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한(諦閑)대사의 관종사(觀宗寺) 경전 강설 체험 기록과 극락왕생
2026년 8월 초순 송찬문 번역
허운대사, 인광대사, 제한대사는 중국 최근세 삼대고승이다.
나는 평생 법상에 올라 설법해 왔다. 광서(光緖) 12년(1886년) 처음으로 《법화경》을 강설한 이래, 어느덧 4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 강좌에서 불법을 들은 이들은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천여 명에 이르렀고, 그중에는 학문이 깊은 유학자와 여러 지역의 큰 덕망을 지닌 수행자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판단해보건대, 천태종의 교관쌍미(敎觀雙美)、성수불이(性修不二)、오시팔교(五時八教)、육즉십승(六卽十乘)에 대해서 모두 마음속에 익숙하고 훤히 알아서 입만 열면 술술 나오고 붓만 들면 문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는 결코 예상하지 못하게도, 중화민국 19년(1930년) 그 겨울, 영파(寧波) 관종사 뒤뜰 나뭇간 문 앞에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어느 농촌 아낙네(여기서의 아낙네는 장 아줌마를 가리킨다)가 말한 너무도 소박한 한마디에, 나의 4십 년 동안의 경론 강설 달변은 완전히 꽉 막혀버렸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나는 깨달았다, 지자대사(智者大師)가 교상판석[判敎]에 대해 한 그 많은 말은, 결국 “설식불포(說食不飽)” 네 글자에 귀결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일은 나는 한 번도 대중 설법 자리에서 꺼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가시처럼 내 마음에 꼬박 2년 동안 내내 박혀 있었다. 오늘 붓을 잡아 기록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단지 훗날 교학을 배우는 이들에게 타일러서 주의하도록 하나의 경계[警醒]를 남겨주기 위해서이다. 즉, ‘당신이 삼장십이부(三藏十二部)의 경론을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어지럽게 떨어질 정도로 아무리 잘 강설하더라도 정작 자기 발이 땅에 딛고 있지 않다면 길거리에서 고약을 파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라는 것이다.
이 일은 그해 10월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화민국 19년(1930년) 경오년(庚午年), 나는 이미 73세였다. 그해 가을, 관종사에서는 예년처럼 강설(講說) 기간을 열었고, 내가 강의한 것은 《마하지관(摩訶止觀)》이었다. 이 책은 천태종의 근본 대전(大典)으로서, 지자대사가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서 설한 것을 장안(章安) 관정존자(灌頂尊者)가 기록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모두 열 권에 달하며 한 글자마다 황금과 같다. 젊은 시절 나는 용화사(龍華寺)에서 민희(敏曦) 노법사께서 이 책을 강설하는 것을 들었으나 구름과 안개 속에 떨어져 있는 듯했으며, 뒷날 효유(曉柔) 법사를 가까이 모시고서야 비로소 점점 그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나는 《마하지관》을 7~8 차례 이상 강설했고, 한 번 강의할 때마다 한층 더 깊이 들어간다고 느꼈다. 이 해에 이르러서는 이미 이 책을 완전히 통달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강의도 막힘없이 이어졌으며, 경전과 논서를 자유롭게 인용하니 강좌의 학승들은 탄복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한 기간의 강석(講席)은 9월 15일부터 시작하여 섣달 초파일에 끝날 예정이었다. 강의를 듣는 학승은 60여 명, 재가 신도도 수십 명이 함께 기뻐하며 청강했다. 나는 매일 오전 한 차례 법상에 올랐고, 오후에도 기력이 괜찮으면 한 차례 더 강설했다. 강설이 10월 하순에 이르자 이미 제3권 「방편을 밝힘(明方便)」을 마쳤고, 이제 제4권 「바른 지관 수행(正修止觀)」이라는 핵심 부분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은 10월 23일이었고, 날씨는 이미 추웠다. 영파의 겨울은 북방처럼 건조한 추위가 아니라, 뼛속으로 스며드는 축축한 한기였다. 아무리 해도 따뜻해지지 않는 그런 추위였다. 나는 새벽 예불을 마친 뒤 방장실에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그날 강의할 내용을 펼쳐보았다. 제4권 첫머리에서 지자대사는 말했다. “앞의 방편에서는 비록 수행력이 미약하더라도 활쏘기를 배우는 것과 같아 먼저 가까운 과녁을 쏜다. 그리고 이어 십경십승의 관법으로 들어간다 (前方便中, 雖修行力微薄, 猶如習射, 先射近的, 然後正式進入十境十乘的觀法).” 이 부분은 내가 여러 번 강의한 적이 있었고, 이치는 매우 정미했다(精微). 이른바 십경(十境)이란 음입계경(陰入界境)、번뇌경(煩惱境)、병환경(病患境)、업상경(業相境)、마사경(魔事境)、선정경(禪定境)、제견경(諸見境)、상만경(上慢境)、이승경(二乘境)、보살경(菩薩境)을 말하며, 수행자는 십승관법(十乘觀法)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비추어 깨뜨려야[照破] 비로소 실상(實相)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책상 앞에서 조용히 내용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새벽의 적막 속에서는 또렷하게 들렸다. 한 사람은 절에서 땔감을 맡고 있는 노거사 주덕발(周德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성의 소리로서, 시골 사투리가 섞여있는 말은 영파의 토박이말이었다.
“주 거사님, 우리 시어머니 병이 이제는 나을 수 없대요. 의원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절의 스님들께 경을 좀 읽어 주시고 천도도 부탁드리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르겠네요?”
주덕발이 대답했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천도를 말합니까? 우선 《약사경》이나 읽어서 재앙부터 없애시죠.”
