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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自警文 法門 제 1 강
◎自警文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 자기가 자기를 경계하는 글이라!
야운비구는 술하노라. 야운비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는 몰라.
야운비구라는 사람이 신라 ▮원효대사 밑에 야운 비구라고도 하고, 고려시대 ▮나옹 스님 밑에 야운 비구라고도 하고 드러난 야운이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말고도 다른 야운인지도 모르고요. 생몰연대를 확실히 모르는데요. 모두 전설적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원효대사가 금강산에서 토굴 살이를하고 기도를 하고 사는데, 옛날에는 향로라는 것이 화로 불을 담아다 놓고, 거기다 향나무를 삐져서 꽂으면, 연기가 소르르 나고 그랬거든요. 화로불 그것이 방도 따뜻해지고, 요새는 선향이지만 옛날에는 선향이 아니고, 만수향... 향나무를 삐져서 태우는 건데요. 밤만 자고나면 어떤 놈이 와서 화로불을 헤쳐서 불이 다 꺼져버리고, 꺼져버리고... 옛날에는 불씨 하나 살려내기가 힘들거든요. 성냥불도 없을 때... 어떤 놈이 밤에 와서 화로 불을 다 헤쳐 놓고 불을 껐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날마다 그래요. 불 한번 피우려면 힘들고, 힘들고...
하루 밤은 탁자 밑에 숨어서 지켰어요. 지키고 있는데 밤중쯤 되니까 이목구비가 아주 준수한 남자가 “아이고 추워라” 하면서 들어오더니 불을 헤치고 불을 쪼이거든요. 그래 가서는 확 잡았어요.
“네 이놈, 네가 누구냐?” “저는 금강산에 몇천년을 살고 있는 영랑선인이라고 하는 신선”이라는 겁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나?” “동해바다가 세 번 마르는 것을 봤습니다” 삼겁을 살았다는 겁니다. “네가 추위를 타는 걸 보니 五衰苦가 나타났구나!” “죄송합니다”
천상사람이나 신선들한테 “오쇠고”라는 것이 있는데, 다섯 가지가 쇠퇴해진다 이 말입니다. 부자로 잘 살 때는 얼굴이 반질반질 하니 살도 찌고 근사한데, 쇠퇴해지는 오쇠고가 나타나면,
첫째는 ▮頭上華萎... 머리가 꺼칠해지면서 머리에 쓴 화관이 시들어 진다는 겁니다. 머리에 쓴 화관이 아주 생생하니 좋았다가 시들어서 푹 풀이 죽어 버린다는 겁니다.
둘째는 ▮腋下出汗... 겨드랑이에서 땀이 자꾸 난다는 겁니다. 오쇠고가 나타나면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나고, 냄새가 나고요. 身體臭穢.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니까 냄새가 날 수밖에요.
셋째는 ▮몸이 쇠해지면서 자꾸 한기를 느낀다는 겁니다.
넷째는 ▮衣服垢穢... 암만 씻어도 몸에 자꾸 때가 생기고, 仙衣가 더러워진다는 겁니다. 선의는 하늘 옷이지요. 새 옷을 입어도 비 맞은 중처럼 금방 추접해진다는 겁니다.
다섯째는 ▮不樂本座... 마음이 자꾸 불안초조 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오쇠고입니다. 다섯 가지 오쇠고가 나타나는 지금 그런 형편에 있어요. 자기 수명이 다 해 가니까... 身强力足... 몸이 한창 장성할 때, 몸이 건강하고 좋을 때는 얼굴이 번들번들 하게 훤하고, 꽃핀 것처럼 모든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아무 옷을 턱 걸치더라도 그냥 그대로 멋이 있고, 아무 음식을 먹어도 그냥 소화도 잘 되고, 아무렇게나 자도 몸이 건강하고, 사람이 그러던 것이 늙으면 다 안 그러거든요.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고, 아무 것을 먹어도 소화도 잘 안 되고, 몸도 삐쩍 말라서 한기를 잘 느끼고, 노여움도 잘 타고, 슬픔도 잘 생기지요. 죽을 때 다 돼가면 그렇거든요. ‘늙었다고 무시 하는구나’ 그것이 모두 오쇠고입니다.
백천만겁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살아봐도, 다 소용없는 것이라고 원효스님 법문 한 마디에 깨쳤어요. 無常心을 발해서 無上菩提心을 발했어요. 이 몸뚱이가 무상한 줄 아니까 無上道心을 발했어요. 그래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었어요. 근기가 수승 하니까 법문 한 마디 듣고도 그냥 깨치거든요. 그래서 ▮야운 비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거기가 어디냐 하면 속초위에 간성입니다. 간성에 그 큰 호수 이름이 영랑호수 잖아요. 이 신선 이름이 ‘영랑선인’이거든요. 이랬다 하는 전설적인 설화가 있는데 그대로 재미가 있지요.
그 뒤에 고려 말에 나옹 스님의 제자 가운데 ▮야운 비구라는, 야운 스님이라는 스님이 있었대요. 野雲覺牛라는 스님이 있었어요. 야운각우 스님의 글인지, 영랑선인 후신인 야운인지, 누구 글인지 확실히 모른대요. 왜 그러냐? 하면 이 글 내용 자체를 봐서... ▮원효대사 당시의 야운이라고 하면, 이 자경문 가운데 참선 얘기가 더러더러 나오는데, 그 당시에는 참선법이 그렇게 퍼지지 아니 했을 때라는 겁니다. 祖師禪 선법이 퍼지지 아니 했을 때인데, 조사선 얘기가 더러 나온 것을 보면 원효스님 당시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학자도 있지만, 그러나 선법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정도는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요.
고려 ▮나옹스님 당시의 야운 스님이라고 한다면, 나옹 스님은 중국에 가서 格外禪地를 크게 깨달아서 임제종지를 아주 크게 깨달은 대종사인데, 여기에서는 평범한 법문이지... 선문의 옛날 큰 스님네들의 아주 투철한 격외법문 같은 것을 인용한 것도 없고... 투철하게 깨달은 소식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옹 스님 제자라고 하기는 약간... 그 때 禪風을 봐서는 글 자체가 약간 그 때 그 선풍에 걸맞지 않는 글이기 때문에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무 스님이었든지 상관있나? 글이 좋으면 그냥 그대로 된 것이지. 어쨌든 간에 야운 비구라고 하는 사람의 생몰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野雲堂上에 野雲飛하고. 야운 당 위에는 들 구름이 턱 하니 흘러가고 있고 하는 글도 있다는 겁니다. 나옹스님의 호가 江月焮(강월흔)이라고 그랬는데, ‘강에 비친 달’이라고 그랬어요.
