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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의 공세에 2년 7개월째 힘겹게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탈영과 교대해줄 보충병력의 부족, 동원 병력의 노령화및 혼란, 패배주의, 각종 부정부패 등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들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탈영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9월의 마지막 날(30일)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장기간 복무와 교체 병력의 부족 등 여러가지 이유로 탈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영 문제는 많든 적든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나타났지만, 2024년 하반기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에는 1,577명이 군부대를 무단 이탈하거나 탈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올들어 1~4월 탈영 관련 형사사건은 거의 1만9,000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부대 지휘관들은 종종 이 문제를 비공식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고, 탈영병들을 곧바로 고발하기 보다는 복귀하도록 설득하기 때문에 실제 부대 이탈 숫자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의회도 최근 자발적으로 귀대하는 탈영병을 처벌하지 않도록 법을 바꿨다.
◇ 우크라군 탈영병 규모는?
탈영병 전체 규모와 관련,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의 루슬란 고르벤코 의원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8만 건 이상의 탈영 사례가 기록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접 군 복무 중인 언론인 블라디미르 보이코는 그보다 두배나 더 많은 15만~20만명이 탈영한 것으로 본다. 보이코는 우크라이나 검찰의 자료를 인용, "2024년 1분기 형법 407와 408조(군대 무단 이탈 및 탈영)를 위반한 혐의의 형사 소송은 거의 1만3,000건에 이른다"며 "군부대 지휘관이 검(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건수를 감안하면, 탈영자는 최소 3배나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적어도 2만5,000명 이상의 군인이 탈영했다면, 그것은 곧 전선의 붕괴를 의미한다"고도 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탈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군 병력의 손실은 전투로 사망, 혹은 중상한 손실(서방 언론 추정)과 엇비슷하다.
탈영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 우크라이나군인의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우크라이나군의 탈영 문제를 보는 서방 외신들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의 국영방송 도이체 벨레(Duetsche Welle)는 올해 상반기에만 약 3만 명의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허가 없이 부대를 이탈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지난달(9월) 9일 "우크라이나는 전쟁이후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인구통계학적 위기에 처했다"며 "여러 추정에 따르면, 탈영병 수가 3만7,000명에서 8만명에 이르러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병력 부족 현상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우크라이나 인구도 전쟁전 4,200만 명에서 2,800만 명으로 감소했다"면서 "(해외로 도피한) 군복무 대상자들이나 탈영자들이 어떻게 무기를 다시 들도록 설득할 것인가 당면 과제"라고 썼다.
'낮은 사기와 탈영 등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미 CNN 방송의 보도(9월 8일자)를 보면 우크라이나군 내부는 심각하다.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 특히 격전지 '포크로프스크'와 '차소프 야르'(차시우 야르)에 주둔한 부대의 지휘관들은 CNN에 "새로 동원된 군인들 사이에서 탈영과 불복종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포크로프스크 주둔 부대의 한 지휘관은 "군인들이 모두 탈영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며 "신병들이 이곳에 오면, 엄청난 수의 적 드론과 포대 등을 보면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고 말했다. 또 "한 차례 최전방 진지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병사는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들은 전투를 거부하고 군대에서 이탈할 방법을 찾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차소프 야르 부대의 장교도 "하루가 길다"며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24시간 근무하는데, 총도 쏘지 못하니 러시아군이 유리해질 수 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59 독립 기계화 보병 여단 장교인 세르게이 체호츠키는 "3, 4일 주기로 교대근무를 시키려고 하지만 적의 드론이 많이 늘어나 교대 자체가 너무 위험해졌다"며 "그러다 보니, 최전선에 오래 있어야 하고, 무려 20일이나 머물어야 한 경우도 있다"고 실토했다.
참호 속에서 부상한 전우를 옮기는 우크라이나군/텔레그램 영상 캡처
한 고위급 지휘관은 부대원 800명중 절반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자 "더 이상 자신의 부하들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며 자리를 내놓았다.