그 여인이 말했다, “의원도 이제는 소용없다고 했어요. 시어머니도 본인이 알아요.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게 무섭다고 하세요. 평생 채식하고 염불했는데 그게 정말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주덕발이 말했다, “채식하고 염불했는데 왜 쓸모가 없겠습니까? 시어머니는 오래 수행한 분이니 분명 쓸모가 있을 겁니다.”
여인이 다시 말했다, “그럼 도대체 쓸모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시어머니는 삼십 년 동안 염불했는데도 무슨 부처님이 와서 자기를 맞이해 주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마음이 불안하대요.”
그 몇 마디 말들이 내 귀에 날아 들어왔지만 당시에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절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시골에서 사람이 임종을 앞두면 절에 와서 독경과 참회를 부탁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 책을 읽으며 오전 강좌를 준비했다.
오전 사시巳時에, 나는 법상에 올라 강의를 시작했다. 그날의 내용은 「관음입계경(觀陰入界境)」, 즉 십경 가운데 첫 번째였다. 나는 오온, 즉 색수상행식을 설명하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중생이 생사를 윤회하는 까닭은 오온이 본래 공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실재(實在)로서 집착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미혹이 일어나고 업을 지어 윤회가 끝나지 않는다. 만약 지관의 힘으로 이 오온이 당체가 그대로 공(空)이며, 그대로 가(假)이며, 그대로 중(中)이어서 삼제가 원융함을 관조하여 본다면 (五陰當體即空、即假、即中, 三諦圓融) 바로 그 자리에서 해탈이다.” 라고 했다. 나는 자세히 말하여, 장교의 분석공관(藏教析空觀)에서 통교의 체공관(通教體空觀), 별교의 차제관(別教次第觀)을 거쳐 최후에는 원교의 일심삼관(圓教一心三觀)에 귀결하기까지 단계별로 차근차근 조리가 분명하게 설명했다. 강좌 학승들은 정신을 집중하여 들었으며 몇몇은 노트에 빠르게 받아 적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니 거의 점심때였다. 나는 방장실로 돌아와 공양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 오후에는 원래 강의할 생각이 없었지만, 몇몇 학승이 오전 강의 내용을 질문하러 와서 방 안에서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중 인광(仁光)이라는 학승이 물었다, “노법사님, 오온이 곧 공이고 곧 가이며 곧 중이라는 이치는 듣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행할 때는 망념이 어지럽게 날아서 아예 관찰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래서 먼저 방편을 닦아야 한다. 앞의 세 권에서 말한 25가지 방편,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업장을 참회하며 몸과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모두 바른 수행을 위한 준비다. 방편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곧바로 원돈지관(圓頓止觀)을 닦으려 한다면 걷는 법도 배우지 않고 날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당연히 되지 않는다.”
인광이 다시 물었다, “그럼 방편을 얼마나 닦아야 비로소 정식으로 지관을 닦을 수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근기가 뛰어난 자는 금방일 수도 있고, 둔한 자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관건은 시간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진정으로 정말 유연하고 적응능력이 있는지[調柔], 진정으로 보리심을 일으켰는지에 있다.”
인광은 머리를 끄덕이고 물러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서 갑자기 무엇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한 줄기 느낌이 일어났다. 이런 질문에 나는 수도 없이 대답해 왔고 답안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말하니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이 이상하는지도 나는 한동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에 이르러 나는 늘 그렇듯 방장실 밖 작은 뜰을 경행(經行)하였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솜옷을 여미고 뜰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뒤뜰 모퉁이에서 갑자기 다시 아침 그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아직 가지 않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좀 들었다.
이번에는 절에서 불을 때는 장 아줌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장 아줌마는 예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절에서 십여 년 동안 밥을 짓고 아궁이를 맡아왔다. 글은 모르지만 아침 저녁으로 대중과 함께 비바람에도 빠짐없이 염불했다.
농촌 아낙네가 장 아줌마에게 물었다, “장 아줌마, 당신은 절에서 이렇게 오래 계셨고 날마다 스님들이 경전을 염송하고 강설하는 것을 들으셨잖아요. 염불이 도대체 소용이 있나요 없나요? 우리 시어머니는 삼십 년을 염송했는데도 마음에 아직 확신이 없대요.”
장 아줌마의 대답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여동생, 나는 무슨 경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스님들이 말씀하시는 그런 도리들도 못 알아들어.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 줄 게. 나는 염불한 지 15년이라서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
농촌 아낙네가 물었다, “그럼 도대체 소용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장 아줌마는 한마디 말을 했고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글자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내 귀에 전해 들어왔다.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를 나는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이것만은 말해 줄게. 나는 예전에는 죽는 게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 무서워. 예전에는 한밤중에 깨어 죽음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렸는데, 지금은 죽음을 생각하면 아미타불이 떠올라. 그러면 마음이 훈훈해져. 겨울에 불을 쬐는 것처럼. 소용이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치를 설명할 줄은 모르지만, 이 훈훈함은 진짜야.”
나는 담장 모퉁이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농촌 아낙네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는 왜 삼십 년을 염불하고도 아직 무서울까요?”
장 아줌마가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 염불할 때 마음이 부처님께 있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는 염불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해. 그냥 아미타불이 내 앞에 서 계신다고 생각해. 나는 그분을 보고 있고, 그분은 나를 보고 있어. 그뿐이야.”
농촌 아낙네가 말했다, “그저 그렇게 간단해요?” 장 아줌마가 대답했다, “그저 그렇게 간단해.”
