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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군 보도반원의 수첩’ 중에서
(1) 이석훈, 행군
목양(牧洋, 마키 히로시)78)
우리를 태운 목탄 자동화차는 아주 작은 언덕에도 헐떡거리고 있었는데, 끝내 어느 부락 입구 노상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동네 아이에게 오늘밤 숙박해야 할 목적지를 물어본다. 실은 우리 운전수도 미지의 지점이었던 것이다. 조선어로 물어보자 소년은 ‘국어’79)로,
“아직 10킬로 이상 더 가야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모두 난처하다는 듯 투덜거린다.
“어디쯤이지?”
“저기 보이는 작은 산 뒤쪽입니다.”라며 소년은 동남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는 말을 잇는다.
78) 이석훈(李石薰)의 창씨명.
79) 일본어.
“청룡국민학교 옆입니다.”라고 가르쳐준다. 시골 소년 치고는 맑은 눈을 가진 깔끔한 얼굴을 한 똑똑한 아이로 보인다. ‘국어’도 제법 깨끗한 발음을 하고 있어서 초등학교는 나왔겠지 생각하고 물어보니,“아뇨, 국민학교는 안 다녔습니다.
집에서 야학을 조금 했을 뿐입니다.”라는 말에 더욱 놀랐다.
이런일에도 ‘국어’ 보급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자동화차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고친 뒤 따라오라고 말한 뒤 2열종대로 행군을 시작했다.
이는 예정하지 않은 과정으로 우리는 자동화차의 고장을 오히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느낀 점이었는데, 고작 10킬로 내외의 행군이긴 했지만 우리는 전선의 병사들의 노고를 행군이라는
각도에서 다소나마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총 무게를 어깨에 느끼면서 10분 정도 걷고 있자 자동화차가 뒤에서 털거덕털거덕 뒤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총을 내리고 탔지만 2킬로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 됐어. 목적지까지 행군이다.”
우리는 자동화차를 남겨두고 고원(高原)을 동남쪽으로 뻗은 넓은 길을 총을 어깨에 메고 행군했다.
글자 그대로 적토 밭이 고원 저 멀리까지 종횡으로 펼쳐져 있다. 곳곳에 나무숲이 있고 부락이 있다.
적토에 파란 무늬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보리밭이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붉은 석양이 들판도 보리밭도 모두 일색으로 물들였다. 초여름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운작(雲雀)이 머리 위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그림자가 길게 대지에 드리워져 유령처럼 우리 뒤를 따라 전진했다.
처음에는 서로 얘기를 나눈 전우(!)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모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소총 무게가 자칫 체력을 갖고 노는 것 같았다.
공복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즐거웠고 행복했다. 지금 나는공복과 피로와 세속적인 모든 잡념을 초월한 높은 정신상태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감상도없이,
여기는 고향을 몇 백리
멀리 떨어진 만주의
붉은 석양에 비치면서
벗은 들가의 돌 아래
라는 군가를 떠올리고 ‘붉은 석양의 만주’를 이 드넓은 고원에서 보았다. 그때 다른 전우도 나와 같은 감개를 느낀 모양인데,
“이 풍경은 산시(山西) 전선과 꼭 빼닮았군.”라며 술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두를 묵묵히 걷고 있던 우리 지도관도
“정말이야. 황하 북쪽 연안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데.”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때 나는 과거의 기억을현재 아름답게 그리는 사람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전선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늘 이 때의 기억을 먼 미래에 아름답게 추억하는 생애를 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한 붉게 물든 보리밭 쪽을 지났다. 석양과 바람이 보리밭 위에서 찬란하게 노닐고 있었다.
나는영화 <미완성 교향곡>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거나 또 히노 아시헤이(火野葦平)의 '보리와 병사(麥と兵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隊)' . 그런 인상적인 장면 속에 자신을 놓고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해는막 저물려하면서 마지막황금빛을 안타까운듯 비추었다. 완만한 구릉도길게 그림자를옆으로드리웠고, 대지는 점점 회색빛으로 어둡게 물들어갔다. 행군은 계속 이어졌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난 지 몇 개월이던가
함께 죽을 작정으로 이 말과
진격한 산과 강
잡은 말고삐에 피가 흐른다
황혼의 정숙은 우리 행군에 의해 깨졌다.
개들이 짖어대고 아이들이 개들과 몰려와 뒤따라왔다.
또언덕을 넘어 작은 강을 따라 계곡을 내려가 마침내 한밤중에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사에 도착했다. “보조를 맞춰!”라는 반장의 힘찬 호령에 우리는 마지막 장식을 위해 늠름하게 보조를 맞추어영내에 들어갔다.
<출전 : 牧洋, 「朝鮮軍報道班員の手帖―行軍」, '國民文學' 제3권 제7호, 1943년 7월, 52~55쪽>
(2) 정비석, 사격
6월 1일. 우리는 대동 창사(廠舍)80)에서의 이틀째 아침을 맞이했다.
창사 앞의 초원에 내리쬐는 아침 햇볕이 한 여름의 더위를 생각나게 했다. 먼 산에서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지극히 한가로운 고원의 아침이다.
그러나 우리 보도반원은 한가로운 자연에 어리광을 부리며 늘어진 기분으로 있을 수는 없다.
오늘오전 중의 훈련과목은 ‘실탄사격’인 것이다. 서둘러서 아침식사를 마치자, 전원은 장비를 모두 몸에 달고, 각자 소총을 휴대하여 창사 앞의 광장에 집합했다.
“이제부터 실탄사격이다. 5발 씩 준대!”
“실탄사격이라. 조금 가슴이 떨리네”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좋아 내가 5발 전부 맞춰 보지.”
“무어야 자네가! 자네는 1발만 맞춰도 잘한 거야!”
반원들은 서로 농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탄사격’은 대부분의 반원들에게는 첫경험이기 때문에 모두의 얼굴에는 농담을 하면서도 희망과 호기심과 불안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긴장하고진지한 표정이기도 했다.
오전 9시, 우리는 창사에서 2킬로 쯤 떨어진 ○○부대의 사격연습장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이미 보도반원의 사격을 지휘하기 위한 ○○부대의 하사관들이 6, 7명 보였다.
“실탄사격을 할 때는 긴장하기 쉬운데 긴장하면 탄환은 절대 맞지 않는다”라고 요시나가(吉永) 소위는 말했다.
“발사!”라는 호령이 떨어지면 1, 2, 3, 4를 셀 정도의 시간에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80) 군대가 훈련지 등에 임시로 세우는, 사방에 벽이 없는 간단한 건물.
그것이 사격의 기본속도라고 한다.
드디어 4명 씩 사격이 개시되었다. 과녁은 3백 미터 저쪽에 서 있는데 근시인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않을 정도로 작다. 과녁의 크기는 군인이 복사(伏射)의 자세 때, 어깨보다 위의 즉 지상에 나타나는 부분과 마찬가지 크기라고 하는데, 3백 미터나 떨어져 있는 탓인지 고무공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이쪽저쪽에서 탕탕하는 사격소리가 조용한 산야를 힘차게 울렸다. 3백 미터 저쪽의 과녁부근은 퍽퍽 흙 연기가 일어난다.
4명의 사격수가 5발씩을 쏘고 나니까 조수인 하사관이 붉은 색과 흰 색을 이은 깃발을 높이 흔드는‘사격 중지’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과녁 근처의 호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가 과녁으로 가서 탄환의명중 도를 조사하고 삿대가 긴 깃발로 이쪽으로 신호를 한다.
신호는 다음과 같다.
- 맞지 않음, 깃발로 원을 그린다.
- 1발 적중, 깃발을 똑바로 세운 뒤 오른 쪽으로 쓰러뜨린다.
- 2발 적중, 깃발을 똑바로 세운 뒤 왼 쪽으로 쓰러뜨린다.
- 3발 적중, 깃발을 똑바로 세운 뒤 앞 쪽으로 쓰러뜨린다.
전체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해도 과녁으로부터는 멀지 않았다.
이윽고 내 차례였다. 나는 주어진 총을 손에 쥐고 조용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엄숙해졌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진퇴유곡의 기분이었다.
붓을 총으로 나는 바꾸어 쥔 것이다.
옛날 당나라 시인 위징(魏徵)은 “중원(中原) 또 사슴을 쫓아서융헌(戎軒)을 섬긴다, 종횡(縱橫)의 계략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강개(慷慨)의 뜻은 아직 있다”라고 노래하였다. 오늘날의 문화인은 모두 위징의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함부로 옛날 개념에 근거해 필연(筆硏)을 계속하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거편(巨篇)의 시문(詩文)을 완성하는 것보다도 1발의 탄환을 적에게 맞추는 편이 더욱 의의가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나는 아니 우리들은 검을 잡을 각오로 붓을 들어야 한다. 나는 복사(伏射)의 자세를 잡고, 과녁을 향하여 목표를 정했다. 곁에서 탕 하고 탄환 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런 일에 상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경우 과녁은 나의 적이었다. 내 안중에는 이미 적의 존재밖에 없었다.
목표를 정하고, 지척의 선상에 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방아쇠를 조용히 당겼다. ‘조용히’라고 나는 표현했으나, 사실은 내 가슴은 한 없이 떨렸다. 탕 하고 소리가 나는 동시에 반동이 꾹 어깨를파고들었다.
“뭐얏!” 하며 나는 반동을 도로 튕겨내 듯 어깨를 내밀었다. 적을 쏜 반동이라고 생각하니가만히 참고 있을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과녁 근처에서 흙 연기가 확 올라왔다. 적중했는지 어떤지는 나는 모른다. 나는 다만 진검승부로 적을 노리지 않으면 안 된다.
5발을 사격을 끝마치자 “사격 중지!”라고 곁에 있던 하사관이 명령한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윽고 첫째 과녁부터 차례로 명중의 점검이 시작되었다. 나는 제3과녁의 사수였는데 제1과녁부터제3과녁까지의 불과 수분간의 점검시간이 나에게는 영원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내 과녁 점검이다. 깃발이 어떤 식으로 흔들릴까, 나는 두근두근했다. 어떻게든 맞아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내 과녁을 상세하게 조사한 병사는 이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깃발을 똑바로 수직으로 세웠다고 생각하자 오른 쪽으로 확 넘어뜨렸다.
나는 훅하고 숨을 쉬었다. 1 발이 적중한 것이다.
나는 똑바로 부동자세를 취하면서 지휘관에게 보고를 했다.
보고
제3과녁 사수 정비석 반원
발사탄 5발
명중 1발
탄약통 기타 이상 없음
그리고 나는 총을 잡고 방향을 돌려 뒤로 물러났다.
모두 진지했다. 총을 잡으면 아무리 느슨한 인간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총에는 군인정신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붓을 잡고 있을 때에도 총을 잡고 있을 때의 이 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오늘날의 우리의 존재의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출전 : 鄭飛石, 「朝鮮軍報道班員の手帖―射擊」, '國民文學' 제3권 제7호, 1943년 7월, 55~58쪽>
4) ‘조선군보도연습기’ 중에서
(1) 이석훈, 보도연습에 참가하여
조선군보도반원 목양(牧洋)81)
저는 제1회 조선군보도연습에 참가하고, 그 연습의 경과를 다른 각 잡지와 방송을 통하여 발표했으나. 여기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중복을 피해서 소감의 일단을 적어보기로 생각한다.
이번에는 군 당국에서 천명한 것처럼 보도연습이라고 하기보다 그것의 기초훈련으로 말하자면 군이란 무엇인가,
군대생활이란 어떤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알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래서 당국이 노린 소기의 목적은 대체로 달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라고 하는 것은 제
자신의 기분으로 미루어 보아서, 군인정신의 태반을 파악했다고 자부하며, 소위 보도전사라는 어느 정도의 각오는 확실히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이 항목을 나누어서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한다.
81) 이석훈(李石薰)의 창씨명.
초년병의 가나다
우리는 먼저 “차렷!”하는 자세를 취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직접 지휘를 맡은 것은 간부후보인 젊은사관이었으나, 참으로 씹어서 먹음은 듯 간절함을 다 한 지도 자세는 깊이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상당한 연한(年限) 동안 학교교육을 거쳐 왔음으로 자칫하면 “차렷”쯤이야 하고 무시하는 기분이 속마음으로 없지도 않았으나, 이것을 완전한 경지까지 하는 데는 좀처럼 어려웠다. 이러한 것에도 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완벽을 기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교훈을 자각했다.
다음으로보조(步調)를취하는방법, 경례를하는방법, 집총하는방법, 어께에메는방법, 초년병의 가나다를 습득했으나, 어느동작도하루나이틀에완수할수있는그리쉬운것은아니었다.
그래서우리는 군대의 극히 일부만을 아는데 불과했으며, 그 백분의 일이라도 도달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저녁의 점호
군대의 기상시간은 5시 반이다. 우리도 그것에 따랐다. 일어나면 먼저 마른 헌겁 마찰인 것이다.
그것을 불과 5분만 하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으로 마당에 정렬하여 아침 점호를 하고동쪽을 향하여 궁성요배인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지휘관에 따라서 육해군인 에게 주어진 칙유(勅諭)를봉송(奉誦)하면 어떠한 성전(聖典)을 읽는 보다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군인은 충절을 다 하는 것을 본분으로 해야 한다.
- 군인은 예의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
- 군인은 무용(武勇)을 섬겨야 한다.
- 군인은 신의를 중히 여겨야 한다.
- 군인은 검소함을 취지로 해야 한다.
이러한 5개조는 바로 군인 분만 아니라, 우리들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금과옥조인 것이다. 저는 군인의 길은 인간 최고의 길인 것을 깨닫고, 군인정신을 가짐으로서 우리 국민정신이라고 해야 할 것으로믿기에 이르렀다. 밤에도 취침 전에 저녁 점호를 하는 것이었다.
내무반
막사 안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반에 속하며, 기거(起居)를 같이 하며, 바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무반인 것이다.
내무반의 생활은 먼저 검소를 취지로 하고 청결하게 규율 바르게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전우애는 태어나고 협동정신은 배양된다. 군대생활은 단적으로 말하면 내무반의 생활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짧은 기간이면서 이 내무반의 생활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습득했다. 내무반에서는 무엇보다도 과묵(寡黙)하는 것이 귀중하다. 바로 침묵은 금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자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부주의를 폭로하기보다 은근히 암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특히 야간취침 전에 막 피워대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튼 끽연 자가 압도적인 다수였기 때문에 아무리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도 할수 없는 것이었다 . 이것은 극히 사소한 일이나 끽연에 한해서는 저는 언제나 자기가 희생당하는 기분으로 지내 왔다.
그런 심리는 끽연 자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담배 공초의 처리를 군 막사만큼 시끄럽게 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끽연 자는 어디에서도 꽁초처리에는 특히 주의해야 할것이다.
담뱃불로부터 뜻밖의 손해를 인류는 입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까지 새삼스럽게 생각을 했던것이다.
기타
총을 둘러메고, 약 3십리의 길을 행군을 했으며, 실탄사격도 했다. 부대와 함께 돌격도 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느낀 것은 일선의 군인들이 고생하는 정도인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그것도 연습이라는 작은 규모의 돌격에 거의 비명을 올린 것이 아닌가.
매일 비처럼 오는 적의 탄환 아래서 죽음의 돌격을 되풀이하는 군인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라.
저는 자신의 작은 체험에서 오직 군인들에게 머리가
숙여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총후 국민은 안일한 생활을 항상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연습의 마지막 날에는 지원병과 그 외 사람들과 좌담회나 각 부대의 견학이라든지 유익한 시간이 주어졌다.
군 당국의 어버이 같은 마음을 저는 충심으로 감사하면서 다른 곳에 많은 것을 썼음으로 간단히 끝내기로 한다.
<출전 : 牧洋, 「報道演習에 참가하여」, '朝光' 제9권 제7호, 1943년 7월, 34~36쪽>
(2) 이서구, 보도연습기
1. 성장(星章)과 경애
조선군에서 피복과 병기의 대부(貸付)를 받았다. 명일에 거행될 선서식에 먼저 착용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이발관에 들러서 머리를 깎았다. 20년 만에 처음 짧게 깎는 머리다. (중략) 다방소녀는 나를 내지인인 줄 안 모양이다. 그는 나즉한 목소리로 부엌으로 통한 작은 창문을 열고 ‘저 헤이타이상(군인 아저씨) 주문이니 달고 맛있게 해주세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모자에 달린 ‘별표’가 이렇게 세상의 경애를 받는가. 아이들은 우러러보고, 거리의 사람은 감사해하고 장사치들은 이해를 떠나 위해주려는 이 총후의 믿음성스러운 적성(赤誠)을 내가 몸소 체험할 때 -더욱이 반도동포에게서 그 참된 모습을 찾아볼 때 나는 마음속으로 ‘오-냐, 걱정 없다.’ 소리를 지르게 된 것이다.
(중략)
3. 일본인
(중략)
‘여기서 주저앉으면 일본인이 아니다’
이 소리는 나를 격려해주고 고무해줄 줄 믿는다. 일본군의 공격정신은 정의필승에 통하는 바 있음은 물론이어니와 이번 연습에 참가해서 새로이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지도자 -즉 교육의 인격이다.
굳센 군율과 높은 애정이 순화된 교관의 인격이다. 초년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러주고 깨우쳐주고 북돋워주는 정성이다.
어느 부모가 그러랴! 엄부자모의 두 역할을 한 몸에 맡아서 부하에게 대하는 그 태도에나는 아들이 백 명 있어도 다- 갖다 바쳐서 훌륭한 인간을 길러지이다고 고개 숙이고 빌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었다.
4. 믿음직한 그 얼굴
(중략)
옛말에 마소새끼는 시골로 보내고 사람새끼는 서울로 보내야 사람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격언에 일대 수정을 해야 한다. 군문(軍門)은 인간대학이라고까지 한다. 아들을 낳거든 군문에보내라. (중략) 될 수 있으면 군인들의 지방행군을 많이 시켜서 촌사람들로 하여금 군인에 대한 이해와정을 갖게 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이다. 어느 부모든지 이날 밤 지원병들의 씩씩한 태도, 사내다운 거동을 보았다면 반드시 ‘참 군대가 좋은 데올시다.’ 고개를 숙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출전 : 牧山瑞求, 「報道練習機」, '朝光' 제9권 7호, 1943년 7월, 39~42쪽>
5) 안석주(安碩柱, 安田榮)
(1) 대동아전과 영화인의 임무
조선영화인협회 상임이사 안전영(安田榮)82)
12월 8일 우리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날 황군의 미영과의 개전은 제국이 동아의 해방을 위함이니 대미영서전의 찬연한 전과는 이미 필승의 신념을 굳게한 바이나 여기에는 결전체제하에 있어서 국민으로서 마땅히 거듭 깨달음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곳에 더욱이 문화인들의 사령이 생각되고 이 문화인들의 굳센 결의가 있지 않으면 아니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더욱이 외래문화에 젖어온 사람들로서 과거에 일반의 생활에 있어서 적으나 크나 그릇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음에 여기에 문화인들의 큰 반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영화에 있어서 저양키 영□가 풍□했을 때 일반의 일제생활, 더나가서는 그 정신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이 있었는가 이것이 이곳, 양키의 침략수단의 하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82) 안석주(安碩柱)의 창씨명.
과거 반도영화가 그 수효는 적다하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바만 했고 이 결과는 대중의 생활을 □□식힌바가 적지 않았다고 본다.
여기서 영화인들의 과오를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되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예술의 진화라는 것은 자의(大義의)로 돌아오는 데 있다.
이 예술뿐만 아니라 반도인 전체가 자의를 깨닫지 못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자의라는 것은 곧 황국거민이 되는 것이요 이 황국거민이 되는 때는 일본정신으로 돌아가는 데있다.
자기들은 이미 일본국민이면서 일본국민이 가져서는 안될 외래문화에 □□되였던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스스로 생기는 것이요 이식할 수 없는 것임에 우리는 그만큼 아까운 세월을 □□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 대동아전을 계기로 하여 반도의 이천사백만민중과 더 한층 환국거민 다 울게되고 이러는데는 나(私)를 버리고 폐하의 적자로써 조국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기를 우러러 맹세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영화인들도 거듭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영화인들도 영화정신부대가 되자는 말이다 이것이 오늘의 영화인의 나아갈 길이요 여기서 이 시국에 처한 영화인의 임무라 생각한다.
그것은 금일의 전쟁에 있어서 영화의 사명이 큰 까닭이요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도 더욱더 정치를 떠날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탄만 무기가 아니다 □□역이 무기라하면 글과 말보다도 영화의 진실성 또는 그 박력은 정확한 보도와 민중을 지도하는데 큰 추진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영화에서 정실히 인식된 바로여기에 영화의 사명이 크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가지고 대동아공영권과 세계신질서를 위한 성전의 큰 무기가 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그 영화에 종사하는 자의 정신이 그 육체가 전시국가의 이념하에서 출발해야한다.