◇강제 동원된 병력이 많을 수록 탈영병은 늘어난다?
대규모 탈영의 흐름이 포착된 지난 5월께다. 동원 기피를 막기 위해 동원령 관련 법안을 강화한 새 동원법의 통과및 발효 시기와 얼추 맞다.
병역 기피를 원하는 장정(25~60세)들을 돈을 받고 해외로 도피시키는 불법 조직의 한 조직원은 "예전에는 고객 중이 탈영병이 드물었지만, 5월쯤부터 거의 모든 그룹에 탈영병이 한 명 이상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껴 탈영병들을 해외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며 "적어도 루마니아에서는 탈영병으로 확인되는 사람이 없고,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나이 든 동원병의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몇몇 탈영병은 스트라나.ua에게 자신이 탈영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술에 취해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가는 대신 군에 자원입대한 세르게이 (42세, 가명)는 "감옥에 가서 전과를 남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군에 가기로 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이 언제 어떻게 불분명하다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2024년 2월 두 번째 부상한 뒤 병원을 탈출해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다.
올해 봄에 동원된 이고르(32세, 가명)는 "전장에는 신체적으로 싸울 능력이 없는 노인이 많고,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노숙자, 심지어 타락한 사람들도 있었다"며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도망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친구가 차를 가지고 온 차를 타고 부대를 탈출했다. "탈영병을 잡는 특수요원들이 후방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에 "아직 한번도 직접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우크라 군인들이 탈영하는 진짜 이유
탈영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핵심은 휴식도 없이 늘 목숨을 건 전투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감과 지루함이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 쿠르스크주(州) 기습 공격에 참가했던 한 병사는 "일부 부대는 근무 교대 후 휴가를 보내지만, 어떤 부대는 쉬지 않고 싸워야 한다"며 시스템의 불공정에 대해 불평했고, 또 다른 병사는 "3년째 이런 전쟁이 계속되니 이제 모든 게 싫다"고 하소연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우크라이나 신병의 절반 이상이 며칠 만에 사망하거나 부상한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9월 27일 보도도 충격적이다.
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전선 부대 지휘관들은 "기본적인 전투력도 갖추지 못한 신병들은 처음 공격을 받으면 대부분 당황한다"면서 "평균 연령이 45세여서 그들은 최소한의 지구력과 힘이 필요한 보병으로 근무하기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신규 보병의 50~70%가 첫 번째 배치가 시작된 지 며칠 만에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일부 방위군 부대장은 "병력 30명 중 5명만이 30세 미만"이라며 "일부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해 무기를 올바르게 잡는 방법조차 모른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격전지 포크로프스크로 파견된 우크라이나 동원 징집병들은 45일간의 기본 훈련을 받는 동안 "배운 게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마리아나 베주글라야 여성 의원이 페이스북에 썼다. 그녀는 "그들은 대부분 중년층으로, 전투 경험이 없는 교관들이 이들을 맡았다"며 "우크라이나 군대는 이제 '권리를 박탈당한 농노'가 됐다는 한 군인(호출 부호 사이공)의 SNS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사이공'은 "우크라이나군에는 혼란과 부패, 무능, 무책임, 줄서기, 불법이 만연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복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글을 올렸다.
군대내 부패와 혼란도 우크라이나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27만945개 이상의 각종 무기가 사라지거나 도난당했다.
올해들어 무기 분실 및 도난 건수는 7만 8,217건으로, 이미 전년도 전체보다 많아졌고, 전쟁 전의 4배나 된다. 2022년에는 11만6,687개의 무기가 사라졌다. 무기 도난은 지난 8월 의회가 계엄령 기간에 민간인들도 포획한 무기를 등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도 우크라이나에 전달된 무기와 군수품들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여러차례 불만을 드러냈다.