나는 차가운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몸이 갑자기 굳어지는 것 같았지만 추워서가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장 아줌마의 그 몇 마디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훈훈함은 진짜야” 이 말이 망치처럼 내 마음을 세게 두드렸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방장실로 돌아와 방석 위에 앉았지만,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한 가지를 계속 생각했다. “나는 4십 년 동안 천태교관을 강의했다. 오시팔교(五時八教)에서 육즉십승(六即十乘)까지, 성구선악(性具善惡)에서 일념삼천(一念三千)까지, 어떤 법문이든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나는 어떠한가? 나는 어느 정도까지 수행했는가? 나는 죽음이 두려운가 두렵지 않은가?” 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온몸이 움찔했다.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는 감히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감히 정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 날 오전, 나는 평소처럼 법상에 올라 경을 강설했다. 하지만 그날은 강설하는 내내 내 목소리가 어딘가 좀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번뇌의 경계를 관찰하는 것(觀煩惱境)’에 대해 설하고 있었다. 지자대사는 수행자가 정좌 중에서 갑자기 번뇌가 치성해지고 탐욕·분노·어리석음·교만·의심이 한꺼번에 치밀어 오를 때는 당황하지 말고, 이 번뇌가 곧 공(空)이고 곧 가(假)이며 곧 중(中)임을 관해야 한다고 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이며, 끊지 않으면서도 끊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매우 유창하게 강설했고, 《유마경》의 “번뇌의 무리가 곧 여래의 종자이다 (煩惱之儔爲如來種)”를 인용하고, 《법화경》의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물며, 세간의 모습은 항상 머문다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를 인용했으며, 형계 담연대사의 《지관보행(止觀輔行)》도 인용하면서 폭넓은 전거를 들어 교리를 원융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한 목소리가 묻고 있었다, ‘너 자신이 번뇌가 일어났을 때도 그렇게 관하고 있을 수 있느냐?’
그 한 차례의 강설을 마친 뒤, 나는 평소처럼 강당 밖에서 학승들과 담소를 나누지 않고 곧장 방장실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아 펼쳐져 있는 《마하지관》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흰 종이와 검은 글자가 낯설게 변해짐을 느꼈다.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한 겹 막이 사이 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오후에 나는 시자에게 장 아줌마를 방장실로 모셔오라고 했다. 시자는 조금 의아해했다. 아궁이 불을 때는 노파를 큰스님이 왜 찾는 걸까? 하지만 그는 더 묻지 않고 곧 장 아줌마를 모셔왔다.
장 아줌마는 들어오면서 조금 긴장한 듯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큰스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혹시 불을 잘못 땐 건가요?” 나는 그녀에게 앉으라고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드렸다. 그녀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연신 사양했다.
나는 말했다, “장 아줌마,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을 찾은 건 무슨 잘못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몇 가지 문제를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찻잔을 받든 채 눈은 바닥을 바라보았다.
내가 물었다. “장 아줌마, 염불하신 지 몇 년 되셨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15년 됐습니다. 남편이 죽던 해부터 시작했어요.”
내가 물었다, “매일 어떻게 염불하십니까?”
그녀가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진(한 시진은 2시간) 하고, 밤에 자기 전에 한 시진 합니다. 낮에는 불을 때고 밥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염불해요. 입으로는 소리 내지 않고요.”
내가 물었다, “염불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녀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무슨 생각이요? 그냥 아미타불만 생각하지요. 저는 글을 몰라서 다른 건 생각할 줄 몰라요. 스님들이 경을 강설해도 알아듣지 못하고요. 저는 그냥 아미타불만 외울 줄 압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염불할 때 마음에서는 어떤 느낌입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아주 어지러웠어요. 이것저것 생각하고, 우리 남편은 왜 그렇게 죽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생각만 했지요. 그런데 계속 염불하다 보니 조금씩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더 오래 염불하다 보니 마음이 아주 기뻐졌어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요. 꼭… 꼭 아미타불이 정말 거기에 계신 것 같았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얼굴에는 아주 특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제가 법당에서 본 어떤 표정과도 달랐다. 학승들이 어떤 이치를 깨달았을 때의 환한 깨달음도 아니었고, 재가 신도들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릴 때의 표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확고한 빛이었다. 마치 겨울 방 안의 작은 기름 등잔 같았다. 밝지는 않지만 따뜻한.
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라면 묻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했다, 아니, 40년 동안 경을 강설해 온 큰스님인 제가 차마 묻기 민망한 질문이었다. 나는 물었다, “장 아줌마, 죽음이 두렵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살짝 웃었다, “안 두려워요. 예전에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안 두려워요.”
내가 물었다, “왜 이제는 안 두렵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니까요. 아미타불께서 저를 데리러 오실 거예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십니까? 경에 적혀 있는 것을 아주머니는 읽지 못하시잖아요.”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 눈빛 속에 어떤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일흔세 살인 나 늙은 승려에게 한 줄기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의심도 아니었고, 반박도 아니었다. 극도로 소박한 확신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큰스님, 저는 글을 몰라서 경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저는 15년 동안 염불했어요. 제 마음은 너무도 분명히 알아요. 아미타불께서는 거기에 계십니다. 마치 내일 해가 뜬다는 걸 아는 것처럼요. 누가 말해줄 필요도 없어요. 제가 스스로 알아요.”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30여 년 전, 나는 자계(慈溪) 노산사(蘆山寺)에서 폐관하고 장경을 읽다가 영명 연수 대사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면 오래 익힐수록 솜씨가 생긴다. 나중에는 비록 의식하지 않아도 오래 익힌 까닭에 화살은 쏠 때마다 맞는다.”
그때 나는 이 구절을 수첩에 적어 두며 ‘참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좋은 말’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오늘 장 아줌마와 마주 앉아서야 나는 비로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진정으로 이해했다. 장 아줌마는 1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염불했다. 그녀는 일심불란(一心不亂)도 모르고, 사일심(事一心)과 이일심(理一心)도 모르며, 공·가·중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1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아미타불’ 한마디를 뼛속까지, 피 속까지, 숨결 속까지 새겨 넣었다. 그녀는 ‘관’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삶 전체가 하나의 ‘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止)’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마음은 저절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한가? 나는 ‘지관(止觀)’이라는 두 글자를 백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고, 오십 권의 경론을 인용해 해석할 수 있으며, 도표를 그리고 체계를 나누고 층위를 구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방석 위에 앉으면 망상이 흩날리는 정도는, 아마 막 수행을 시작한 인광보다도 나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깨달음은 마치 얼음물 한 대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것 같았다.
