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자동차 매체 여러 곳에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기아자동차가 유럽 시장에서 앞으로는 쏘울을 배터리 전기차로만 출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파이널 에디션’이라는 204마력 터보 엔진을 장착한 모델을 끝으로 쏘울 내연기관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며, 빈자리는 스토닉이 채울 예정이라는 짤막한 보도였다.
현재 독일 기아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3개 엔진 4가지 트림의 쏘울이 목록에 올라와 있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내년부터는 전기차 쏘울만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사를 접하고 1년 반 전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이 떠올랐다. ‘유럽에서 쏘울은 전기차로 도전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기아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 유럽에선 안 통하는 박스카 스타일
박스카 자동차는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해치백이나 쿠페 타입의 자동차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직접 경쟁상대로 늘 지목되는 닛산 주크와 비슷한 가격대임에도 판매량은 비교적 큰 차이를 보였다. 쏘울에 204마력 터보가 있다면 주크에는 218마력의 니스모 버전이 더 저렴한 가격에 버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iX20, 또 유럽 전용 모델인 기아 벤가 등, 자기 식구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 실용성과 성능 모두 모호해
쏘울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못 끄는 이유는 스타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행성능과 공간의 실용성 등이 애매하다는 얘기가 많았다. 독특한 스타일에 부담 없는 가격과 7년 무상보증이라는 강한 유인책이 있었음에도 이런 성능과 공간의 모호함은 유럽에서 쏘울의 성장을 방해했다. 또 CUV이면서 경쟁 모델들과 달리 네바퀴 굴림이 적용되지 않은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쏘울 전기차의 상대적 선전
내연기관 쏘울이 맥을 못 추는 사이 2014년 출시된 쏘울 EV가 판매량을 조금씩 늘려갔다. 유럽 대안 연료 관측 기구(EAFO)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에 따르면, 쏘울 EV는 유럽 33개국에서 배터리 전기차 판매량 9위에 있다. 전기차 모델이 많지 않기는 하지만 내연기관 쏘울의 우울한 판매량을 생각하면 결코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유럽 시장 전기차 판매량 TOP 10 (2018년 6월 12일까지의 누적 판매량 기준)
1. 닛산 리프 (11,807대) 2. 르노 Zoe (11,043대) 3. 폭스바겐 E-골프 ( 6,798대) 4. BMW i3 (5,389대) 5. 테슬라 모델 S (4,612대) 6. 스마트 포투 ED (3,380대) 7. 현대 아이오닉 전기차 (3,163대) 8. 테슬라 모델 X (2,982대) 9. 기아 쏘울 EX (2,698대) 10. 스마트 포포 ED (1,592대)
쏘울 전기차가 이처럼 엔진 쏘울과 달리 경쟁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가격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이는 닛산 리프나 르노 Zoe보다 저렴하다. 여기에 긴 무상보증 기간은 충분한 구매 요인이 된다. 또 전기차 쏘울은 내연기관 쏘울과 달리 주행 성능이나 실용성 평가에 대한 비교 부담도 덜 수 있다.
쏘울 EV는 지난해 동기 대비 올해는 벌써 1.7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이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전기차 시장에 쏘울은 적절한 타이밍에 뛰어들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아를 대표하는 전기차로 유럽인들에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장사 안 되는 내연기관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결국 생존을 위해 과감히 유럽에서 엔진을 포기하고 배터리 전기차의 길을 가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쏘울 EV 미래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 아이오닉의 급부상, 그리고 니로 라인업
쏘울 EV에게는 늦게 출발해 판매량에서 역전한 현대 아이오닉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쏘울 전기차의 성장세보다 아이오닉의 성장률이 유럽에서 현재 더 높다. 뿐만 아니라 아이오닉은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배터리 전기차 등의 라인업을 갖추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타일 역시 쏘울보다는 조금 더 유럽인 취향에 맞다.
니로 또한 고민거리다. 최근 기아는 니로 배터리 전기차를 공개했는데 완충 후 주행 거리도 쏘울 전기차보다 두 배나 더 길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니로 역시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이번에 공개한 니로 전기차 등, 라인업을 제대로 갖추게 됐다. 내년부터 유럽에서 본격 판매가 시작된다면 쏘울 EV 타격은 불가피하다.
◆ 생존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
아직은 전기차 시장이 미미하지만 앞으로 쏘울 EV는 무수한 많은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새롭게 시작될 치열한 경쟁을 버티기 위해 지금 쏘울 EV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히 변신이다. 실내 분위기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등, 아이오닉이나 니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소비자에게 줄 필요가 있다.
만약 재규어 i-페이스나 르노 트위지가 엔진 자동차였다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고 쏘울은 이를 참고해야 한다. 이왕 전기차로 가기로 한 거, 새로운 시장에 어울리는 새로운 마인드, 파괴적 마인드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용기가 없다면 쏘울 EV 역시 엔진 쏘울처럼 유럽 땅에서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