◇후방에서는 군용 차량에 대한 방화사건 빈발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는 군용 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방화사건이 수백건이나 발생했다.
스트라나.ua와 로시스카야 가제타 (RGru)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나데즈다 막시메츠 검찰청 대변인은 9월 20일 "올해들어 군용 차량 266대가 불에 탔다"며 "우리 국가의 내부를 뒤흔들려는 러시아 특별 서비스(연방 보안국, FSB)가 그 배후에 있다"고 발표했다. 또 10대를 비롯한 젊은 청년들이 700달러~3,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방화 사건을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키예프에서는 16세 소년이 군용 차량에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됐다. 이 소년은 러시아 특별 서비스로부터 1,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체르카시 지역에서 군용차량에 불을 질렀다고 우크라이나 경찰이 최근(9월 16일) 발표했다. 그는 차량에 가연성 기름을 뿌린 뒤 불을 지르고 그 과정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드미트리 슈메이코 키예프 경찰서장은 군용 차량 방화 사건의 약 4분의 1이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죄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군대와 방위군에게 “차량에 군용임을 식별할 수 있는 표시를 붙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우크라이나 제3 독립공격여단 올레그 로마노프 대대장은 차량 방화사건에 격분해 부하들에게 방화범을 바로 사살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새동원법 채택이후 군사요원(징병관)들의 길거리 강제동원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탈영을 하든, 방화를 저지르든, 군에 대한 불만은 근본적으로 강제 동원에 기인하고 있다. 새 동원법이 채택된 후 5, 6월의 동원 규모는 그전(3, 4월)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지만, 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대응도 대체로 과격해졌다.
탈영병에 대한 과잉 대응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7월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동원된 예비역 4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다 국경 수비대의 총에 맞아 1명이 숨졌다. 그는 한 달 전에 동원돼 포돌스크 지역의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다가 탈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에 탈영병들을 해외로 빼돌리던 불법 조직이 체포됐다. 해외 탈출을 시도했던 27명도 현장에서 연행됐다. 통상 국경을 성공적으로 넘어갈 경우, 암호화폐로 4,000~7,000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공평, 강제적인 동원이 모든 문제의 근원
동원에 대한 여론도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의 라줌코프 정치경제연구센터(Украинский центр экономических и полит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мени Александра Разумкова, УЦЭП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중 거의 절반(46.1%)이 "병역 기피자가 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고 응답했다. 은퇴 전 연령층(50~59세)은 52%, 청년층(18~29세)이 50%가 그같이 답변했다. "군입대를 기피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응답은 29.1%에 그쳤고, "답변하기 어렵다"는 답변은 24.8%였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현재의 동원 나이(25~60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보 달더(Ivo Daalder) 전 나토(NATO)주재 미국 상임 대표(대사)는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해야 할 일은 인력 동원"이라며 "역사상 40대가 싸운 전쟁은 없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지금 '40대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18세, 20세, 21세 청년들을 징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가 극복해야 할 일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동원에 대한 국민 불만이다. 스트라나.ua는 새 동원법이 채택된 뒤인 6월 13일 "우크라이나 거리에 남자들이 사라지는 등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강제동원에서 예외가 된 특별한 지역을 지목하면서 당국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곳은 오데사에서 인기 있는 '아카디아'와 같은 고급 나이트 클럽과 레스토랑, 주요 쇼핑 및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이었다. 동원 징집관이 붐비는 저녁 시간에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곳으로, 현지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했다.
'동원 자체를 영안실로 가는 편도 티켓'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현상은 불공평하고, 나아가 5~10%의 탈영으로 이어진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9월 27일)는 지적했다. 이 잡지는 탈영병들이 자신들에 대한 당국의 처벌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러시아군의 공격만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군의 손실(블라디미르 고르바티크 우크라이나 참모차장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의 병력 손실 비율을 6 대 1로, 푸틴 대통령은 1대 5라고 주장)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