어 각각의 원색들을 내 뿜고 있었다. 강 위의 배들의 조명등은 기죽은 듯 간신히 흘러가고 강안의 쓰레기와 오물들이 네온 장식의 색깔을 입고 전혀 다른 물질로 비쳐보였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나의 학문적 환상을 현실로 끝내게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나의 돈황 여행이었다.
과거에로의 여행이며 환상으로의 여행이자 동시에 현실로 되돌아옴이었고
꿈을 깨어 나의 현장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2] 인생은 나그네 길
인생은 여로(旅路)와 같다고 한다.
인생여로를 살아가며 나는 지금 또 다른 여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소간의 현기증과 혼란을 느끼는 것은 시차 때문일까?
아니면 이 여행에 감추어진 나의 이중성 때문일까?
나의 두 번째 고향인 미국 동부 보스턴을 떠나 한국에 도착하자 곧바로 다시 동양고전연구회(대구소재 조호철이사장, 이장우소장)가 주도하는 문화탐방일정을 따라 나선 여행이다.
한 평생을 미루었던 여행이라 아예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두려웠다.
내가 이제껏 상상하며 간직했던 것들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환(幻)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근간 교설이고,
내가 좋아하는 인도신화들의 주제가 아닌가?
아니 연륜이라는 나이듦이 가르치는 교훈이자
현실의 가르침도 그것이다.
깨어나자, 각(覺)이 그것인데.
“깨자! 부수자! 나서자, 여행을“.
나를 위한 구호이자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집사람을
설득시킬 구호였다.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내가 겪을 일들은 접어두기로 했다.
뒤따를 후유증은 나중이다.
아직은 후유증을 따질 때가 아니다.
겪는 것이 먼저,
그래야 후유증이 오지!
중국에서의 시발점은 상해이고 한국에서의 출발은 응당 인천국제공항이거나
김포일 터인데 대구집합 김해공항시발이란다.
서울에서 김해까지의 왕복 비행이 덧붙여진다.
나의 주저거림을 아는 듯 빙빙 돌리기의 일정 짜임이다.
까짓것 그럼 한 번 더 돌리자!
기차로 대구까지 가고 거기서 단체 버스타고 김해로 가서
돌아 올 때는 국내비행기로 김포로 도착하도록.
더 이상 돌리기 일정에서 빠진 건 없는가?
아, 배(船)!
그것은 빼자.
그래야 혹 다음 번 여행을 위한 구실이 될 터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건이 주저거리게 만든다.
동행중 집 사람의 파트너 역할을 할 이장우교수 부부가 빠진단다.
아, 어쩌나.
내 몸 하나 다루기도 힘든 환상을 좇는 여행인데
나의 가장 큰 짐 마누라의 파트너까지 빠진다니.
떠나기 전 미국에서 전화와 이 멜로 찰떡같이 약속받은 일이 허사.
이 교수부인 부친이 병원에서 오늘 내일 한다니 어쩌랴.
이번에는 구호를 바꾸자,
“깨지자, 까무러치자, 그래야 환상 속으로 직행하지”.
역시 나만의 구호였다.
이제 내 환상을 깰 두려움이며
마누라의 잔소리, 매서운 눈썰미의 변화에 대한
만반의 준비도 되어있다.
후유증은 항시 미루어 두자.
아직은 떠나지 않았고 돌아 온 후의
일을 누가 알랴.
우리를 안내할 상해 현지 가이드와 상면을 했다.
가이드란 직책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잔소리꾼일 뿐.
아니면 자기 좁은 소견을 내 휘두르며 모두들
무지하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자기가 보고 느끼는 것만을 따르도록 강제한다.
폴 발레리가 말했던가? “사람은 자기가 보려고 생각하는 것만 본다”고 했는데.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다. 그들의 의도만은 선량하다는 것을.
그래서 어느 곳의 가이드건 그들은 전형적인 선의의 독재자들이고
유식을 내세운 무식함의 전형이라는 것을.
To be continued.....
첫댓글 To be continued.....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멋진 여행기입니다. .
이제서야 등록을 빌려 답변하는 군요. 저 역시 이글이 어데로 갈지 모릅니다. 몇 편을 더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결국 나의 편력하는 생각의 떠돔이 되겠군요. 감사^^민용합장_()_
이민용 선생님, 여기서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돈황을 환상하기,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기대합니다!! _()_
인연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돌출하는 군요.^^ 사사건건이 인연의 만남이군요.그리고 또 헤어짐(愛別離苦)이군요. 여행처럼말입니다. 발이 옮겨간 곳은 일정한 장소이겠으나 마음은 항시 이곳 저곳, 달리는 군요. 저 역시 짐작을 못하겠습니다.^^ 인생이 정해져 있음 오죽 편하겠습니까? 민용합장
여행기가 재미있네요~
다음편이 기대됨니다.
늦은 댓글 회신 미안^^ 항시 심각해지는 老땅의 세대이라 재미를 위장하려 무척 노력! 要 응원, 짝, 짝, 짝!!
민용합장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