장 아줌마가 돌아간 뒤, 나는 방장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도 등을 켜지 않았다.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천태산 국청사(天台山國清寺)에서 참학(參學)할 때, 노스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말을 잘하는 것은 실천을 잘하는 것만 못하고, 실천을 잘하는 것은 끝내 이루는 것만 못하다.” 그때 나는 젊고 혈기가 왕성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말도 잘하고 실천도 잘하는데, 뭐가 어렵겠는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말을 잘한다’는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앵무새처럼 흉내만 냈을 뿐이었다.
또 나의 스승인 효유(曉柔)법사가 떠올랐다. 효유 법사는 평생 글 한 자 남기지 않았고, 어떤 학설도 세우지 않았으며, 그저 묵묵히 수행만 하셨다. 열반에 드실 때는 안색이 살아 있는 사람 같았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너무도 평안하고 자유롭게 떠나셨다. 그때 나는 곁에서 슬픔을 느끼면서도 속으로는 감탄했다. 이제야 알겠다. 그 평안함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고, ‘관’해서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진실하게 수행하고 몸소 증득한 결과였다.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재가 제자인 ‘솥땜쟁이 장인(鍋漏匠: 과루장)’ 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솥을 때우며 살던 장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성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솥 땜쟁이 장인'이라고 불렀다. 그가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평생 고생만 했으니 출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나이도 많고 글도 모르니 정식 출가는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깎아주고 작은 절에 머물게 하며 ‘나무아미타불’ 한마디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피곤하면 쉬고, 쉬고 나면 다시 염불하라고 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3년 동안 염불했다. 3년 뒤 어느 날, 그는 서서 왕생했다. 정말 서서 떠난 것이다! 내가 달려갔을 때 그는 서쪽을 향해 서 있었고, 손에는 아직도 염주를 들고 있었다. 사람을 불러 확인해 보니 이미 떠난 뒤였지만 몸은 그대로 서 있었다. 사흘 동안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늘 정토법문의 수승함과 아미타불 원력의 불가사의함을 증명하는 예로 삼았다.
하지만 오늘 어둠 속에 앉아 이 일을 떠올리며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솥 때우는 장인이 서서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가 많은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3년 동안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부처님과 서로 응하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염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40년 동안 강설만 하고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감원(監院)을 불러 이번 강설 일정을 사흘 동안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감원은 매우 놀라면서 몸이 불편하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잠시 조용히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사흘 동안 나는 방장실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마하지관》을 덮어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리고 방석 위에 앉아 장 아줌마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아미타불’ 한마디만 염해 보려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과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나는 내가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상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망상이 많은 것은 정상이다. 문제는 내 망상이 전부 ‘법상(法相)’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미타불” 네 글자를 염하려 하면, 머릿속에서는 곧바로 이런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이것은 과지각(果地覺)으로 인지심(因地心)을 삼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의 지견으로 자신의 지견을 삼는 것이다. 이것은 전성기수(全性起修), 전수재성(全修在性)이다…… 수많은 교리 이치가 밀물처럼 밀려와 그 한 구절의 불호를 완전히 잠식해 버린다.
나는 이런 생각을 멈추려 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거세게 밀려왔다. 4십 년 동안 경을 강설한 습기가 거대한 그물처럼 나를 단단히 덮고 있었다. 나는 지자 대사께서 말씀하신 ‘법애(法愛)’를 떠올렸다. 불법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고, 도리에 대한 탐닉도 탐닉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이 이치를 강설하면서도 늘 그것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지자대사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흘이 지났지만 나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진전보다도 중요한 것을 얻었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에게 솔직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인정했다. 나 제한(諦閑)은 사십 년 동안 천태교관을 강설했고, 수십 권의 강의를 저술했으며, 문하의 학승도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 자신의 수행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수행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매일 좌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주문도 외웠다. 하지만 내 수행에는 너무 많은 ‘지견’이 섞여 있었고, 너무 많은 ‘분별’이 섞여 있었으며, 너무 많은 ‘내가 수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들어 있었다. 나는 수행을 하나의 학문으로 바꾸었고, 깨달음을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었으며, 생사를 벗어나는 일을 하나의 화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장 아줌마(張媽)는 어떠한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진짜 수행하고 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 부처님 명호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떤 지견의 짐도 없고, ‘내가 수행하고 있다’는 인위적인 마음도 없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듯 너무도 자연스럽고, 온 마음을 다해 부를 뿐이다.
사흘 뒤 나는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부터 내 강설 방식은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경을 강설할 때 방대한 인용을 즐겼고, 이치를 정밀하고 오묘하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사람들에게 천태교관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가능한 한 말을 소박하고 직접적으로 하려고 했다. 그리고 매번 강의를 마칠 때마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러분, 이치는 이해했으면 돌아가서 실제로 수행해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하지 않으면, 음식을 말로만 설명한다고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설식불포(說食不飽)’라는 네 글자는 《능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록 여러 겁 동안 여래의 비밀하고 미묘한 장엄을 기억하고 지녔다 해도, 하루 동안 무루업을 닦는 것만 못하다 (汝雖曆劫憶持如來秘密妙嚴, 不如一日修無漏業).”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음식만 말할 뿐 끝내 먹지 않으면 배부를 수 없다. (如人說食, 終不能飽).” 뜻은 이렇다. 만주풍(滿洲風)의 요리와 한족풍(漢族風)의 요리를 함께 갖춘 호화 연회석인 만한전석(滿漢全席)의 모든 음식 이름을 줄줄 외우고, 하나하나를 조리 있게 설명하며, 색과 향과 맛과 모양과 그릇까지 완벽하게 이야기한다 해도, 한입도 먹지 않았다면 배는 여전히 비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십 년 동안 경을 강설했다. 바로 ‘음식을 말한’ 것이다. 나는 불법이라는 만한전석의 모든 음식을 낱낱이 설명했다. 이 음식은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조리하며, 어느 정도의 불을 쓰고, 어떤 술을 곁들이고, 어떤 그릇을 사용하는지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과연 얼마나 먹었는가? 얼마나 소화했는가? 그것이 얼마나 내 자신의 피와 살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감히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해 겨울 남은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마하지관》을 강설하는 한편, 내 자신의 수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는 이 이치를 안다’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실제로 해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한 단락을 강설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부분을 너 자신은 수행해 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자격으로 남에게 말하는가?’
