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이란 장르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였다. 시간 날 때마다 스마트TV 무료영화를 들락거리며 영화를 보던 시절, 우연히 무협영화 <동방불패>를 보게 되었다. 그 후 난 무료영화 코너의 모든 무협 영화를 시청하고 <동방불패>의 원작 소설의 존재 또한 알게 되었다. 마침 인터넷에서 원작 소설을 재출간한 기념으로 싸게 팔고 있어 즉시 구매했는데, 그게 내가 처음으로 읽은 무협소설, 김용의 <소오강호>다.
2018년, 김용이 사망하자 외국 신문들은 ‘아시아의 톨킨’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그의 죽음을 보도했다. 이 별명은 김용을 소개하기에 아주 적절하다. 김용은 톨킨이 판타지 장르에 남긴 업적을 무협 장르에서 이룬 사람이다. 양우생, 와룡생 등과 같은 1세대 무협 작가이며, 중국풍 무협 세계관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후 등장한 모든 무협 작품이 그의 세계관을 본떠 만들어졌다.
무협의 세계관은 무술을 수련하는 사부와 제자들로 구성된 조직 문파(門派)로 구성되어 있다. 문파는 정(正)파와 사(邪)파로 나뉘는데, 정파는 엄격한 규칙 아래서 옳은 일을 행하는 걸 중시하는 문파이고 사파는 그와 달리 규율에 구애받지 않는 문파다. 그래서 사파에 소속된 문파들에선 범죄와 악행도 많이 일어난다. 김용이 활동하던 시기인 50~70년대의 무협소설은 정파의 고수가 사파의 악당을 무찌르는 전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파는 선, 사파는 악이라는 인식이 깔렸고, 어느새 무협 세계관에선 “정과 사는 양립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정파와 사파가 각기 편을 이뤄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런 와중 이 구도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작품이 등장했는데, 바로 67년에 집필된 <소오강호>다.
<소오강호(笑傲江湖)>라는 제목은 ‘강호를 비웃는다(업신여기며 웃는다)’는 의미다. 강호는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무협소설에서는 무협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설명하자면, '무협의 세계관을 정립한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비웃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무협세계의 근본 구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파의 모든 인물은 선하고, 사파의 모든 인물은 악하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영호충은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는 정파 소속이지만, 사파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사파의 인물이라고 무조건 악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정파와 사파를 오가며 온갖 사건을 겪던 그는 정파의 악인들의 음모를 깨닫고 그들과 맞선다.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물론 이렇게 단순하진 않지만 짧게 설명하고 넘기겠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보통 이런 스토리는 주제를 강조하고자 또 다른 벽을 쌓는 경우가 있다. 기존 시점과 반대로 사파를 선으로, 대립하는 정파는 악으로 규정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반무협이 널리 퍼진 80년 이후의 무협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소오강호>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벽을 넘어 반대편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벽 위에서 편견 없이 세계를 본다. 정파에 악인이 있는 동시에 선인이 있고, 사파 역시 같다. 모두에게 선한 모습을 보였던 인물의 위선이 드러나기도 하고, 악행을 저지르지만 단순히 악인만은 아닌 인물도 있다.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 권력을 손에 쥐고 타락하기도 한다. 야망을 품은 악인들이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지만, 정작 그것을 손에 넣은 인물들은 초라한 최후를 맞는다.
<소오강호>에서 정파와 사파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하여 싸우고 죽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세력에는 실제로 반대 세력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주인공 영호충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파 제자들은 사파가 무슨 일을 행하는지 듣기만 했을 뿐, 사파 인물을 보지도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보편적 인식과는 다르게 소설의 초반부에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은 정파이고 사파 인물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구해준다. 정파와 사파의 고수가 만나 서로의 인품에 감탄하고 합심하여 곡을 짓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파 소속의 문파가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져 자신을 정파라 칭하고 상대를 사파라 칭한 사건이다. 편이 갈린 순간, 상대방에게 악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거다.
이와 같은 일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가상의 일이 아니다. 먼 고대의 전쟁부터 조선시대의 붕당, 현대의 냉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벌어져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편견 속에 가두어 보는 현상 말이다.
사파를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던 정파의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사파를 악인이라며 혐오하는 인물도 존재한다. 한쪽 편에 치우친 정보만을 계속 받는 사람은 다른 편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려 마음먹더라도 그렇다. 지금 나와 다른 편에 서있는 이들, 그들 중에도 선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선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에 치우쳐 있다간 그들의 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벽 위에서 보는 시선, 자유로운 시야가 필요하다.
첫댓글 에고. 자야 하니. 내일 볼게. ㅎㅎ
그러다보니->그러다 보니.
글쓰기 수정은 이 글에 바로 할까요? 아니면 새 글로 올릴까요?
아. 여기에 바로.
보고 싶은 게 또 생겼다! ㅎ
<소오강호>를 시초로 '둔' 반무협이라 불리'는' 기조를 받아들'인' 80년 이후의 무협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요렇게 . . 반복되는 건 특별한 효과를 내려는 게 아닌 이상은 지양하는 게 좋다.
=> 요 문장을 한번 다르게 고쳐보렴.
<혹성탈출> 2편!
아니 <소오강호> 한국사회 2010년대를 예언한 거 같다!
아, 김용이 <영운문>을 만든 사람이구나. 그거 감명 깊게 봤는데. 아니 이거 글쓰기를 봐줘야 하는데. ㅋㅋㅋ 다음에 영화 <소오강호>를 봐야겠다. 그런데 무협지로는 몇 편짜리인 것이냐?
무협지는 총 8권입니다.
8권이라. . .그래도 8권짜리 소설보다는 금방 보겠지.
규성아. 글 쓰려면 무척 에너지 많이 들겠는데. 혹시 매일 한 편이 너무 버거우면, 이틀에 한 편 할까? 네가 워낙 또 정성을 들여 쓰는 거 샘이 아니까, 살짝쿵 걱정이 돼서 상황 물어보는 거!
주말엔 쉬니까 괜찮을 거 같습니다
o.k.
5번째 단락에서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부터는 쭉 빼도 될 것 같다.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깨는 느낌이다.
나머지는 딱히 문제 없는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