우리는 동세아의 해방을 위해서 황인종의 미래의 안녕을 위해서 싸운다는 이념도 있어야하지만 이이념위에는 국민을 사랑하옵시고 인뢰 사랑하옵시는 폐하의 대어심이 계심에 이 대어심밑에서 자기의맘과 몸을 모두 바치는 그 정신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성전에 영화정신부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전 : 安田榮, 「大東亞戰과 映畵人의 任務」, '매일신보', 1941년 12월 18일>
6) 윤두헌(尹斗憲, 平沼文甫)
(1) 들판은 전쟁터 -충남을 둘러보고
평소문보(平沼文甫)83)
보리밟기는 여자와 아이들이
일전에 나는 충남 지방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딜 가더라도 총후(銃後) 농촌이 진지하게 싸우는 모
83) 윤두헌(尹斗憲)의 창씨명.
습에 감동을 받았다. 특히 놀란 것은 부인들이 들판에 나가 일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안방 깊숙이 틀어박혀 바깥 공기를 맡을 일이 없던 반도의 부인들이 지금은 증산에 공출에,남자 못지않은 기개로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
마침 보리밟기를 할 무렵이었는데, 옛날에는 의례 남자가 하는 일로 여겨지던 보리밟기에 남성은 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전부 여자와 아이들이 하고 있다. 나는 곳곳에서 몸뻬 차림의 여자들이 쌀쌀한 들판에 나와 보리를 밟고 있는 광경을 보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머지않아 귀여운 아들과 손자를 또는 사랑하는 남편을 오빠를 동생을 전쟁터에 보내고 총후의 가정을 지켜갈 그녀들이었다.
농한기는 없다
농촌에서의 싸움은 라바울이나 마샬이나 트럭의 황군 장병들의 피범벅 싸움 못지않게 격렬하다.
벼,보리, 면화를 비롯해 가마니, 새끼줄, 도토리, 싸리 껍질에 이르기까지 30종이 넘는 공출을 농촌은 전부감당해낸다. 30종이 넘는 공출이라는 것은 거기에 있는 것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벼, 보리, 면화등은1년내내공들여재배해야하고, 가마니나새끼줄도정성을다해만들어야한다.
게다가그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궁핍하다. 나라(御国)84)를 위해 공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으로 지은 쌀이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석유가 없어서 밤에는 등불도 밝힐 수 없다.
1년 내내 일하고 농한기라는 것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증산에 힘쓰고 있다.
손끝을 상해가면서 가마니 짜기나는 어느 부락에 머물렀을 때 여러 집을 돌아봤는데, 어느 집에 가더라도 방안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젖은 지푸라기로 열심히 가마니를 짜고 있었고 남자는 여자와 아이들이 만든 가마니를 옆에서 손질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개 정도 만드는지 물어보니, “기계로 짜면 하루에 한 사람이 20개는 만들 수 있지만, 이런식이면 두 사람이 달려들어도 10개밖에 못 만든다”며 만면에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저녁에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등불이 없어서 저녁에는 새끼줄밖에 꼬지 못한다”고 했다.
저녁 늦게까지 그들은 등불도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 새끼줄을 꼬고 있는 것이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곳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가마니와 새끼줄이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가마니와 새끼줄을 검사하는 날이 되면, 소나 차가 없는 그들은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새끼줄과 가마니를 검사장에 가져 오는데, 그 날은 노인부터 여자와 아이들까지 일가족이 모두 나서서 운반한다.
가마니 검사장에 서서 보니 동서남북의 길이 가마니를 짊어진 남자와 머리에 올린 여자의 행렬로 하얗다.
보고 있는 동안에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가마니는 광장 한 구석에 커다란 산을 만들었다.
“전부 15만 장입니다”라는 검사원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어투가 묘하게 들렸다. 15만 장의 가마니
84) 미쿠니 : 일본의 경칭.
산이라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겠지만, 그 한 장 한 장이 농촌의 여자와 아이들의 손끝이 닿지않은 것이 없다. 그녀들이 등불도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 손끝이 갈라질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든 한 장한 장의 가마니가 이윽고 비행기의 부품을 넣고 통이나 탄환을 넣어 남방 전선으로 보내진다.
백성은 들판에서 싸운다
옛날 백성은 쌀을 만들고 가마니를 만들었지만, 오늘날의 백성은 비행기를 만들고 탄환을 만들고 있다.
1943년도에는 배의 적재능력이 부족할 때 남방에서 68만 톤의 쌀을 싣고 왔다.
만약 국내에서 68만톤의 쌀을 생산할 수 있고 남방에서는 쌀을 운반하는 대신 비행기를 만드는 알루미늄의 원료 보크사이트를 운반해 왔더라면 비행기 2만 3천 대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남방 전선에서는 황군 용사들이 비행기가 부족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일의 100대보다 오늘의 1대를”이라고 하는 오늘날에 있어서 2만 3천 대의 비행기를 손해 보는 것은 전쟁 상황에 너무나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황군 장병들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에 백성들은 들판에서 방에서 싸우고 있다. 68만 톤의 쌀을 만들기 위해, 아니 2만 3천대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충남 공주에서는 경지면적 80% 정도에서 2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외투를 입지 않는 공무원
공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공주에서는 공무원은 외투를 입지 못하게 되어 있다. 출근 때는 반드시 국민복에 각반(卷脚絆) 차림이다. 그것은 아베(阿部) 군수의 말에 따르면,“민중의 선두에 서서 증산을 독려하고 공출을 독려하는데, 불빛도 없는 방에서 가마니를 짜고 있는 백성들 앞에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서 있는 공무원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는 백성들도들어줄 리가 없죠.
진두에 서서 부하를 이끌고 사지로 나서려고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죽어서 보여줄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한다.
장기면이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서는 국민학교 아동들에게 점심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보건에 문제는 없을까요?”라고 묻자, 처음에는 교원들이 시도했는데 전혀 영향이 없어서 아동들에게 실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는 농촌의 식량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인데, 농민은 참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생은 내일에 약속되어 있는 희망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오늘의 고생은 발가락 끝이 곪는 정도의 상처이다. 전쟁에 이기지 못한다면 폐가 곪는다. 발가락 끝이 곪은 것은 발가락 하나 정도 잘라내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폐가 곪으면 목숨이 없다.
도리어 오늘의 고생 때문에 가사(假死)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쟁에 승리하기까지는 온전히 살아남아야 한다.
농촌은 그렇게 싸우고 있다.
<출전 : 平沼文甫, 「野良は戰場-忠南をめぐつて」, '新女性' 제3권 제4호, 1944년 4월, 30~31쪽>
(2) 입술에 노래를 담고
평소문보(平沼文甫)85)
요즘 증산(增産)이라는 말이 모든 산업부문에 걸쳐 미증유의 기세로 강조되고 있다.
국가가 ‘황국의흥패(興敗)’를 내걸고 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 완승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이는 국민에게 내려진 국가의
지상명령으로, 전력을 다해 임무완수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명칭이 말하는 바와같이 노동자가 아니라 증산전사이다. 망치와 가래와 괭이를 들고 싸우는 군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증산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일한 결과로 얻게 되는 제품에 너무 신경을 쓰는 나머지 일하는 것 자체의 의의를 잊고 신성하고 즐거워야 할 근로를 싫고 짜증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하고있다.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고마운 특전이다.
노동은인생의 의무가 아니라 특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보다는 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 근로는 인생의 가장 숭고한 예술이 될 수 있다.
근로가사회적 의무이거나 임금이나 부를 얻기 위한 수단일 경우 신성은커녕 그것은 분명 죽을 것 같이 싫어하는 것이 된다.
나는 어릴 적 선생님으로부터 “노동은 신성하다”라고 배웠는데, 그와 동시에 근로예찬자인 선생님은종종 나에게 나쁜 짓에 대한 징벌로 그 신성한 임무를 부과하였다.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창문을 닦거나 변소 청소를 할 때마다 “노동이 선생님이 말하는 것처럼 신성하다고 한다면 나는 나쁜 짓을 한 대가로 상을 받은 셈이 된다.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선생님이 나쁜 짓에 대해 상을 준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다”라며 흐리하게나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의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 뒤, 일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것과 떼어놓을 수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노동이 지닌 의미가 인생의 모든 의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만약 노동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신성한 것이라 한다면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한 종족이지만, 그 반대라면 인생의 불행은 선천적인 것으로 죽음 외에는 이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없다고 생각하였다.
◇
인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 한다면 근로 그 자체도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즐거워야 할 근로를 싫어하게 만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에게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일을 해도 일을 해도
내 생활은 편해지지 않고
가만히 손을 본다.
85) 윤두헌(尹斗憲)의 창씨명.
다쿠보쿠 역시 근대인이었던 모양이다. 이 시에 따르면 일한다는 것은 짜증나는 것이지만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 싫은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일하지만 전혀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며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명인 기질이 있는 정장(丁匠)은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만들고, 만족할 수 없는 제품은 아무리 많이 나오더라도 부숴버려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우리는 지금도 시골에 가면 가난한 노농(老農)이 목적을 망각하고 근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근대의 박래(舶來) 경제학이 의미하는 바에서는 생산이란 결과가 문제이지 그 과정은 전혀 무시되고있다.
바꾸어 말하면 오직 상품을 몇 개 만들었고 얼마나 좋은 물건을 만들었는가가 중요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만드는 자의 정신적 작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드는 자의 기쁨, 일하는 자의 행복감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만든 물건의 완성도보다 그 물건을 팔아 얻은 이윤이 목적이다.
잘 팔리는물건을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 오직 이 한 가지에 의해서만 경영자는 기업을 하고 노동자는 일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노동은 신성하기는커녕 죽음과 같은 것이다. 이윤이 목적이고 근로가 수단이 되는 곳에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수단이 사용된다. 수단이면서 또한 죽을 듯이 싫어하는 노동을 되도록적게 하고, 목적인 이윤을 되도록 많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경제 행위이다.
그리고 물건도 그 가치가 화폐로 결정된다.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 쏟은 정성과 그 물건이 생명에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마운 것인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어느 날 친구 집을 방문하자, 그 부부는 다음과 같은 의견충돌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부인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옷을 바느질하고 있자, 남편이 말하길, “당신은 경제적인 머리가 없기 때문에 바보야”라고 했다.
그 이유는 아이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 ○원 ○십전, 그것을 바느질하기위한 시간이 며칠, 그것을 계산하면 백화점 등에서 파는 옷을 사서 입히는 게 싸게 먹히지 않겠느냐하는 것이다.
가격에는 민감하면서도 물건에 들어간 모친의 애정에 둔감한 것은 비단 그 친구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공업증산을 위해 새로운 기계가 사용되고 농업증산을 위해 좋은 도구가 고안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직장이 활기가 없는 살벌한 곳이 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증산 광산, 농촌을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광산이나 농촌이 많은 물건을 만드는 데 여유가 없고, 만드는 자의 기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원인이야 어쨌든, 능률 증진의 요체는 근로 그 자체가 일하는 자에게는 제일 중요한 의의를 갖도록해야 한다.
문명이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함으로써 발달한다는 생각에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노동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시키는 데 있다. 인간의 본성은 상대를 정복하고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지는 않다. 탄생시키는 데 최대의 기쁨을 느낀다.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일을 어떤 목적을 위해 하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일하는 것자체에 즐거움이 있을 경우에는 인간은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몰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능률 증진의 기본 동력이다.
이것을 하면 건강하게 된다는 목적의식만으로 땀을 흘리면서 몰두하여 경기를 하는 멍청이는 없을것이다.
그저 재미있어서 할 뿐이다. 승리한 뒤 느끼는 쾌감이라는 것은 단지 덤일 뿐이다.
하고 있는것 자체에 목적의식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의식되지 않지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즐겁기때문에 하게 되는 운동경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예술이다.
증산을 위해 목적이나 의의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겠지만, 근로를 예술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에서 유대인적 이윤 추구성의 추방과 함께 근로를 임금획득의 수단이라는 타락의 나락에서 예술의 왕좌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본디 일하는 곳에는 노래와 춤이 따라다니게 마련이었다. 일본 내지의 시골에 지금도 남아 있는 축제(마쓰리)나 춤, 조선의 시골에도 희미하게나마 잔영이 남아 있는 민요나 오락은 원래는 근로를 즐기기 위해, 근로와 결부되어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일하는 것을즐겼는지 알 수 있다.
경사가 심하고 높은 산에 있는 밭두둑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농부의 모습을 보라. 마음에 태양을 담고 입술에 노래를 담고 있는 사람에게 일하는 것은 하루 세끼의밥보다 즐거운 일이다. 즐겁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는 데서,증산이 싫어도 증산된다.
<출전 : 平沼文甫, 「脣に歌をもて」, '內鮮一體' 제5권 제8호, 1944년 8월, 26~28쪽>
7) 정비석(鄭飛石)
(1) 지식인
×형
지난번 저는 어떤 용무로 경성에서 25리 쯤 떨어진 용인이라는 시골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다행히 그곳 주민들과 2, 3시간 동안 무릎을 맞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회담 덕분에 저는 여러 가지로 지금까지의 제 자신을 다시 반성하고 다시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민들을 대하고 먼저 느낀 것은 그들의 순박함이었습니다.
그들 생활의 소박함이 그대로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으며, 물끄러미 그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자연히 이쪽의 마음까지 순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기교를 부리고, 끊임없이 술책을 짜내는 도회지 사람들 -그중에서 지식인생활이라는 것은 농민들의 생활에 비하면 얼마나 보기에 딱한 허위와 회의로 가득 찬 것일까요.
지식인이라고 하는 것은 노도 (怒濤)처럼 신변에 다가오는 엄숙한 사실에 직면하고도, 그것을 회의(懷疑)하는 것이나, 그렇게 회의하고 싶은 것은 즉 생활 그 자체가 그만큼 확고하지 않은 증거 밖에 되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지식인 생활에서 회의를 마이너스하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요. 회의야 말로 지식인의 유일한 생활도구이며, 생명의 활력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일까요. 지금 여기에서 단안을 내릴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잠깐 진지하게 생각하면 자연히 확실해지는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회의라는 것은 생명력의 낭비적인 소모일 뿐입니다. 철학은 먼저 의심하라고 가르치고, 과학은 의심함으로써 진보한다고 말하지만,인간은 현실을 토대로 살고 있으며, 생물인 이상, 엄숙한 현실을 머리부터 부인하고 덤빈다면, 의심을위한 의심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의심하고만 있어서는 신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신념을 갖지 않는 인간만큼 불쌍한 동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신념 없이는 행동이 태어날 리가 없으니까요.
이번에 시골에 가보고 놀란 것도 우선은 농민들이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소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어떠했느냐 하면 농민들은 먹고 들일을 한다, 말하자면 그것만을 되풀이하는 숨 쉬는 중요한 농기구 같았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열렬한 국가의식 아래, 나라를 위한다면 백번 죽어도 물러나지 않는다는 훌륭한 각오로 부지런히 생산 확충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꿔말하면 위정당국의 지도가 좋았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농민들 자신의 자각도대단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행동은 모두 국가에의 봉사였습니다. 그들은 전선의 병사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놋쇠제품헌납운동이 한 번 일어나자, 가난한 살림에도 그들은 앞을 다투어 식기를 서로 내어주며, 어떤 집은 딸의 혼수용 놋쇠대야를 아낌없이 헌납했다고 합니다.
또 쌀 절약을 위하여 모내기 때마저도 점심은 각자가 가져 온 도시락으로 때운다든지 생산 확충을 위하여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자지 않고 가마니를 짠다든지, 듣고 있으면 참으로 눈물겨운 행위들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 지식인은 어떻습니까. 겨우 최근에야 시국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아직도 시원찮은점이 있고, 자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만한 것이 많지 않습니까.
조금 장황한 듯합니다만 과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결론을 서두르겠습니다.
일본은 지금 국가총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싸우고 있는 한 이겨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전쟁에서지는 것만큼 참혹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알면 회의를 핥으며 사는 지식인이라도 가만히만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쯤에서 그만 회의를 던져 버리고, 필승의 신념을 갖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않겠습니까.
<출전 : 鄭飛石, 「知識人」, '東洋之光' 1942년 7월호, 88~90쪽>
8) 조용만(趙容萬)
(1) 찻간에서 생긴 일
왜 이렇게 볼품없이 보이는 것일까. 반도에서 보는 것과 같은 흰 옷인데, 내지의 도시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반도인의 흰 옷은 왠지 눈에 뜨이게 볼품없이 보인다. 땟국이 묻어 있고 아무래도 불쌍하게 보인다.
특히 부녀자의 흰 옷이 더 그렇다. 이런 것도 흰 옷을 폐지해야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전차 속이다. 비가 오는 탓인지, 사람이 그다지 붐비고 있지 않다.
모두 자리에 앉아 있어서 서 있는 사람은 없다. 건너편의 좌석 가장 구석 쪽에 이처럼 볼품없는 반도의 흰 옷을 입은 부인이 한 사람 앉아 있다. 커다란 보자기를 안고, 무표정한 얼굴로 멍청하게 창밖을 바라보고있다.
나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오사카의 전체 인구의 1할이 반도인입니다, 이들 반도인은 지나사변 후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각이놀랄 만큼 훌륭해져서 여러 가지 총후봉공(銃後奉公)을 해 왔습니다. 고사포를 헌납하거나 국방헌금을하는 등 당국을 매우 감격시키고 있어요.”
친구는 내가 지루해 할까봐 끊임없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도인 중에도 부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10만 엔 대의 부자는 얼마든지 있고, 백만엔 대의 부자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반도인의 지위도 차차 향상되고 있지요.”
친구가 이야기하는 동안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50대 안팎의 양복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띠고 우리쪽을 흘끔흘끔 몰래 보고 있다. 너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단다라고 하는 눈초리이다.
아무래도 반도인 같다. 머리를 깎은 모양이나, 옷매무새로 보아 장사꾼 같은데, 장사꾼이라면 어쩌면 지금 친구가말한 것처럼 이번 사변으로 10만 엔 대의 부자가 된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친구는 양복신사가 빤히 쳐다보는 게 무안했는지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비도 차차 그치고 있다. 정거장이 가까워질 때마다 차장이 들어와서 꼿꼿이 부동자세로 공손하게 모자를 벗고 “다음은 무슨 무슨역입니다”라고 소리를 치고 나갔다.
갑자기 전차가 이상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급정차를 했다. 차 속의 사람들은 크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넘어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무표정하던 흰옷의 부인도 이번 만큼은 당황해서 차 안을두리번거렸다. 친구도 재빨리 창을 열고 차 앞뒤를 살폈으나 왜 급정차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무슨 무슨 역입니다”라고 소리를 치던 차장이 얼굴과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허둥지둥 차안에 나타났다. “지금 전차 고장으로 급정차했습니다만, 승객 여러분 중에 다친 분은 안 계십니까”
얼굴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서 거기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손등에도 커다란 상처가 보였지만 차장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승객 중에는 물론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다. 차장은 승객 중에 부상자가 없다는것을 알자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의 피를 닦고 다시 그 손수건으로 손등을 감았다.
승객의생명을 지키고 있는 차장으로서 훌륭한 태도이다. 그리고 천천히 승객에게 인사를 하더니“대단히 죄송하지만 제 부상을 증명해 주실 분 안 계십니까. 명함에 시간과 장소와 부상 정도만 써주시면 됩니다 정말 .
죄송합니다만 어느 분인가 -” 이러한 경우 승객의 증명이 있으면 회사 쪽에서 치료도 해 주고, 여러모로 그렇게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차장은 누군가 유지가 없을까 하고 차 안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응하려는 기미가 없다. 나쁘게 말하자면 당신 부상을 누가 상관하겠어 하는 태도이다.
실제로 명함을 내어주면, 나중에 호출을 받거나 하여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모두 잠자코 있는 듯하다. 차장은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역시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맞은편의 그 양복신사가 명함을 꺼내면서 일어섰다. “내가 증인이 되어 드리지요.
명함을 드릴 테니 당신이 좋을 대로 쓰십시오.” 차장은 황송해서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면서 명함을 받았다.
잠깐 명함을 보더니 “아, 반도 분이시군요.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며 한층 감격한 듯 그는 반도인인 양복신사에게 거듭 인사를 올렸다. 차 안 승객들의 시선은 모두 이 반도 신사 쪽으로 집중되었다.
신사는 멋쩍은 듯 약간 얼굴을 붉히고 있다. 구석의 흰 옷을 입은 부인도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목을길게 빼 신사 쪽을 보고 있다. 나는 어쩐지 어깨를 으쓱하며 유쾌해졌다.
(6월 15일)
<출전 : 趙容萬, 「車中のこと一」, '東洋之光' 1942년 7월호, 86~88쪽>
9) 조우식(趙宇植, 白川榮二)
(1) 보도연습보고 1 -연련일기초(演練日記抄)
조선군 보도반원 백천영이(白川榮二)86)
○월 ○일
바쁜 편집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것이 바로 내 생활에 맡겨진 동분서주이다.