江月焮上에 江月白이라. 강월흔상에 강월이 흰데, 강 달이 흰데
野雲堂上에 야운하니라. 야운 당 위에는 들 구름이 한가롭더라.
雲光月色이 交流處에 구름과 달빛이 서로 떡 사귀어서 빛나는 그 곳에
一室含虛體自니라 한 방에 허공을 머금고 있는 그 자체가 스스로 편안하더라. 이런 글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운 스님이 아니겠나?
또 이 야운 스님은 어떤 명리에 속하지도 아니했고, 고고하고 고매하게 수행만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門庭이 險峻하고 意氣가 高閑이라. 문정이 아주 규칙적이고 그 뜻과 기개가 아주 높고 한가롭다! 이 말입니다.
現念努具(?)하야 折邪之相 아주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서, 사악한 일을 확 꺾어 버리는 그런 모습을 갖추기도 했고,
開慈悲有하야 引導之容 자비심을 열어서 인도하는 얼굴을 나타내기도 했더라.
各賢大德野雲覺牛禪師 그 이름이 크게 드러났던 대덕스님 야운 각우선사라. 이런 글도 있다는 겁니다. 어느 야운인지는 확실치는 않아. 야운스님은 그 쯤해두고...
●主人公아 聽我言하라
주인공아 하는 소리가, 옛날에 어떤 스님은 항상 “주인공아~” 자기가 그렇게 불러요. “주인공아~” 그러면 “예~ ” 자기가 또 그렇게 대답을 해. “게으름 부리지 말라” “예~ ” 자기가 소리 지르고 자기가 대답하는 그런 스님이 있었다고 그래. 이 몸뚱이는 주인공이 아니거든. 이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니까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주인이 있잖아.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것은 운전수거든. 운전수가 진짜 주인이거든요. 마음 운전수가 주인공이고요. 이 몸뚱이는 자동차껍데기지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다 이 현상계의 눈에 보이는 것에 모두 집착을 하고, 탐진치 가운데 놀아나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탐진치를 부리고 있는 이 현상계의 원 주인공!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자리가 “주인공아!!!”이라 이 말입니다. “신선도”라는 것은 이 몸뚱이를 잘 고르고 다스려서 요가를 성취해서. 인도에서는 “요가”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신선도”라고 하는데, 중국의 ▮신선도나 인도의 ▮요가나 다 어슷비슷한 것입니다.
뭐냐하면 이 몸뚱이의 長生不死를 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장생처를 어떻게 아느냐?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뭘 가지고 산다고 하느냐하면, 호흡을 하기 때문에 산다고 한다 이 말입니다. 호흡때문에 산다고 하는 것인데요. 들이쉬는 숨은 ▮생이고, 내쉬는 숨은 ▮사. “生死” “생사” 하는데, 호흡을 하지 아니하고 이 몸뚱이를 유지할 수 있으면, 장생불사할 것 아니냐? 이거라. 그래서 한 평생을 호흡 조절을 잘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신선도에서는 호흡 조절 잘 하는 것이 신선도입니다. 인도의 요기들이 어떻게 호흡을 하느냐?하면, 호흡을 딱 멈춰서 발뒤꿈치로 호흡을 해. 발뒤꿈치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인도독립 운동 하다가 영국군들한테 잡혀서 목을 매달아서 교수형으로 다 죽여 버리거든. 교수형으로 목을 매달아서 죽여 버린 것을 갖다가 묻으면, 벌떡 일어나서 달아나 버리거든. 죽은 줄 알았지만 안 죽었거든. 모가지 암만 매달아 봐도 소용없어. 호흡 안 하니까...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까 발뒤꿈치로 호흡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도끼로 전부 발뒤꿈치를 찍었어. 그래도 상관없어. 발가락으로 호흡하면 되니까. 그것이 말하자면 “요기”들입니다. 요기들은 갖가지 모습이 많아요.
어쨌든 간에 호흡을 완전히 완성한 사람들이 요기들입니다. 호흡 조절을 성취함으로서 장생불사를 기하는 것입니다. 오래 살기를 기한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신선도입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모양이 있는 현상을 가지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신선도다 이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유한한 것입니다.
불법에서는 이 몸뚱이라는 것은 모양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인데, “주인공!” 마음자리를 깨달으면 그것이 “진실한 道다” “내 말 좀 들어봐라”이겁니다.
●幾人이 得道空門裏어늘
‘몇 사람이 공문속에서 도를 얻었거늘...’ 그랬는데, ‘몇 사람이’라는 말은 몇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역대 조사들이” 그 말입니다. ‘공문 속에서 도를 얻었거늘’ 하는 말은 무슨 얘기냐? 하면, 절 집안을 空門 이라고 하는데 일주문. 대문간만 있지 문이 없잖아요. 누구든지 출입할 수 있으니까. ▮텅빈 문이라고 해서 ▮공문이라고 하는데요. 사랑에 걸리고, 탐욕에 걸리고, 탐진치 오욕락에 걸려 있으면 ▮有門이지 ▮空門이 아니거든요. 탐진치 오욕락을 다 비워버린 문이 공문입니다. 구정물처럼 확 비워버리고 완전히 안팎으로 환히 밝게 만든 문을 ▮공문 이라고 합니다. 마음 가운데 모든 8만4천 번뇌 망상을 다 털어버린 것을 ▮공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法門”이라고도 합니다. 法門이라는 것은, 법 法자는 물로 씻어버린 것이 法이거든요. 구정물 그릇을 싹 씻어버렸다 이 말입니다. 구정물 그릇을 싹 씻어서 푹 울궈서 완전히 깨끗한 그릇 만들어 놓으면 그것도 쓸 수 있잖아요. 꿀 단지 만들어도 되잖아. 유리그릇이나 강한 도자기 그릇은, 구정물을 암만 오래 담아 놨었어도 울궈 버리면 완전히 깨끗하게 물로 씻어 버리면, 물로 씻어 버리는 것이 법 法자잖아요. 물로 깨끗하게 씻어 버리는 것이 ▮法門입니다. 법의 문입니다. 법의 문이 바로 ▮空門입니다.
