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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대언자
“이혼에 대하여”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의 『이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수치(羞恥) = 부끄러움.
이혼(離婚) = 남편과 아내가 서로 갈라짐.
이혼 증서(離婚 證書) = 부부가 관계를 해제하는 증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부끄러운) 일이 ‘그’(아내)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수치스러운 아내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남편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수치스러운 아내의) 손에 주고, ‘그’(아내)를 ‘자기 집’(남편과 같이 살던 집)에서 내어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남자들이 아내를 취하여 데리고 살다가, 아내가 잘못한 ‘수치되는’(부끄러운) 일이 드러나면, 이 말씀대로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의 손에 주고 아내를 자기의 집에서 내어 보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조선시대에는 양반 집안의 남자들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고 하는 일곱 가지의 잘못을 부인들이 범하면 내어 쫓았습니다.
불순구고(不順舅姑) =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
무자(無子) = 아들이 없음. (아들을 낳지 못함).
음행(淫行) = 음란한 행실.
질투(嫉妬) = 강샘. 시새우고 미워함.
악질(惡疾) = 고치기 힘든 병. 질이 나쁜 병.
구설(口舌) = 비방하는 말. 시비하는 말.
도절(盜竊) = 남의 재물을 훔침.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남자들도 이와 꼭 같지는 않지만,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일이 자신의 아내에게서 발견되면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의 손에 주고, 아내를 자기의 집에서 내어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겔44:21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겔44:22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
과부(寡婦) =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제사장은 과부나 이혼한 여인과는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복음’(신약)을 주신 신약시대에는 이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신약시대의 『영적인 과부』는 “하나님이 없다(시14:1 또는 죽었다).”고 하는 ‘불신자’(세상사람)들을 말하며,『영적인 이혼한 여인』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이혼 당한) 기독교인들을(호4:6,대상28:9)”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의 남편이십니다.(사54:5)}
신약시대의 제사장들인 ‘예수님의 사도’(지금은 성경을 바르게 좇아 신앙하는 목사)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불신자인 여자’(영적인 과부)와 결혼을 하거나, 기독교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버리신 세상과 벗된 신앙을 하는 ‘여자’(영적으로 이혼한 여인)”와 결혼하여 목회를 한다면, 신앙이 서로 맞지 아니하여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사도’(지금은 성경을 좇아 신앙하는 목사)들은 ‘영적인 과부’(불신자인 여자)와, 예수님과 ‘영적으로 이혼한 여인’(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믿는 여자)에게는 장가 들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신약시대에 성경을 바르게 좇아 신앙하는 ‘목사’(제사장)들은 ‘육적으로 과부’일지라도, 그리고 ‘육적으로 이혼한 여자’일지라도,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하려고 애쓰는 여자라면 결혼을 하여도 하나님의 뜻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신약시대의 이혼에 대하여』 신약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마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시험(試驗) = 재능, 실력, 신앙 등을 증험하여 봄.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을 시험하여 보려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진리를 알려고 예수님께 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시험해 보기 위하여 무엇을 물어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고전10:9절의 말씀에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하나님)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민21:6) 멸망하였나니, ‘우리는’(지금 기독교인들은) ‘저희와’(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연고(緣故) = 일의 까닭. 사유.
물론(勿論) = 말할 것도 없음. 무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예수님)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일의 까닭)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를 내어버린다.”는 것은, “이혼하지 않고(갈라서지 않고) 같이 살기를 원하는 아내를 억지로 내어 쫓는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남편에게 이혼 당한 여자들은 생활이 비참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창2:24)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내어버리지) 못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마19:5-6)
완악(頑惡) = 성질이 거칠고 거만하고 모짊.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그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의 손에 주고, 그 아내를 자기 집에서 ‘내어버림을’(억지로 내어 쫓는 것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19:7-8).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음행(淫行) = 음란한 행실.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 중에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같이 살기를 원하는 아내를 ‘내어버리고’(억지로 내어쫓고) ‘다른데’(다른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인 신약시대의 기독교인인 남편들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음행을 하였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대로 내어버려도 되지만, 그러나 음행한 연고 외의 다른 이유로는 같이 살기를 원하는 아내를 내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기독교인이 만약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아니면 믿고 있더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에 음행을 하지 아니한 아내를 내어버린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을 했었다면 하나님께 중심으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며, 누구라도 그 사람의 과거에 이혼한 것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는 것입니다.