이 긴장된 우리들의 총후에서의 문필 생활 속에, 지금은 보도의 길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련의 날이 왔다.
조선군 보도부의 배려에 따른 보도 연습 참가다.
총후에서 보도의 첨병으로서 우리들은, 항상 잊지 않고, 대동아전쟁 관철의 필승의 신념을 국민에게 고취하고, 승리를 위한 결의가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필사의 노력을 바쳐 온 것은 미력이라 할지라도 나의 오늘날의 거짓 없는 말이다.
이번이야말로 나는 군기, 공격 정신의 진수를 체득하고 싶다. 오로지 이 일념만이 나의 젊은 몸속을분류(奔流)처럼 머문다. 이 커다란 긍지.군에서 대여 받은 군복과 성장(星章)의 군모를 갖추고, 병기를 갖고 선서식으로 향하는 나의 감정은
오로지 성스럽고 맑게 개어 있다. 천황폐하 근처야말로 죽음을 넘는 무아(無我)가 있고, 일찍이 천황의부름을 받아 간 친구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예정 시간 14시 30분에는 무장도 늠름한 보도반원 55명이 정렬했다. 선서식이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
86) 조우식(趙宇植)의 창씨명
는 맹세를 말하는 것이다.
참모장 및 보도부장 각하의 열렬한 훈시. 다시금 나는 진지한 감투 정신에 불타 이 영광을 더럽히고싶지 않은 것이다.
언제나 약해 보이는 칙무반원(則武班員)[미쓰오(三雄)]도 오늘은 무척이나 혈색이 좋은 야무진 입술이다. 이 불굴의 연성(鍊成)의 결의는, 그에게 새로운 시정신을 낳게 할 것이리라. 경성의 하늘은 얼마나 아름답고 맑은가.
○월 ○일
비장한 결의를 품고 떠날 아침이 왔다. ……(판독불가)…… 그리고 엄숙한 아침이다.
이 아침에는 심한 일상의 피로가 어찌 된 일인지 가볍게 사라져 버렸다.
흥분한 채 잠들지 못하는 내 상념은 위대한 싸움의 들판에 내던져졌고, 국가로 막 달려가려하는 많은 존엄한 상(像)이, 청춘의 과시를 총 앞에 거는절대적인 혈액이 흐름에 합류하여 맥동한다.
새 군복을 입고, 배낭을 지고, 각반과 혁대를 나라는 약한 몸에 꽉 매는 순간, 이미 나는 일개의 감정에 살아온 총후의 인간은 아니다.
신병(神兵)에 협력하는, 바쳐진 생명이고, 복종에 살아가는 귀일(歸一)된 일본의 군인이다.
이 감정이 나를 포위하고, 여기에서 살아가는 영겁의 흥분은, 더욱더 나를 굳건한 맹세로 묶게 했다.
꺾이지 않는 고고한 야마토 민족의 진지한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 우리들 문화에 삶을 바쳐 온 사람은, 이념 속에서 국가의 장엄한 모습을 찾아 왔던 것이다. 대동아전쟁의 히부타(火蓋.화승총의 화약을 넣는 부분의 덮개-역자)를 끊은 그날부터, 우리들의 사고는 새로운 모든 신념에 의해서 비약했고, ‘몸으로 배우는……’ 것으로 열의가 바뀌게 된 것이다.
싸움은 이론이 아니다. 전투 정신의 진수는 생사를 초극한 경지에 서서, 앞장서서 몸을 바쳐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아의 정신이다.
나는 당시, 원리를 말하는 것보다 싸움의 들판에 설 수 없는 통렬한 비애에 이를 악물었고, 붓을 쥐는 손끝에 원망(願望)을 담아 참된 국민의 숭고한 정신을, 총후가 되더라도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병기창의 문으로 들어가, 미약하나마 받들겠다고 맹서하고 얻은 감격은 지금도 가슴에 스며들어 넘치고 있다.
이번 보도반원 연습 참가는 내게는 육군에서 봉사하는 두 번째 봉공이다. 1년 전, 우연한 병으로 비분을 남긴 채 자리를 물러난 후, 지금까지 나는 철저하게 군인정신을 품고 총후 생활을 해 왔다.
당시 창문(廠門)에 발을 디뎌놓고, 부동의 자세로 군인 칙유(勅諭)를 제창하는 나는 싸우는 산업전사로서, 군국(君國)에서 생을 향유하는 기쁨을 어떻게 혈액으로 빨아들였을까.
눈알이 움직이는 것은 정혼(精魂)이 깃들여 있지 않은 것이다. 군인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나는 그 때 이상의 엄격함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군복을 입고 있는 한 군인정신의 진수를 발휘해야 한다. 수련을 더욱 실천화해서 주어진 문화의 첨병으로서의 직분을 완수해야 한다. 기상에서 출근준비의 몸가짐을 제한된 시간 내에 완료하기 위해 서둘러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민첩하지 않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순간 나는 이번 연습으로 한 사람의 완전한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에 불탔다. 그것은 내 거짓 없는 심회(心懷)이다.
‘군기는 군대의 명맥이다’라고 하는 것은 병기창 당시 엄히 들어온 말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한 집합시간에 늦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궁(神宮) 뒤 참배길(參道)을 달리는 내 마음은 초조할 뿐이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복종의 정신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도리이(鳥居)87) 밑에 땀이 배이고 호흡이 가빠진 나를 멈춰 세우고, 정연하게 진좌(鎭坐)하는 신앞에 깍듯이 예를 올리는 나는, 거짓 없는 절대적인 무아였다. 말없이 몸에 스미는 삼천년을 흐르시는고귀한 신의(神意), 이 경건함 …… 현기증이 났다. 발 안쪽 살이 찌릿찌릿 경련이 났다.
그렇지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시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 아직 아침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경성 거리를 바라보니, 이 거리의 가장 간소한 휴식이 오늘의 새로운 일을 앞두고, 이 깊고 깊은 후미진 곳에 서 있는 나의 끝없는 감정은, 멀리 포격 소리 나는 저쪽에서 교차하고, 바람(願)의 마음은 목적지 ○○평야로 이어졌다.
나는 쓰러질 때까지 군인의 명예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들 보도반원은 경성에서 열차를 탔다. 싸움의 벌판으로 달려가는 병사다. 달려갈 수 있기 위해서 연성해야 하는 병사다. 누구에게나 감출 수 없는 흥분과 희망의 색이 넘쳐 있다.
지금까지의 나라는 개인을 버리고 무사(無私)의 훈련을 받음으로써 얻은 귀중한 체험을 총후의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으로 가슴이 옥죄는 듯하다.
그 긴장된 분위기 속에 열차는 평양역에 도착했다. 곧장, 준비된 세 대의 트럭에 나누어 타는 동안, 평양에 사는 젊은 시인 도쿠야마(德山文伯) 군이 두 사람의 모르는 친구와 함께 마중 나와 주었다.
그와의, 편지왕래만 했던 우정이, 여기에서 게다가 남다른 사명의 여행을 떠나는 도중에, 만났다는 것은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역사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장한 내 모습을 본 그들은 오늘날까지의내 시와대조해서 마음속에서무슨 생각을했을까? 순간 나는더 좋은작품을 쓰고싶다는 생각을했다.
내리쬐는 열기의 거리를 자동차는 달린다. ○○부대에 도착.
우리들을 말없이 맞이하는 초병들의 얼굴과 눈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곧장 총이 건네졌다.
문장(紋章)88)이 붙은 소총. 내가 일찍이 체험하지 않았던 경건한 감정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육체처럼 병사에게는 혈액이 된 총. 그것은 늘 잊을 수 없는, 천황폐하의 미천한(醜. しこ. ‘나’의 낮춤말 -역자) 방패가 되겠다는 결의와 결부되는 것은 아닐까? 소총을 눈앞에 본 나는 연습 동안 몸으로 지키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적을 쓰러뜨리고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무기라는 것과는 별도로, 나에게는 총에 대해서 남다른 애착이 있다.
나는 소총의 성장과정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도쿄 시절에 내 청춘은 경주(傾注)되었고, 소총 때문에 병사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생산하는 나는 심혈을 기울여 기계와 씨름해서,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손잡이를 선반에 걸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피가 이 총 속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그 시절이 확실하게 되살아난다. 악전고투하는 전장의 영상이 또렷이 내 생성(生成)의 기억을 보여 준다. 총을 멘 적이 없는 반원들은 열심히 조종을 배우고 있다. 이미 사념(邪念)은 없다.
오로지 병사로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총을 멨다. 탄창을 부착했다.
87) 신사의 입구에 세운 기둥 문.
88) 집이나 단체를 나타내는 일정한 표시.
이로써 형태만은 어엿한 한 사람의 완전한 병사다. 그렇지만 트럭을 탈 때까지의 가까운 거리에도 어깨의 총이 휘청거리고 있는 반원이 있다. 이것을 바로하지 않으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세 대의 트럭에 나누어 탄다. 연습지로 향한다. 우리들을 태운 목탄 자동화차는 시내를 빠져 나가 전진한다.
거리를 벗어나니 아름다운 논밭이 맹렬한 먼지의 포장도로를 끼고 전개되었다. 반도에서 태어나 반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나. 다만 여행을 통해 겉핥기로만 느낄 수밖에 없는 나는 새로운대상을 만날 때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비애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반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도시에서 자란 향토인.
그것이 나를 끝없이 처량한 감정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이 기회는 그런 기분이 조금도 없다. 오로지 어떻게 군규(軍規)의 진수를 체득해야 하는지에만 필사적이다.
두, 세 번의 고장을 되풀이한 뒤 엄숙한 듯이, 아름다운 숲이 우거진 산기슭을 차에서 내려 행군한다.
내 생애를 통해 첫 행군이다. 총 무게가 어떻게 이 정도로까지 내 어깨에 스며들고 있는 걸까.
턱이빠질 듯한 고통은 아직 느낄 수 없었다. 전우들은 ……(판독불가)…… 그 발걸음은 때때로 보조를 흩트려 놓는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지하다.
나는 일상적인 단련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20분도 안 되는 가벼운 행군은 병사에게는 겨우 산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산그늘에 놓인 두 마리 말이 조용히 아무런 사념(邪念)도 없이 풀을 뜯는 정경은, 내가 일관하고자하는 세찬 생성의 욕구와 실로 대척적(對蹠的)인 목가적 서정이다.
대동평야로 항하는 도중, 길을 잃고, 나누어진 2반은 어디로 갔을까? 전우를 생각하는 동료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몇 번이고 내 귓가를 지나간다. “저기다! 왔다.” 그 환성에, 조금 지치려고 했던 동료들도원기를 되찾고 있었다. (군화 굽에 박힌 - 역자) 쇠징(鐵鋲) 소리에 행군은 계속된다. 무척이나 고요하게 나란히 서 있는 창사(廠舍). 여기가 우리 ○○名연무(鍊武)의 땅이다. 부대에서 같이 우리들 화차를타고 온 젊은 견습사관의 친절한 지휘를 받아,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제1, 2반의 동료들의 안위(安危)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와 비슷한 우려의 말이 화제의 중심이 되어, 휴식하는 우리들의 시간을 차지해 간다.
여기에도 병사의 아름다움이 꽃 피워간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피로해질 것이다. 그들을 위해 준비를시작했다.
주어진 창사 내에 모포를 나란히 깔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우리들은 한 순간만이라도 규율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고도(後藤) 반장을 중심으로 그것이 결의되었다. 실전의 들판에 서는 병사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대동의 밤은 조용히 차분하게 깊어간다. 풍부한 정감을 잉태하고 가라앉는 황혼.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찬가를 만나며 한없는 욕구는 불타오른다. 고마운 일이다. 오로지 나는 황국에서 살아가는기쁨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들벌레들이 밤을 영위하며, 세계를 창조할 병기(兵器)의 안녕을 축복하는 것처럼 엇갈려 뒤섞인다. 여기에 합쳐져 반딧불이 난무한다. 들판의 밤이 만들어내는 최고의찬가이다.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우리들은 아직 오지 않은 동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갖고 온 램프 아래에 모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상당히 중독되어 있는 우리들의 담배였다. 지금처럼 담배의 달콤함을 맛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을 깨트리며 들려오는 쇠징의 울림……. “돌아왔다!” 모두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건강한 점호의 목소리이다. 돌아온 것이다. 다행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시가지를 떠난 지점에서 이미 고장이 나기 시작해서, 거기에서 행군을 계속했다고 한다.
나는 참으로 유감스러웠다. 행군을 해 보고 싶었다.실제로 총의 무게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무척이나 피곤한 것 같다. 바로 식사이다. 맛있다. 이것이 밥의 달콤함이라는 것이겠지.
이로써 우리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불굴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전기가 없는 램프 빛 아래에 장비를 풀고, 오늘 하루 주어진 연무(鍊武)가 마침을 축복하며 식판에 밥을 받는 나의 다행스러움이여. 피곤하지만, 왠지 내 혈맥은 흥분된다. 받은 모포에서 나는 여기에서 태어나야 할 새로운 사고의 약동을 상상해 보았다. 전선의 밤의 생활이 내 어린 시상을 풍만하게 한다.
잠을 자자. 눈을 감으니 많은 기억이 현실화되고, 상상이 그것을 꾸민다.
조용한 밤하늘을 향해 들려오는 불법승(佛法僧)의 목소리가 희미한 여수(旅愁)를 돋운다.
○월 ○○일
기분은 상당히 긴장되어 있지만, 역시 익숙하지 않은 행군이 동료들을 피곤하게 한 것 같다.
크게 코 고는 소리가 나의 무언가 알 수 없는 흥분된 신경을 초조하게 한다.
그렇지만 선잠 자는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새롭게 다가올 내일을 위해서, 잠자는 위대한 황병의 위대한 안색이아닐까.
6월의 소리를 듣는 청룡고원의 아침은 하얗게 찬 기운을 띠며 밝아온다. 불침번의 ‘기상’ 하는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젊은 제 3반의 대부분은 잠이 깼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제대로 따르고 있다.
이미 우리들은 군대 규율에 살아가는 병사였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딱딱한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기상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복종의 정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담배를 좋아하는 나도, 담배를 피고 싶지가 않다.
오늘 이루어지는 창사의 생활은 전투 중에 일어나는 주둔 생활인만큼 나의 정신적인 긴장은 더욱 엄격한 것이다.
호령이 떨어졌다. 순간 지금까지의 조용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그려진다. 고도 반장의 호령으로건포 마찰, 약동하는 육체는 붉은 빛으로 바뀐다.
그것이 끝나자 침상의 정돈, 청소이다. 그 신속한 행동은 실로 전격적이다.
그러한 훈련이 불굴의 황병 정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광장에서 집합 번호 점호가 끝나자, 건강 상태의 보고, 동방예배(東方禮拜), 군인칙유의 봉송이다.
내병기창 당시의 기억 때문에 눈이 촉촉해졌다.
아침 행사는 끝났다. 나는 반장님의 명령으로 취사당번을 맡게 되었다. 모두는 아침 이슬이 아름답게 반사하는 뒷산으로 올라간다. 어디에 병사가 아닌 모습이 있을까. 나는 성심을 다해 세심한 주의를하며 상을 차린다.
이것이 오늘의 싸움을 위한 식사라고 생각하면 한 톨의 밥, 한 방울의 국이라도 흘려서는 안 된다.
모두는 산에서 돌아왔다. 상차림은 이것으로 괜찮을까. 어머니가 오늘 나의 생장을 기원하는 마음은이러했을까.
나도 모르게 한없는 사랑의 마음이 소년처럼 그리웠다.
식사가 끝나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나의 성냥을 서로 양보하는 반원들. 모두가 뿜어내는 연기가 무언가 일본의 고독한 정신을 상징하는 듯, 투명하게 창(廠) 안을 윤회한다.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이런 식으로 담배는 피우는 것일까.
이것이 끝나자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다(多田) 참모의 전령(典令) 강의─그리고 각개 교련, 총검 찌르기 돌격─.
모든 것은 진지하다. 이것은 뜨거운 들판에서 행해졌다. 가르치는 젊은 하사관들도 배우는 반원도엄격하다.
잠깐의 틈도 없다.
익숙하지 않은 반원들은 상당히 고통스럽겠지만, 누구 하나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몸은 지금 이 땅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포연 너머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좀더 엄격하게 있고 싶었다. 병기창에서의 훈련이 고마웠다. 몸을 쓰러 넘어뜨리고 싶었다.
총을 쥔 채로 쓰러지고 싶었다. 언제나 나는 전장에 설 수 있을까. 무언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반나절의 교련이 끝났다. 금방 무장한 채로 청룡 청년 특별 연성소로 시찰을 간다. 가는 도중에도 전장으로 달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오카시마(岡島)도 그렇게 말했다.
◇ 양해의 말. 여행지에서 본고를 정리하던 중에 갑자기 고열로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더 잇지 못하고 우선 여기에서 중단한다. 후반은 아무래도 고쳐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출전 : 白川榮二(朝鮮軍報道班員), 「報道演習報告1-演練日記抄」,'文化朝鮮' 제5권 제4호, 1943년 8월, 23~29쪽>
(2) 부여 중견청년수련소 방문기(상·하)
부여 중견청년수련소 방문기(상)
편집부에서 받은 현지보고로 출발하기 전에 내가 예비지식으로 수련소의 요강을 읽어보니, 그 취지는 현 시국의 추이에 동반하는 중대한 신국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아시아의 융성이라는 대 사업을수행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과 왕성한 기백에 찬 청년 남녀의 활약을 크게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야가 함께 그들의 교양 지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러 시책을 강구하고 있는 까닭이다.
조선총독부 중견청년수련소는 이상과 같은 취지를 기초로 시작된 것이다.
나는 몇 번의 농촌현지보고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오늘날 농촌은 증산 확충의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명 수행에 매진하고자 하는 반면,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고통도 역시 크다.
농촌을 지켜야 할 청년의 농촌 이탈 문제가 가장 그 문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와 더불어 인적 양성의 문제에 대한 위정자의 노력은 크다 반도 농촌의 .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사회의 지도적 지위에 있어야 할 중견층청년에게 고매한 우리 제국의 국가 개념과 확고한 국민적 신념의 파악, 황국 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해서 내선일체의 성스러운 이상을 갖추고 실현할 확고한 정신력을 연마하여 갖추게 한다.
또한, 자기 고향에서 아직 깨우쳐야 할 농촌 사람들을 이끌고, 청년이 가진 국가적인 사명을 완수함과 더불어, 모든 사회적인 교화운동 등을 솔선해서, 그 지도를 수행하여 청년의 연성도장으로 태어날 것, 이것이 내가 나가는 중견청년수련소다.
특히 이 수련소가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정신 연성이며, 견실한 정신성은 지금까지 반도에 가장 깊이스며들어 있는 구투적(舊套的)인 음울한 일상을 명랑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반도의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농업이며, 농업은 옛날부터 조선의 기본 산업이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공업 등의 생산기구가 팽창한 현실에서도 이미 농업은 조선 산업의 중추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확고한 불변의 사실이다.
내가 지금 말할 필요도 없지만, 농업에 대한 생산기구의 개선발전을 도모하고, 모두 노력하는 정신적 자각을 부여해, 농촌 총력으로 증산확충에 앞장서서 몸을 바칠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명랑한 농촌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반도 농촌의 과제는 전시 생활에서의 식량증산의 충실을 도모하고, 농가 경제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 긴급하게 부여된 식량 증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향후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적 달성을 위해서는 본부에서도 기본 시설의 문제로 다루어지듯이 반도 농촌진흥의 큰 안목은 생산물의 개량 증식을 도모하는 것이다.
1. 기후 토질의 적합 여부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적응 작물을 분포할 것
2. 재래 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것
3. 유리한 신 작물을 수입하여 재배 보급을 꾀할 것
4. 비료 증시(增施)를 꾀할 것
5. 수리관개 설비를 개선할 것
6. 미간지의 이용을 증진할 것
7. 가축 가금 및 그 제품의 개량 증식을 행할 것
8. 양잠 및 그 외의 부업 장려를 행할 것
등은 그 합리적인 지도 방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실행함에 있어 농민의 지식, 국가적 이념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적극적이 되어, 이제 우리 반도 농촌의 자태는, 국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농업보국의 사명을 수행하려는 기운이 왕성해졌고, 국민의 각성과 농업 개량에 대한 열의는비장함에 가깝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러한 열의는 물론 열의뿐이어서 농법은 매우 유치하고 농가 경제 또한 확립되어 있지 않다.
이에대해 다음의 4대 요강을 근본 방침으로 지난해 이것을 발표했고, 극력 실천하게 하여 착착 증가 추세에있다.
1. 장려사항이 복잡해지지 않게 할 것
2. 실행을 간편하게 해서 비용 지출은 모두 무 또는 소액으로 할 것
3. 효과가 적확할 것
4. 실지(實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도할 것등으로 이 방침을 수행하기 위해서 각지에서는 이 방면의 설비가 설치되고 있다.