이 공문에 대한 비유 얘기가 재미있는 것이 있지요. 옛날에 “계현법사” 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계현법사라고 하는 스님이 상좌를 하나 두었는데 “신찬선사”라고 하는 스님이었어요. 그 신찬스님은 禪門에 본래 선근종자가 깊은 스님입니다. 스님 밑에 있다가 참선도 안 하고 맨날 글이나 배우고 일이나 하니까 도망을 했어요. 백장회해스님 밑에 가서 참선을 해서 견성을 했어. 깨쳤어. 깨쳐서 몇 년 만에 누더기를 입고 돌아오니까 ...
자기 스님이 “네가 나를 떠나서 무슨 짓을 했느냐?” “아무 짓도 크게 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한 짓도 없으면서 장돌뱅이하고 돌아다녔나? 산에 가서 나무나 해오너라” “예”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어요. 떡 하니 나무를 해오니까 “불 떼어서 목욕물이나 데워라” 목욕물을 데워서 목욕을 합니다. “여기와서 내등 밀어라” “예” 등을 쓱쓱 문대는데 문대다 보니 스님이 살이 쪘거든요. 등을 문대다 하는 말이, “好好法堂이여, 좋고 좋은 법당이여, 법당은 좋다만 而不佛靈이로다. 부처가 영험이 있는 둥 없는 둥” 이러거든요. “이놈이 뭐라고 하나?” 쳐다 보니까 “부처가 영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방광은 할 줄 아네. 佛雖不靈이나 也能放光이로다. 부처가 영험은 없어도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 이랬어요. 지금 발가벗고 목욕하는 중에 실갱이 하기도 안 되어서 ‘이 자식이 어쩌다가 헛소리 좀 하는가?’ 싶어서 못 들은 체 하고 말았어요.
그 뒤에 또 며칠 후에 경상을 놓고 창문 앞에서 경을 보고 있는데 창문을 한 쪽은 닫아놓고 한 쪽은 열어 놨거든요. 벌이 한 마리 들어와서 열어놓은 문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열어놓은 문으로 쑥 나가면 나갈 것인데 그건 안 보이는 겁니다. 닫아 놓은 봉창문을 당당당당 당당당당 봉창을 두두리고 있거든요. 새가 들어오든지 뭐가 들어오면 열어놓은 문으로 나가려고 아니합니다. 어쨌든지 닫아놓은 문으로 나가려고 당당당당 거립니다. 자기 스님은 경을 보고있거든...
신찬선사가 들어와서 한다는 소리가 空門에 不肯出하고, 投窓에 也大痴로다.
공문 = 빈문 = 열어놓은 문이라는 말입니다. 공문으로 나가기를 좋아하지 않고, 창을 두두리고 있으니 참 어리석구나.
百年을 鑽古紙한들, 백 년 동안을 옛 종이를 뚫고 있은들,
何時에 出頭期아. 어느 때에 출두할 기약이 있는가?
어느 때에 대가리가 쑥 나갈 기약이 있겠는가?
古紙라는 것이 창문이 고지이기도 하지만, 창문이라는 것은. 옛 종이라는 것은 경책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책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오래된 책을 古紙라고 하거든요. 백 년 동안을 책 들여다본다고 해탈할 기약이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책에서 해탈 얻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약방문 들여다본다고 병 낫느냐? 이겁니다. 약방문 암만 다 외워봐야 약 안 먹으면 소용없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자기스님하고 벌하고 싸잡아서 욕을 한 것입니다. 전 날은 발가벗었으니 실랑이를 못했지만, 오늘은 옷을 입고 경을 보는 판인데, 전 날도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오늘도 뒤 꼭지를 치거든요.
“야, 네가 어디 다니면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느냐?” “제가 백장회해선사 밑에 가서 한 생각 쉬었습니다” “그래?” 하더니 그만 뛰어 나가서 대종을 꽝 꽝 울리며, “내 상좌 성불했다~~. 법문 들으러 오너라~~.” “내 상좌 성불했다~~. 법문 들으러 오너라~~.” 하고 대종을 울려 제끼니까 산중 스님네들이 대종 소리 듣고, 대중이다 모였어요. 신찬선사까지 법당에 다 모였어요.
모이니까 스님이 상좌한테 절을 하면서 “제발 대중을 위해서 한 마디 법문을 해 주시오” 법문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 씻는 문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자 사양할 것도 없이 서슴치도 않고 법상에 척 올라가서 주장자를 텅 구르고 하는 말이...
▮靈光이 獨露하야 逈脫根塵하니,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척 드러나서. 신령스런 광명은 마음에 빛이 났다 이 말입니다. 마음의 빛이 태양의 빛과 같이 구름을 헤치고 척 나타났다 이 말입니다. 나의 본원 자성자리가 번뇌 망상에 가려서 자성광명이 드러나지 못했는데, 번뇌 망상이 척 갈라지고 벗어지고 나니까... 본원 자성자리가 백청일월과 같이 드러났다! 이 말입니다. 신령한 광명이 홀로 드러났다! 이 말입니다. 逈脫根塵하니, 根塵. 6근과 6진이라는 말입니다. 情塵이라는 말이 根塵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6정 6진... 안 이 비 설 신 의 6근 동작에 우리는 항상 끄달리고 있고, 색 성 향 미 촉 법에 언제든지 집착을 하고 있는데, 안 이 비 설 신 의 6근과 색 성 향 미 촉 법 6진 경계를 확 벗어나 버렸다 이 말입니다.
형탈근진하니. 멀리 6근과 6진을 해탈했으니. 벗어났으니...
▮體로眞常하야 不拘文字로다. 그 원자체가 참되고 항상된 자리. “진리”라 이 말입니다. 眞常이라는 것은 진리라는 말이거든요. 참되고 항상된 자리를 턱 드러나서 불구문자로다. 그 도리는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어떤 문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이 말입니다. 언어문자로 채울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언어문자가 닿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心性은 無染하야 本自圓成이어늘. 마음성품... 마음 원바탕자리는 모든 더럽고 깨끗한 것을 다 떠나 버렸기 때문에 본래 스스로 원만성취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本自圓成이라.
