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근무가 변경이 되어 하루 일정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홀로 강화도 남쪽을 탐방하기로 했습니다. 차 운전이 미숙한데다 길을 헤매는 편이라 홀로 다니기가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보고싶었던 곳을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카페에 매일 참부모님의 말씀을 옮겨 써 있는데, 그 배경사진을 찍기 위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깝지만 평소 안 가는 강화 남쪽 유적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돈대와 유명한 사람의 묘나 생가 등 있습니다. 돈대로서는 먼저 동막해변에 있는 분오리돈대(分五里墩臺)에 갔습니다. 돈대는 17세기 숙종 때 만든 군사시설입니다. 병사들의 초소이자 소규모 방어 시설입니다. 여기는 낙조를 즐길 수 있어서 그런지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에 장화리에 있는 장곶돈대(長串墩臺)에 갔습니다. 원래 분오리돈대와 장곶돈대 사이에 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 미루지돈대(彌樓只墩臺), 송곶돈대(松串墩臺)도 있지만, 차도(車道)에서 멀어서 못 갔습니다. 장곶돈대 옆에 군 시설이 있어서 사진을 찍을 때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선수돈대(船首墩臺)를 빼고 화도면 내리에 있는 송강돈대(松岡敦臺)에 가고, 굴암돈대(굴암돈대)와 건편돈대(건평돈대)를 빼고 외포리에 있는 망양돈대(望洋墩臺)에 갔습니다. 송강돈대는 형대를 알아볼 수가 없는 정도로 파손이 심했습니다. 망양돈대는 외포리 시장에 가까워서 그런지 관람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강화 남쪽은 광대한 갯벌이 있어서 적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교적으로 안정합니다. 그러나 현재 군인과 다르게 돈대 내에서 자취도 해야 하고, 이런 곳에서 계속 경계근무를 해야 하니 당시 병사들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화도면 사기리에 이건창 생가가 있습니다. 이건창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문장가입니다. 이건창은 어린 나이에 급제하고, 공무에 충실하고 임금님의 신뢰를 받았다 합니다. 생가 근처에 탱자나무가 있습니다. 요새지 강화를 조금이라도 든든하게 하기 위해 성밖에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심었다 합니다. 현재 갑곶돈대 내에 있는 탱자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외포리를 떠나 집에 가는 양도면 하우고개에 김취려 묘와 정제두 묘가 있어서 참배하였습니다. 김취려는 고려시대 장군이며 거란군을 막아낸 용사라 합니다. 강도시대 1232년에 최고관직에 올랐고, 1234년에 강화에서 사망하여 여기에 묘가 있는 것입니다.
근처에 정제두의 묘도 있습니다. 정제두는 고려말기 충신인 정몽주의 후손으로 양명학의 사상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초시에 급제하였으나 오직 학문연구에만 힘을 썼다 합니다. 그를 중심으로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공부하였던 유파를 강화학파라고 부르고, 이건창도 일문이었습니다. 양명학은 중국에서 발생하였지만, 정제두의 양명학은 조선적 양명학이라 할 수 있다 합니다.
마지막에 길상면 길직리에 있는 이규보 묘를 찾아 참배하였습니다. 이규보는 고려시대 문신이고 시와 문장에 뛰어났나 합니다. 최씨 무신정권하에서 아부(阿附)를 하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掌握)했던 시기임에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많은 분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합니다.
집 근처에 위인의 묘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의 맥을 이어가니 강화에서 우수한 식구님을 많이 배출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인의 묘를 직접 찾아가 참배하니 왠지 그 분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제두 묘 앞에서
망양돈대 안에서
첫댓글 역시 역사해설사선생님다운 하루를 보내셨어요^^
멋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작연에 장곶돈대와 고새헤서 40~50분 산길을 걸어서 북일곶돈대까지 닸닸왔는데...미공개으ㅔ 사진도 있는데..보여드릴까요?
오타가..작년..고생해서..ㅋㅋㅋㅋ
저도 작년에 장곶돈대와 고생⅞헤서 40~50분 산길을 걸어서 북일곶돈대까지 갔다왔는데...미공개의 사진도 있는데..보여드릴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