◇
나는 이상, 상당히 긴 전제를 말했다. 이 농지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는 나 자신도 알기 어렵지만, 이번에 주어진 대로 농민의 지도계발, 농촌의 명랑화, 전시 하에서의 식량증산 확보에 앞장서서 몸을 바쳐야 할 국민의 자각을 고취할 중견 청년의 양성이야말로 긴급한 일 중의 긴급한 일일 것이다.
드디어 내년으로 다가온 영광의 징병제에 대비하여, 일찍이 없었던 국가에 대한 헌신은 엄격한 연성이되었고, 불꽃은 세차게 날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적 자원의 요망이 간절한 오늘날, 나아가 가래를 들고, 흙에 잠재해 있는 동양의 풍만한 성신(性神)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불면불휴의 농지 확보를 위한 노력.과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반도 농촌의 구투(舊套)함을 일소하여 비약하는 길을 찾아 연성하는 그들의 열의가 장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고매한 국민적 정신을 함양하고 황국신민으로서의 긍지를 확보하게 하는 내선일체의 성스런 이상을 일반화시켜서, 그것을 체득하고 실행해야 할 불굴의 정신력을 연성해서, 농촌에서 지도로 삼아야한다.
이제 조용히 신이 진좌하고 계시고자 하는 역사적 연고의 땅 충남 부여의 일각에 수련도장의 의의는 뜻 깊게 건설되었다. 이것이 내가 지정받은 조선총독부 중견청년 수련장이었다.
그 목적은 사회에서 지도계급에 서야 할 청년제군에게 부동의 우리 국체의 존엄함, 그 본의의 투철함을 분명히 알게 하여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국가에 대한 견고한 신념을 함양시키고, 황국신민의 긍지를 자각 체득하게 함으로써, 우리 반도 사회에서 지도의 중견인물이 되어야 할 책임을 연성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원하는 바는 농촌에서의 중견청년의 요망이다.
이 도장의 근본적인 지도 정신은 경신존황(敬神尊皇)의 대의에 서서, 충혼의담(忠魂義膽)의 진심(誠)을 가르침으로써 황운(皇運)의 부익(扶翼)에 노력,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성지(聖旨)를 받들고, 자양분으로 야마토(大和) 정신을 일관하여 내선일체의 열매를 거두고, 심신을 수련해서 실질강건의 기풍을 진작하고, 근검역행으로, 각자의 본분을 다할 것 등. 이상과 같은 세 항목의 수행을 위해서 상당히 엄격한수련이 행해진다.
다음으로 지도의 중요 요소로 삼은 것은,
1. 수련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수련소는 수양의 도장으로, 교양의 요체는 성심, 성의끊임없는 절차탁마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장 수련생은 늘 성훈(聖訓)을 받들고 협심 협력하여 그 달성에 매진해야 한다.
2. 일본 정신의 정화(精華)를 발휘할 것
이것은 신국 일본의 전통으로 신성(神性)을 지키고 명절을 숭상하고, 염치를 존중하여 부여받은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옛날부터 배양된 미덕이며, 직분을 가지는 한 신명을 군국(君國)에 바치고 멸사봉공하는 정신, 이것이야말로 일본 정신의 정화이다. 이것을 항상 발휘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3. 선량한 수련소의 전통(所風)을 수립할 것
규율은 국체 훈련생활의 명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며, 규율의 진작에 노력하고, 모든 개인적인것을 무아하고, 규율에 절대 복종하고, 상하 똑같이 이 규율을 엄수하며 상하 서로 공경하고, 좌우 서로친화하여 총력을 다해 수련소의 전통을 수립해야 한다.
4. 지기의 진작에 애쓰고, 지기(志氣) 왕성하게 나아가 난국을 맞아 기꺼이 그 책임에 임하는 것이다.
인고의 생활을 기쁨의 생활로 하는 데에서 인간의 정신성이 초래하는 뛰어난 정취를 맛볼 수 있어야한다.
5. 내선일체의 완성을 기할 것
그것은 오늘날 가장 긴급한 것은 물론이고, 국민총력연맹이 강령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황국 일본의 정신을 반도의 구석구석에까지 널리 골고루 국민의 심간(心肝)에 투철하게 하여, 반도의 민중 모두 황국신민의 신념에 불타서, 늘 황실을 존숭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신사를 존경하고, 조상을 숭배하며, 자기의 소아를 버려, 국가 유구의 대아에 합체하는 숭고지상의 정신을 현현연성(顯現鍊成)하고, 그것을 발양하는 것은 실로 본 연맹 결성의 최초의 동기이며 최후의 이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의미상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내선일체의 완성을 꾀하는 것이며, 특히 옛날 내선일체의 열매를 현현(顯現)할 부여의 성역은 그 깊은 역사적 사실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6. 고소대국(高所大局)에 착안할 것
오늘날 세계에서 유물사상은 몰락하고, 모든 양상은 전면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서구의 문화는 바로이제 동양의 땅에서 구축(驅逐)되어, 새로운 동양문화가 태어나려고 한다.
이것이 시대를 등에 업은 것은 모두 청년이며, 세계는 이미 우리 일본에서 생을 받은 자의 무대가 되었다.
청년은 시야를 크게 하고, 대승적인 정신성 속에 대국적으로 착안하여, 새로운 문화건설에 앞장서고 몸을 바쳐야 한다.
7. 수련에 신선미를 있게 할 것이며, 진척해서 시국의 어려움을 타파하여 적극적으로 미래의 발전에 착안해서, 쇼와(昭和) 일본이 목표로 하는, 대동아공영권의 확립, 신질서를 수립해야 할 고매한 이상을생각하고 항상 수련에 애쓰며,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이행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8. 고귀한 사명을 자각할 것
가르치는 것의 진체(眞諦)는 인격의 도야에 있으며, 청년교육에서 특히 필요로 하는 인격 도야는 물론 인격에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지도하는 자는 자기의 엄격한 그리고 고귀한 사명을 자각하고,
항상 감격의 정신으로 거기에 종사하고, 자기의 인격 수양에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9. 사랑의 교육에 입각할 것
교육에서 애정이 있는가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자연이 주는 신들의 사랑에 의해서 생성화육(生成化育)되는 인간은 모두 이 심원한 신심(神心)이 보여 주시는 사랑의 정신으로 지도하고 지도받아야 한다.
이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겸허의 미덕이 생겨나는 것이다.
10. 행학불이(行學不二)의 수련에 힘을 쏟을 것
수양은 모름지기 실제 생활에서 체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청년 교육의 근본적 지도원리의 첫째는 실로 실제 생활의 연성에 있으며, 미어허위(美語虛僞)의 개념적인 이론으로는 수양이 철저히 이루어질 수 없다. 근면 고행의 수련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 성과는 거두어진다.
11. 시국에 대한 지도
급박해지는 오늘날의 사회 추이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중대한 시국 처리를 위해서 청년이 맡게 된책무가 얼마나 중대한가를 솔선수범하여 봉공하는 정신을 갖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출전 : 趙宇植, 「現地報告-夫餘中堅靑年修鍊所訪問記(上)」,'東洋之光' 제5권 제6호, 1943년 7월, 59~63쪽>
부여 중견청년수련소 방문기(하)
아침이다. 성역(聖域)에서 우러러 받드는 아름다운 아침이다. 정적의 아침 공기를 깨트리며 울리는웅장한 북소리.
오전 5시 30분이다.
아무도 늦잠 자는 이도 없다. 정연하게 규율에 연성된 그들은 침구를 개고, 세면장으로 달려간다. 일찍이 내가 체험한 야영 체험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 시간은 30분동안 이어진다.
그것이 끝나면 곧장 집합, 점호한다.
가슴을 펴고 아랫배에서 내는 소리. 그 소리가 머지않아 새로이 반도의 약동을 고무하는 지도자의 소리가 될 것이다.
그것이 끝나면 국기 게양, 국기를주목해서 엄숙하게 노래를 하는 그들의 맹세. …또 국기에 주목해서 직립부동의 자세를 취하고,구름 없는 아침 해의 깃발에 아마테라스(天照)
신의 위광을 받드는 국민이라는 [메이지(明治) - 역자]천황이 지은 노래를 봉송하고, 바로 경례.
이어서 궁성요배(宮城遙拜),황태신궁요배(黃太神宮遙拜), 절여신사요배(折餘神社遙拜)를……, 이배(二拜), 이박수(二拍手), 기원, 배례로 행한다.
대범하고 느긋한 국민으로서의 긍지는 그 누구의 얼굴에도 생생히 떠올라 있었다.
이것으로 아침 점호는 끝나고, 조용히 행좌실(行座室)로 아침 예배를 위해서 들어간다.
이것이 이 수련소의 근본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난국을 맞이하더라도 항상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예배를 하고 문을 연다.
이것은 물론 정좌의 자세로 진행된다.
그것이 끝나면 목욕재계의 장으로 들어간다.
목욕재계(禊, みそぎ)는 정식 순서에 따라서 행해지며, 정좌법(正座法)에 따라서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서 정좌법에 기령법(奇靈法)을 사용하는 것이다.
먼저 조용히 앉아 호흡을 하고, 일정한 음을 듣고 그 소리에 동화해서 천지가 하나가 되는 궁리를하게 되는 고신도(古神道)의 진혼(鎭魂)에 들어간다. 들어가는 것이다. 우주와 음령(音靈)의 교섭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숙함 속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많고, □혼이 하나의 혼인 것처럼 …… 무아의 경지에서의 오로지, 신도의 진수를 접하려고 하는 욕구만이 조용히 흐르는 것이다.
“대저 우리나라는 천지와 함께 신이 나타나 앉으시다. 그러므로 나라를 신국이라고 하고, 도를 신도라고 한다.
나라라는 것은 천계(千界)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라는 天竺漢土는 달과별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월씨진단(月氏辰旦)이라고 한다. 해는 태양, 달은 볕의 준기(酸氣)이다.
별은 볕의 산기이다. 삼광(三光) 모두 우리나라에서 나와, 삼신(三神) 이것 위에 드리우다.
신이라는 것은 보통의 신이 아니고, 건곤(乾坤) 보다 앞서는 신. 도(道)라는 것은 보통의 도가 아니라,건곤을 초월한 도를 말한다.
신성(神性)을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며, 영체(靈體) 형태 없이 형태를짓는다.
이것이 즉 불측의 신체(神體)이다. 천지에 존재하여 신이라 하고, 만물에 존재하여 영이라 하고, 사람에 존재하여 심(心)이라 하니, 마음은 즉 신명(神明)의 함(含), 혼돈의 궁(宮)이다.
혼돈이란 천지음양 나누어지지 않으며 희로애락이 생겨나지 않으며, 모두 이것은 마음의 근본이다.
심이란 일신(一神)의 근본, 일신이란 우리 국상입준(國常立尊)을 말한다.
궁상입(國常立)이란 무형의 형태, 무명의 이름, 이를 허무대원존(虛無大元存)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대원(大元)에서일대천계(一大千界)를 느끼고, 일심(一心)에서 대천(大千)의 형태를 나눈다. 하물며 삼라만상, 준동함령(蠢動含靈), 미야코(都. 天皇의 궁궐이 있는 곳 - 역자)에서 일신의 바탕으로부터 비롯되고, 천지의 영기를 느끼기에 이르러, 생성이 한이 없다. 마음의 본원은 일신에서 일어나, 나라의 종묘는 만주(萬洲)를 비춘다.
비유하건대 일수(一水)의 덕으로 만품(萬品)의 생을 키우는 것과 같다.
유불(儒彿)의 이경(二敬)이란 일심의 바탕에서 만법의 흐름을 나눈다.
석가 공자 모두 생명을 천지에서 받고, 덕성을 밤낮으로 베푼다.
대저 우리 신명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는곧, 신의 성(性), 사람은 곧 신의 주인이다.
초한(梵漢)의 양성심지(兩聖心地)를 화광(和光)에 열어 천지의 일신통화(一神通化)를 속세와 동일하게 한다. 대도일원(大道一元)의 원, 천심일관(天心一貫)의 관, 이것은 우리 신도(神道)가 아닐까? 무릇 개벽의 초운종묘(初運宗廟)의 원유(元由),다른 나라라 하더라도 그 기원이 우리나라에 있다.
그 근본이 우리 신에 있는데 누가 우리나라를 공경하지 않겠는가.”
이것의 체득이 시급하다. 이것은 「신도오본의(神道五本意)」에 쓰여 있는 것으로, 이것을 몸에 익힐수 있는 수련이 여기에서 행해지는 하라이(祓)89)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라이의 의례가 끝나면, 이배(二拜), 이박수(二拍手)로 기원하고, 신배(神拜)의 말을 아뢴다. 오미카미 아마테라스(天照
大神) 신대어명(神大御名)90)을 연속으로 봉창한다.
이것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1. 황실의 평안태평을위하여, 2. 국력의 충실, 국위발양을 위해서, 3. 황군 장병의 무운장구, 4. 유현양계의 살아있는 것이 정의로 반성귀순하기 위해서이고, 5. 수련 중의 청결한 행복을 위해서 ‘천조대신’을 봉창하는 것이다.
이 신배사(神拜詞)에 대해서 야마구치 기교(山口起業)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아마테라스는 고천학(高天學)91)에 계시고 천지사방 신과 사람과 사물을 주재하여 조림(照臨)의신덕(神德)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고 학신(學神)의 덕을 합쳐 주신다는 뜻에의한다.
○ 이 신의 신덕을 공경하여 경공숙배하건대 반드시 이 존함을 찬양해야 하며, 만약에 잘못하여 여러 나쁜 생각을 가지면 이 존함을 찬양해야 하며, 만약에 여러 좋은 생각을 가지면 이 존함을 말해야
89) 신에 빌어 죄나 재앙을 정화함, 또는 그 의식.
90) 일본 신화의 태양신으로, 일본 황실의 조상이라 함.
91) ‘高天原(다카마가하라)’의 잘못.
하며, 만약에 여러 행복을 얻으면 이 존함을 찬양해야 하며, 이와 같이 진심으로 이 존함을 찬양할 수 있다면 나쁜 생각은 금방 사라져 좋은 생각으로 바뀌고, 좋은 생각은 더욱더 커져서 행동으로 이루어지고, 행복은 더욱더 커져서 자손에게 전해져 재액은 길상이 된다. 평생 □□하여 이와 같이 되면 죽은뒤 반드시 다카마가하라로 돌아가 무한한 복지를 받고 그 덕이 9족에 걸쳐서 함께 □□를 받는 것은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신전을삼가읽는것은실리진요(實理眞要)의뜻에도달하는것을가지고제일□□로한다고하고있다.
이것을 주상함으로써, 아마테라스가 계시는 신의 나라에 마음이 통하여 깨끗해지는 것이다.
신을 찬양하는 말의 주상을 마치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천황이 만드신 와카를 봉송한다.
우리나라는 신의 후예여 신을 모시는 옛날 관습을 잊지 말아라.
아마테라스 신의 빛이 있어야 우리 일본은 흐려지지 않는 것이다.
과분한 부담이라도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서는 꺼려하지 말아라.
바쁜 세상에 선다 하더라도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잊지 말아라.
자신을 닦는 길을 배워라.
생업이 쫓겨 시간이 없더라도낭랑하게 봉송하는 그 여운은 창 너머로 가장 맑게 벽령(碧靈)의 하늘로 울리고, 또한 머지않아, 반도의 구석구석을 맑게 하리라.
봉송이 다 끝나도 눈알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경건함, 아침 예배는 막힘없이 끝났다. 신성에 생명의다행을 맹세하고, 오늘 해의 천조대신의 윤광(輪光) 하에, 애쓰고자 하는 것을 다 맹세한 것이다.
경례,폐문, 경례……
행좌실을 나와서 식당으로 향한다. 야무진 입술. ……조용한 발걸음.
그렇지만, 체내에 고이는 피는 아시아의 힘을 자랑한다. 야마토 남자의 의기가 맥박 치는 듯하였다.
식탁을 향해 바로 앉았다. 2번 박수. 합장, 가슴을 펴고 식전의 말이 읽혀지고 천진신국신언(天津神國神言) 나누어 풍수희(豊受姬)의 대신님 산토(産土)의 대신(大神)님의 은뢰(恩賴)를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
2번 박수.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젓가락질을 한다. 이것도 연성이다. 하나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식사는 신속하게 끝났다.
그렇지만 음식을 꼭꼭 씹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또 정좌 …… 합장 그리고 식후의 낭송이 제창된다.
아침저녁으로 먹을 때마다 풍수(豊受)의 신의 은혜를 생각하라 세상사람
2번 박수. “잘 먹었습니다.” …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집단생활의 미는 유종의 미에 있는 것이다.
신전예배(神前禮拜), 호례(互禮), 아침 행사는 순조롭게 끝났다. 해산이다.
잠깐의 휴식 후에 바로 집합. 학과이다. 정신 수련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것으로 참으로 짧은 아침 행사를 보았을 뿐이다. 수련시간의 몇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도 어떠한 것인지는 엿볼 수 있었다.
또 다음 예정지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사자 분들에게 참으로 죄송했다. 겉핥기식 견학이라 하더라도 너무 바쁜 것이다. 유감이다.
그렇지만□□□를바꾸어서, 나자신수련의몸이되어엄격한그리고늠름한이수련생활을해보자.
소장대리, 송화(送化)에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하고, 남는 시간이라고는 하나 방종함을 사과하며 수련생 제씨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성역의 한 쪽 구석에서 엄숙하게 간절히 기도했다.
연무의 도장에 경건한 예배를 바치고, 서둘러 다음 여정으로 향하였다.
내선일체 연고의 땅, 부여, 전설의 고장, 부여. 지금은 우리 반도의 새로운 출발을 기도하는 땅이 되리라.
뜨거운 태양의 방사는 투명하게 파란 하늘을 훤히 보이게 한다.
부소산은 내 앞에 명확히 역사를말해 준다. 내 가슴은 한없이 풍부하게 그득했다.
지도정신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말을 꺼냈다고 해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론만에 의한 지도라는것은, 오늘날에는 참으로 이상한 것이며, 자기 자신이 거기에 대한 무언가를 가지지 않고, 입으로만 지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혼자 이 수련소를 떠나며 열차에서 특히 그것을 통절하게 생각한다.
몸으로 난국을 타파하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정신력, 이것을 통해 형성된 지도정신, 이것이 진짜인 것이다.
지금 내가 눈을 감고 수련소의 하루를 생각해 보니, 거기에서 행해지는 연성의 체득이 크다는 것을느낀다.
새로운 생애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료생의 일기에 쓰인 것처럼.
제1일 ××월×일. 나는 커다란 사랑 속에 싸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날까지 나는 너무나도 제멋대로였다.
우선 나의 내 가족에 대한 태도는 가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나는 비로소 자신의 …… (판독 불가) …… 있는 것을 직감한다. 부모의 사랑, 아내의 사랑, 형제 친구의 사랑, 그 외에 수많은 사랑에 싸여 있지만, 이 수 많은 사랑에 의해서 평화롭게 사시는 폐하의 황공한 사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숙여진다.
제4일 12월 8일.
오늘 전 인류는 환호를 지르는 듯했다. 그것은 사람을 하등동물의 진화라고 생각하고 있던 굴욕으로부터 해탈되어 진정한 정신의 품에 안긴 것이다. 아아 기쁘다. 본부 당국에서는 이 한창 비상시에 반도인의 박약한 경제력을 밀어내고 의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발표했다. 우리들의 기쁨은 크다.
이 커다란 환희로 대동아의 성전을 이기는 것이다.
(원문 그대로)
참으로 일본인으로서의 자각에 감루하는 이 어설픈 말의 여운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고 있을까.
이미 이 본인은 입소 이전에 잘못된 도덕관, 정신을 포기하고, 신생(新生)을 맹세하고, 바로 부름을 받고자하는 농촌 자제의 선두에 서서, 삭육쇄신(削肉碎身), 건전한 농촌문화의 확립에 앞장서서 몸을 바칠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이처럼 신선한 탈피를 행하기를 원하는 것은 나 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일본정신의 체득, 땅에 드리워진 신성에 눈뜨는 것이 긴요하다.
이것이 오늘날 요망되는 인적 자원 함양의 선두에 서는 지도자의 근본이념이 아니겠는가.……
<출전 : 趙宇植, 「現地報告-夫餘中堅靑年修鍊所訪問記(下)」,'東洋之光' 제5권 제7호, 1943년 8월, 68~72쪽>
(3) 선감학원(仙甘學園) 견학기
집 없는 천사의 황민화
인생에서 가장 청순하고 간결, 천진난만해야 할 소년기를 불행하게 순간적인 잘못으로 슬프게도 그 출발을 잘못한 부랑소년들. 너무나도 고독한 어린 생명들.