▮但離妄緣이면 卽如如佛이니라. 다만 망상반연. 번뇌 망상... 이것 하나만 똑 떨어지면 곧 여여불이니라. 여여한 부처가 바로 이것이니라.
이런 법문을 했어요. 이 법문아래 저희스님도 확철대오를 했어요. 깨쳤어요. 깨치고서는 상좌한테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何期受老하여 得聞如是 極勅法門乎아. 내 늙어서 죽을 때가 되어서 어찌 이와 같은 극칙법문을 들을 줄을 누가 기약 했었었느냐?고 “감사. 감사합니다.”하고 상좌한테 무수히 절을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心性을 깨달은 사람들의 아주 좋은 空門법문입니다. 그러니까 텅 열어놓은 문!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문.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것은 믿지를 않고 나가려고 생각을 하지 않거든. 닫아 놓은데 어디 공간이 없는가 싶어서 공간을 찾느라고 당당당당 당당당당 봉창을 두두린다 이 말입니다. 空門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문이거든요. 색성향미촉법... 조견오온을 제대로 못해서. 五蘊을 照見 해버리면, 비춰보면... 五蘊이라고 하는 것은 색 수 상 행 식 이잖아요? 色이라는 것은 일체만유를 두고 하는 것이고, 受라는 것은 받아들인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감성하는 것이,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受입니다.
그러니 아무 감정이 없으면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해. 예쁜 것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예쁜 것을 예쁜 줄 모르면 받아들일 수가 없잖아. 안 받아들여지잖아. 여기에 굉장히 미인이 있다면 같은 또래의 여자들은 질투를 하거든. 예쁘니까. 그렇지만 7~ 80 할머니들은 무상심심합니다. 예쁘면 어떻고 미우면 어떠냐? 해서 아무 질투도 느끼지 않고, 아무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보는 사람마다 감정이 각각 다르다 그 말입니다. 그것이 받을 受자입니다. 그래서는 취사선택을 하거든요. 그것을 가져야 되겠다. 버려야 되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思惟...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사유하고서는 행동에 옮기거든. 행동에 옮겨서 꺾는다든가 갖는다든가 무슨 일을 저지른다 이 말입니다. “일 저지른다” 그러지. 행동에 옮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는 거기에 모든 분별이 생기는 겁니다. 좋고 궂은 분별이 일어나는 겁니다. 색수상행식이거든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인데, 오온에서부터 시작해서 번뇌 망상이 8만4천 가지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오온이 탁 皆空하면. 다 공해 버리면 한 가지 집중함으로서 오온이 개공하면. 度一切苦厄입니다. 일체고액을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관을 자재하면 = 관자재보살 하면, 오온이 개공한 것을 조견해서. 오온이 다 공한 것을 조견해서 도일체고액... 일체고액을 벗어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삼장법사가 서천 서역국 가다가 五蘊山을 만나서 오온산 꼭대기에 “옴 마니 반메 훔”하는 말뚝을 뽑으니까 오온산이 터지면서 거기에서 천년 묵은 돌 원숭이가 탁 튀어 나왔다고 그랬잖아. 돌 원숭이가 튀어 나와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제자 손오공이가 나타났습니다” 五蘊이 皆空했으니까 五空입니다. 오온이 개공한 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오공입니다. 그래서 손오공입니다.
손은 번뇌 망상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짐승 중에 제일 까불이가 원숭이입니다. 이 자식은 똥구녁을 깠다가 거꾸로 재주를 넘었다가 잠시도 가만히 안 있거든요. 우리 마음자리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 마음자리가 원숭이처럼 온갖 재주 다 부리고 어쨌든지 간에... 다람다람 다람쥐야. 알밤 줍는 다람쥐야. 보름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야. 다람쥐보다 더 까불이가 원숭이거든요. 잠시도 가만히 안 있어요.
중생의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어요. 그 원숭이가 날고뛰고 재주를 넘고,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자리 번뇌 망상에 비유했어. 이것이 오온이 개공한 도리를 깨달은 것이 손오공입니다. 그것을 깨치고 보니까 색불이공이요. 공불이색이거든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또 색과 다르지 않거든요.
관이 자재하니까 그렇게 돼버립니다. 관이 자재해 버리니까 관자재보살입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이 됐더라. 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상행식이 다 그렇거든요.
수상행식이 역부여시거든요. 또한 다시 그렇더라.
그래서 손오공이 된 경계가 바로 空門입니다.
空門을 턱 하니 통과함으로서 거기에서 道를 얻었어요. 道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인생이 가야할 길. 우주가 가야할 길. 인생과 우주의 진리의 길이 바로 道다! 이 말입니다. 옛날 말로 ▮도이고, 요새말로는 ▮진리이고 그렇습니다.
요새는 진리탐구를 위하여 어쩌고 그러는데 진리가 무엇인지, 철학개론에 보면 진리는 말할 수 없고, 진리는 표현할 수도 없고, 진리는 뭐라고 알려질 수도 없다. 이런 소리가 있지. 진리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道라 이 말입니다. 옛날 말로 도이고, 요새말로는 ▮진리다 이 말입니다. 그 ▮空門 속에서라야 진리를 얻지, ▮有門 속에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이 말입니다. 도를 얻을 수 없다 이 말입니다. 번뇌 망상 속에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이것입니다. 번뇌 망상이 공한 속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이 一心集中해서 화두를 ‘세존이 어째서 꽃을 들었는가?’ ‘세존이 어째서 꽃을 들었는가?’......... 하고 있다가 잠도 오지 않고 다른 망상도 없이 오직 一念으로. 일념으로 화두가 되었을 때, 어떨 때 그럴 때가 있어. 어쩌다가 자꾸 애쓰고. 애쓰고 연습을 하다 보면 홀연히 한 시간이 언제 가 버렸는지 가 버릴 때가 있어. 한 시간이 10분이나 5분 만에 한 시간이 되어버리는 그럴 때가 있어. 저 우주공간 무중력 상태에 가면, 사람들 느낌 자체가 긴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 바로 그와 유사한 類라고 할 수가 있어요.
