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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141_7 【就道士問周易參同契】 盛唐 王昌齡
-도사에게 나아가 주역동참계에 대하여 묻다.-
仙人騎白鹿,(선인기백록) -신선은 흰 사슴을 타고 다닌다고,
發短耳何長。(발단이하장) -언젠가 언뜻 들었네만.
時餘採菖蒲,(시여채창포) -시간이 있어 창포를 캐며 지내다가,
忽見嵩之陽。(홀견숭지양) -魏伯陽을 숭상하게 되어 홀연히 도사를 찾아뵈었네.
稽首求丹經,(계수구단경) -큰 절을 하여 예를 갖추고서 단경을 구하였더니,
乃出懷中方。(내출회중방) -이내 내어주니 중원을 얻은 듯하네.
披讀了不悟,(피독료불오) -열심히 읽어 보았지만 깨치지를 못하여,
歸來問嵇康。(귀래문혜강) -다시 찾아 와 혜강에 대하여 물어보았네.
嗟餘無道骨,(차여무도골) -아! - 나는 道骨이 없으니,
發我入太行。(발아입태행) -나 스스로 太息법이나 연마해야겠구나.
<註釋>
菖蒲-여기서는 도교의 심오함을 탐닉한 것을 뜻함.
稽首-1.[명사] 계수.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게 조아리는 옛날의 절하는 방식]
丹經-講述煉丹術的專書。晉의 葛洪의《抱朴子·金丹》:“凡受太清丹經三卷,及九鼎丹經一卷,
金液丹經一卷.”와 東漢의 魏伯陽의 《周易參同契》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周易參同契를 말한다.
※丹經에 대한 참고자료
기러기의 털과 같이 가벼운 깃털을 코와 입 사이에 놓고 코로 “氣”를 깊게 들이 마신다. 일단 호흡을
멈추고 수를 1에서 120까기 세고 입으로 조용히 내쉬는데 이 과정에서 새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이 방법으로 마음속으로 세는 수가 1,000에 이를 때 까지 훈련을 하는데, 이런 호흡법을 도교에
서 ‘胎息’이라고 하며 이를 행하는 것을 ‘行氣’라고 한다.
코와 입으로 호흡하는 것이 아니고 태아가 모친의 태중에서 호흡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태식이라고
한다. 마음으로 세는 수가 1,000에 이르도록 숙련이 되면 노인도 점점 젊어져서 장년으로 돌아가고,
몸에 있는 병도 고쳐지고, 전염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상처의 피를 지혈할 수도 있고, 호랑이를 제지할
힘도 생기고, 물위를 걷거나 물속에 들어가서도 오래있을 수 있으며 굶주림이나 목마름도 피할 수 있
고 생명을 연장 할 수도 있게 된다. 고 한다.
고대 중국의 도교에서는 불로장생을 최고의 도로 신봉했다. 神仙의 도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
한 것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神仙이 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동진 시대의 도학자 葛洪은 도교의 핵심
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사람은 神仙이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불로장생 법을 설파 했다.
神仙이 되는 호흡법을 ‘行氣’라고 한다. ‘氣’는 우주생명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이 것을 신체
내에 깊이 마시게 해서 ‘氣’의 생명력으르 이용해 병을 고치거나 젊어지는 등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
는 것이다.
또 葛洪은 <抱朴 子 · 論仙>에서 “약물 봉용을 터득하고 연명 술수를 배우면 신선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고 仙藥으로는 金丹이 최고”라고 했다. 금단은 수은 납 유황과 기타 금속을 배합한 후에 용광로에서
제련을 한 약 품이다. 丹沙에서 수은을 채취하고, 그 수은을 변화시켜 금을 만든다. 다시 금을 특수약품
에 담궈 부드럽게 되면 팥알만 하게 만들어 매일 한 알씩 3회 복용해서 한근을 다 복용하면 체내에서
여러 가지 병이 없어지고 장님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도 청력이 회복되고 노인은 점점 젊어져 30세가량
이 된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냉풍 무더위 습기도 인체내에 침입할 수 없는 체력이 되는 것이다.