그것을 사회는 소년의 심리적 나쁜 폐단이라고 간주하고 포기해 왔다. 소년의 방랑성이 선천적인 소년들의 죄라고 하며, 기대해야 할 그들 소년들의 생장은 비애가 많은 음울한 생활 속에서 항상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현실의 일반적 폐해에 대해서, 급변하는 사회 정세는, 새로이 그들이 매진한 운명의 내일을위해 ─ 그 원인을 추구하고, 사랑이 있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선도의 길을 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그러진 소년들의 마음, 그것은 발육기의 소년들에게 주어져야 할 진, 선, 미, 자애가 불행히도 결핍되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의식적 발전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우리들은 그 유전과 환경의 원인에 바탕을 두고, 이 가련한 아이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의 지고한 교화의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못하고 자란 소년에게 존엄한 야마토(大和)92)의 마음을 베풀지 않으면안 된다.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고, 바른 생활의 양식을 줌으로써 연성하고, 새로운 일본을 짊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싸우는 우리 민족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결전 하의 총후에 부여된 중요한 임무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마음 있는 인사는 모든 형태로 애정의 손을펼쳤고, 모르는 사회인의 멸시와 싸워 왔다.
이 숭고한 교화의 힘은 ‘오사카 수련원’의 ‘되돌아보는 탑’에 의해서 결실을 맺었고, 우리 반도에서도 영화 ‘집 없는 천사’에 의해서, 징병제 실시를 앞둔 부모에게 커다란 심리적 전환을 준 ‘향린원’ 에도 유원(悠遠)한 사랑의 교육이 착착 그 열매를 거두고 있다.
반도의 부모들이여, 슬픈 바람에 가득 차 저주받은 눈길로 헤매는 부랑 소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들 소년들에게 사랑과 자애의 마음을 기울이고, 갱생의 내일, 늠름한 생장의 길을 기대하자.
기복과 부침이 무성한 불우한 운명에 방해받은 미지수의 소년, 그 교화는 정말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오늘날 국가가 요망하는 인적 자원이다.
아름다운 섬의 학원
그래서 기자는 희미한 봄 햇살이 꾸벅꾸벅 졸며 부두를 빛내고 있는 3월 6일 오전 10시, 인천항의 잔교(棧橋)에서 젊은 시인 K군과 함께, 대부(大阜)행 통통 증기선을 타고, 이 국가적 요망의 소리를 우리 반도에서는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것을 펜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선감도(仙甘島)로, 선감학원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그리는 하늘과 섬, 바다의 너무나도 상냥하고 정숙한 서정은, 얼마나 한없는 바람을 채워 주었을까? 그 아름다운 바다의 아름다운 파도에, 흔들리기를 5시간,대부도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늦은 실로 2시간 반, 시각은 이미 15시 반이었다.
92) 일본의 딴 이름.
배에서 내리자 마침 목선이 도착해 우리들을 기다려 주었다. 안내하는 교사 와다(和田) 씨에 인솔에 따라 대안(對岸)에 내려서자 거기가 선감도라고 한다.
거기에서 찾아오는 선감학원은 약 20분 정도에갈 수 있다고 하는 와다 씨의 뒤를 따라 산길을 걷는다. 우리들 외에 한 명의 노파가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따라 온다.
물어보니, 자기 아들이 학원에 있는데 아파서, 일단 그 아들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고한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둔 아이가 선감학원에 있다. 그런 사실이 나를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고,내 심정을 잠시 암울하게 했지만, 이윽고 자신의 임무로 돌아가서 앞을 걷는 와다 씨에게 학원에 대한 예비지식을 묻기 시작했다.
씨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작년 6월부터 시작해 섬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촌 전부를 매입해서, 민가를 개조해서 기숙사로 할당해서 연성하고 있습니다.
수용된 원아의 대부분은 가정이 없는 소년으로, 임시로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도 방랑하고 있던 소년들이었습니다.”
온후한 용모를 가진 씨는 오른쪽 바다에 눈을 주고 석양이 지는 해면의 깊은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의 황혼이다. 그림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장엄한, 자연미의 극치이다.
저기에 만일 목소리가 있다면 무엇을 내게 말하며 속삭일까.
석양에 비치어 불타는 것처럼 정감을 받아, 말하지않는 무수한 섬들. 만조의 바닷바람에 안긴 채 밤의 정적으로 흔들리는 영겁의 생명. 이 생명을 향해,인류는 스스로를 길렀고, 젊은 출정병(征夫)의 노랫소리는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여기에 잉태된 마음을 호흡하며, 말하고자 하는 선감학원 아동의 혁신적인 환경, 비약된 생활은 어떻게 아름다운 정감에 스며들게 되었을까? 기쁘게 신명이 나서 까불고 떠들며, 자연 속에 어두운 포악의날들을 보내고는, 다가올 희망을 작은 가슴에 품고, 수영하고, 이리저리 달리는 발가벗은 소년들.
고귀한 신화를 그리는 해면을 바라보면서 내 꿈은 한없이 꼬리를 끄는 것이었다. 행복한 섬의 아이들, 변모하는 역사여, 누가 여기에 불행을 생각하고, 과거를 되풀이 하고자 하는가?
사랑과 근로의 교화
희망이넘칠정도로그득차서우리들은학원이보이는언덕을내려가, 가까이다가가니소년한무리가 도로 개수에 종사하고 있었다. 정연하게 근로하는 소년들의 얼굴 어딘가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을까.
와다 씨를 따라서 쓰카모토 다다노부(塚本忠信)라는 표찰을 단 조선가옥을 빠져 나가자, 따스한 얼굴의 중년 신사가 강건착실한 그대로의 국민복 차림으로, 방문한 뜻을 마음 좋게 받아주셨다.
조금 조급한 것 같았지만, 예정이 늦었기 때문에 빨리 원장 쓰카모토 선생에게 학원의 근본정신을 물으니,“나는 사랑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교육을 했고, 이것에 따라서 명랑한 일상을 갖게 함과 동시에, 이것을 통해서 근로정신을 함양하고 있습니다.” 라고 명랑하게 말하는 원장의 말의 여운에 불행하나마 소년들의 내일의 희망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것으로 내 희망도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 자리를 떠나 근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밖으로 나가니, 기쁘게 소년들은, “선생님! 어서 오세요.
잘오셨습니다.” 괭이를 든 손, 삽을 쥐고 있었는지 가느다란 팔들……에 모자를 벗고 환영해 주었다.
한순간 내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눈물. 어쩔 수 없이 울었다. 우리들 어딘가에 슬픈 음울한 과거가 있었을까.
일그러진 혼의 새벽이 왔다. 끊임없는 향수는 근로하는 육체와, 이 섬의 최선을 다한 풍광이 감정을 섭리하고, 맹세하는 연성의 괭이가 이 땅에 새로운 애착의 주거를 영위하여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영리해 보이는 눈길, 민활한 행동 …… 잠시 열심히 보니, 옆에 서 있던 교사가,“어제부터 막 시작했습니다.”
라고 한다. 어제부터 했는데도 너무나 훌륭한 도로이다. 폭이 세 칸(間)은 되리라.
“이 중에도 토목학교 출신이 있습니다.”
토목학교를 나온 청년!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나는 굳이 그것을 묻지 않는다.
그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보고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묵묵히 흙을 운반하는 사람, 삽을 움직이는 시람 …… 볼 때마다 진척되는 공사, 돌아오지 않을 날의역사를 조각하는 소년의 가슴은 얼마나 복잡할까. 태양도 상당히 기울어왔다. 냉각되고 있는 기온, 섬 특유의 바람이 어깨를 친다. 다감한 소년들의 심정에 요염하도록 아름답게 불어오는 바람이 무언가를호소해 주는 것일까. 일하는 손은 전혀 쉬지 않는다. 다만, 빠져 있다…… 도로는 개수되어 간다.
얼마 지나서,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소년들의 일하는 손은 멈추었다. 재빨리 도구를 놓고 정렬한다.
점호가 여기저기에서 씩씩하게 저녁 하늘에 울렸고, 담당 교사에 이끌려 기숙사로 향한다.
학원의 윤곽
“매일 이런 시간입니까?”
“예, 아침 7시 반에 기상, 조회를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오전 중에는 학과이고, 오후에는 교련과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4시 반에 종료, 5시에 식사를 하고, 7시 반에 취침을 시킵니다.
보신 공사는 1년 내내 계속되고, 작물을 만드는 틈에 경지 정리를 시킵니다. 아마 이것은 5년간은 계속되겠지요.
건설예정은 세 간 도로로 하고 간선도로 1리 반, 지선은 2리 이상으로 완성하고, 녹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근로함으로써 아동의 심리에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상기시킬 생각입니다.
그와 동시에 5월중에 일부 교사가 완료, 6십만 원의 설비가 정비될 예정입니다.
이어서 말씀드리면, 현재 수용 아동 수는 275명이고, 원장을 포함하여 직원 17명, 보모 16명, 병원에는 의사가 2명(내과, 외과), 앞으로는 성대(城大)93)의 정신과 교실의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 외에 고용인이 7명 있습니다.
우리 학원의 교화 지준(指準)은, 작업은 군대식으로 하고, 서무과장 이하라 에이이치(井原英一) 씨가 대장을 맡고, 회원을 4중대로 나누고, 또 8소대로 세분해서 교련을 합니다. 교사가 소대장이 되어 아동의 지능에 다라서 교련을 합니다. 다른 얘기가 됩니다만, 학원의 조직은 원장 밑에 총무를 두고, 그 밑에는 작업과, 교화과, 서무과로 분담해서 사무의 원활을 꾀하고, ……(판독불가)…… 원아에게 상완(賞玩)시키는 동시에 애□심을 기르고, 열매를 맺지 않고는 거두지 않도록 교화를 합니다.
지금은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사를 네 동 만들고, 앞으로는 1천5백 명을 수용하여 교화시설을 완비함과 더불어
아동들을 즐겁게 하고, 선감도를 세계 유일의 부랑소년 교화의 도장으로 할 생각으로 모두가 열심히노력하고 있습니다.
93) 경성제국대학.
직원 자녀에게는 초등학교를 설치하여 자녀 교육을 안심하게 함과 더불어, 마음으로부터 이 사업에종사하게 할 생각이며, 그를 위해 현재도 산파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진의를 알게 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그것을 천직으로 삼는 진실한 애정의 교육이 실시되면, 우리들 대망의 부랑소년 교화의 고고한 이상은 개화될 것이다. 좀 더 얘기를 진척시켜 현재의 상황을 물어보니, “현재는 기숙사를 11개로 나누어, 한 기숙사에 25명을 수용하고, 기숙사에는 선생 1명과보모 1명을 두고, 가정의 사랑을 철저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보모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손에 의해서라고 하는 애정의 숭고성을 존중하는 까닭입니다.
원장의 주의는 명랑함을 제일의 뜻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아이들은 원장을 아버지처럼 우러르며 잘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아의 식량입니다만, 이것은 도에서 배급으로 지급되고, 원아의 특이성을 고려하여 하루 4홉의 배당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요령을 얻은 교사의 설명은 끝날 줄을 모른다.
어머니의 가슴에
여기에서 나는 교사의 후의에 감사하며, 일찍이 ‘오사카 수련원’ 에서의 이러한 곤란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하는 총무 후지이 슈이치(藤井祥一) 씨의 부인에게, 내지와의 기질적 차이에 대해서 질문의 화살을 돌린다.
“나는 오사카에 8년을 재직했습니다만, 아이의 질은 내지보다 훨씬 좋고 사물에 대한 판단력 등 국어 해득이 빠른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질이 좋은 아이가 많고, 처음에는 여러 가지 애먹어서 고생했습니다만, 지금은 조금도 그런 수고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울 뿐입니다.”
겸양을 갖추어 얘기하는 부인의 기품에는, 낳은 부모이상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풍부한 동양 어머니의 마음, 아이를 사랑하는 자애가, 강한 일본의 젊은 독수리를 낳고, 용장무쌍한 일본을 쌓아올린 것이다.
어머니! 수고하셨어요. 얼마나 고마운 동양의 전통인가.
나는 사랑하는 자모관음님의 고귀한 혼의 얘기를 가슴으로 묘사하고, 마음에 넘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손에 안기어 살아가는 옛날의 “집없는 천사”들이여, 몸은 따뜻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여기에서 찾아, 편안하게 길러진다.
눈에 감격의 눈물조차 참으며 말하는 후지이 보모의 생애야말로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주위는 신명나서 까불며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높아져, “어머니! 식사입니다.” 라고 알리는 원아의유창한 국어는 나에게 더욱 격한 가슴의 동요를 주었고, 눈물짓게 하는 일이었다. 자세히 식사를 보고,주어진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내일을 위해 정적의 잠자리로 향했고, 평화로운 선감도의 밤이 찾아왔다.
방에 불이 꺼져 어두워졌지만, 내 눈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은, 거리를 무서워한 영양94)처럼 떨며 헤매던 소년들의 무리와, 이곳에서의 내가 본 근로 작업하는 명석해 보이는 소년들의 눈을 관통하는 미묘한 한 선이었다.
부처님, 일찍 돌아가지 않는 소년의 날에 새로운 생명의 샘을 흐르게 하고, 생애의 좋
94) 산양의 일종, 한국 일본 중국에 분포.
은 마음을 가진 반려자가 되게 하소서. 끝없이 기도는 이어진다. 소년이여 편히 잠드소서.
밝게 봉창하는 어제 ‘아사미도리(浅みどり)’95)
어제 들은 듯한 사이렌이 선잠 자는 신경을 가르고, 눈을 뜨면 소년들이 기쁘게 신명나서 떠드는 소리는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침상을 빠져 나와 밖으로 나오니, 서리가 이 마을을 덮고, 아침 해가 반사하는 눈부신 광선은, 희구와 기원으로 가득 찬 소년의 하루를 약속하는 상징이다. 조용히 휴식의 눈을 뜬것 같은, 해면의 고혹적인 심호흡이 표상하는 심연한 행동은, ‘문화’와는 너무나도 격리된 이 섬을 더욱 고고한 것으로 이끌며, 영원한 향수를 잉태하며 신화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창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소년의 눈이 보였으며, 동쪽 산꼭대기를 빠져 나가는 태양에 양손을 들어 심호흡을 하는 소년.
우물에 무리를 지어, 얼굴을 씻는 사람들, 다양한 소년의 행동이 나타내는 것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잠시, 각 기숙사 앞에 소년들은 정렬하여, 운동장을 행해 걸어온다, 한 사람도 열을 이탈하는 자는 없다. 말하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그들은 행진할 뿐이다.
운동장에는 제 1기숙사가 가장 오른쪽에 서고, 그 다음에 제 2기숙사, 다음으로 제3기숙사 이런 식으로 제 11기숙사까지의 정렬이 끝나면, 교사가 제 1기숙사 옆에 원아들을 향해 선다. 얼마나 신선한 율동이고 그윽한 모임인가.
대장에게 료장(寮長)(기숙사장-역자)으로부터의 인원보고가 있다. 그것이 끝나면 대군 계시는 동쪽하늘로 방향을 바꾸며, 궁성요배, 황대신궁(皇大神宮)으로 합장배례하는 아주 조용해진 이 순간 ─ 구원받는 기도가 있고, 다가올 영광의 날을 맹세하는 행위로, 너무나도 눈물겨운 의식.
여기에도 육성되어 가는 반도의 믿음직한 창생이 있었던 것이다. 무수하게 황국의 방패가 되어 산화해 간 방인(防人)96)들이여. 젊디젊은 아저씨여, 형들이여, 편히 쉬소서.
우리들의 가슴을 속속들이 스며오는 전통의 피가 머지않아 원수를 칠 날이 올 것이다. 가련한 소년들의 합장하는 가슴은 진동하며, 들리지 않는 공간에 범종의 여운이 조용히 흐르는 것 같다. ─ 깍듯이경례하는 허리가 올라가고, 합장한 채로 낭낭하게 봉송하는 ‘아사미도리’의 어제. 청아한 공기를 뚫고 부르는 절미의 기백, 우리 민족의 풍요로운 혈통의 신비. 고귀한 결의의 토로보다 높은 야마토 민족의신념, 개인의 모든 것을 아득히 극복한 정신 전체로 향하고자 하는 영원한 법칙의 맹세, …… 이 모든것이 여기에 하나가 되어 노래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동아의 새로운 생성을 짊어지고자 하는 과감한 의지와 사신(捨身)의 싹이, 소년의 가슴 깊숙이 새겨져 간다. 세계의 하늘에 울려 퍼지라고 부르는 어제가 공손하게 끝나면, 훈화가 행해지고 라디오 체조가 시작된다. ─
하나하나에 전혀 무리도 없는 동작. 의기발랄한 육체의 약동. 오늘 그들은 황국신민으로서의 갱생의
95) 메이지(明治)일왕이 만든 ‘천(天)’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말함.
96) 일본어로 사키모리. 옛날에 간토(關東)지방에서 피견되어 츠쿠시(筑紫)·이키(壱岐)·쓰시마(對馬) 등의 요지를 수비하던 병사(3년마다 교대되었음).
모습으로 바뀌었다.
체조하는 손이 내려지면 각 료장이 선두가 되어 기숙사로 향한다. 청신한 얼굴, 원기 가득한 진군,이것을 보고 있는 나는 너무나도 변모한 그들의 일상이 불러올 한없는 감정 속에 스스로를 몰입시킬정도였다.
안녕히 계십시오! 섬의 학원
다만, 이때에 나에게 위구심을 품게 한 것은 그들의 피부색이었다. 부랑아 특유의 피부병이 많은 것,몸의 상처가 대단히 회복되기 어려운 것은, 어제 병원 선생으로부터 들었던 바이지만, 그것은 별개로하더라도 그들의 피부는 약간 소년다운 광채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을까.
지금은 결전으로 일억 모두가 이를 악물을 때다. 조의조식(粗衣粗食)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곤란결핍을 참는 사신의 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다만, 상대가 발육기의 소년일 경우, 그 왕성한 영양흡수에 호응하는 얼마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까.
물론, 일개 견학자인 나의 이런 위구심은, 3개월이 지나고 반년이 지난 후의 이들 소년들의 피부색이훌륭하게 해소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경기도 당국이 거비(巨費)를 투자해 착수한 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사람을 얻고, 쓰카모토 원장 이하 직원 모두가, 진심으로 멸사의 헌신적 지도로 임하면, 소년들의 몸과 마음은 지고의 사랑을 받아 쑥쑥 자라나 튼튼한 ‘(천황의) 부르심을 받은 신체’를만들 것. 정말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짓는 쓰카모토 씨와, “오늘도 원아와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식탁을 물러가며 학원을 일순하니, 이미 원아들도 식사를 마친 듯하다. 여기저기의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교사(敎士)를 붙잡아, “공부는 언제부터입니까?” 하고 물으니, “낮까지입니다.
오후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작업은 어제와 같은 도로개수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이것으로 학원 생활의 온하루를 본 셈이다.
차갑게 다가오는 호흡. 위대한 바다가 이 학원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숭고한 바다와 같은 교화 속에, 선감학원을 남기고 간다. 안녕히 계십시오.
갱생을 맹세하는 다가올 날의 정부(征夫)들이여. 인적 자원이 절실한 국가의 요망에, 옥체들도 이제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대답해 주세요.
<출전 : 趙宇植, 「仙甘學園見學記」, '文化朝鮮' 1943년 4월호, 16~21쪽>
(4) 유성 농민도량을 보다
유성(儒城)으로
나는 공무가 있어서 총후의 식량을 짊어지고 묵묵히 쟁기질을 하는 농민의 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가야 할 곳은 충남의 유성 농민도장. 나는 유성은 처음이다.
우선 예비지식을 얻기 위해, 선배 야마베 민타로(山部珉太郞) 씨의 호남지방 안내기를 펴보니, “유성온천 ─ 대전에서 공주 가도를 북서쪽으로 8킬로미터, 수답이 펼쳐진 평야에 있는 온천장.
약 1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신구(新舊) 양 온천으로 나누어져 있다. 유성천이 흐르며 서쪽 계룡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는 좋은 환경. 대전과 가깝고 역사적으로 옛날부터 알려져 있기 때문에, 대전 통과객의 이용이 많다”라고 적혀 있다.
이 지역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사진반의 H씨와 함께 열차를 탔다.
대전에서 덜컹덜컹 승합차를 타고 유성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계룡연봉(鷄龍連峰)이 그림처럼 이어져 그 꼬리를 끌고 있었고, 맑은 자연의 모습은 예전에 내가 겪었던 화도(畵徒) 생활을 상기시켰다.
작고아름다운 마을. 많은 여관이 처마를 나란히 하고 있는 조용한 온천 마을. 여기에서 승합차를 버리고 배운 대로, 남쪽으로 약 20분간, 정연하고 믿음직하게 자라는 신록의 논밭을 벗어나자 예전 내가 내지 생활에서 보고 들었던 일본식 지붕이 보인다.
