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金永浩, 1971년 4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이자 펜싱 감독이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남자 플레뢰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대한민국 남자 펜싱 최초 금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아 남자 최초 펜싱 금메달리스트, 최초의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대륙 출신의 남자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번째 메달리스트이다.
생애
-초기 생애와 경력
대한민국 논산군(현재의 논산시)에서 김욱현과 현순돌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김욱현은 1985년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까지 육상 선수로 활동했으나 논산연산중학교 2학년 때 부터 펜싱계에 입문했다. 연산중학교, 충남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전대학교 재학 시절인 1991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 펜싱 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이듬 해에 열린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플레뢰 개인전에서는 미하엘 루트비히, 예충, 뱌체슬라프 그리고리예프, 마이크 막스, 토르스텐 바이트너, 월터 토레스, 로널드 탄과 겨뤘으나 바이트너, 토레스, 탄에게만 승리를 거둬 종합 37위에 머물렀고, 김승표, 이호성, 이승용, 유봉형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은 쿠바와는 비겼으나 프랑스, 독립국가연합, 독일에게 패하여 8위로 마감했다.
-아시안 게임 우승과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993년에 미국 뉴욕 주 버펄로에서 열린 1993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플레뢰 단체전에서 김승표, 유봉형, 정수기 ,김용국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9-7로 격파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듬 해인 1995년에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헸고,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고, 1996년에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개인전에서 알레산드로 푸치니, 우베 뢰머, 세르히 홀루비츠키, 드미트리 솁첸코, 로베르트 키시, 둥자오지와 겨뤘으며 뢰머, 솁첸코, 키시, 둥을 꺾었으며, 당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선수인 푸치니와의 팽팽한 대결을 펼치다가 역전패를 당했는 데, 후에 김영호는 자만심 때문에 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영호는 개인전에서 8위를 기록했으며, 정수기, 김용국과 출전한 단체전은 7위를 기록했다.
-국제 대회에서의 맹위
1997년 2월, 김영호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 선수권대화에 출전하여 플레뢰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해 7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FIE 펜싱 세계선수권 대회의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대한민국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2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김영호는 우크라이나의 홀루비츠키를 상대로 3-11로 리드를 당하고 있었다. 홀루비츠키가 4번 더 투셰를 기록하여 15점을 먼저 기록하면 경기가 그대로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펜싱인들은 경기가 사실상 끝났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김영호는 8번 연속으로 투셰를 성공시켜 홀루비츠키를 따라잡았다.
두 선수는 (후에 홀루비츠키는 자서전 《황금의 라운드 Golden Bout》에,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김영호가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았다"라고 기록하였다.) 접전을 벌이며 3라운드를 라 벨(14-14 동점) 로 마쳤고, 연장전에서 홀루비츠키는 김영호의 공격을 피해 콩트르 아타크를 성공시키며 이 토너먼트를 우승하였다. 이 대회에서 김영호는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에는 펜싱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10월에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열린 세계 펜싱 선수권대회에서 플레뢰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개인전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그 해 12월에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왕하이빈과의 승부 끝에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김승표, 유봉형과 함게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쿠웨이트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에는 폐가 찢어진 부상으로 인해 기흉 수술을 받았으며, 1주일 만에 퇴원해 태릉선수촌에 다시 들어갔다. 이후 6개월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수촌 뒤에 있는 불암산을 오르내리며 폐활량 회복 훈련을 했다. 1999년, 김영호는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개인전에서 캐나다의 마티외 브롤레를 15-9로 누른 뒤 덴마크의 라마 프뤼케 안데르센과 프랑스의 파트리스 로텔리에, 폴란드의 아담 크셰신스키 등을 차례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으나 4강에서 이탈리아의 마테오 첸나로에게 14-15로 패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시드니 올림픽
2000년, 김영호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홀루비츠키, 솁첸코, 랄프 비스도르프를 차례로 꺾으며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김영호는 64강전을 경기를 하지 않고 32강 전에 진출하여 64강 전에 아르헨티나의 레안드로 마르체티를 누르고 올라온 프랑스의 브리스 귀야르를 2점차로 꺾고 16강전에서 미국의 클리프 베이어를 15-14로 꺾었다. 이후 8강에서 첸나로를 누르고 올라온 우크라이나 국가대표이자 1997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을 꺾었던 세르히 홀루비츠키를 만나 어깨찍기로 연속 득점에 성공하여, 경기 시작 5분 24초만에 15-5로 승리를 거두었다. 준결승전에서는 키가 2m에 가까운 거구 드미트리 솁첸코와 조우했으며, 중반 까지 4-9로 뒤져 있었으나 결국 15-14로 솁첸코를 꺾으며 결승전에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펜싱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프랑스의 장 노엘 페라리를 누르고 올라온 독일의 랄프 비스도르프였으며, 비스도르프는 경기 막바지에 3연속 득점을 올리며 14-14 동점을 만드는 치열한 경기를 펼쳤으며, 15-14 역전승에 성공했다. 김영호는 1964 도쿄 올림픽 부터 참가한 대한민국 펜싱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는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남자 펜싱 우승 기록이며 올림픽 남자 펜싱 최초의 비유럽인의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같은 대회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상기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두번째 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아시아 두번째 펜싱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후 김영호는 올림픽 금메달 획득 업적을 인정받아 백상체육대상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대전대학교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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