일타스님 自警文 2 강
그런데 그것이 연장이 되어서 하룻밤이 언제 가 버렸는지 하룻밤을 잊어버리는 수가 있을 수도 있어. 내 생각에는 9시나 10시쯤 됐다고 생각 했는데 벌써 날이 새 버렸거든요. 분명히 자거나 졸지 않았는데 시간이 언제 그렇게 가 버렸는지 그냥 一念이 卽是無量劫이고, 九世十世가 互相卽입니다. 긴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고, 참 그야말로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많이 있지만...
모든 것이 생각 차이거든요. 空門을 한 번 터득 하여야 비로서 그것이 入門입니다. 불법 문에 들어가는 겁니다.
어느 신부님하고 얘기를 하는데, “불교에는 감사하는 것이 따로 없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누가 누구한테 감사를 하느냐?”고 “이를테면 우리 카톨릭에서는 하나님한테 감사를 하는 것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부처님한테 감사하는 그런 것이 없느냐?”고 “卽心이 是佛이라고 내 마음이 부처인데 내 마음한테 감사하다. 고 하겠느냐”고 그러니까
카톨릭하고 기독교하고 불교 하고는, “불교는 信心이고 거기는 信仰이기 때문에, 어떤 상대를 두기 때문에 그 상대를 의지해서, 뭐가 잘 됐다 싶어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에서도 신앙심으로 부처님한테 기도를 해서 성취 했을 때,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럴 수도 안 있겠느냐”고...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본질은 아니라”고...
자기네들의 根本 信條가 ▮첫째가 淸貧이고, 청빈하게 살라. ▮둘째가 純潔이고, 순결은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 청빈이고,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이 순결입니다. ▮셋째가 順從이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뜻이다’ 이렇게 순종을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첫째가 空門으로 들어가는 것이, 空門得入이라고 하는 것이 불법의 제일 첫째 문 이고, ▮둘째는 無相門이다. 일체상이 없는 것이 둘째 문 이고, ▮셋째는 無願門이다. 원이 없는 것. 일체 원이 없는 것. 원이 없다는 것은 해탈해버렸기 때문에 원이 없다! 이 말입니다.
“공무상해탈문”이라고도 하고, “공무상무원문”이라고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일주문은 空門이고, 천왕문은 無相門... 상이 없는 무상문이고, 그 위에는 해탈문이지요. 해탈문이라고도 하고 무원문이라고도 하는데, 3문이라고 그래요. 三門淸淨입니다. 세 가지 문이 있다 이 말입니다. 이래서 공문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공문이 비로소 불법에 입문입니다. 불법에 들어가기 시작 하는 겁니다.
幾人이 得道空門裏어늘... 공문 속에서 도를 얻었는데, 그래서 공문이라는 것을 절 집안을 바로 공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래요. 절 집안의 대명사를 공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 중 됐습니다”하는 소리를 “공문에 들어갔습니다” 하기도 한다 이 말입니다.
●汝何 長輪 苦趣中가
너는 어찌하여 고취 가운데 길이 윤회를 하느냐? 괴로운 갈래 속에서 그렇게 윤회를 하게 되느냐? 苦趣 라고 하는 것은 輪廻苦趣. 윤회하는 고취인데, 六趣라고도 합니다.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수라. 다 나가는 길이니까요.
지옥으로 나가기도 하고, 천당으로 나가기도 하고, 아귀로 나가기도 하고, 아수라로 나가기도 하고, 축생으로 나가기도 하고, 인간으로 나가기도 하고요. 나아갈 趣자지요. 그런 갈래라 이 말입니다. 육취 가운데서 그렇게 오르내리느냐?
三界有餘及井輪 百千萬劫亦未塵
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지옥에 갔다가 천당에 갔다가, 인간에 갔다가 축생에 갔다가 아귀에 갔다가 아수라에 갔다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두레박 물 푸는 것과 같다 이 말입니다.
두레박이 물 펐다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또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 말입니다. 욕중천제존중(?)이라가 일찍이 하늘 제석천왕의 마당에서 놀다가
야약염공월계한(?)이로다. 또한 염라대왕의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고 ??? 받기도 한다. 그런다 말입니다. 왔다 갔다 한다 이 말입니다.
●汝自無始已來로 至于今生까지
네가 무시이래로부터 금생까지. 自= ~~부터. 至= ~~까지. 네가 무시이래로부터 금생에 까지. 금생에 이르도록. 自부산 至서울. 無始已來= 백천만겁 전부터 오늘까지. 금생 까지.
●背覺合塵하고
覺을 등지고 塵에 합해서. 覺이라고 하는 것은 내 본원자성자리가 覺인데요. 내 마음의 본래 청정한 자리가 覺인데, 覺이라는 것은 부처 아닙니까? 覺=佛이거든. 그 本元自性佛. 본마음. 본래자성불도. 이것을 등져 버리고, 그러니까 공문 속에 있는 원부처님 자리를 등지고, 내 마음 자리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등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말입니다.
제가 늘 넷째 마누라얘기 많이 했지요? 본마누라가 覺이거든요. 본마누라가 내 본마음 자리다 이겁니다. 본마음 자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넷째 마누라는 돈. 재산이니까 거기에 욕심을 많이 내고,
셋째 마누라는 권속들과 같기 때문에 그것도 애착을 갖게 되고,
둘째 마누라는 이 몸뚱이 같기 때문에 몸뚱이를 가꾸려고 애를 쓰고,
본마누라는 본마음 자리와 같아 눈에 안 보이니까 있는 대로 괄시를 해버리거든요. 맨날 지지고 볶고 쥐어뜯고 어쨌든지 그냥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표 안 나니까. 본마누라는 막 그냥 어쨌든지 쥐어박고 두두려패고 그래가지고 본마누라가 엉망진창으로 되어버려. 覺을 배반해버리고, 본마누라를 배반해버리고 塵에 합해서 미제 마누라만 홀 딱 해가지고, 거기에 그냥 합작품이 되어서, 셋째 넷째한테는 합작품이가 되어가지고, 6근 6진에 합작이 되어가지고,
●墮落愚痴하야
우치한 경계에 墮落해서 전도몽상 속에 빠져서, 遠離顚倒夢想이면 愚痴에서 벗어난다 이 말이지요. 전도몽상이니까 엎어지고 자빠지고 정신 못 차리는 것이 塵에 합한 것이거든. 6근 6진에 합했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墮落愚痴지요. 우치에 타락한 것이지요.