우리들이 찾아 온 이곳은 오늘날의 국가요청에 부응하여 늠름하고 젊은 청춘을 흙에 바치고 살아가는 반도 농촌청년의 연성(練成)도장이다.
발걸음을 서둘러 도장 구역에 들어가니, 묵묵히 일에 열심인 청년들. 그들이 입은 복장은 그야말로가지각색이지만 각반을 차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미 그들은 신농(神農)의 모습에 다가가고 있고, 내일의 반도 농촌을 짊어질 농병(農兵)들인 것이다.
이 한없이 믿음직한 정경은 틀림없이 비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힘차게 쟁기를 쥔 그들의 손이 대지 깊이 파 내려가는 한, 식량부족의 불안, 생산보국의 보물은 그저 착오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항상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들의 사고는 흙의 향기에 젖어들어 풍요롭게 부풀어 오르고,청춘은 길러질 것이다.
이미 우리들 총후에는 일말의 불안도 없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많은 농촌의 자각과 참가가 필요할 뿐이다.
눈물겨울 정도로 보은의 길에 매진하는 그들의 힘든 노동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내일을 약속하는 빛나는 탈피의 상징이다.
내 가슴은 풍만한 희열에 소년처럼 떨려, 피곤한 내 몸도 잊고 서둘러 젊은 교도(敎導)에게 이곳을찾은 뜻을 알리니, 조용히 응대해 주었다. 젊은 마쓰바(松葉) 씨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은,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인이다. 그처럼 땅에 생명을 바치고 살다가 쓰러지는 것이 농민의 유일한 혼이고, 이것을 자연과의 약속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농민의 법칙이다.
도장의 윤곽
마쓰바 씨는 사무실에서 차를 내오면서 말했다.
이곳은 1934년 6월 1일 설립해서 같은 해 7월 22일 개장되었다.
현재의 위치는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 구암리. 설립 목적은 물론 그 이름 그대로 농민의 연성도장이고, 농촌의 우수한 청년을 선발 입장시켜 농가에서의 합리적 영농 및 황국신민의 완전 생활 훈련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견실유위(堅實有
爲)한 중견인물을 연성하여 인습에서의 탈피와 비약을 약속하는 것이다.
도장에 수용되는 도장생은 모두 약식으로 지어 놓은 농사(農舍)에서 5명을 한 가족으로 단위를 만든다.
동서 각 6호의 농사, 합계호의 정연한 12 농촌부락을 구성하여 실제 생활의 훈련을 통해 새로운 연성을 체험하고, 내일을 대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훈련조직 속에 있으며, 모두 생활은 농사에서 이루어지고 헌신적인노력을 경주하면서 숙식을 함께 하는 일상훈화교도의 눈물겨운 지도 하에, 그들의 정신생활과 직업에로의 농밀한 실험 작업을 수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계획의 수립, 근로호애(勤勞好愛), 청결 정돈, 미화윤화(美化潤化), 명랑화, 시설완비, 준비 철저, 공지(空地) 이용 등에 대해서, 먼저 개선의 길을 개척해 간다.
그 외에 그들은 체력증강을 위해서 스모(相撲), 흙부대 짊어지기, 맨몸 작업, 빗속 작업, 지게 경쟁,등산, 천렵 등을 총해 체격을 키우고 힘을 기른다. 기백을 왕성하게 하는 운동을 행하고, 수양면학(修養勉學)을 도모하여 청경우독(晴耕雨讀)을 원칙으로, 최소시간에 최다의 활용에 의한 연수의 습관을 길들인다.
이러한 그들은 또한 농가의 실정에 맞추어서, 요일을 없애거나, 혹은 영농 상황에 따라 축제일이라도 작업은 계속된다.
각 농사(農舍)에 가장(家長), 전답작(田畓作), 채소, 사육 시설 담당자를 두고, 가장을 중심으로 협조하며 각각 담당자 책임이 부여되는 토지, 가축시설 등을 통해 합리적 생산 확충 계획을 수립한다.
또한 일가(一家)의 경영에 있어 책임생산에 노력하면서, 농사의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인습에서 비롯되는 농촌의 결점이라고 인정되는 점에 대해서 특히 유의하여 엄격한 연성이 실시된다.
그들은 이 정신을 철저하게 체득하기 위해 장내에 다이마(大麻) 봉사전(奉祀典)을 건립하고 각 농사에는 가미다나(神棚)97)를 설치하여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며 황국신민으로서의 국체명징(國體明徵), 경신숭조(敬神崇祖), 감사보은(感謝報恩),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정신생활을 수련한다. 그리고 봉사전 앞에서 봄의 기넨사이(祈年祭)98), 가을의 샤쇼쿠사이(社稷祭)99) 그 외 농민으로서 잊어서는 안 될 경신(敬神)을 함양한다.
또한 매월 1일, 15일은 각 농사 당번이 봉사전 앞에 첫 이삭을 바치고, 한없는 감사의 제(祭)를드린다.
17일은반드시강당에제단을설치해서, 직원생도일동의조상의영혼을정성스럽게 맞이하는제를지낸다.
또한하루는축일(祝日)로정하여그달에태어난생도에게진심어린축하를한다.
다음으로 그들의 직업에 대한 정신은 독농가(篤農家)로서 이러한 영농 생활을 실천하게 하며, 합리적 유축영농(有畜營農), 재배 기술의 연마, 토지 이용개선 등을 통해 최고도의 생산에 노력하면서 농민의 행동을 통해 농민도(農民道)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수련은 생활의 쇄신에 대해서도 경주되며, 책임생산, 군수품의 공출, 폐품의 이용후생, □□□□, 정례회의 등을 실시한다. 또한 통제 경제에 익숙하게 하며, 또 방공방첩, 출정 유가족 원호, 근로보국 등에 대해서도, 부단한 노력이 계속되고, 시국에 대한 인식은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외에 고갈된 농촌에 대한 오락지도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한 주의가 이루어지고, □□□, 민요, 운동회, 품평회, 문고, 영화, 가미시바이(紙芝居)100), 라디오, 축음기, 시음(詩吟), 원예 등을 실천함으로써 농촌의 오락, 위안, 문화 방면에도 그들의 지도 정신은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97) 집안에 신을 모셔놓은 감실(龕室).
98) 음력 2월4일에 신사, 국가기관 등에서 오곡풍요를 기원하는 의식.
99) 토지신과 곡식에게 지내는 의식.
100) 그림 연극,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장의 그림으로 구성하여 한 장씩 설명하면서 구경시킴.
정화(淨化)된 지역
그들 도장생은 엄격한 연성 속에 아무런 불만도 없다. 그저 마음 넉넉하게 6개월간의 생활을 감사에 넘치며 수료하는 것이었다. 봄 햇살이 계룡산의 기복(起伏)을 조용히 그림자로 만들며 부조(浮彫)해 가는 장대한 모습은 멀리 역사의 원천으로 수 놓아가는 아름다운 향연일 것이다.
나는 다이마 봉사전에 마음으로부터 그들 젊은 도장생의 건강을 기도하고, 그들 정도(征途)의 날에 새로운 옥토의 열매를 드리워주실 것을 염원한 후, 농사(農舍)를 한번 둘러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농구를 손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종래 반도 농촌에서 볼 수 있던 비통한 표정이나 음울한 분위기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전체를 일관하는 것은 간소하고 명랑하며 신선하는 것이었다.
농촌 재편성의 문제가 식자 사이에 제기되는 오늘날, 이러한 도장생의 너무나도 선명한 탈피(脫皮)작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독자 제현은 나 이상으로 그 답을 말할 수 있을까?
농사의 구조는 12호의 농사가 모두 다른 재료로 되어 있고, 구사(驅使)되며, 토지의 높이, 산악지대 평지들의 특이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 이 도장에 수용된 그들은 다각적인 영농에 대해서 구명(究明)하는것이다.
실로 평화롭고 축복받은 지역. 이 땅에서 이루어진 직원 생도 일체의 헌신은 머지않아 그 열매를 맺게 되며, 농민 연성에서 더욱 고도의 증산 영농으로 비약하는 날도 이미 눈앞에 두고 있다.
수려한 산맥에 둘러싸인, 부드러운 옥토는 내일을 약속하고, 신생의 노래가 막 흘러내린 논밭에 저녁 어둠의 정적이 날개를 편다. 영겁의 자연의 습성이 영위하는 동안에, 인간은 생성의 희열을 가지며, 취락의 비애를 잉태하고 역사를 엮어 간다.
나는 한없는 토지의 냄새에 취해, 유성농민도장을 뒤로 하고 숙소인 유성호텔로 돌아갔다.
(유성으로의 여행) 초
<출전 : 趙宇植, 「儒城農民道場を見る」, '東洋之光' 1943년 6월호, 50~53쪽>
(5) 흙에 기도하고 단련하는 농민혼 -유성 농민도량 견학기
정화된 축복의 땅
연선(連線)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산악 고유의 격조를 갖추었으며, 우뚝 솟은 고풍스런 역사의 성지대(聖地帶) 계룡산맥의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고, 우리 반도의 곡창으로서의 결전적 책무를 짊어지고,완만하게 펼쳐지는 평야, 평야…….
이 일각에 자그마한 농사(農舍)101)를 조영하며, 새로운 반도 농촌의 힘찬 내일을 약속하고, 엄격한 일상 속에 옥토에 대한 사랑과 열기를 파 들어가는 곳.
오랜 전통으로 성장했고, 민족의 피의 흐름에 영위되어 온 신의 나라, 농업국가로서의 우리 국체가가지는 근본이념의 비길 데 없는 발전을 위해서 성전 완수의 원천인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증산의 큰
101) 간단한 농작물을 처리하기 위한 집.
걸음을 내디디며 괭이를 흔드는 농부들.
우리나라 전체는 신성(神性)에 의해서 시작되고 신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 이것은 우리 민족의 육체이고 눈꺼풀이다.
“대저 우리나라는 천지와 함께 신이 나타나 앉으시다. 그러므로 나라를 신국이라고 하고, 도를 신도라고 한다.
나라라는 것은 천계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라는 천축한토(天竺漢土)는 달과 별의 무리(衆)이다.
그러므로 원씨진단(月氏辰旦)이라고 한다. 해는 태양, 달은 볕의 준기(酸氣)이다.
별은 볕의산기이다. 삼광(三光) 모두 우리나라에서 나와, 삼신(三神) 이것 위에 드리우다.
신이라는 것은 보통의 신이 아니고, 건곤보다 앞서는 신. 도라는 것은 보통의 도가 아니라, 건곤을 초월한 도를 말한다. 신성을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며, 영체 형태 없이 형태를 짓는다. 이것이 즉 불측의 신체이다. (이하 생략)”
이러한 신도(神道)를 몸으로 행하는 자. 땅에 그 생을 받아, 모든 것을 그 신령의 땅. 풍요로운 혼의 고향에 바치고, 노동하는 육체에 한없는 약동과 기쁨을 담아 쉼없이 단련하고, 우주의 근원에 내재하는 영원한 애무 속에 신성한 조상의 유언을 지키고, 묵묵히 땅의 신체(神體)에 괭이를 흔들며 오늘도 내일도 청정한 마음의 생성의 기쁨, 자연의 절대적인 존엄에 생명의 염주를 열매 맺게 하는 젊은 농민의 모습은, 너무나도 세속적인 도회인에게 어떻게 자연의 신성을 가르치고, 끝없이 생성하는 지층에 잠재하는 언령(言靈)의 만법에 비추어 어떻게 연성(鍊成)의 진수를 점시(點示)할 것인가.
가만히 나는 청년 연성 갈앙(渴仰)의 오늘의 목소리를, 우주 신명이 수적(垂迹)102)하시는 땅에서 우러르고자 했고, 조용히 드리우는 화광의 광명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농후한 신록의 풍물이 형성되는 공주가도를 덜커덩덜커덩 흔들리며, 온화한 풍토가 항상 아취 있는 사적을 점채(點彩)하며 전개되고, 호남의 여정을 한없이 매력 넘치게 하는 수답이 펼쳐진 평야를, 대전에서 승합자동차로 북서 방향으로 8킬로미터, 약 1시간 가까이 걸리고, 유성천의 흐름이 열린 평야를 꾸미고, 또 지류로 그 여운을 남기는 곳.
시골치고는 너무나 훌륭한 양옥의 온천 호텔, 그것을 중심으로 단층집 여관이 즐비한, 그래서 승합자동차를 포기하자, 눈앞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봄 버드나무가 한없이 계절의 감상을 부조하고, 연한 서정이 가슴 부풀게 ……(판독불가)…… 밭의 아름다운 조망을 안고, 전방 조용한 산 표면의 치마를 □□한 전통의 산 계룡산이 가로지르고 있다.
그 당당한 모습을 향해 나아가니, 유성 거리에서 약 20분 지점에, 아주 고즈넉한 내지 풍의 농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연하게 이어져 있다.
여기가내신사(神士)의신탁(神託)을듣고자하는곳, 옥토를단련하는농민도장, 유성농촌훈련소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졌고, 민족의 피가 청순하게 우주의 법칙, 자연의 신성을 향해 단련되었고, 신국으로의 귀일이 눈을 떴고, 오랜 습성이 비약을 거부한 미개민의 늠름한 탈피로, 젊은 성장을 걸고 수련하는 농촌청년들. 그들은 이미 단순한 토착민이 아니다. 동방의 약속된 신농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이 지역이야말로 반도의 내일을 위해서 정화되어야 하고 향수되어야 할 축복의 땅이 아니고 무엇이랴.
102) 부처 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신의 모습으로 환생하는 일.
내지 새벽에 범주한다
도장 입구에 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반도의 농촌에 이렇게 간소한 내지 풍의 농법을 영위한 곳이 있었을까.
반도에서태어나유년기를보냈고, 소년부터청년의날을내지에서길러진나에게……(판독불가)……아름답게 되살아나는 그리운 풍습이여.
생활에 쫓겨 자신을 잊고 간소함을 잊고 있던 반도 농가로의 얼마나 커다란 범위인가. 명확하게 신생의 노래를 부르려고 할 것 같은 논밭에는, 분담 기숙사의 명찰도 그윽하게 줄을 맞추어, 그 성과에 힘쓰고 있는 것 같다. 양쪽의 녹색에 호흡하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내디디는 내 마음은 풍만한 시정에 부풀어 오른다.
여기저기 논밭에서 괭이를 다루는 청년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리에는 각반을 두르고, “언제 부름을 받아 가게 돼도” 그 기백이야말로 일찍이 반도 농촌에 없었던 결의이다. 흙으로 둘러싸여 과학과 문화에서 떨어져 있었다 하더라도, 조국의 내일을 짊어질 그들은 부름을 받아 갈 날을 기다리는 마음 절실할 것이다.
우리 반도에도 신농이 태어날 날이 온 것이다.
선발된 청년들이 여기에서 농가에서의 합리적 영농과 황국신민으로서의 완전한 생활을, 실지훈련으로 수련하는 것이다.
그들은 건전한 정신생활을 영위하고, 자연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독농가로의 미래를 향해서 영농생활을 실천해 간다.
그들의 정진은 농가의 실상에 맞춰 일요일, 휴일 할 것 없이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각 기숙사에는 가장, 전답작, 채소, 사육시설의 담당자를 두고, 가장을 중심으로 주어진 책임을 협의,분담된 토지, 가축, ……(판독불가)……의 수립을 목표로 해서 일가 경영을 맡고, 책임생산에 힘쓴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해져 온 농촌경영의 결점을, 면밀하게 연구 개선하는 것이다.
계획의 수립, 근로호애, 청결정돈, 미화윤화, 명랑화, 시설완비, 준비의 철저, 공지 이용 등에 대해서 보도 여러분의 멸사정신에 개인의 모든 것을 바쳐서 생활하는, 이러한 질서 있는 연성이 이 땅에 행해졌고, 엄격한 정진이 내일의 여 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온상(苗床)처럼 기름종이를붙인낮은창고로물병을운반하는청년, 지게를지고……(판독불가)……밝은 예지의 눈길이 빛나는 것이다.
정무총감 각하의 기념수가 있고, 유성 농민도장 간판이 걸린 뜰로 오자, 두, 세 명의 도장 사람이 무척이나 엄숙하게 경례를 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을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일찍이 없는 경험이었다.
반도 농촌을 내가 찾았을 때는, 늘 촌락민은 응시와 경원의 눈길을 던졌고, 알 수 없는 얼굴을 돌리면서 멀리했던 것이다. 그것이 거짓 없는 고백이다.
동양은 도덕과 예의의 나라가 아니었는가. 아무리 미지의 이방인이 찾아와도 자기 마을로 온 것이아닌가.
한번 흘낏 묵례 정도는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슬픈 내 소망이 오늘은 보상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하나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은 하고 물으니,“지금 곧 불러 오겠습니다.” 선명한 ‘국어’103)이다.
기다리기를 잠시, 젊은 선생님이 오셨다.
103) 일본어.
“잘 오셨습니다.”
정연하게 정리된 사무실로 안내를 받고 마쓰바(松葉) 씨와 마주 앉아 방문한 뜻을 알리니, 그 얼굴에는 농민으로서의 긍지가 주옥처럼 맑고 얌전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옥토에 사랑과 열을 바치고 -□□마쓰바 씨에게 듣다
실로 소박한 그리고 조용히 생각하는 정열이 말없이 빛나는 눈. 옥토의 신령에 청춘을 걸고, 몸을불사르는 봉사의 괭이, 영원히 가책없는 사신(捨身)의 열기가, 적토가 스며든 작업복에서 조용히 솟구쳐 오르는 듯한 겸손 그 자체의 약관의 선비. 마쓰바 씨의 말은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없는, 토지에로의밀착에 싸여, 자연의 행복과 안정에 길러진 것이리라.
“지금은 올해 말까지 보도(선생) 분도 적어서, 현재는 두 명입니다.
그 두 사람이 보도생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도장의 일과에 대해 말씀드리면, 기상은 일출 30분전이며 각자의 것을 정리하고, 청소작업을 하고, 아침 영기에 마음을 깨끗이 하고, 15분간‘작업을 쉬라’는 종이 울리면 5분간 세면대에서 몸을 깨끗이 하고, 그것이 끝나면 점호를 하고, 일직 선생님이 그것을 받습니다.
그것이 끝나면, 다이마(大麻)봉재전을 배례하고, 궁성요배가 끝납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의 인사가 있고, 정신훈화를 행하고, 국민체조를 합니다만, 특히 농민생활에 필요한 소위 건민운동을 훈련합니다.
이것으로 조회가 끝나고 바로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 전에 식전(食前)의맹세를 말합니다.
이 음식이 식탁에 올라올 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신불의 가호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깊이 감사합니다.
이 음식을 먹는 것을 과분하게 생각하고, 맛없다고 꺼리는 일 없고, 맛있다고 하며 욕심 부리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감사의 말을 나에게 하는 그의 용모는 이미 세속을 벗어난 훌륭한 자비에 넘치고,소리 내어 외는 그 여운은 유수한 혼의 골짜기에 울리는 리그베다104)의 시 구절처럼 영원에 가까운 듯하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도회지에서 자라난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불가사의한 감정이다.
조용히 눈을 뜨고
“이런 맹세가 끝나면 비로소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식사 후의 맹세를 바칩니다.
이것은 항상 농민으로서 가져야 할 토지에 대한 애착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식사마다 한자 지도를 행하고, 한 번 식사 때마다 2자, 1기(2월~12월, 11개월간) 2,000자 이상의 문자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주안점은 국어 상용에 따른 황민화이며, 연성이기 때문에, 더욱 많은 문자를 익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말고 농민도장으로서 특히 선생님의 방침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우선 살아있는 훈련을 행하는 것으로 자급자족을 도모합니다. 현재는 목표를 훨씬 뛰어 넘었고, 올해도 여섯 단계에 3천 7백 엔의 예정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형에서 유형으로의 진발정신(進發精
104) Rig-Veda. 고대 인도 브라만교 성전의 하나.
神)을 함양하고, 토지에 친숙하고,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무진장의 토지에 정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사랑과 열정을 집중시켜서 온힘을 기울이고, 최소의 토지를 이용해 최대한의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농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늘날 요망되는 자연 자원개발에 협력하는 실로 늠름한 말일 것이다. 한 평 원예조차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여.
자연의 풍요로운토지에 한 알맹이의 전쟁완수를 위한 양식을 뿌리자. 농민은 흙에 살고,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 좋은 것, 더욱 늠름한 것을 향해서 매진하는 도장생 제군이 묵묵히 일손을 계속 놓지 않고 연성하는 모습이야말로, 구투적(舊套的)인 습성의 비약을 의미하는 것이며, 건병(健兵)으로서 내일을 맹세하는 것일 게다.
