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밤(11.18) 모처럼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를 보았습니다.청년 김두한이 연모하는 여인의 아버지에게 밉보임을 당해 억울하게 '부녀자 납치'의 죄목 등으로 일본경찰에게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그 사이 오야붕을 잃은 종로패거리들이 우왕좌왕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더군요.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두번씩이나 웃고 말았습니다. 첫번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붙들려 온 김두한을 고문.취조하던 일본형사가 법죄혐의를 극구
부인하던 김두한에게 "답답하구만. '아니'라고만 말하지 말고 왜 아닌지 말해보란 말이다"고 닥달하던 장면에서 였고, 두번째는 드라마에서 우국지사
비스무리하게 나오는 최동렬 사장의 패거리들이 고급카페에서 희희덕거리며 "종로에서 일본넘 악당들을 무찔러주는 김두한이야말로 이 시대의 임꺽정
아닌가" 하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에서 였습니다.
일전에 '신바람'으로 유명한 황수관 박사가 "웃음은 모두 건강에 좋은 것이로되 오직 비웃음만은 좋지 않다" 했는데, 오늘 '웃음 아닌
웃음'(非웃음?)을 두번씩이나 웃고 말았으니,역시 드라마를 보는 것이 정신건강 뿐 아니라 육체건강에도 백해무익한 것임을 다시 한번
실감.절감.통감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역사드라마'란 것이 본디 1%의 뼈다구에다가 99%의 살을 발라놓은 픽션의 집합체임을 모르지 않는 내가, 하여 이따위 드라마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허망한 짓임을 뻔히 아는 내가, 왜 그 대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비웃음을 토해내고 말았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우선, "답답하구만. '아니'라고만 말하지 말고 왜 아닌지 말해보란 말이다"라고 김두한을 윽박지르던 일본형사의 멘트에서 뭐 연상되는 게
없으십니까? 나는 그걸 듣는 순간 조선일보의 유명한 사설 하나가 뇌리에 팍 꽂히더군요. 조선일보 사설에 '라면사설'이란 영예로운 별명을 안겨준
바로 그 음모론 사설 말입니다. 거기에 만고에 빛날 이런 명문이 있습니다.
"우선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정치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는 ‘근거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조선
사설,‘음모론’ 무엇이 진실인가, 2002.3.25)
어떻습니까? "청와대는 '근거가 없다'고만 말하지 말고, '왜 근거가 없는지'를 적극적으로 밝히라"는 조선일보의 닥달이, "'아니'라고만
말하지 말고 왜 아닌지 말해보라"고 닥달하는 일본형사의 그것과 영낙없이 닮은꼴 아닙니까? 드라마에서 아주 못된 놈으로 등장하는 일본형사의 입에서
발설된 말이 조선일보의 사설의 어투와 비슷하다니, 그것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민족지라고 회칠해놓은 신문지의 말버릇과 꼭 같다니, 이걸 보고서
아니 웃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일본형사들이 사람을 취조할 때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필경 "'아니'라고만 말하지 말고 왜 아닌지 말해보라"는 대사도
작가 이환경씨가 상상해서 만들어 낸 허구일테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이환경 씨는 왜 하필 못된 일본형사의 입에 그런 대사를 물려
주었을까요? 부정적인 캐릭터에는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말이 따르게 마련.
그럴진대 "아니라고만 말하지 말고 왜 아닌지 말하라"는 말 자체가 평소 이씨의 내면에서 가장 사악한 멘트로 기억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혹 이씨가 조선일보 사설을 읽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니겠지요?(아니면 말구....!)
탐관오리의 불의와 횡포에 맞서 감연히 일어선 '천하의 임꺽정'과 '우미관패의 오야붕' 김두한을 태연자약하게 등치시킨 대목은 또 어떻습니까?
이 또한 정말 재밌는 장면 아닙니까? 나는 이환경 씨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포복절도할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 이런 장난을 꾸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꺽정=김두한'이라는 발칙한 조합의 기원을 만해 선생에게까지 함부로 갖다 맡기고, 최동렬 사장의 친구인 룸펜의 입을 빌어
김두한을 "종로를 침범하려는 일본깡패들을 무찌르고 조선의 상인들을 보호해주는 구국의 수호신" 쯤으로 묘사하는 기막힌 과장과 참람한 넌센스를
이처럼 용감하게, 이처럼 태연자약하게, 이처럼 안면몰수하고 남발할 수 있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김두한이 독립투사입니까? 김두한이 주먹으로 독립운동이라도 했답니까? 아니지요. 그는 한마디로 말해서 깡패대장이었습니다.
상인들을 보호해 준답시고 속된 말로 '삥'을 뜯어먹고 사는 건달 말입니다. 그 점에서 김두한 패거리나 하야시 패거리나 '그놈이 그놈'이요
'오십보 백보'입니다. 뭐가 다릅니까? 그런 김두한을 만해 선생이 일찌기 가슴 속에 고이 품고 계시다가 급기야는 '임꺽정'이라는 신화적 인물에
대입시키기까지 했다니, 지하에 계신 만해 선생이 그 말을 들으면 당장 '그만해' 하고 호통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