葛洪은 도교학자였으며, 화학을 연구하는 과학가고, 또 약초를 심어 약초의 성질을 연구한 약학가 병을
고치는 의사였다. 현존하는 丹經으로는 東漢의 魏伯陽이 쓴<周易參同契>와 東晋 葛洪이 쓴 <抱朴子內
篇>이 있는데 이런 책들은 당시 수도자들 부자들 고관대작들이 탐독하는 귀한 책이었다.
中方-(1).指中原地區。
披讀-경전을 언제나 펴서 보고 읽어 손에서 놓지 않는 공부법이다
嵇康-현학(玄學)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의 일종의 철학사조(哲學思潮)였다. 노장(老莊)사상이
주를 이루었으 며 일종의 유심주의(唯心主義) 사상체계를 갖고 있었다. 현학은 이무위본(以無爲
本 : 무(無)를 본(本)으로 삼는 것)을 주장하고 허무주의(虛無主義)와 적정(寂靜 : 고요함)과 동중구
정(動中求靜)을 고취했다. 그 당시 양생학은 현학의 영향을 받아 정신수양과 신단묘약(神丹妙藥)의
복용에 중점을 두었으며 신체단련은 비교적 소흘한 편이 었다.
그 당시 죽림칠현(竹林七賢)은 혜강(嵇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산도(山濤), 향수(向秀), 왕융
(王戎), 유령(劉 伶) 등 이었다. 죽림칠현은 위(魏)나라 말기(末期)와 진(晉)나라 초기(初期)에 허무
주의를 주장하여 죽림 속에서 생활하며 청담(淸談) 등을 하고 지내던 일곱 명의 선비를 일컫는다.
죽림칠현의 인생관은 ”천년역사(千年亦死), 백년역사(百年亦死); 인인역사(仁人亦死), 흉우역사(凶
愚亦死). 생즉요순(生則堯舜), 사즉부골(死則腐骨). 부골일의 (腐骨一矣), 숙지기동(熟知其同). 차
취당생(且趣當生), 해황사후(奚遑死後).” 이었다.
다시 말하면 ”천년을 살고도 죽고 백년을 살고도 죽으며 인자한 사람도 죽고 흉악한 사람도 죽으며
바보도 죽 는다. 살아 생전이 요순시대이지 죽으면 썩어 뼈만 남는다. 어떤 사람의 썩은 뼈든지 모
두 동일하다. 이 세상에 잠간동안 살아있을 때 재미있는 인생을 보내야 되지 죽으면 모두 헛일이로
다” 는 뜻이다.
현학과 양생이 결합하여 "현학양생(玄學養生)” 이란 일파(一派)를 형성했다. 현학양생파 중 가장 큰
공헌을 한 우두머리가 혜강이다.
道骨-仙人의 風格와 道士의 氣槪
太行-太息呼吸法을 실천하는 것을 말함.
●혜강(嵇康) (224 - 263) 字는 叔夜, 安徽省 宿縣人. 魏晉 시대의 문학가요 사상가요 음악가였다.
혜강은 노장사상을 숭상했으며 양생복식(養生服食)에 관심을 가지고 양생론(養生論)과 답난양생론(答難養生論)과 댁무길흉섭생론(宅無吉凶攝生論) 등을 저술했다. 혜강(嵇康)은 조조(曹操)의 손녀(孫女) 사위이며 사마씨(司馬氏) 집단의 가족들이 종신토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한데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이다.
혜강(嵇康)은 철학과 문학과 음악과 양생방면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여 조예가 깊었다. 혜강은 사마씨 가족을 두둔하고 임금을 비방했다는 죄명을 씌워 39 세의 젊은 나이에 아깝게도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혜강(嵇康)은 짧은 생애에 양생학 방면에 큰 공적을 남겼다. 혜강은 사람의 정신상태가 인체 생리기능에 큰 변화를 가져와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혜강은 그의 저서 양생론에 ”복약구한(服藥求汗), 혹유불승(或有弗勝); 괴정일집(愧情一集), 환연유리(渙然流離)” 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약을 복용하여 땀이나는 병이 치유되나 어떤 경우엔 치료되지 않는 때도 있다. 또 내심으로 매우 부끄러움을 느낄 때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땀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는 뜻이다.