이런 자문은 괴로웠다. 왜냐하면 대답은 대부분 ‘아니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이 나를 진짜 수행으로 밀어 넣었다. 그해 겨울부터 나는 매일 염불 시간을 두 시진 더 늘렸다. 예전처럼 염불하면서 동시에 이치를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 아줌마를 따라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 한 구절만 염했다. 염할 수 없으면 잠시 쉬고, 쉬었다가 다시 염했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다. 사십 년의 습기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다. 앉아서 염불을 하면 머릿속에는 여전히 각종 법상 용어와 경론의 인용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마치 늙은 농부가 밭의 잡초를 바라보듯 했다. 잡초가 있는 것은 알지만 상대하지 않고 자기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조금씩, 두세 달쯤 지나자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신통도 아니고 감응도 아니며, 상서로운 빛도 아니었다.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바로 마음이 든든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나는 마음이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든든함은 ‘나는 많은 교리 이치를 안다’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것은 지식의 든든함이지, 생명의 든든함은 아니었다.
지금의 든든함은 달랐다. 어떤 이치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지견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거기에 있다. 마치 집의 기초처럼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비로소 장 아줌마가 말한 ‘훈훈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었다. 하나의 존재 상태였다. 마음이 진정으로 한 구절의 불호에 머물게 되면, 그 불호는 더 이상 하나의 소리나 명사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네 생명의 바탕색이 된다. 걸을 때도 있고, 밥을 먹을 때도 있고, 잠을 잘 때도 있다. 일부러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것은 스스로 거기에 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왜 우익 대사께서 “왕생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신원(信願)의 유무에 달려 있고, 품위의 높고 낮음은 전적으로 지명(持名)의 깊고 얕음에 달려 있다 (得生與否, 全由信願之有無;品位高下, 全由持名之深淺)" 라고 말씀하셨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 말을 강설하면서 늘 교리적으로 분석했다.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원이며, 무엇이 깊고, 무엇이 얕은지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말은 분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당신의 마음이 가장 잘 안다.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한밤중에 문득 깨어 무상과 죽음을 떠올릴 때, 당신의 마음이 편안한가 아니면 두려운가. 이것만큼은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나는 그 농촌 아낙네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삼십 년 동안 염불했지만 임종할 때도 여전히 두려워했다. 왜 두려웠을까? 그녀의 염불 속에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염불하면서도 ‘효과가 있을까?’를 묻고 있었다. 그 ‘묻는다’는 행위 자체가 진정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다. 진짜 믿는 사람은 효과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면 소용이 있을까?’를 묻지 않는 것과 같다. 배고프면 부르고, 추우면 부르고, 무서우면 부른다. 엄마가 올지 안 올지를 의심한 적이 없다. 엄마는 늘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장 아줌마는 바로 그렇게 염불했다. 효과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염송했다. 염송하고 또 염송하다 보니 부처님이 계시게 되었다. 부처님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과 부처님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십오 년 동안의 염불로 조금씩 닳아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했는가? 이 사십 년 동안 나는 벽을 닳게 한 것이 아니라 벽을 연구했다. 이 벽이 무슨 재질인지, 얼마나 두꺼운지, 어떤 구조인지, 어떻게 하면 허물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논문을 써서 이 벽을 분석했고, 셀 수 없이 많은 강연을 열어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허무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벽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나는 망치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본 적이 없었다. 이 깨달음은 나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부끄러움 뒤에는 감사가 있었다. 나는 그 농촌 아낙네에게 감사했고, 장 아줌마에게 감사했다. 그녀들은 알지 못했다. 그날 저녁 장작간 문 앞에서 나눈 몇 마디 평범한 이야기가 나 같은 이른바 ‘대법사’에게는 대장경 한 질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중화민국 20년(1931년) 봄, 강의가 끝난 뒤 나는 학승들에게 총결 법문을 했다. 그 법문에서는 새로운 이치를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이야기만 했다. 수행은 진짜 해야 한다.
나는 말했다. “여러분은 나에게서 교관을 삼 년, 오 년 배워 많은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실제로 얼마나 수행합니까? 진짜 수행합니까, 아니면 가짜 수행입니까? 그저 앉아서 멍하니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나에게 대답할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대답하면 됩니다.” 그리고 또 말했다. “나 자신이 바로 반면교사입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경을 강설했고, 일흔셋이 되어서야 글도 모르는 한 노파에게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따라 하지 마십시오. 나의 옛길을 걷지 마십시오. 이치는 필요한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한 부분이라도 실제로 해낸 것이, 열 부분을 말로 설명한 것보다 낫습니다.”
그 법문이 끝난 뒤 몇몇 학승이 나를 찾아와 자신들도 나처럼 독서 시간을 줄이고 염불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훈계했다. “나는 교학을 배우는 것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리는 눈과 같습니다. 교리가 없으면 맹목적인 수행이 됩니다. 하지만 교리는 어느 정도 배우면 충분합니다. 평생 교리만 배워서는 안 됩니다. 강을 건너려면 먼저 강이 어디 있는지, 배가 어디 있는지, 노를 어떻게 젓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리가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평생 강가에 서서 노 젓는 법만 연구해서는 안 됩니다. 배를 타야 합니다. 그리고 노를 저어야 합니다.”
