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행복을 위한 기도 방법
‘엘루 데바림(אֵֽלּוּ דְבָרִים)’ 기도는 자신보다 타인을 더 중시할 때 오히려 행복해지는 역설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에게 어딘가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유대인 전보에 관한 오래된 농담이 있습니다: “걱정 시작하라… 자세한 내용은 추후 통보하겠다.”
우리의 기본 태도는 종종 행복보다는 죄책감입니다. 마치 우리는 모든 구석에서 불안을 발견하도록 프로그램된 듯, 위험한 '기쁨'보다 익숙한 '아이고'에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행복은 또한 이상한 영어 단어에서 시작됩니다. 중세 영어 ‘hap'에서 유래했는데, '우연'이나 '무작위'를 뜻하는 'happenstance'나 'haphazard’ 같은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이 유래는 행복한 삶이 우연과 운에 의한 결과임을 암시해. 기도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듯 합니다.
우리의 소비주의 문화에서 행복은 종종 쾌락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위해 기도하는 건 자기 방종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과 쾌락은 다릅니다.
즐거움은 마사지를 받거나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것처럼 단기적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지속됩니다. 이는 번영(flourishing)으로,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 (Martin Seligman)교수가 선호하는 용어입니다. 셀리그만에 따르면 번영은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긍정적 감정(positive emotion), 몰입(engagement), 관계(relationship), 의미(meaning), 성취(accomplishment). 이를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PERMA라는 약어입니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유대교의 행복 기도는 번영을 촉진합니다. 이는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삶을 통해 경험하는 행복입니다.
행복을 위한 기도는 무엇인가? 아침 예배의 일부로 낭송하는 미tnl나(Mishnah)의 구절들 입니다. 전통적인 아침 축복의 일부로 많은 기도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엘루 데바림(אֵֽלּוּ דְבָרִים, Eilu Devarim, ‘이것이 그 말씀이니라’)”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 '데바림(דְבָרִים, devārim)'은 행동이나 행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복을 위한 기도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행동들을 묘사하는 일련의 말씀들 입니다.
기도에는 총 열 가지 행동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무한한 혜택을 주는 행위들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열매를 누리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이 신성한 관습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열 가지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이들을 공경하라
친절을 실천하라
끊임없이 배우라
내 집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라
다른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으라
삶의 신성한 순간들을 기뻐하라
상실의 시간에 다른 이들을 지지하라
진심을 담아 기도하라
나를 해친 이들을 용서하고 내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쳤을 때 용서를 구하라
끊임없는 성장을 다짐하라.
이 번역은 문자 그대로가 아닙니다. 몇 가지 실천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실천 자체에 담긴 가치를 전달하기위해 선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자 그대로 “신부를 위해 마련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구절을 “삶의 신성한 순간을 축하하다”로 표현했습니다. 신부를 위한 마련은 의식으로 신성한 순간을 기념하는 것의 중요성을 반영하며, 이러한 순간은 결혼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기념일, 아이 이름 짓기, 심지어 졸업식까지 포함됩니다. 이러한 삶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축하에 참여하고 창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긍정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행복을 위한 기도의 메시지를 강화해 왔습니다. 실제로 이 기도를 쓴 랍비들은 긍정 심리학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이를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동들은 앞서 언급한 PERMA 프레임워크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예를 들어, 삶의 신성한 순간을 기념하는 것은 긍정적 감정, 관계, 의미를 포함합니다. 의도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참여 행위이며, 기도 자체는 삶에 의미가 있다는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법—말씀, 리듬, 선율—을 아는 것은 성취감을 줍니다. ‘엘루 데바림(אֵֽלּוּ דְבָרִים)’ 기도를 행복의 지침으로 바라보면, 그 실천들 각각이 PERMA의 어떤 측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외우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행복을 증진시킵니다. 첫째, 우리를 자기 자신 밖으로 밀어냅니다. 열 가지 실천 중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포함합니다. 타인을 삶으로 초대하고, 친절을 실천하며, 애도자를 위로하는 것은 가장 직접적인 예시일 뿐입니다. 랍비들은 타인에 더 집중할수록 우리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는 겉보기 모순을 이해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이, “행복의 문은 바깥으로 열립니다.”
프랭클의 통찰은 이 기도문에서 두 번째 행복의 근원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종교적 세계관에 뿌리내리게 합니다. 기도문의 시작 구절들은 우리가 단순히 선행 목록을 읽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킵니다. 이 실천들은 영원 속에 울려 퍼지는 일련의 행위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내세에서 그 효과를 느낍니다.
다르게 말하면, 종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 이유에 대해 추측해볼 수 있지만, 나는 그 이유 중 일부가 신앙이 우리를 —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우리를 강요하기도 하며 — 단기적으로는 좋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들을 하도록 이끄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1년 후 돌아보며 해낸 것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입니다.
매년 저는 유대교 속죄일인 욤 키푸르(Yom Kippur)에 금식합니다. 이는 토라에 기록된 계명이며 4,000년 이상 이어져 온 유대교 전통입니다. 하루 종일 설교를 하고 8시간 동안 회중을 이끌며 기도하는 일을 하는 저에게 금식은 가장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금식은 그날의 경험과 타인과의 유대감을 깊게 합니다. 순간적으로는 즐겁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날의 힘을 경험했음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 항상 길러온 헌신입니다.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신앙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보물을 찾으러 가면서 바로 그곳으로 이끄는 오래된 지도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엘루 데바림(אֵֽלּוּ דְבָרִים)’ 기도는 바로 그런 지도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여정을 인도하길 바랍니다.
By Rabbi Evan Moffic (the spiritual leader of Congregation Solel in Highland Park, IL)
※ 엘루 데바림(אֵֽלּוּ דְבָרִי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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