즉 발한약(發汗藥)을 복용해도 땀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두려움이나 수치스러움 때문에 땀이 많이 흘러 등에 배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작용 때문이다.
혜강(嵇康)은 ”종조미찬(終朝未餐), 효연사식(囂然思食); 증자함애(曾子銜哀), 칠일불기(七日不飢)”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루 만 굶어도 밥 생각이 나서 떠들썩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꺼번에 죽어 슬픔이 극도에 다달아 사무칠 때는 7 일 동안 밥을 굶어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혜강은 정신작용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에 양생에 있어서 혜강은 보신(保神)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정신적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 혜강은 ”희노패정기(喜怒悖其正氣), 사려소기정신(思慮銷其精神), 애락앙기평수(哀樂殃其平粹)” 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기쁨과 화냄은 정기(正氣)를 어지럽게 하며 부질없이 늘 근심 걱정을 하면 넋이 빠져 나간다. 지나친 슬픔과 지나친 즐거움은 정신적인 안정과 평온을 깨뜨린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양생가들은 모름지기 ”청허정태(淸虛靜泰), 소사과욕(少私寡欲). 광연무우환(曠然無憂患), 적연무사려(寂然無思慮)” 해야 된다고 혜강(嵇康)은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잡된 생각없이 마음이 깨끗하고 차분해야 되며 이기심과 욕심이 적어야 된다. 그리고 속이 넓고 활달해야 되며 근심과 환난이 없어야 된다.” 는 뜻이다.
혜강(嵇康)은 답난양생론(答難養生論)에 양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난(五難)을 극복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오난(五難)이란? ”명리불살(名利不殺), 차일난야(此一難也); 희노부제(喜怒不除), 차이난야(此二難也); 성색불거(聲色不去), 차삼난야(此三難也); 자미부절(滋味不絶), 차사난야(此四難也); 신허정산(神虛精散), 차오난야(此五難也)” 이다.
다시 말하면 ”명예와 이익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이 일난(一難)이고 기쁨과 화냄을 없애지 못함이 이난(二難)이며 가무(歌舞)와 여자(女子)를 멀리하지 못함이 삼난(三難)이고 맛있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함이 사난(四難)이며 정신을 너무써서 원기(元氣)가 허(虛) 해지고 정기(精氣)가 흩어짐이 오난(五難)이다” 는 뜻이다.
혜강(嵇康)은 오난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생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오난(五難)은 모두 보신양생(保神養生)에 필요한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혜강(嵇康)은 양생방면에 있어서 음악이 인체의 정신을 조절해 준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음악은 기(氣)를 소통시켜 주고 기(氣)를 길러주는 작용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혜강(嵇康)은 "서한무제(西漢武帝 : BC 140 년 - BC 87 년) 때 맹악사(盲樂師 : 장님 악사, 아악부(雅樂部)의 한 벼슬) 공두공(空頭公)이 180 살 까지 살았다. 공두공은 도인양생(導引養生)을 한 것 이외에 음악으로 정신을 조절하여 장수한 사람이다." 고 말했다. 혜강(嵇康)은 음악이 양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혜강은 최종적으로 ”음악능거사납정(音樂能去邪納正), 선화양기(宣和養氣)” 라고 역설했다.
다시 말하면 ”음악은 인체내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를 구축하고 인체내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평형을 유지시켜 줄 뿐만 아니라 품덕을 기르고 정신을 수양해 준다” 는 뜻이다.
혜강(嵇康)의 저서 금찬(琴贊)에 보면 ”음악유조어인적연년익수(音樂有助於人的延年益壽)” 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수한다” 는 뜻이다.
지금부터 1755 년 전에 이상과 같이 혜강이 주장한 음악에 대한 이론은 현대 과학으로도 이미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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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해설 고맙습니다.
王昌齡이 道敎 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가 봅니다. 詩想이 주로 그런 쪽으로 치우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물의 형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의 생각을 作詩한 것이라 해설이 부실하면 풀이를 해 놔도
뜻을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자료 검색에 한참을 헤매었습니다.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