그 이후로 나의 경전 강설 방식은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 내 젊은 시절의 설법과 말년의 설법을 모두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젊은 시절의 제한 법사의 설법은 마치 글을 짓는 것 같아서 문장이 아름답고 표현이 화려하며, 뜻과 이치가 깊어 듣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고. 반면 말년의 제한 법사의 설법은 마치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박혀 사람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들고, 돌아가 수행하고 싶게 만든다 라고 하였다. 나는 이런 변화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법은 공연이 아니며, 사람들이 당신의 학문과 말솜씨를 칭찬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설법은 사람들에게 실제 이익을 주고, 진정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현란하게만 이야기해서 듣는 사람들이 "와, 정말 잘 말씀하시네." 하고 감탄만 하고 돌아가서는 이전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그 설법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중화민국 21년(1932년) 여름, 장 아줌마가 병에 걸려 보름 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많이 야위었지만 정신은 괜찮아 보였다. 나를 보자 힘겹게 일어나 절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를 눌러 앉히며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장 아줌마, 이렇게 아픈 동안에도 염불은 했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했지요. 누워서도 했어요. 다만 조금 느리게 했을 뿐이에요.”
내가 다시 물었다. “지금 몸이 이렇게 불편한데도 마음속은 여전히 그 '훈훈한' 상태입니까?”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마 자신이 언제 그 세 글자를 말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노법사님, 그 훈훈한 느낌은 늘 그대로 있어요. 몸이 불편한 건 몸의 일이지, 마음과는 상관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방을 나와 방장실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녀의 그 한마디를 계속 곱씹었다. “몸이 불편한 건 몸의 일이지, 마음과는 상관없어요.” 이 말을 천태종의 교관으로 풀이하자면 긴 글 한 편을 쓸 수도 있다. 색법(色法)과 심법(心法)의 관계,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관계, 사조(事造)와 이구(理具)의 관계를 설명하며 수많은 경전과 논서를 인용해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장 아줌마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15년 동안 염불한 공덕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경계에 끌려가지 않는 (心不隨境轉)'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불리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안주하는 한 곳이 있고, 그곳은 몸의 병고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공부다. 이것이 진정한 공부다.
나는 이후 자주 생각했다. 도대체 불법이란 무엇일까? 끝없이 방대한 경전과 논서일까? 정교하고 복잡한 교상판석 체계일까?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명상(名相)의 분석일까? 물론 그것들도 불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법의 전부는 아니며, 심지어 가장 핵심적인 것도 아니다. 불법의 가장 핵심은 한 사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며, 두려움 속에서 평안을 얻게 하는 것이다. 만약 평생 불법을 배우고도 이 세 가지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면, 당신이 배운 그 많은 것들이 쓰고버린 종이(廢紙)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는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평생 천태교관을 널리 알렸고, 교리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교리가 없으면 방향이 어디인지,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이 바른길이고 무엇이 잘못된 길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교리는 지도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지도를 안고 “나는 이미 도착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직접 걸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한다. 도착하고 나면 지도는 내려놓아도 된다. 하지만 도착하지 못했다면, 지도를 아무리 달달 외워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장 아줌마에게는 지도가 없었다. 그러나 한마디 부처님 명호와 15년 동안 하루같이 성실하게 이어온 염불만으로,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불법을 배운 많은 사람들조차 이르지 못한 곳에 도달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수행에서는 성실함이 영리함보다 중요하고,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며, 잘 말하는 것보다 진실하게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내 일생을 돌아보면, 영리함은 넘쳤지만 성실함은 부족했다. 말은 너무 많이 했고, 실천은 너무 적게 했다. 일흔셋이 되어서야 이 이치를 깨달았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면 늦지 않은 법이다. 그해 겨울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도 염불 수행을 끊은 적이 없다. 내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다만 적어도 지금은 염불할 때 마음이 예전보다 훨씬 든든하고, 훨씬 맑아졌으며, 이전처럼 화려하고 번잡한 견해들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올해 일흔다섯이다. 남은 날도 많지 않다. 임종할 때 과연 솥 땜쟁이 장인처럼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지, 장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훈훈한" 마음일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옳은 길이라는 것이다. 이치가 옳다고 말해 주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그것이 옳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훗날 교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다. 천태교관은 참으로 좋은 것이며, 평생을 들여 배울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배울 때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배움은 수행을 위한 것이고, 수행은 증득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만약 한참 배우기만 하고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식을 말로만 하는 것’과 같다.
수행은 오래 했는데도 증득이 없다면 자신의 방법이 옳은지, 마음가짐이 진실한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음식 이야기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러다가 임종에 이르면 허둥지둥하며 아무것도 써먹지 못하게 되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다.
사십 년 동안 음식만 말하다 끝내 배고픔을 깨닫고, 한마디 아미타불에서 비로소 배부름을 알았다. 교관은 배요, 수행 증득은 저 언덕이다. 배가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다워도 노를 한 번 저어 보려 하지 않는다면 끝내 이 언덕의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바라건대 뒤에 오는 이들은 나를 거울삼아 말은 적게 하고 실천은 많이 하며, 성실하게 수행하여 머리가 희어지고 나서야 늦음을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대사의 극락왕생
임신년(1932년) 여름 5월경, 대사는 스스로 세속에서의 인연이 곧 끝나고 왕생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전보를 보내 제자 보정(宝静)을 재촉하여 절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천태종 법맥을 전수하고 관종사의 주지로 임명했으며, 동시에 홍법연구사의 주임강사를 겸임하도록 했다. 7월 초이일 오전, 대사는 갑자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한 채 오랫동안 있다가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셨다. 늙은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 작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자를 시켜 더운 물을 준비하게 하여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게송을 남겼다.
