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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7일 화요일
[(백)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이들 가운데 삼천 명가량이 세례를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무덤 앞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18
그때에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무거운 짐을 들고 걸을 때 우리는 그 무게에만 매여 주위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은 허무와 깊은 슬픔에 사로잡혀, 부활하신 주님께서 곁에 계셨음에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라고 전합니다. 여기서 ‘운다’는 표현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억누를 수 없는 통곡을 뜻합니다. 그만큼 그의 슬픔은 깊었습니다. 그래서 무덤 안의 천사조차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여인아, 왜 우느냐?”(20,13)라고 물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부활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절망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와 “서 계[셨습니다]”(20,14).
요한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요란한 모습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전이나 군중 앞에 나타나시지 않고, 슬픔 속에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며,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와 평화를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이어, “뒤로 돌아선”(20,14)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전합니다. 이는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영적 전환을 뜻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습니다. 삶의 고통과 슬픔에 사로잡혀 주님께서 곁에 계심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서 계시며 말씀을 건네십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위로와 평화입니다. 이 부활 시기에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20,18).(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또 다른 현존 방식으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인해 벌어진 초대형 참사가 참 많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실종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사의 향방을 알수 없어 실종 처리되고...
희생자 가족들 가운데서 가장 혹독한 고통을 겪는 분들이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되거나 아예 찾지도 못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분들의 간절한 바람은 오직 한가지 시신이라도 돌아왔으면! 입니다. 죽었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그렇게만 된다면 몸을 흔들며 대성통곡이라도 할 텐데, 붙들고 울부짖기라도 할텐데...
그만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시신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기절초풍할 일을 겪었습니다. 스승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입니다. 누군가가 탈취해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내려앉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게 해주신 주님이었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를바 없던 그녀에게 유일하게 손 내밀어 주셨던 분,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분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은혜롭게도 세상 다 끝난 심정이던 마리아 막달레나 눈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윽고 하시는 말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너무나 놀랍고도 당혹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뛸듯이 기뻤고 감사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라뿌니!’ 하고 외치면서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발을 꼭 붙들었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던지신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고 우리를 동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현존 방식으로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이, 우리 영혼의 성안로 들어오시겠다는 표현입니다. 때로 미풍 같은, 때로 태풍 같은 성령의 현존으로, 때로 우리를 영생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체 성혈의 형상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부활은 파견에 기쁨을 더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요한 20,15)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장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요한 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인식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저 '유다 남자'로 보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이라 부르고, 자신의 과거를 꿰뚫어 보시자 '예언자'로 인식합니다. 마지막에는 '메시아'임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린 채 마을로 뛰어갑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처음에는 주님을 '정원지기'로 오해했다가, 존재와 인식의 거대한 부활을 경험하며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도로 거듭납니다.
존재의 부활: "마리아야!",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 시작되는 정체성
부활의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존재의 부활'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보았을 때는 세상이 여전히 무덤이었지만,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녀의 존재는 죽음의 갈증에서 생명의 축제로 건너갑니다. 하느님이 내 이름을 아시고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거울 속의 이방인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 조반니 세간티니의 고백」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고아로 자라며 지독한 고독과 정체성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의 남자가 누구인지 몰라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차가운 세상에 버려졌는가?"라는 질문은 평생을 따라다닌 무거운 쇠사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알프스의 높은 산 위에서 그림을 그리며 대자연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그 뒤에 계신 창조주 하느님의 숨결을 만났을 때, 그는 비로소 거울 속의 자신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길 잃은 고아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살아계시며, 나는 지금 그분의 자비로운 눈앞에서 이 아름다운 창조물을 그리고 있다."
세간티니는 하느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계심을 느꼈을 때, '길 잃은 고아'라는 낡은 정체성을 벗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존재로 부활했습니다. 이 정체성의 회복이 부활의 시작입니다. (출처: 애니-폴 콰란타, 『조반니 세간티니: 빛의 화가』)
인식의 부활: 정체성이 변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존재가 부활하니 이제 '인식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름을 불리기 전까지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자, 눈앞의 '정원지기'가 사실은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즉시 "라뿌니!" (요한 20,16) 즉 '스승님'이라 외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이 말씀은 차가운 거절이 아니라, 더 깊은 결합을 위한 초대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Μή μου ἅπτου" (Mē mou haptou)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붙들다'는 뜻의 'ἅπτου' (haptou)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그리스어 문법에서 현재 명령형에 부정어 'Μή'가 붙으면 '이미 하고 있는 동작을 중단하라'는 뜻이 됩니다. 즉, "나에게 손대지 마라"가 아니라 "지금 나를 붙들고 있는 그 손을 이제 놓아주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부활 이전의 방식, 즉 '육신으로 곁에 계시는 예수님'으로만 당신을 소유하려는 것을 멈추게 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는 말씀은 역설적으로 "내가 올라가야만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육신으로 지상에 계시면 오직 그 장소에서만 마리아와 함께하실 수 있지만, 아버지께 올라가 성령을 보내주시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모두와 영원히 결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붙들지 마라"는 말씀은 "나를 여기 좁은 자리에 가두지 마라. 내가 올라가야 너희 모두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랑의 요청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만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육신으로 만지는 것은 땅에 머무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만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St. Augustine, 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121, 3).