혹 교파의 목사들 중에는, 어떤 목사의 과거에 이혼한 것에 대하여 트집을 잡아, “목사가 이혼을 했으니, 이혼한 사람은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대단히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예전에 이초석 목사가 각 시도의 종합체육관 등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내며 집회를 할 때에, 그 당시 교파의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집회를 못하게 방해하였으며, “이초석 목사는 이혼을 한 목사다.”라고 하면서 비방한 교파의 목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어떻게 하다가 살인을 했었다.”고 합시다.
살인을 한 후에 그 분이 하나님께 중심으로 통회하고 자복하여 살인에 대한 잘못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신앙을 열심히 하여 그 후에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면, 기독교인들은 그 목사에 대하여 “살인을 한 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살인을 한 사람은 목사가 될 수 없다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목사)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도 한, 살인자인 ‘사울’(후에 사도 바울)을 불러 회개시켜 ‘사도’(지금의 목사)로 세웠습니다.
“살인을 한 사람은 회개하고 돌이켜 신앙을 잘하면 목사가 될 수가 있고, 이혼한 사람은 아무리 회개하고 돌이켜 신앙을 잘해도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죄가 더한 곳에(죄가 많은 자들을 불러)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5:20).
과거에 살인을 했던, 도둑질을 했던, 간음을 했던, 이혼을 했던지 간에, 예수님을 믿고 그 전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려고 애쓰면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요일1:6-7,겔18:21-24),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처럼 목사로 들어서 쓰기도 하십니다.
“살인을 한 사람은 회개하면 목사가 될 수가 있고, 이혼을 한 사람은 아무리 회개하고 신앙을 잘해도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뜻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될 터인데(잠17:28,욥13:5),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잘 모르고 오해한 사두개인처럼(마22:29), 이혼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엉뚱한 말을 하여 입으로 죄를 짓는 ‘분’(특히 교파의 목사)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대교인’(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과거의 잘못을 책망하신 것보다도 현재의 죄와 허물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이 과거에는 잘못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현재에는 잘하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절대로 책망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신앙은 과거에 어떻게 했느냐’는 것보다, ‘현재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겔33:10-16).
지금 이 말씀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지’(억지로 내어쫓지) 말라.”는(마19:9) 명령을 좇아, 이후로는 음행한 연고 외에는 남편은 아내와 아내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에 남편이나 아내가 음행하였더라도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고,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산다면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고전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전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의무(義務) = 맡은 직분. 응당해야 할 본분.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혼자 살게 되면 음행(마5:27-28 마음속의 음욕과 육체의 음행)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되는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출21:10 의복과 음식 등의 가족 부양과 동침)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의무’(밥과 빨래 등의 집안일과 동침)를 다 할찌라.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의 의무를 다 하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전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분방(分房) = 부부의 방을 따로따로 정함.
절제(節制) = 방종하지 않도록 자기의 욕망을 제어함.
남편과 아내가 서로 ‘분방’(혹은 별거)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분방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남편과 아내)의 정욕을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정욕으로 인하여 넘어지게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기독교인들에게 ‘분방’(혹은 별거)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기도할 ‘틈’(기회)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하였으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좇아 순종하여 사단으로 하여금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고전7: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전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혼인(婚姻) = 남녀가 부부가 되는 일.
