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행] 만월산 아래에 자리잡은 화엄종 총본산 약사사
화엄종 총본산 만월산 약사사
만월산!
1992년 인천 십정동과 인연을 맺고 지금껏 인천에 살고 있으며 부평 삼산동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숱하게 찾았던 산
바로 만월산이다.
만월산에 오르면 주안과 부평을 비롯한 인천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자주 찾았었고, 만월산 아래에 있는 약사사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다 먹곤하였다.
만월산 약사사
전하은 얘기에 의하면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만월산 아래 개국사를 창건하였다. 절에는 항상 1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정진한다하여 절이름리 백인사(百人寺)라고도 하였다.
그후 조선시대 배불정책으로 제9대 성종 임금 때 폐쇄되었던 것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시던 보월스님께서(1900년) 중생들의 근본인 무명협식을 깨우쳐 주어야 겠다는 큰 서원으로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약사암이라 명칭하였다.
보월스님의 뒤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중이시던 월승 한능해스님께서 재 중창하여 끝없는 서원과 정진으로 화엄종 대본산 약사사 대가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안내글)
화엄일승법계도
엊그네 살짝이 내린 눈이 절을 찾아가는 길가에 살짝이 뿌려져있다.
사무실이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 있지만 오늘부터 3일간은 인천 감리사무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점심을 간단히 하고 예전에 자주 다녔던 만월산을 구경하고픈 마음에 길을 떠났다.
만월산 약사사 안내도
만월산 약사사란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
일주문 너머로
비록 조화지만 눈을 맞은 연꽃이 활짝 피어 있어 길을 떠나온 나그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연꽃이 피는 계절이면
카메라를 들고 연꽃을 찾아 떠나곤 하였는데
이렇게 겨울 눈속에 파묻혀있는 연꽃을 보게되어 반가웠다.
십정동에 자리잡고 보이는 약수를 받으러 참 많이도 왔었다.
이른 새벽에 물통을 들고 한참을 걸어 물을 길어가곤 하였는데...
물 한잔을 떠서 물 맛을 본다.
물맛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수질검사에는 먹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여 수질관리가 잘 되어 있어 당시 물을 긷던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날에 내린 눈에 살며시 옷을 입을 절을 둘러본다.
대웅보전과 극락전
약사사는 원효성사를 종조로, 의상조사를 중흥조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범종각
대웅보전안에 들어가보니 기도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 내 마음 또한 숙연해진다.
화엄일승법계도
예전에 이곳에 다닐 때는 없었는데 새로이 생긴모양이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과 성품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나니
모든 법이 움짐임이 없어 본래부터 고요하다.
이름이 없고 모양도 없어서 온갖 경계가 끊겼으니
깨달은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나
자기 성품 지키지 않고 인연 따라 이루더라.
하나 중에 일체 있고 일체 중에 하니 있으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해라
끝이 없는 무량겁이 곧 일념이요.
일념이 곧 끝이 없는 겁이어라
구 세 십 세가 서로서로 섞였으되
잠란 없이 따로따로 이뤘어라
처음 발심하온 때가 정각을 이룬 때요.
생사와 열반이 서로서로 함께 했고
이와 사가 그윽이 조화하여 분별할 것 없으니
열 부처님 보현보살 큰 사람의 경계더라
부처님의 해인 삼매 그 가운데
불가사의 무진 법문 마음대로 드러내며
보배의 비로 생명을 이롭게 한 일 허공에 가득차니
중생들의 그릇 따라 갖은 이익 얻음이라
이 까닭에 수행자들은 마음자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망상을 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네
인연 짖지 않는 좋은 방편으로 마음대로 잡아 쓰니
마음자리에 돌아가매 분수 따라 양식 얻네
이 다라니 무진 법문 끝이 없는 보배로써
온 법계를 장엄하여 보배궁전 이루고서
영원토록 법의 중도 자리에 편히앉아
억만겁에 부동함을 일러 부처라 하느니라.
미륵불
첫댓글 화엄일승법계도 잘모르지만 특이하네요
저도 한참 배우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