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 콘크리트 유토피아, 설국열차 --
이주혁님
미래를 소재로 해 근래에 나오고 있는 수많은 영화들, 드라마들, 애니, 소설 등 모두 공통적으로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고 있다. 콘크리트....같은 한국 영화뿐 아니라 서구에서 나온 것들도 그렇다. 엘리시움, 브이포밴데타, 설국열차, 더 로드 등이 모두 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질병이나 재난, 기후에 의해 문명이 파괴되고 나서 황량해진 인간 사회는 독재와 치안의 부재, 통제되지 않는 범죄, 극단적 양극화로 치닫는다고,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보여준다. 워터 월드나 매드맥스에서같은 빌런들이 맘대로 설치고 돌아다니는 그런 게 아포칼립스 이후 인간의 미래라는 것이다.
비 오는 주말에 이런 영화들을 보며 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문명이 유토피아였던가?
재난 후 문명이 말살된 사회가 디스토피아가 된다는 가정은, 문명이 인간을 마치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만 이끌었다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이념이 아주 불편하게 느껴진다. 문명은 항상 양극화와 차별, 권력의 집중으로 흘렀고 결국 독재와 권력 카르텔로 귀결해 왔다. 그리고 늘 학살과 탄압과 압제로 이어졌다. 로마가 제국을 건설하고 식민지를 넓혀 갈 때,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괜챦게 살았었다. 로마는 갈리아인을 야만인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에게 재앙은 바로 로마 제국의 침략이었을 뿐이다.
지금 현재도 지구상에 80억 인구 중 20억 명이 기아에 시달린다. 한 쪽에서는 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한 온갖 식재료들과 약이 소비되고 있고 한 쪽에서는 영양실조와 기본적인 항생제의 부족으로 영아와 유아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간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게 디스토피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길게 볼 것도 없이 코로나19의 백신이 미국과 영국에서 개발됐을 때,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개도국에서는 백신을 수입할 돈이 없어 속절 없이 사람들이 죽어갔고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우선적으로 백신을 사 왔다. 이게 인간의 문명이 하고 있는 일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그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아파트'를 지킨다고 주민들이 외부인을 쫓아내고 통제하는 장면에서는 나는 지금 한국의 아파트 부녀회가 택배기사의 탑차와 배달 오토바이를 입구에서 통제하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사실 영화 속 그 모든 장면들은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현재 우리 공동체의 모습일 뿐이다.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반지하 방에서 장애인 일가족이 몰살당하자 ㄷㅌㄹ이 그 방 안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그는 서초동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 건물에 사는 사람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사도행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 2:44~45)
이게 초기 기독교도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외쳤던 '공산주의'의 모토와 완전히 동일하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와 좀 다른데, "생산은 능력에 따라, 분배는 필요에 따라" 라는 게 공산주의다. 초기 기독교의 '코이노니아'가 점차 사라지고 이후 로마 카톨릭이 생기고 교회도 '문명화'되기 시작하면서 교황들은 세속 군주들과 권력투쟁을 하고 교회와 수도원은 막대한 재물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독일을 무대로 17세기 신교와 구교간에 벌어진 종교전쟁 (30년 전쟁)은 카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세력권을 다투면서 벌어진 것이다. 무려 30년을 이어간 전쟁에서 평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사람 살을 뜯어먹었고 시체까지 먹으며 살아갔다. 크리스트교라는 종교가 그대로 초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일까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남미 아마존같은 곳에서 보호 구역 내에 부족, 부락을 이루고 사는 토착민들은 정확히 사도행전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제임스 카메룬의 3D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의 삶의 방식이 그랬다. 거기서 '리더'는 재물과 권력을 독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기능을 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동양과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인간에게 신분과 차별은 늘 문명이라는 게 발달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게 인간 사회 최악의 비극의 시작이다. 나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진짜로 영화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이나 황야, 콘크리트..... 등의 영화들에서 나오는 그런 질병이나 재난이 발생한다면, 그 이후 남은 인간들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보다는 오히려 유토피아에 가까와지는 것은 아닐까?
한반도에서 가장 환경이 깨끗한 곳은 DMZ 구역이다. 휴전선 철조망이 있는 그곳에, 생태계는 너무나 자유롭고 균형잡히게 변화했다.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문명이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쇠락하고 그 땅에서 나는 석유를 집어먹기 위해 열강들이 난리를 치기 이전의 팔레스타인, 시리아는 지금같은 지옥도는 아니었다. 거기 사는 인간들은 오아시스를 따라 양과 낙타를 치며 그럭저럭 괜챦게 살았다. 늘 디스토피아의 원인은 인간의 문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