기쁨의 부활: 지켜보시는 분이 계시기에 샘솟는 환희
주님이 내 곁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 승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기쁨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성체 안에, 그리고 우리 영혼 안에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복음을 전할 때,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미소 짓는 분이 계신다면 그 일은 더 이상 '고된 노동'이 아니라 '기쁜 보답'이 됩니다.
가끔 본당에는 사제가 알아주기만을 원하고, 사제의 칭찬이 없으면 봉사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인간 사제'에게만 상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봉사는 자기 영광을 위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고, 지금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봉사자들의 영원한 상은 바로 '나를 지켜보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시선' 그 자체입니다. 아직 아버지께 완전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곁에 머무시는 주님을 느낄 때, 우리는 더 이상 사제의 눈치를 보거나 사람의 박수에 목매지 않게 됩니다. 주님이 보고 계시는데 무슨 상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 확신이 있을 때 복음을 전하는 파견의 현장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복음을 전하는 데도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죽은 스승의 유언을 지키는 피곤한 의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의 절망을 삼킨 부활의 미소 - 페드로 아루페 신부의 실화」
전 예수회 총장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 신부님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그 아비규환의 폐허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 출신 사제로서 부상자들을 돌보며 밤낮없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수천 명이 썩어가는 살점과 함께 죽어가는 것을 보며, 신부님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주님, 이 지옥 같은 잿더미 위에서 당신의 복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신부님은 성체 조배 중에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를 강렬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는 훗날 자서전적 회고록 『에네르기아 데 로스 포브레스(가난한 이들의 에너지)』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시체를 닦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의 몸을 닦고 있다는 것을요. 주님은 무덤에 계신 것이 아니라, 이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 속에서 부활하여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자, 잿더미는 더 이상 무덤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원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셔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그 '기쁨'이 회복되었을 때, 신부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기쁨은 부활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출처: Pedro Arrupe, 『En el Nombre del Señor』 - 주님의 이름으로)
파견의 부활: 기쁘니까 달려갑니다
부활의 마지막 단계는 '파견의 부활'입니다. 기쁨이 충만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갔듯이, 우리도 세상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붙들고 있는 손을 놓아야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이 '연쇄적 부활'을 몸소 체험한 성인입니다. 그는 만레사 동굴에서 '인식의 부활'을 거쳐 존재가 뒤바뀌었습니다. "모든 사물이 내 눈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출처: 성 이냐시오 로욜라, 『자서전』 30항). 인식이 바뀌니 기쁨이 터졌고, 그 기쁨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iorem Dei Gloriam)" 라는 거대한 파견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이냐시오가 세운 예수회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의무'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걷는 압도적인 기쁨'이었습니다.
결론: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오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우리에게 부활의 본질을 가르쳐줍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살아계신 주님과의 '인격적 조우'입니다. 주님은 죽지 않셨습니다! 그분은 승천하시어 우리와 더 온전하게 결합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상해』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을 지켜보시며, 우리가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우리를 대신해 숨 쉬어 주신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여, 그대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대의 사명은 이미 축제이다." (출처: St. Augustine, Enarrationes in Psalmos, 120, 4).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상 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자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습니다.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입니다. 새는 날개가 있기에 하늘을 납니다. 날개가 있는데도 땅 위를 계속 걸어 다닌다면 어딘가 다쳤거나 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땅 위에만 머무는 새는 위험에 쉽게 노출됩니다. 또 다람쥐도 봅니다. 다람쥐는 날 수는 없지만 나무를 자유롭게 오릅니다. 나무 위를 곡예사처럼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새에게는 날개를, 다람쥐에게는 발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신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날지 못하고 오르지 못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나무를 오르는 다람쥐를 보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 날개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모든 것이 기쁨이 됩니다.
요즘 인공지능, AI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정부에서도 ‘AI 정부’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한 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바로 ‘FAIR’입니다. 찾을 수 있어야 하고(Findable),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Accessible),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Interoperable), 다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Reusable)는 것입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많고 기술이 뛰어나도, 그것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열려 있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신앙생활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수도자가 되었고 어떤 분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다고 자동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제가 되었다고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도 ‘영적 FAIR’가 필요합니다.