●恒造衆惡하야
항상 많은 악을 지어서, 나쁜 일을 지어가지고 좋지 못한 일을, 그러니까 10악을 지었지요. 살생ㆍ도적질ㆍ음행ㆍ기어ㆍ망어ㆍ양설ㆍ악구ㆍ탐ㆍ진ㆍ치... 10악이지요. 10악 업을 지었으니까 지옥ㆍ아귀ㆍ축생.
●而入三途之苦輪하며
三途의 苦수레바퀴에 자꾸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苦로 들어갔으니,
●不修諸善 而沈四生之業海로다.
모든 善을 닦지 아니해서, 모든 선이라는 것이 10선입니다. 10악을 반대하면 10선이잖아요. ▮살생하지 아니하고 자비심을 갖고, ▮투도하지 아니하고 복덕을 짓고, ▮사음 간음을 하지 아니하고 청정행을 지키고, ▮기어를 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갖고 신뢰를 지키고. ▮망어를 하지 아니하고 항상 지혜를 가꾸고, ▮탐욕심을 갖지 아니하고 항상 보시행을 지키고, ▮진심을 내지 말고 항상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기 마음도 즐겁게 갖고, ▮어리석은 마음 갖지 아니하고 항상 밝고 명랑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만들고... 이러면 10선입니다. 10악을 반대로 하면 10선이고. 10선을 엎어 놓으면 10악입니다. 衆惡하고 諸善이 반대다 그 말입니다. 10악 10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善을 닦지 아니 했으니까 四生의 業海에 들어갈 수밖에요.
沈四生之業海로다. 4생의 업 바다에 잠김이로다.
四生... 태에서 낳고. 알로 낳고. 습기로 낳고. 화해서 낳고. 태로 낳는 중생. 알로 낳는 중생. 습기로 낳는 중생. 화해서 낳는 중생... 이 네 가지가 보통입니다. 이것을 胎 卵 濕 化 4생이라고 합니다.
▮胎生은 애착이 많아서 태로 태어난답니다. 애착이 많아서 지애미 창자 붙잡고 나온대요. 지애미 창자를 붙잡고 나왔기 때문에 애착이 말도말도 못한겁니다. 자식이 잘못되면 어머니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이 애절해서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다 이겁니다. 자식 죽는 꼴을 못 본다 이겁니다. 아버지는 별것 아닌데, 아버지는 덤벙대고 치워버리는데 어머니는 창자를 붙잡고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탯줄이거든요. 자식하고 어머니는 태가 같이 붙었잖아요. 어머니 배꼽하고 애기 배꼽이 붙었답니다. 아이를 낳으면 탯줄을 끊는 것이 창자를 붙잡고 나왔다는 소리입니다. 애착이 많아서 胎生이 되고,
▮卵生. 알로 낳는 중생들은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애착을 겸해서 독립하는 나만하는 이기심이 뭉쳐있답니다.
▮濕生은 부동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답니다. 모기들은 훅 불어 쫓아버려도 또 들어오고, 쫓아버려도 또 들어오고, 파리도 그러거든요. 쫓으면 또 와서 달라붙고, 쫓으면 또 와서 달라붙고, 그것이 아주 우유부단하거든요. 그것이 다 습기에서 나서 그래요.
▮化生이라는 것은 귀신같은 것. 또 굼벵이가 매미 되는 것도 화생이랍니다. 그런데 화생은 태ㆍ란ㆍ습. 세 가지를 다 겸해가지고 있어요. 습생은 태ㆍ란을 겸해가지고 있고요. 란생도 역시 태생을 겸해가지고 있답니다. 제일 약한 것이 태생이래요. 화생이 제일 강합니다.
태란습화 사생 말고도 有色ㆍ無色ㆍ非有色ㆍ非無色이 있고. 有想ㆍ無想ㆍ非有想이 있고. 非無想이 있어서 태란습화까지 12유생이잖아요. 열두 가지가 있거든요.
▮비무상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 생각이 없지 아니했다. 원수 갚을 생각이 없지 아니했다. 태생이면서 역시 비무상 중생이 있거든요. 자기 어머니 자기 아버지 원수 갚기 위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덜컥 죽어버리는 것. 그런 것이 비무상 중생이라고 했어요. 태생이면서 비무상 중생입니다.
▮비유상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해파리 같은 것이 비유상 중생이랍니다. 나나리 같은 벌레가 “나닮아” “나닮아” “나닮아” “나닮아”하고 자꾸 “나닮아” 하면 닮는다네요. 생각이 있지 아니했는데 그렇게 되어버린대요. 공산주의 쇠뇌교육 받으면 비유상 중생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나는 절대 ‘공산주의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공산세계에 들어가서 쇠뇌교육 받다보면 그만 공산주의자가 돼버립니다. 그것이 비유상 중생입니다. 본래 생각이 있지 아니했는데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 비유상 중생입니다. 오래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거든요. 非有想. 생각이 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또 ▮有想ㆍ▮無想. 유상은 생각이 있는 것이고, 무상은 생각이 없는 것이고요. 無想外道라는 것이 겁난다고 그러지요.
마명보살 당시에 어떤 외도 스승이 수명이 다 해서 죽으면서
“내가 저 뒷산에 가서 큰 차돌바위가 되어있을 테니까 네가 문답을 하다가 말이 걸리거든 내 앞으로 데려오너라” 이러고 죽었거든요.
죽고 나서 뒤에 큰 차돌바위가 되어서... 마명보살이 그 제자들한테 가서 얘기를 하니까 다 말이 막히거든요. 막혀도 그 제자들이 겁을 안내거든요.
“너희가 나한테 이론이 막혔으면 나한테 항복을 해야 될 것 아니냐?”
“우리는 막혔지만 우리 선생이 따로 있습니다”
“너희 선생이 어디 있는가?”
“저 뒷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가 보자”
“갑시다” 그래서 차돌바위 앞에 가서 얘기를 합니다.
마명보살이 물으니까 차돌바위가 대답을 못하거든요. 빨리 대답을 하라고 왜 대답을 못하느냐고 소리를 콱 지르니까 차돌바위가 펑 하고 깨져버렸대요.