흙에 기도하고 단련하는 농민 혼 ─ 바로 이것이 있으므로 흙의 아름다운 향기가 구현되는 것이고,육체가 되고, 생성의 반려가 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젊은 반도의 농촌 청년들은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에 말하는 그의 말은 끝없는 애토의 불꽃에 싸인 듯, 열을 내뿜는 창밖을 흐르는 장엄한 전원은유리창에 반영되고, 현란한 미래에의 꿈이 영상처럼 하늘을 서쪽으로 향해 변모해 간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이번에는 기숙사를 한번 보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사무실을 나온 우리들은 맨 앞의 갱생실로 향했다. 농촌 같지 않은 너무나도 청결하고 아름다운 농사(農舍)이다.
들어온우리들을 향해 부동의 자세로 침묵하는 청년들의 연성된 율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숙사에는다음과 같은 게시가 있다.
<고도국방국가 체제 확립>
- 사상의 통일
- 국민 총훈련
- 생산력 확충
갱생 애국반 반장 청천원식(靑川原植)
금본영환(金本永欽)
평소월성(平沼月星)
금본백석(金木白石)
유호매(柳昊梅)
<실천요항>
1. 일본정신의 앙양
2. 내선일체의 완성
3. 직역봉공의 철저
4. 생활 신체제의 확립
이렇게 살아가는 그들의 내일은 흔들림 없는 반도 농촌의 비약일까!
지금은 농사를 개로 “ 12 나누고 있습니다만, 각각 농사마다 특징과 장점을 갖게 하고, 토지와 어울리는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중한 설명에 따르면, 그 풍토가 갖는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한다.
평지, 산협 지대에서의 농사의 개조를 주안으로 한 것이었다.
농사는 갱생, 진흥, 자력, 봉사, 공동, 근검, 현농, 독농, 정농, 존농, 권농, 애농이라고 명명되었으며,그 농사에 사는 청년들은 그 농사의 이름을 걸고 괭이를 흔들며, 노력하는 것이다. 도장을 둘러본 뒤,나의 상상이 실현된 기쁨은 토지의 신성에 조용한 기도로 열매를 맺는 것이었다. 전원의 저녁 어둠은 새로운 반도의 신생을 약속하는 이 아름다운 일대를 에워싸며 역사로 동화해 간다. 유성의 온천 호텔에서 오늘의 여정을 회상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기억을 탐내는 것일까.
땅으로의 보은을 맹세하며
마쓰바 씨로부터 빌린 연혁지(更生舍)를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막히는 것을 느꼈고, 엄격한 신성의 옥토에 피를 스며들게 하며 수련한 도장생의 맹세의 구호는, 내 각오를 존엄한 경지로 이끌었으며, 반도의 하늘에 여 명의 태양이 되어 울리는 것 같다.
1. 11월 19일, 계룡산의 장작을 운반하러 갔지만 장작은 높은 산 정상에 있었고 우리들은 선생님의지도에 따라, 장작 한 짐을 나르며 비탈길 험한 곳을 아래 길까지 걷는데 몸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피곤한 몸으로 어둠 속을 걸어서 오후 8시에 귀소하여 몸이 괴로운 것을 생각하며 장작의 고마움을 느꼈다.
1. 2월 28일, 사랑하는 부모 슬하를 떠나 심신 단련을 하고 탁월한 기술을 익히고, 일가의 갱생뿐 아니라, 나아가 마을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일하며 총후에서의 희망에 불타 입소한 갱생사.
1. 가뭄을 극복할 수로를 팠다. 6월 초부터 수로를 파기 시작해서, 우리들은 어떤 날은 밤을 새우고어떤 날은 비를 맞으면서 팠다. 그렇게 판 수로는 누가 봐도 사람의 힘으로 팠다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 파종한 야채는 발아도 하지 않고, 가뭄은 계속되고 유성 온천장(1킬로미터)에서 물을 운반해서 관수(灌水)로 하고, 가을 채소도 예년에 못지 않게 길러내는 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 오늘은 한왕에서 지은 벼 운반이다. 목표를 정해놓고 열심히 운반했지만, 시간 때문에 3분의 2밖에 운반하지 못했다. 한층 분발하여 밤늦게까지 목표대로 달성했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되었다. 일은 해야 하기에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날까지 몸이 피곤했다.
1. 10월 14일 이 날처럼 우리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격에 젖은 날은 없었다. 황공하옵게도 천황폐하의 명령을 받아, 1개월 전부터 반도를 시찰하고 계시는 오구라(小倉) 시종님은 우리들의 농민도장을보셨다.
우리들이 시종님을 만날 수 있게 것도 우리들이 유성농민도장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격과 감루로 한번 □□했다.
1. 갱생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취사 당번이 되어, 취사를 체험하며,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을 통절하게 느꼈고, 지금까지 생활해 오면서 어머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서 고생하신 것을 충분히 알게 되어 우리 갱생사 전원은 각자의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을 충심으로 사죄하면서 자신도 무르게 눈물을흘렸다.
1. 계사(鷄舍) 〓현 농촌의 자급자족을 알리는 데 가장 어울리도록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스타일의 모델. 벽돌 쌓기로써 운동장 밖은 옥수수를 사용해서 십전 미만으로 완성되었다. 흡이기(모이 주는 도구-역자)는 석유통(石油罐)을 네 등분해서 사용한다.
출입구에 음악당이라고 걸은 것은 닭소리를 유일한 농촌 음악이라고 들으며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는 뜻의 바탕이다.
1. 다만 지금 연혁지를 기록하는 데 후배들에게 조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한가지 덧붙여 둔다. 우리들이 입소하여 조만간 소정의 훈련을 마치고 마악 귀향하려고 하는 기분이야말로 더 이상 비길 데 없다. 본 훈련소 기간에서는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 그리고 즐거웠던 일이 많았다.
쓰자면 한이 없다. 따라서 붓을 들지 않기로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쓰고 싶은 것은 ‘농민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하나는, ‘계속(續け)’이라는 것이다.
말하기는 쉽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리들은 어떻게 농민으로서 즐거울 수 있는가, 그밖에는 길이 없는가.
훈련소에서는 품행에 관계되는 것이다. 선생님에게서 지도받은 대로 가면 될 것이다.
어떤 불평불만을 갖고 살아서는 안 된다.
자신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하면, 그저 예, 예, 하고 참고, 기분 좋게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날 그날을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농민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계속’인데, 소장 선생님은 ‘계속’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누구나 이상을 갖고 있다.
실행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청년은 뜨거워지기 쉬운 것이다. ‘계속’이라는 것은 결코 일시적인 실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속하지 않는 것은 시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시노즈카(篠塚).
우리들은 이 훈련기간에 과연 무엇을 얻고 돌아가는가. 전임(前任) 시노즈카 소장 선생으로부터 ‘농민의 즐거움’을, 현 소장 선생으로부터 ‘계속’ 이것이다. 향후 우리들이 어떻게 ‘농민의 즐거움’을 진정으로 맛볼 수 있고 어떻게 ‘계속’을 행해야 할까. 매일 날이 채 밝기 전에 일어나는 방법밖에는 없다.
날이 채 밝기 전에 일어나면 경쾌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그날부터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날이 지면 그 날을 반성하고 내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것을 매일 행하는 것. 즉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농민의 즐거움은 자연히 그리고 틀림없이 파악할 수 있다. ‘계속’을 이루었을 때 일가는 갱생, 국가가 요구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의심할 바 없다. 지금 나는 마을로 돌아가 ‘계속’을 계속할 것을 단언한다.
이것이 올해 훈련기간에 얻은 커다란 수확이다.
후배 제군들이여, 더욱 더 분투노력하여 이상의 성과를 올려라. 그리고 지친 오늘의 조선농촌을 서로힘을 합해 일으키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후배 제군의 건강을 빈다. 이상
(원문대로)
문장은 치졸하고, 탈자 오자도 눈에 띄게 보인다. 그렇지만 거짓 없는 그들의 결별의 말은 반드시 자신의 고향에서 눈부시게 행해질 것이다. 그들이 얻은 도장에서의 정신생활과 직업에로의 정진은, 현장에 활용되고, 농업실습 외에 체력증강을 위해서도 단련하고, 스모(相撲), 흙부대 짊어지기, 맨몸 작업,우중 작업, 지게 경쟁, 등산, 강에서 물고기 잡는 일은 농민의 생활에 새로운 생활소로 받아들여지고,그렇게 함으로써 체격은 튼튼하고 힘은 늘고, 기백은 왕성해지고, 또한 영농은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천 자의 수양면학은 2 , 그 글자수를 늘려서 더 많이 천 자, 만 자의 숫자가 되고, 문맹의 슬픔은 머지않아 그들의 손에 의해서 퇴치될 것이다. 그들이 농촌에 살고 있는 한 재배, 사육, 생산물 처리등에 대한 경제관계를 명확히 하는 식산계는 출납부 기장(記帳)을 통해 나타나고, 책임생산, 군수품 공출, 폐품이용후생, 쌀 없는 날, 정례 회의의 실시로 항상 통제 경제로의 길들임(연습)과, 방공방첩, 출정 유가족 원호, 근로 보국 등의 생활쇄신, 시국 인식의 노력은 농촌에서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농촌오락위안의 지도와 함께 명랑한 농촌 문화 확립의 깃발은 힘차게 반도 산천을 길게 뒤덮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미래의 꽃이 피는 날을 향해 염원의 기도를 드렸다. 약속시간에 집을 떠나 도장을 찾았고, 하루의 일과를 빠짐없이 견학하고, 예정된 기록을 쓰고, 그들과 이별의 사진을 찍는 내마음은 한없이 풍만했고, 작은 새처럼 가볍게 청순한 공기를 나는 것이었다.
독자여. 안심하는 것이 좋다. 이미 반도의 농촌에 증산과 재편성의 문제는, 그들 도장생의 불굴의 연성에 의해서 해결되었고, 일본의 신성이 드리우는 옥토는 이전보다 더욱 번창할 신대(神代)와 함께 경작되리라.
<출전 : 趙宇植, 「土に祈り鍛ふ農民魂一儒城農民道場見學記」,'文化朝鮮' 1943년 6월호, 60~64쪽>
(6) 싸우는 항공창
특파기자 백천영이(白川榮二)105)
생산전사의 모습을
끊임없이 찬바람을 뚫고 울리는 저공비행 소리가 나를 태우고 달리는 차 밖에서 들려온다.
이것은 엄연히 북변의 수호에 임하는 뭍독수리(陸鷲)의 커다란 건설에 대한 의지이고, 타도 미영의 결의에 불타는 동포의 피의 맥동이다.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울리는 폭음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기도하는 우리들 일행을 태운 차는 ○
○로 질주한다. 이 듬직한 소리에 아득한 전장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위문편지보다도 한 대라도 많은 비행기를!”
이것은 전선장병으로부터 총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표어다.
이것을 국민의 전선을 생각하는 충정을 거부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싸움은 가열하다. 숙적 미영은 무모하게 싸움을 감행해 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반도 이천 육백만 동포는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 100 대 헌납에 마음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버렸다. 비행기 증산이 오늘날의 전쟁에서 얼마나 절대적인가에 대해서 나 같은 사람이 말할 필요는 없다.
전력을 증강해야 하는 전쟁 완수의 국가적 필연성에 대해서 해설할 만큼의 자격도 나에게는 없다.
105) 조우식(趙宇植)의 창씨명.
내가 감히 당돌하게도 이 중책을 맡아 글을 쓰는 이유는, ‘한 대라도 많이’ 싸움터로 보내서 씩씩하게 봉사하는 생산 전사의 진지한 모습을 전하고자 할 뿐, 다른 뜻은 없다.
보급전에서 이겨라
오늘날 전쟁에서 승패의 관건은 항공의 보급전이라는 것은 기노시타(木下) 소좌의 말인데 전선 용사가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후방에서 병사나 식량을 보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일 당 천의 강인함을 가진 전선 용사에게 절대 안심하고, 우리들 총후 국민은 보급에 전력을 바쳐야 한다.
보급전에서 이기는 것은, 결론적으로 전쟁에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우리 반도에는 이 보급을 충분히 줄 수 있는 무진장의 지하자원과 인적 자원이 있다.
이미‘미작(米作)조선’이 갖는 단순한 종래의 사명을 아득히 비약시킨 항공 생산기지로서 발전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이것은 전쟁의 숭고한 목적이 낳은 신생 반도에 대한 은혜이다.
그것을 어떻게 우리 반도는 보답해야 할까! 단 하나, 앞장서서 자기 몸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바치는 봉사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이때 나를 숙연하게 하는 것은 황공하옵게도 무한한,나라를 생각하는 길에 두 가지는 없다
전쟁의 뜰에 나서는 것도 나서지 않는 것도라고 국민에게 남기신 메이지(明治) 천황의 크고 고마우신 마음이다.
우리 국민들의 비장한 소원은 이제 가열한 전국(戰局)에서 꽃 피워 학도 제군들은 창을 들고 전투배치에 따르는 것이다.
정벌하는 우리 형제에게, 부끄럽지 않게 한 대라도 많은 항공 병기를 보내자.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올바른 사명이고, 나라에 보답하는 국민의 기도이다.
정밀기계와 씨름하는 소년공(少年工)
청년 장교 도쿠나가(德永) 중위의 안내로 현장으로 발을 옮긴다. 우선 기계시험실에 들어가서, 대단히 조용한 것과 청결한 것에 놀랐다. 정연하게 놓인 계기의 정밀 기계류, 남쪽 창에서 비추는 볕에 미묘한 빛을 방사한다.
열심히 기계를 바라보고 있는 공원들은 얼마나 젊고 늠름한 청년들이며, 침착한 눈빛을 가졌는가. 자이로106) 계기는 지금 무척이나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주 가냘프게 움직이는 미터기를 주시하는 눈은, 아득히 포연 속에 조종간을 쥐고, 전방에 집요한 준동을 계속하는 적기를 주시하는 우리 뭍독수리(陸鷲)의 눈과 무엇이 다른가. 몇 백분의 일 모(耗)107)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절대적인 혼이 있어야만, 하늘의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옆에서 부품을 깎는 줄의 소리조차 민족혼의 분신일 것이다. 케가키108) 바늘, 드라이버 무수한 기
106) 자이로 스코프나 자이로 컴퍼스를 가리키는 말.
107) 할 푼 리 모의 모를 가리키는 말.
어 이것조차도 …… 항공결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병기인 것이다. 전류의 흐름을 재는 계기는 치밀하게 그 농도를 재며 움직인다.……
선반에 놓인 ○○식 자동 조종기, 상자에 들어있는 ○○식 조준 안경,……승강기를 시험하고 있는 홍안의 소년공들,
“간단한 만큼 정밀기계 이상으로 그 성능을 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담당자가 들려준다. 그것으로 얼마나 그들이 마음을 집중하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들 약관의 소년들에게 “감사한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기분이 가슴에 가득하다.
이어진 전기 실험실로 발을 옮긴다.
고도계를 향해 열심히 메타를 응시하고 있는 몸뻬 차림의 뒷모습이 눈에 비쳤다.
여기에서 나는 항공기 증산에 몸을 바치는 황국 여성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났다.
황국에 생을 받은 여성들이여. 이것은 이들 딸만의 것이 아니다. 그대들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총후진충(銃後盡忠)의 모습이어야 한다.
승강기를 시험하고 있는 것.
산소 흡입기를 시험하고 있는 것…
300까지의 숫자를 나타내면 자연스럽게 바늘이 멈춰지는 장치가 되어 기압의 심도를 측정할 수 있는것이다.
회전계, 동요의 여하에 따라서 조종을 증감할 수 있는 것 등…
조그마한 기분의 허점이 있어서도 안 되는 전선의 상주직장의 감투정신은 그 어떤 곳에서도 가득 차있다.
전동기 수리장에 들어가니, 어마어마한 전선이 거미줄처럼 배선되어 있고, 최고도의 전류가 배전판에 의해서 가감되며 그 성능이 시험된다.
넓은 작업장 어디를 보아도, 늠름하게 서서 일하고 있는 것은 모두 소년들이다. 용맹한 하늘의 신병(神兵)에 대한 동경은, 끊임없이 하나의 나사, 打金으로 바꾸어 집중된다.
2200 항공창에는 이러한 젊은국민학교를 나와서 얼마 되지 않는 소년 공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치밀하기 그지없는 작업에, 거기에, 마음과 혼을 기울여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
경금속의 아름다운 구성미 속에 늠름하게 일하는 모습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우리들은 이렇게 물적 우위에 취한 적 미국과 영국을 병기 생산 전사의 불굴의 정신력으로 물심양면에 걸쳐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중에는 지금, 맹훈련에서 기체가 걱정되어 달려 왔을 비행복의 청년 장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전선과 총후를 이어주는 한 폭의 아름다운 정경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장병을 안심하고 싸우게 하기 위해서는, 한 대라도 많은 비행기를 생산하자.
벽에는 군인 칙유가 붙어 있다.
본부장의 훈시 요지, 창장 복무지침이, 공원들의 결의를 견고하게 하려는 듯 붙어 있다.
108) 기계·기구의 부분품을 만들 때, 그 재료에 가공상 필요한 (선·점의) 표를 하는 일.
1. 결전의 해다. 전력을 다하라.
2. 칼집에서 뺀 칼의 기백을 견지하라.
3. 삼엄한 군기풍기의 확립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고 있는 내 옆에 와서 도쿠나가 중위는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보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항공기 증산이 중대하고, 종사원이 필요한지는 아셨을 것입니다.
좀더 많은 반도의 사람들이 이 늠름한 인적 자원이 절대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필요합니다. 또한 얼마든지 일은 있습니다만.”
말은 간단하지만 전시 증산, 특히 병기 생산의 중요성에 대해서, 반도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요망되는가를 알 수 있다.
징병을 기다리는 것은 이미 미온적인 사고이다. 좀 더 돌진해서, 불덩어리가 되어 전시 생산에 앞장서서 온몸을 바쳐야 한다.
좀더 노력을!
세기의 총아로서 등장한 싸움이 반도가 갖는 무진장의 지하자원, 과학병기에 절대적인 희귀 원소가 우리들의 양팔에 의해 개발되어, 항공결전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긍지를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탄탈(Tantal), 지르콘(zircon), 흑운모 등, 우리 반도에는 직접적인 자원이 얼마나 부존(賦存)109)되어있는가.
남북조선 일대에 걸친 경이적인 전력(電力)은 향후 우리 총후 국민의 각오에 따라서 얼마든지발전가능하다.
거대한 망치가 포효하는 단(鍛) 공장에도, 작렬하는 용해된 합금을 틀에 흘려서 속에 집어넣는 주물공장에도 종업원은 아직 부족하다.
묵묵히 봉사하는 공원은 모두 소년뿐이 아닌가. 도시에서 놀고 있는 막대한 노동력이 여기로 향하지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 감정은 이 소년들에게 죄송한, 아니 그 이상의 기분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것을 느낀다.
프로펠러 수련장으로 들어가도, 그런 기분은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몹시 굴절된 언뜻 보면우리들에게는 폐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수련장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병기가 되는 것이다.
한장의 판자, 한 장의 알루미늄 판이라도 헛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헛것을 만드는 것은 어딘가에 마음의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펠러를 수리하는 작업에도, 운반에도 그것을 다루는 세 명의 혼이 하나의 초점에서 일치하고, 호흡이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이 혼이며, 그 혼이 집중한 곳에서 비로소 정밀한 이 작업은 완성된다.
앞에서 말한 중위님은 계속 되풀이하며 반도가 특수자원의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과, 베릴륨
109) 부존자원이란, 경제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地殼안의 지질학적 자원을 말한다.
(beryllium), 청동, 주코륨에 대해서는, 아이를 가르치듯이,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이것이 뭍독수리(陸鷲)의 온정이라는 것이리라.
착잡한 감동과 감사의 생각에, 고개를 숙이면서 다음 공정을 향해 걸어간다.
조립된 항공기의 명맥, 발동기의 고장을 분해 수리하고 있다.
우선 운반된 발동기는 몇 간이나 되는 금속 세정기의 세정통 천정에서 드리워져 있는 와이어에 걸려,탄화수소를 취하기 위한 세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분해되고, 다른 세정작업으로 옮겨가게 된다. 글처럼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땀범벅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세정액이 내뿜는악취 속에 노출되는 시간이 계속된다.
코를 찌르는 중유 냄새……냄새……그러나 작업하는 그들은 무아지경이다.
다만 생각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수선되어 이 비행기가 결전의 하늘을 비상하는 날의기쁨뿐이 아닐까.
조금도 화려하지 않다. 이 근로의 눈물겨움을, 도회 상공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은 많은 경우에 그러하다. 우리들은 좀 더 깨달아야 한다. 살아있는 것처럼 정연하게 놓인 ○○식 발동기 ○○ 마력 발동기가 내일의 하늘을 주시하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처럼 소중하게 부분 부분은 빛나고 있다.
이러한 성실함은 어디에도 충만해 있다. 기계공장 안도 다르지 않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놓인 선반,셰이퍼(shaper), 밀링(milling) 등의 기계.