“염불을 통해 정토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이미 이러한 수승한 이익을 진실로 누리게 되었다. 여러분 모두가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我通过念佛, 净土就在眼前呈现了, 我已经真实地感受到了这种殊胜的受用, 希望大家都能努力啊!”
글을 마친 뒤, 절의 모든 승려들에게 함께 염불하도록 하고, 자신은 연화감 안에 결가부좌한 채 미소를 띠고 입적하였다. 대사는 무오년(1858년) 정월 초엿새 축시에 태어났으며, 임신년(1932년) 7월 초이일 미시에 원적하였다. 향년 75세였고, 출가한 지는 55년이었다. 그해 겨울, 영탑은 자계 오뢰산(慈溪五磊山) 곁에 세워졌다. 영구를 옮겨 나르던 날에는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수천 명이 찾아와 참석하였다.
참고 자료(펌)
1. 천태종의 사상 배경
(1)법화경(法華經)이란 어떤 경전인가
1)경명(經名)
①『법화경』은 『묘법연화경』의 약칭이다.
② 법화경은 원 이름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pundarika sutra)으로 “무엇보다 밝은
연꽃과 같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③ 법화경의 내용 법화(法華)라는 뜻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를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만 결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에 비유한 말이다.
2)법화경(法華經)의 종류와 구성
| 종류 | 한역자 | 시기 | 구성 |
| 정법화경 (正法華經) | 서진 축법호(Dharmaraksa) | 276년 | 10권 27품 |
|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 요진 구마라집(Kumarajiva) | 406년 | 7권 28품 |
| 첨품묘법연화경 (添品妙法蓮華經) | 수나라 사나굴다(Jnanagupta) | 601년 | 7권 27품 |
♣이상의 3역 본 가운데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아름다운 문체와 평이한 번역으로 가장 널리 수지 독송되고 있다.
3)법화경(法華經)의 핵심 사상
| 구분 | 해당품 | 중요품 | 핵심 사상 |
| 적문(迹門) | 1품(品)〜14품(品) | 제2 방편품(方便品) | 회삼귀일(會三歸一) 제법실상(諸法實相) |
| 본문(本門) | 15품(品)〜28품(品) | 제16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 구원불성(久遠佛性) |
①적문(迹門)과 회삼귀일(會三歸一)
현세의 모습을 나타낸 부처님(석가모니불)은 그 근원불(법신 비로자나불)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본지(本地)로 부터 흔적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으로 귀일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가지가지의 법을 설했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開) 보이고(示) 깨달음(悟)으로 들어오게(入) 하기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②본문(本門)과 구원불성(久遠佛性)
진실한 부처님은 옛날에 이미 성불하였으며, 이 부처님의 본지와 근원과 본체를 밝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주의 진리자체인 법신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응신불인 석가모니불이 되어 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설한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 이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의 부처임을 나타낸 것이다.
2. 천태사상(天台思想)
(1)천태의 사상배경
1)경전을 오시팔교로 교판하고 제5시와 일승원교에 속하는『법화경』의 절대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세운 독자적인 교설이 천태의 사상체계이다.
2)천태교학은 존재의 양상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밝히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세계이론으로 일념삼천(一念三千) 사상을 내세울 수 있다.
☞제법실상(諸法實相)
천태의 교리적 핵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제법(諸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고, 실상(實相)은 참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라는 말로써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2 방편품에 나오는 말이다. 제법실상의 근본적인 세계이론으로 일념삼천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2)일념삼천(一念三千)
1)일년삼천이란
①일념(一念)은 한순간 혹은 일찰나의 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그 일념 가운데 삼천의 세계가 갖추
어져 있다는 것이다.
②삼천세계가 곧 우주이며, 한 순간에 사람의 마음속에 갖춰져 있다고 한다.
③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순간순간의 일념 가운데 삼천세계가 갖춰있으며, 우주의 삼라만상이 낱낱
의 당처에 삼천세계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④중생의 일념 속에 일체만법현상이 본래 갖추어져 있어서 다시 의지할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천태의 성구실상론(性具實相論)이다.
2)일년삼천의 성립
① 10법계 ☓ 10법계 = 100법계(法界)
② 100법계 ☓ 10여시 = 1,000여시(如是)
③ 1,000여시 ☓ 3종세간 = 3,000세계
☞10법계(法界)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6도(六度)로 보고 있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여섯 세계이다. 이 6도를 벗어난 곳이 깨달음의 세계이니 대승불교에서는 이에 성문・연각・보살로 나누고 있다. 이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의 삼승(三乘) 위에 천태는 불승(佛乘)인 또 하나의 세계를 더하여 6범4성(六凡四聖)의 열 세계〔십계 十界〕를 상정하고 있다.
☞10여시(如是)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로 만물은 여시상(如是相:드러난 형상)・여시성(如是性:내면의 본성)・여시체(如是體:사물의 주체)・여시력(如是力:잠재적인 힘과 작용)・여시작(如是作:드러난 힘과 작용)・여시인(如是因:직접적 원인)・여시연(如是緣:간접적 원인)・여시과(如是果:직접적 원인과 결과)・여시보(如是報:간접적 원인과 결과)・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형상에서 결과까지 차별이 없음)의 10가지 방법으로 존재하고 생성된다고 하는 이론이다. 곧 우주 만물 하나하나는 외적 형상과 내면의 본성, 사물의 주체, 잠재된 힘과 작용, 구조,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 간접적 원인과 결과, 궁극의 경지를 한꺼번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3종세간(三種世間)
삼세간은 오음세간(五陰世間)・중생세간(衆生世間)・국토세간(國土世間)을 말한다. 오음세간은 오온세간(五蘊世間)이라고도 하며 일체를 구성하는 색・수・상・행・식 등의 요소로서 총체를 말하고, 중생세간은 거기에 안주하는 중생을 말하며, 국토세간은 그 인간과 생물이 살고 있는 환경인 국토이다.