그것이 ▮무상 중생입니다. 무상외도라고 그런 것이 있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有色ㆍ▮無色이 있거든요. 有色은 빛깔. 모양이 있는 것이니까 눈에 보일 수 있는 것이고, 無色衆生이 귀신입니다. 바람도 무색입니다. 바람이 빛깔이 없잖아요. 모양이 없잖아요. 모양이 없지만 바람이 있기는 있잖아요. 귀신이 눈에 안 보이지만 귀신이 있습니다. 무색중생입니다. 非有色ㆍ非無色. 귀신 가운데도 종류가 많아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빛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빛깔을 나타내고 소리만 나타내기도 하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귀신이 소리만 나타내고 공청을 해요. 말만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해요. 또 어쩌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하고요. 링컨ㆍ워싱톤은 ▮비유색 중생입니다.
링컨ㆍ워싱톤은 백악관에 가끔 나타난다고 그러잖아요. 백악관에 가끔 나타나서 의자에 떡하니 앉았다가 대통령이 가면 비켜주고 그런대요.
미국가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그것을 겁내지도 않고 그냥 그래요. 시카고나 뉴욕가면 귀신집이 많아요. 성곽이나 대 별장들이 그냥 비어 있는데, 시에서 누구든지 돈 1불만 내면 가서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좋다는 겁니다. 돈 한 푼 안내고는 못 들어가고 국가 것이니까 1불만 내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으니 국가에 귀속된 것인데, 들어가면 석 달 내에 보수를 해야 됩니다. 석 달 내에 완전히 보수를 해서 국가에서 인증을 받으면 얼마 만에 그것을 불하를 받아 가지고 완전히 자기 것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한 사람도 가서 살지를 못해요. 하룻저녁 자는데 웬 눔의 자슥이 들어왔느냐?고, 남의 집에 누구 허락 받고 들어왔느냐?고 목에다가 총을 들이대고, 방망이로 들이패고 구두 발로 차는데 잘 수가 없고 기암(?)을 해서 못 산대요. 총을 들이대서 꽝 쏘는데... 미국사람들은 말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면 총 막 쏩니다. 집집마다 총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것이 ▮非有色ㆍ▮非無色중생들. 귀신입니다.
삼매를 가지면 대번이기지요. 우리가 삼매에 들어가면 이기는데 탐욕을 의지하는 신부들은 좀처럼 못 이겨요. 신부들이 가서 귀신 이기려고 하다가 신부도 죽는 수도 많고, 힘이 약하면 다 죽어요. 십자가 그것 무슨 소용 있나요? 십자가 그것 아무 힘도 없어요. 그래도 신앙 힘 가지고 이기려고 그러는데 신앙 힘 가지고는 안 돼요.
●身隨六賊故로 或墮惡趣則極辛極苦하고,
이 몸뚱이는 六賊이 따르고 다녀요. 여섯 도둑놈이 따르고 다녀요. 안이비설신의 육적이 항상 따라다닌다 이 말입니다. 육근을 육적이라고 그런 겁니다. 눈으로 보니까 견물생심. 갖고 싶지요. 도둑놈 아닙니까?
귀로 들으니까 ‘기분 좋으니 나쁘니’ 하고 그것이 다 도둑놈입니다.
어쨌든지 간에 자꾸 보니까 갖고 싶고 하고 싶고 먹고 싶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다 도둑놈이라 이 말입니다.
이 몸뚱이는 항상 六賊이 따라 다니기 때문에 그래서 업을 지어가지고 惡趣에 떨어진다 말입니다.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진다 말입니다. 평생 그냥 욕심만 내고 다니니까...
저의 동네에 만석꾼 부자가 있었는데 김씨니까 “김부자”라고 하지 않고 “돼지부자”라고 해요. “돼지부자” “돼지부자” 돼지처럼 욕심이 많다 이겁니다.
죽으면, 염라대왕 한테 가면 돼지 껍데기를 머리에다 폭 덮어씌우면 그냥 돼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아이구아이구 소리가 꿀꿀꿀꿀...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돼지짓만 했기 때문에 돼지 되어버리는 것이고,
빚 많이 지고 어쨌든지 간에 자꾸 미련한 짓했기 때문에 소 되는 것이고요.
그대로 껍데기만 덮어씌우면 그래요. 진유차일념하야 형체만반(?)이라.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만 가지 껍데기를 덮어쓰는 겁니다.
六賊이 따르기 때문에 惡趣에 떨어질 것 같으면 極辛極苦입니다. 일단 그 몸뚱이를 덮어쓰고 나면 極辛極苦지요. 극히 쓰고 극히 괴롭고, 극히 쓰라리고 극히 괴롭고, 極辛極苦라. 쓰고 쓰다 이 말이지요. 쓰고 괴롭다 이 말이지요.
●心背一乘故로 저기는 몸이 6적을 따른다! 그랬고, 여기는 마음이 一乘을 등진다! 그랬고, 한문이라는 것은 이렇게 탁 하니 대조를 해봐야 돼요. 언제든지 짝이 맞아져 있어요. 저기는 六賊. 여섯 도둑놈이고, 여기는 一乘이고, 딱 딱 있잖아요. 저기는 몸 身자 이고, 여기는 마음 心자이고... 한문은 이렇게 딱 딱 맞게 되어있어요. 몸은 六賊이 따르는 연고로 或墮惡趣, 혹 악취에 떨어진즉 極辛極苦하고, 마음은 一乘을 등지는 연고로
●或生人道則佛前佛後로다. 혹 人道에 난 즉은 佛前佛後로다.
마음은 一乘을 등졌기 때문에 一佛乘을 등졌다 이 말입니다. 일불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대승 위가 일불승이지요. 소승 대승 일불승. 그러거든요. 소승 중승 대승 일승. 그래요.
羊車. 소승은 염소가 끄는 조그만 수레입니다.
鹿車. 중승은 사슴이 끄는 수레입니다.
牛車. 대승은 소가 끄는 수레입니다.
大白牛車. 일승은 설산에 큰 흰 소가 있는데 일불승입니다.
수레가 세 대가 있는데 그것을 타야만 그야말로 昇空天上입니다.
空天上으로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차 안 타고 서울 갈 수 있나요?
걸어갈 수는 없잖아요. 뭘 타도 타야지요. 그러니까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해탈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뭘 타도 타야 되는데, 양거녹거우거가 있더라.
그 가운데 일승은 대백우거이고 일승은 불승이다! 이 말입니다.
소승 중승 대승... ▮소승은 성문승이고, ▮중승은 연각승이고 ▮대승은 보살승이고, ▮일승은 불승이다 이 말입니다.