첫째, 내 신앙은 하느님 앞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알고 주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은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성사를 통해 언제든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과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혼자만의 체험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넷째,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은 이를 위해 ‘의식성찰’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하느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단순히 잘못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의식성찰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감사입니다. “주님, 오늘도 저를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 신앙의 출발점은 감사입니다.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 전체를 감사로 바꾸어 놓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신앙은 쉽게 불평으로 변합니다.
둘째는 하루의 점검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말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무슨 생각 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셨듯이, 주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묻고 계십니다.
셋째는 잘못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상처를 주며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은 점점 닫혀 버립니다. 겸손하게 인정하는 순간 은총이 스며듭니다.
넷째는 용서를 청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배신했던 제자들에게 첫마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셨습니다. 용서가 부활의 첫 열매였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여전히 성금요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용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부활의 아침으로 나아갑니다.
다섯째는 기도입니다. “주님, 내일은 더 잘 살게 해 주십시오.” 의식성찰은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는 힘입니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가면서 이 의식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낍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미사를 드리고 회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제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목이 돌아가지만 제 안은 메말라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루를 마치며 조용히 주님 앞에 서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부활을 살았는가?” 부활 팔일 축제는 단지 여덟 날의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새에게 날개가 있는데도 날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금요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갈릴래아, 곧 우리의 일상으로 부르십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하느님께 투명하게 열어 놓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밤 하루를 마치며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오늘 제 안에 부활이 있었습니까? 제가 감사했고 용서했고 사랑했습니까? 내일은 더 부활답게 살게 해 주십시오.” 부활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오늘 밤 나의 성찰 안에서 시작됩니다. 하루를 하느님께 열어 놓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부활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신분 : 신부, 설립자, 교육자
활동연도 : 1651-1719년
같은이름 : 드라살,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은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성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
활동년도 : 1150-1241년
신분 : 신비가
지역 :
같은 이름 : 요셉, 요셉푸스, 조셉, 조셉푸스, 주세페, 쥬세페, 헬만
독일 쾰른(Koln)에서 출생하여 헤르만이란 세례명으로 불렸던 성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us)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당에서 성모님과 예수 아기 성상 앞에 꿇어 엎드려 자주 대화하곤 하였다. 한 번은 성모상의 성모님께 사과 하나를 드렸는데, 그 성모님이 손을 뻗어 받으셨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아기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놀기조차 하였다. 12세 때에 그는 스타인펠트(Steinfeld)에 있던 프레몽스트레회에 입회하였으나 너무 어려서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로 공부하러 보내졌다. 여기서 그는 세속 문학을 공부하는데 큰 흥미를 보였다.
한 마디로 그의 일생은 흠잡을 데 없이 순진무구하였고, 수많은 신비적 체험을 하여 신비가로서 유명하였다. 또한 그는 성녀 우르술라(Ursula)에게 바치는 찬미가를 썼고, 예언서에 흥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단식과 고행으로 자신의 건강을 크게 해친 결과 1241년 4월 7일 스타인펠트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제오르지오 (George)
활동년도 : +816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미틸레네(Mitylene)
같은 이름 : 게오르그, 게오르기오, 게오르기우스, 제오르지우스, 조지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자신의 재산을 병자와 가난한 사람 구제에 희사한 뒤에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고향인 그리스 미틸레네의 주교가 되어 레스보스(Lesbos) 섬의 교회를 지도하였다. 그의 애긍시사는 놀라울 정도였고 또 누구에게나 순종하는 자세로 일생을 살았다. 그때에는 성상파괴주의자가 성행하고 득세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이에 항거하다가 케르소네스(Chersonese)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불치병의 치유자이며 악령을 내쫓는 주교'로서 높이 공경하였다.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Edward Oldcorne)
활동년도 : +1606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애드워드, 에두아르도, 에두아르두스, 에드아르도, 에드아르두스, 에드와드, 에드워즈
요크(York) 출신인 에드워드 올드콘은 프랑스의 랭스(Reims)와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6년 동안 공부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영국 선교에 강력한 희망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제랄드 신부와 함께 영국에 상륙하였으나, 도착하자마자 헤어져서 우스터(Worcester)로 갔다. 그는 이곳에서 거의 17년 동안이나 홀이란 가명으로 열렬하게 활동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을 멀리했던 수많은 국교 신자들을 다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들 중에는 엘리사벳 여왕 시대의 귀부인이던 도로테우스 아빙톤이 유명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배교자의 밀고 때문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또 그의 동료인 랄프 애슐리(Ralph Ashley)는 예수회의 평수사로서 그와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