(3)일심삼관(一心三觀)
1)일심삼관(一心三觀)이란
① 일심삼관이란 원융삼관(圓融三觀)이라고도 하는데 일심을 대상으로 하고 삼제(三諦)가 원융함을
관하여, 삼관상이 일심 중에 성립함을 관찰하는 것이다.
② 일체존재의 실상을 삼제원융(三諦圓融)의 관법으로 발견해가는 것이다.
③ 삼제의 진리를 관하는 것이 삼관이며, 우리 한 마음이 그대로 삼제이고 원융하다라고 관하는 것
이 일심삼관이다.
④ 천태 지관수행 방법 중 원돈지관(圓頓止觀)의 정수행(正修行)의 한 가지이다.
2)삼제(三諦)
①삼제란 공(空)・가(假)・중(中)의 세 가지 진리이다
②삼제(三諦)의 이해
| 공제(空諦) | 모든 존재하는 것은 공(空)이라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
| 가제(假諦) | 모든 존재를 가(假)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제법의 체성은 공(空)하나 현상적으로 없지 않으므로 가(假)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 중제(中諦) | 가(假)인 현상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다시 가제와 공제를 상호 부정하여 이 두 극단을 넘어서는 중도(中道)를 말하게 된다. |
☞일념삼천(一念三千)과 일심삼관(一心三觀)
일념삼천과 일심삼관은 천태교학의 중심사상으로 실상론(實相論)이며 일념삼천설은 관조할 대상이고 일심삼관은 관조할 내용에 속하는 것이다.
3. 지관(止觀)의 수행
(1)삼종지관(三種止觀)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의하면 이 삼종지관은 천태지의가 남악 혜사(慧思)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1)점차(漸次)지관:차제법문(次第法門)
: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實修)하는 관법
2)부정(不定)지관:육묘법문(六妙法門)
: 때와 경우에 따라 심천(深淺), 전후(前後)가 서로 호응되는 관법
3)원돈(圓頓)지관:마하지관(摩訶止觀)
: 전체적, 종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관법
①일심삼관(一心三觀)
②사종삼매(四種三昧)
③십경십승관법(十境十乘觀法)
(2)사종삼매(四種三昧)
1)상좌삼매(常坐三昧)
앉은 채로 마음을 가라앉혀서 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진리를 관하는 수행
2)상행삼매(常行三昧)
도량 내 불상의 주위를 걸으면서 아미타불 명호를 염창하는 수행
3)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
방등삼매 혹은 법화삼매(法華三昧)라고도 하며 일정기간(3・7일) 동안 불상의 주위를 돌면서 걷기도 하고 좌선도 함께 겸하는 수행
4)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느 동작이든 관계없이 그 동작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관하는 수행
(3)십경십승관법(十境十乘觀法)
1)십경(十境)이란
십경은『마하지관』에서 관조할 대상으로 제시된 것으로 이 중에서 처음에 말하는 음계입경(陰界入境)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 9가지 경계는 생길 때마다 관조하는 대상이다.
①음계입경(陰界入境)
:음(陰)은 오음(五陰)이고, 계(界)는 십팔계(十八界)이며,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며 항상 관조할 대상이다.
②번뇌경(煩惱境)
:오음(五陰)의 과(果)를 관찰할 때 번뇌가 발동하는 것이다.
③병환경(病患境)
:‘번뇌경’으로 인해 4대가 어지럽게 날뛰게 되어 맥과 장기에 충격을 주게 되면 병환이 생기는 것이다.
④업상경(業相境)
:병환이 제거되어서 몸이 튼튼해지면, 선(善)을 행하기도 하고 악(惡)을 행하기도 해서, 결국 업(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⑤마사경(魔事境):도를 가로막는 경계
⑥선정경(禪定境):정신 통일된 삼매의 경지에서 생기는 것이다.
⑦제견경(諸見境):‘선정경’에서 삿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다.
⑧증상만경(增上慢境)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해서 교만한 마음을 내는 것.
⑨이승경(二乘境):2승의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⑩보살경(菩薩境)
:보살이 떨어지기 쉬운 경계이다. 원래 보살이라면 서원이 있기 때문에 공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방편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혹에 떨어질 수 있다.
2) 십승관법(拾乘觀法)이란?
십승관법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10가지의 방법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말하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둘째, 지식 또는 지혜만 가지고는 곤란하고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지관을 닦아야 하고
넷째, 자기가 어느 정도 수행이 익었는지 알아야 하며,
다셋째, 진리에 대한 애착마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승관법의 종류는
①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
‘일념삼천설’과 ‘일심삼관’을 말한다
②발진정보리심(發眞正菩提心)
‘부사의경’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바른 보리심을 일으킨다.
③선교안심(善敎安心)
지관(止觀)으로 진리의 본성인 법성에 안주하는 것
④파법편(破法遍)
중생이 전도(顚倒)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것을 방지하는 것
⑤식통색(識通塞)
자기가 어디서 막히고, 어디는 통했는지 돌이켜보아 수행하는 것.
⑥도품조적(道品調適)
37조도품으로 번뇌를 다스리는 것
⑦조도대치(助道對治)
근기가 둔하고 번뇌가 두터운 사람이 번뇌를 끊는 대치(對治)의 도(道)로써 번뇌의 장벽을 깨뜨리는 것
⑧명차위(明次位)
자기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
⑨능안인(能安忍)
앞 여덟 가지 법을 행하여 법장을 전환해 묘혜를 열 때, 내외의 강하고 부드러운 두 가지의 유혹을 뿌리치고 능히 안인절제[能安忍] 하는 관법이다.
⑩무법애(無法愛):법에 대한 애착이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