自性佛道가 다 사람 사람마다 있는데, 자성불도를 등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으로 나기는 났다 하더라도 佛前佛後에 태어나있다! 이 말입니다.
“聞法八難 가운데 태어나 있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법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믿고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여덟 가지가 있어요.
지금 우리 인간이 제법 신심이 있고 중노릇 잘 하려고 해도 지금 세상은 佛前佛後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돌아가신지 3000년이나 되었고, 미륵불이 나오려면 수만년이 남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미륵불 앞이요, 석가모니불 뒤이니까 佛前佛後거든요. 부처님 앞이고 부처님 뒤다! 이 말입니다.
▮지옥에 난 중생들도 부처님 법문 들을 수가 없거든요. 지옥 속에서 어떻게 부처님 법문 들을 수가 있습니까? 그 다음에
▮아귀에 있는 중생들도 부처님 법문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거든요.
▮축생들도 부처님 법문을 제대로 못 듣는다! 이 말입니다. 축생들이 들은들 아나요? 돼지한테 진주를 줘봐야 무슨 소용 있나요? 아무 소용없지요. 그 다음에
▮北瞿盧洲=北洲에 나는 사람들도 영 선근이 없어서 불법을 안 듣는대요.
▮長壽天. 오래 사는 하늘이 있대요. 거기에 한 번 나면 몇 십만 년을 산대요.
▮世智辯聰. 너무나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 世智가 辯聰. 세상지혜가 辯聰하다 이 말입니다. 남이 한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변명하고 달려드는 놈. 이런 사람은 상대 못하는 겁니다. 지가 더 잘 아는데 어떻게 해요. 무슨 소리를 하면 지가 더 잘 안다고 막 쎄우고 달려드는 사람은 불법 못 듣는 겁니다. 그 다음에
▮佛前佛後. 이 여덟 가지인데...
지옥 아귀 축생에 나는 것은 불법 못 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주에 나는 사람. 우리는 南贍部洲에 살고 북구로주가 있고 동글바주 서구당. 四洲世界가 있다고 그랬는데 북구로주가 어디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디가 북주라고 꼭히 짚어서 얘기 할 수는 없는데...
남섬부주를 인도 땅, 남쪽나라를 남섬부주라고 하는 불교학자들도 있고, 우리의 현 지구 덩어리를 남주라고 그러고, 이 지구 덩어리 말고 금성이나 화성이나 저쪽 딴 세계. 그것을 말하자면 딴 별이 있어서 북주가 있고 동주가 있고 서주가 있다고 말하는 불교학자도 있지만, 그것은 확실히 모르는 것이고
육조스님 말씀은 인간이 백지에 동서남북을 만들어서 동서남북이 있지 원래 동서남북이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동쪽 사람이 볼 때는 서쪽이지만 서쪽 사람이 볼 때는 어느 것이 서쪽이냐? 이겁니다. 동서남북이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데...
우리 이 지구 안에서도 지금 동서남북이 있는데, 북주라고 한다면 소련 저쪽 우크라이나 저쪽은 공산주의 많기 때문에 불교 안 믿잖아요.
우리나라로 치더라도 이북 사람들은 불교 잘 안 믿잖아요.
31본산 가운데 이북에는 대 본산이 세 개밖에 없어요.
평양 영명사ㆍ보현사, 함흥 지주사 세 개밖에 없어요. 일본도 그래요.
일본도 관북지방. 관동지방 이남에 교토ㆍ나라. 거기만 불교가 성하지 동경 저 북쪽으로 올라가면 북해도 같은 데는 절이 별로 없어요. 중국도 그래요.
중국도 중국 남쪽으로 항주ㆍ서주 이쪽으로 불교가 그렇게 성하고 낙양ㆍ서안 남쪽으로 불교가 성하지 북쪽으로는 거의 없어요. 어느 나라든지 다 그래요.
북쪽은 불교가 영 약해요.
그래서 옛 스님네들 말씀이 南地結果北地華라. 남쪽에서는 열매가 맺는데 북쪽에서는 언제 꽃이 피겠는가? 이랬거든요.
“생지북주” 하면 북쪽에서 나는 사람들은 선근이 부족하다는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구당이, 서방극락세계라고 그랬잖아요. 어쨌든지 서쪽으로 가면 서쪽 사람들이 더 깨끗하고 맑고 희고 잘 살고 그렇거든요.
“서쪽”할 것 같으면 서구라파 미국 같은 데가 다 서쪽 아닙니까?
그쪽 사람들이 이쪽 사람들 보다 아무래도 잘 생기고, 얼굴도 희고 부자고 그렇잖아요. 그것도 서쪽으로 갈수록 좀 더 낫고요. 서방정토니까요.
그런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長壽天이라는 것은 코카사스 같은 나라. 지금 세계 3대 장수마을 어쩌고 그러지요? 요구르트 선전할 때 그러더군요. 세계 3대 장수마을 가운데 100살이면 인생의 시작이라고 하고요. 그 사람들은 오래살고 편안 하니까 불교 믿으려고 그렇게, 無常한 줄을 별로 모르니까, 불교 믿을 생각이 없다 이겁니다.
무상한 줄을 알아야 불교 믿을 생각을 갖게 되는데, 늙을수록 무상한 줄을 알게 되고, 젊을수록 무상한 줄을 모르게 되고 그래요. 젊은 사람들은 무상심이 적어요. 아직 젊으니까 청춘이 만리 같거든요.
그러니까 무상하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늙으면 늙어 갈수록 세상이 무상한 것을 자꾸 느끼게 되고요. 지금 나이 60 이상 된 할머니들한테 편안하게 중노릇 잘 할 수 있고, 중노릇하면 아주 좋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면 “아이고 그런 줄 알았다면 내가 진작 중 될 것을...” 이런 소리를 다 하거든요.
말로는...
젊은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가 늙으면 무상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평생 살아봐야 별 수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長壽天. 오래 살기 때문에,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聞法八難에 들어갑니다. 부처님 법을 듣기 어렵다 이 말입니다.
聞法八難 : 지옥ㆍ아귀ㆍ축생ㆍ北洲ㆍ長壽天ㆍ盲聾啞마ㆍ世智辯聰ㆍ佛前佛後. 여덟 가지입니다.
2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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