거기에 부수적인 공구, 잘라서 버려진 알루미늄(aluminium) 판, 듀라늄(Duranium) 판조차도, 아름다운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용하는 손이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 담당한 기계를 향해 총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뺨에 얼굴을 댈 수 있는 정도까지 다가가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잘라 가는 바이트의 끝만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지금(地金. 가공재료가 되는 금속-역자)이 천분의 몇까지의 정밀한 부분품으로 깎여 가는 기쁨은, 그것을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것으로 일단 부분공장은 보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완성된 기체의 부분에 손질을 하는 곳입니다.
비행기 공장이죠.”중위님은 야무진 어조로 말씀하신다.
귀를 압도하는 폭음…맹렬하게 강한 소리이다. 일찍이 이런 음
향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그 전에는 하와이의 하늘을, 보르네오의 밀림을 하늘의 신병을 태우고 날았을 것이다. 항공 일본의 긍지 정예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의작업은정비작업, 판금작업, 기능부품수리등…여기저기의비행기에조종간을운반하는것,날개를 타고 나사를 끼우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 ……(판독불가)…… 일하는 모습이 늠름하게 보인다.
무엇을그들에게들을수있을까. 아무것도없다. 요는우리들에게있는것이다. 확실히사람손은부족하다. 무엇보다도비행기를 만드는노동력이 많이부족한 것이다. 유휴의 노동력은여기로 향해야 한다.
내가 여기를 떠날 때 생각한 것은, 총후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시각은 16시 20분.
차가 귀로에 올랐을 때도 변함없는 맹훈련의 저공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총후의 책임’
나는 결론으로 ‘총후의 책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빌리려고 한다. “총후의 국민 중에는, 옥쇄(玉碎)110)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특히, ‘옥쇄를 시키지 않을 길은 없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생각이다.
아무리 야마토 혼에 불타는 황군장병이라고 하더라도,근대전투에서는 정신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거기에는 물질의 양과 질의 한도가 있다. 대항이 그 한도의 최고도를 초과했을 경우, 황군에서는 옥쇄라고 하는 진충(盡忠)의 산화(散華)가 취해지는 것이다.
이에 이번 옥쇄로의 경과를 되돌아 보건대, 적은 우세부대 일개 사단, 거기에 공군의 협력 하에 치열한 공격을 개시했고, 스콜(squall)의 ……(판독불가)…… 어디까지고 물질의 힘을 믿는 맹공은, 적의 유일최대의 전투적 자신감이다.
이러한 최대의 자신감을 격파 분쇄하고, 결전을 우리의 완승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 제일선에 병기를, 탄약을 자꾸자꾸 보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병풍산111) 옥쇄수비대에서도 탄환 모두를 다 쓴다고 하는 것처럼, 비통한 곰(熊)을 만나게 했다는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바로 총후 국민이야말로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제일선이 ‘한 대라도 좋다. 한시라도 빨리 보내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진의를 지금이야말로 국민은 절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황군은, 그 전투원의 경우, 일당 십에, 백에, 천에 해당하는 기백과 정신력을 갖고 있다. 그 높은 자질을 갖고 있는황군장병이 옥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병기와 탄약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언한다면, ‘옥쇄의 책임은 총후국민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생각을 더 깊이 할 경우, 천황폐하의 병사들의
총후 국민의 노력이 미흡해서 옥쇄하게 만든 일이, 얼마나 송구스런 일인가를 마음으로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제일선 장병만의 싸움이 아니다.
국민 전체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총후도 군국(君國)을 위해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출전 : 白川榮二(特派記者), 「現地報告·決戰の職場, ○○航空廠見問記―戰ふ航空廠」,'文化朝鮮' 제6권 제1호, 1944년 2월, 40~43쪽>
10) 주영섭(朱永涉)
(1) 평양대화숙
우리 평양에서 ‘국어’112)보급 운동이 근래 시작된 것은 지금 대화숙(大和塾)의 전신인 전조선사상보국연맹 평양지부 시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 6월 10일 요다(依田) 전보호관찰소장의 노력으로시내 명성(明星)학교에서 제1회 국어강습회가 열렸다. 10세 이상의 남녀 50명으로 학과는 국어, 산술,수신(修身)이고, 별도로 공민과(公民科)를 두어 소학교 졸업과정의 남자도 수용했다. 기간은 6개월이고
110) 옥처럼 아름답게 깨어져 부서진다는 뜻.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는 것.
111) Shaggy Ridge.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산.
112) 일본어.
매일 밤 시부터 8 2시간마다 수업이 있었다. 같은 해 12월 10일에 감격스럽게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어 다음해인 1941년에는 사상보국연맹이 대화숙으로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더욱 태세를 정비하여시내 인정도서관(仁貞圖書館)의 강당을 빌려 대화숙 국어강습소를 개설했다.
인원은 남녀 15세 이상 각50명씩이고 과목은 국어만으로 했다.
기간은 1년으로 늘려 매일 밤 7시부터 9시까지로 했다.
이렇게 하여 인정도장에서의 국어강습회는 현재까지 제5회째 수업중이다.
지금까지의 졸업생은 남녀 약 5백 명, 현재 수업중인 자 약 100명이다.
평양 대화숙이 지금까지 기초를 굳건히 하여 순조롭게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역대 대화숙 회장을비롯하여 각 보호사 및 회원 제위의 비상한 노력 덕분이다.
1942년 5월 반도에서 징병제 실시가 공포되고 이와 함께 조선 각지에서 국어보급운동은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지금까지는 배움을 좋아하는 극히 일부 소년 소녀들에 한정되어 있던 국어열이 전 조선의 각가정에 스며들게 되었다. 평양에서도 마을모임 및 기타 기관에 의해 몇 개의 국어강습소가 개설되었다.
이제 전통 있는 평양대화숙에서는 한 단계 비약을 이루어 시내에 2개소의 도장을 가지게 되었다.
평양대화숙 미즈호(瑞穂)도장(시내 景昌町) 및 세이메이(淸明)도장(시내 新陽町)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곳의 건물은 일찍이 미국이 이십 몇 년 간 조선 침략의 수단으로 평양에 개설한 성서학교이다.
1941년 시즈나가(靜永) 전(前) 대화숙 회장 시절에 국어강습회장으로 빌려달라고 신청했더니 그들은이렇게 대답했다. “성서학교는 신성한 곳이어서 국어강습 따위는 그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고.
마침내1942년 가을 평양대화숙은 이 건물을 적산관리인으로부터 빌려 두 도장을 만들었다. 대화숙 회원들의수차례에 걸친 근로작업으로 건물 내외는 깔끔하게 단장되고 정문에는 이름도 유서깊은 미즈호(瑞穂),세이메이(淸明)의 간판이 세워지고 일장기가 하늘높이 걸려, 여기에 대화숙 회원들의 사랑의 가정과 장래 수산장(授産場)113) 및 당당한 국어강습소로서 갱생했다.
한편 인정도장에서의 국어강습회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을 때 여기 세이메이도장은 징병제도의 실시를 앞두고 이에 대응하도록 웅장하게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녀 10세 이상의 모집 규정을 고쳐 15세 이상 19세까지의 남녀로 한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이메이도장의 제1회 강습은 1942년 10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1회생으로 달려온 징병적령을 앞둔 청소년은 약 100명 남짓. 입소원서를 펼쳐 보니 직공도 있고 점원도 있고, 노무자도 있었다. 더욱 세밀히 구분해 보자면 철공소 직공, 양화수선업, 인쇄소 직공, 고무공장 직공, 직조 공장 직공, 양복점 점원, 인장업, 치과 조수 등등.
기간은 6개월 예정, 매일 밤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과목은 국어만, 국어를 통해 국체 관념과 숫자 관념을 주입하고 징병제 실시에 대비하도록 기본적 훈련을 실시한다. 교재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국어교본. 이상 모두 무료로 교본을 제공한다.
<출전 : 朱永涉, 「平壤大和塾」, '國民文學' 1943년 1월호, 125~126쪽>
113) ‘授産’은 실업자나 빈곤층에게 일을 주어 생활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뜻.
11) 주요한(朱燿翰, 松村紘一)
(1) 출범의 정신
송촌굉일(松村紘一)114)
배는 항상 바다를, 넓은 바다를 그리워한다. 때문에 입항하는 배는 배꼬리를 육지로 향하게 하고 뱃머리는 출범의 모습으로 대기한다. 이제야 반도는 이 출항의 정신에 노장(老壯) 모두 불타오르고 있다.
육군의 징병은 내년으로 다가왔다. 해군지원병의 훈련은 금년 10월경에 시작할 예정이다.
기업정비도 반도에 오기로 임시의회에서 정해졌다. 정비하면 인적인 자원에 여유가 생긴다. 여유 민력(民力)은 전력의 증강이 되는 것이다.
가혹한 전국(戰局)을 앞에 두고 반도는 바로 출격의 전야에 있다. 지금까지 매우 -지나사변 이래 7년 간 우리는 열렬하고 힘차게, 또한 강한 인내심으로 싸워왔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주로 간접적이었다.
수많은 청춘이 전선에서 사라질 때, 우리는 그저 후방을 지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힘찬 노동력이군수공장에 집중될 때, 반도는 아직 경공업으로 낮게 헤매고 있었다. 싸우는 문화의 늠름한 모습을 품
고 우리는 국어보급이라는 기초공작과 씨름하고 있었다.
엄연한 전쟁의 요구는 드디어 반도에게 그 전력을 직접 전력의 증강에 향하도록 하였다.
그것은 물론 단순한 전쟁의 요구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기도 하다.
그것은 첫째 팔굉위우(八紘爲宇)의 나타남인 것이다. 조선에서 구현된 황토(皇土)수립의 대 정신이다.
징병, 해군지원병, 노무동원은 첫째로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반도는 이 획기적인 대 영단에 대해서 무한한 감격을 느낀 것이다.
다만 오늘날 반도가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대동아전의 화려한 무대로 뛰어나갈 도약의 시점에 설 수있게 된 것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황은(皇恩)으로 길러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
이제 모든 반도의 민(民)은 출항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청년은 군복을 마련하여 소집날을 손꼽아 헤아리고 있고, 부모와 처자는 그들의 출발을 가장 용감하게 축하하기 위해 물심양면의 준비를 시작하고있다.
지식이 있는 자는 싸우는 문화전선으로, 기능이 있는 자는 싸우는 산업전사로서 곧바로 뛰어들어야 한다.
모든 여정에서 내지동포의 발자취를 쫓아가기 위해 용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폭탄을 안고 철망을 뚫어야 하고, 때로는 어뢰를 품고 대양을 뚫어 나가야 하며, 때로는 쇠를단련하여 화약을 개며 배를 만들기 위하여 반도에 축적된 힘으로 무엇인가 해야 할 때가 눈앞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는 되었는가.
114) 주요한(朱燿翰)의 창씨명.
현명한 함장은 돌진의 명령을 잘 예측한다 . 증기를 잔뜩 끓여 올려서 돌진의 신호가 오르자마자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적 함정을 목표로 돌진하여 그 임무를 다 한다. 현명치 못한 함장은 신호기가 올라간 후에 비로소 증기를 때게 한다.
그래서는 이미 늦은 것이다.
◇
반도의 백성이 오늘날까지 전쟁을 비교적 자신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미 그러한 나날은 끝나고 있다.
공채를 사는 일이나 놋쇠를 바치는 일, 몸뻬를 입고 물통에 물을 긷는 일만을 전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혹시 있었다면 그러한 날도 끝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반도의 자식들은 실제로 총검을 잡고, 미, 영의 옆구리를 찌를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우리의 피와 생명으로써, 건설의 악보를 그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집들에 위패는 용기를 뽐내며, 신사 앞의 묵도에는 육친의 절실함이 깃들 것이다. 전쟁터에서 함께 일어나고 함께 싸우고 있는 친구와 친구사이에 현해탄의 거리를 느끼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가혹한 결전의 시기를 맞이하여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영광이며, 우리의 감격은 우리의 비약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아직까지도 전쟁을 가깝게 느끼지 않는 자가 있다면 혹은 여 명의 고동을 볼 수가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서 느낌이 없는 자, 사랑할 줄 모르는 자, 나아가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자라고 경멸할 것이다.
반도의 어른에게, 반도의 젊은이에게 나는 호소한다. 이 호소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도의 아버지여!
반도의 어머니여!
반도의 아들이여!
반도의 딸이여!
출항할 준비는 되었는가!
조국의 이상과 반도의 역할,
칠생보국(七生報國)의 정성
감투정신, 책임감,
곤고결핍을 참는 것,
사생관의 재정립,
이러한 약간의 암호는 깊은 뜻 가운데에 반도의 Z기(旗)를 읽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출전 : 松村紘一, 「出帆の精神」, '新時代' 1943년 7월호, 16~18쪽>
(2) 직장(職場)·도장(道場)·전장(戰場) -취직하는 지식청년에게 주노라
송촌굉일(松村紘一)
반도의 대학 전문 출신자에게 취직 문이 열렸다. 이것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는 하나의 사실이다.
조선통치의 크나큰 부모와 같은 마음이라는 점에서, 그 직장이 조선으로 한정되지 않고 내지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또 민간회사로 한정하지 않고 관청에까지 넓혀지고 있다는 점은, 기뻐해야 할 이유와 크게 반성해야 할 여지까지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청년은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즉 이러한 쾌거가 사람을 보충해야하는 필요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는것은 피상적일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징병실시의 의의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의 소집은 한 없이 광대한 어버이 마음의 발로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지의 관청이나 민간에 사람이 모자라니까 반도청년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반도청년에게 희망을 주며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는 영광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취해진 정책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번 가을에 직장으로 달려가는 그들 청년학도의 책임은 내년에 군문(軍門)에 선택되는 초년병 아우들에 앞서서 반도의 영욕을 양 어깨에 짊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올릴 실적은 앞으로 그 발자취를 쫓아야 할 후배들 앞길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 책임이란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영예에 보답하고, 또한 그 책임을 다하며 후진을 위하여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될 것인가.
- 직장을 즉 도장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연성 향상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 직장을 즉 전쟁터라고 생각하고, 멸사봉공의 자세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 환경을 자각하여 자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난관을 돌파하며 1억1심을 자진해서 쟁취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항상 듣던 조선청년들에 대한 비난은 무엇이었던가. 책임감의 박약이다.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마음이 모자란다. 성실성이 없다. 은혜를 모른다. 자기 합리가 많다. 등등등.
이러한 비난은 일견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와서 이러한 것이 맞고 틀리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오직 실제 폭탄을 갖고 가공의또는현실의장해를폭파하고당당하게대도(大道)로진격해야한다. 드디어반도청년앞에그기회가 주어졌다.
그들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오로지 사실뿐이다. 그리고 예견되는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가장 긍정적인 답을 갖고 있다. 영단을 내린 내각 및 총독부당국의 생각도 이와 같으리라고 확신한다.
역사를 만드는 마음
다만 여기 출발점에서는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한 마디가 필요하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 방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각도나 여러 가지 말을 가지고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이나 한 마디로 말하면,
“역사를 만드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선청년의 입으로 우리는 자주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해 줄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말에는 석연치 않은 그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들을때마다 그들에게 방향을 바꾸라고 설득했다.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만드는 마음”이다.
역사가 나를 어떤 곳으로 이끌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역사를 어떤 곳으로 이끌겠다고 하는 마음이다.
일찍이 누군가 말했다 -“신체제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고.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내선일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있다.”
내선일체, 반도의 황국화, 도의(道義)조선의 건설 -대 목표는 정해져 있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하여 난관을 넘어주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발에 물집이 생기더라도 넘어야 하는 것이다. 일부 청년 중에는 이러한 이상의 실현에 일말의 의혹을 품는 자가없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마치 강 건너 불 보듯 길거리에 줄지어 “정말 될 수 있는 것일까”하고 번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실제로 배가 격류에 삿대를 꽂고 있으며 자신도 그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배는 키와 노의 힘으로 우리가 목적하는 항구로 가게 되는 것이다.
흐르는 대로 맡겨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선장이다.
결단코 선객이 아니다. 적어도 1억1심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대면할 때, 반도청년은 선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선장의 마음가짐이 여러분의 마음이어야 한다.
선장이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선장은 견인불발(堅忍不拔)이어야 한다.
가는 도중에 노를 버릴 수는 없다. 선장은 성실하며, 선장은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노를 젓는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책임감이 옅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이러한 정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내 놓은 물건이다, 앞길은 뻔하다, 아무리 일을 해도 인정받는 길은 없다고 하는 비뚤어진 마음이 여러분의 온몸에서 열성과 인내심을 빼앗은 것일 게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큰 잘못이었다.
여러분은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 사실 그 길을 여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었다. 여러분은 항구가 없는 표박자(漂泊者)였으나 그것은 여러분이 자기 배의 노를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선장이다.
이제 여러분은 선장이다. ‘역사를 만드는’ 젊은이들이다. 여러분 앞에는 힘든 항해가 있다.
예를 들어우선 인정과 풍속이 서로 다르다는 편견을 퇴치해야 한다. 거기에서 기인하는 곡해, 색안경, 편견, 그리고 (덮어서 숨길 필요는 없다) 차별과 같은 요새를 폭파해야 한다. 급여의 차이 같은 것도 정신적으로 이겨내야 하는 걸림돌일 것이다.
이러한 신고(辛苦)를 이겨냄으로써 각 개인도 총체적으로 든든해지며,일본적인 일꾼이 되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여러분의 수완이다.
여러분의 업적은 여러분 한 사람만의 영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 동향(同鄕)의 모든 사람들의,그리고 여러분 후배인 몇 만의 젊은이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자각한다면 여러분은죽음으로써 직무를 대신하는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인내와 성심, 감격성과 실행성을 특징으로 하는 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매일의 직장은 이러한 특성을 갈고 닦는 도장이 되고, 일선의 병사에 뒤지지 않는 각오로 황국 천년의 대업을 완수하는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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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청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할 필요를 느낀다.
이미 위에서 암시한 것처럼 과거의 여러 비난은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그들 청년에게 납득할수 없는 점이 있는 한 그들은 결점 투성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모든 환경의 악조건과 같은 오해를 풀고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말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역사는 분류(奔流)하고 있다.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성심껏 받아들여 그들을 감동시키는 큰 사랑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위정자의 어버이 마음을 직장 사람들도 본받아 장관, 상사는 물론 동료인 내지동포에게 보통 이상의 마음가짐으로써 이 새싹을 북돋우기 바란다.
조선청년이 황국의 젊은이로서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받아들이는 쪽의 책무인 것이다.
또한 도매금으로 경솔한 비평은 피해야 한다. 실패하거나 낙제하는 자들은 어느 세계에나 있다.
조선청년이라고 백 명 중 백 명이 모두 성인일 까닭은 없다. “조선인은 어쩐지………”라고 하는 개괄적인 결론이야말로 가장 대국(大局)을 그르치는 것이다. 크게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디에서라도 그러한 뜻밖의 말이 나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청년들의 의연한 용기와, 관민 총의의 이해와 창의와 협력으로 이러한 취직정책이 반도의 황국적인성장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믿자.
<출전 : 松村紘一, 「職場·道場·戰場-就職する知識靑年に學ふ」,'新時代' 1943년 10월호, 34~37쪽>
(3) 전 국민이 육탄으로 -먼저 지도자에 필요한 반성과 과단
송촌굉일(松村紘一)
매일 아침마다 전해 오는 신문에 또는 라디오의 보도에 의하여 오키나와의 싸움터로부터 우리 특공대의 혁혁한 전과가 전해 올 때마다 1억 국민은 다 같이 주먹을 불끈 쥐고 신문을 뚫어질 듯이 읽으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줄 믿는다. 대동아전쟁이 발발된 이후로 지금까지 오늘의 오키나와 전국(戰局)처럼 국민들의 주목을 끌며 따라서 결사의 각오를 한 때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무릎 밑으로 달려드는 적 미국을 쳐부수기 위하여서는 제1선에서 감투하고 있는 황군 장병과 또는 소수의 관리뿐만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전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적에게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는 물샐 틈 없는 국민조직과 불과 물을 가리지 않고라도 따라갈 만한 지도자가 하루바삐 진두에 서서 지휘하여 주기를 갈망하고 있는데 내지에 호응하여 조선에도 국민의용대가 조직될는지 안 될는지는 나는 알 수 없으나 만약에 이곳에도 국민의용대가 조직된다면 관민은 과거를 냉정히 반성하고 따라서 철석같은 각오와 큰 영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줄 믿는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피로 물들이고 있는 남명(南冥)의 결전장을 바라다보면서 결사적인 국민운동을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의 국민운동과 대동소이한 것이라면 아무런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제1선에서 감투하고 있는 전선 장병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나는 오직 2천 6백만 동포가 각각 가지고 있는 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출전 : 松村紘一, 「全國民이 肉彈으로―먼저 指導者에 필요한 반성과 과단」,'매일신보', 1945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