정욕(情慾) = 이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 성욕.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사도 바울)와 같이 그냥 ‘지내는’(혼자 사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육체의 정욕을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정욕이 불같이 ‘타는’(타올라 음란 시험에 넘어지는) 것보다, 혼인하여 정욕을 다스리는 것이 나으니라.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은 혼자 사는 것이 좋으나, 정욕을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전7: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고전7:11 (만일 갈릴찌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명(命) = 명령. 분부.
화합(和合) = 서로 사이가 벌어졌다가 다시 합함.
혼인한 자들에게 ‘내’(사도 바울)가 명하노니 {명령하는 자는 ‘내’(사도 바울)가 아니라 ‘주’(예수님)시라}.
여자는 ‘남편’(신24:1-4 초혼과 재혼을 불문하고 현재의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찌라도 그냥 ‘지내든지’(혼자 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초혼과 재혼을 불문하고 현재의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혼인한 여자들은 ‘남편’(현재의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찌라도 혼자 살든지 다시 ‘그 남편’(현재의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며}, 남편도 음행한 연고 외에는 절대로 ‘아내’(현재의 아내)를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고전7: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고전7: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버리다 = 떠나다. 등지다. 돌보지 아니하다.
“만일 어떤 믿음의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불신자인 아내)를 버리지 말며, 어떤 믿는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믿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불신자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남자나 여자)에게 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가 있어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버리지 말라.”고 하였으니,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이혼하지 말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함께 살기를 원하였는데도 이미 이혼한 사람은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하나님께 중심으로 회개하시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면 됩니다.
고전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믿는 아내로 인하여 나중에 예수님을 믿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될 수가 있고(딤전4:5,요17:17-19),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믿는 남편으로 인하여 나중에 예수님을 잘 믿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먼저 믿은 자)로서 ‘나중 되고’(둘째 부활에 참예하고)(고전15:24,계20:12-13), ‘나중 된 자’(나중 믿은 자)로서 ‘먼저 될 자가’(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고전15:23,유1:14) 많으니라.”고(마19:30) 말씀하였습니다.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구속(拘束) =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함. 자유행동을 제한 또는 정지시킴.
화평(和平) = 사이가 서로 화목함.
혹 ‘믿지 아니하는 자’(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가 ‘갈리거든’(‘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고, 조상의 제사에 참석하여 절을 하게 강요하며, 예수 믿는 사람과는 도저히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하며 이혼하기를 원하거든) ‘갈리게 하라’(이혼하고 갈라서라).
믿음의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신앙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하는 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와 이혼하고 갈라서는 일에) ‘구속받을’(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자유를 제한 받을) 것이 없느니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갈리거든’(‘예수 믿는 사람하고는 도저히 같이 살지 못하겠다.’며 이혼하기를 원하거든) ‘이런 일에’(신앙을 못하게 하는 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와 이혼하고 갈라서는 일에) ‘구속받지’(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자유를 제한 받지) 말고 ‘갈리게 하라’(이혼하고 갈라서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너희를’(기독교인들을) 부르셨으니, 믿는 ‘사람’(남편이나 아내)은 불신자인 아내나 남편과 화평하려고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이혼에 대하여』 마무리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누구든지’(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아내가 음행을 하였을 때에는 내어버려도 되지만, 음행 외에는 어떤 다른 연고로도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기를 원하는 아내를 ‘내어버리지’(억지로 내어 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기를 원하는 아내를, 음행한 연고 외에는 남편이 ‘내어버리지’(억지로 내어 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7장 15절의 말씀은, “믿는 ‘사람’(남편이나 아내)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 그 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가 ‘갈리기를’(이혼하고 갈라서기를) 원하면 ‘갈라서라’(이혼하고 헤어져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특히 교파의 목사)들 중에는 ‘성경’(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무조건 이혼은 하면 안 되고, 이혼한 사람은 목사가 될 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고집을 부리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하여(약1:5)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여서 그런 것입니다.
이상으로 『이혼에 대하여』 성경의 구절을 찾아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의 이혼에 대한 지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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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