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억원의 자산을 가진 자산가이자 은퇴족인 강모(70)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갖고 있는 자산을 자녀에게 지금 증여하는 것과, 아니면 놔뒀다가 자신이 사망하는 시점에 상속을 시키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세금을 적게 낼지 가늠해 보고 있는 것이다. 강씨는 배우자와 두 자녀를 뒀고, 현재 부동산 자산은 본인이 거주하는 37억원(공시지가 기준)짜리 빌딩, 10억원짜리 아파트가 있다. 금융 자산은 3억원 정도다.
강씨가 특히 고민하는 것은 자신이 거주하지 않는 아파트를 첫째 딸에게 증여할지 여부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현재 증여하면 증여세가 약 2억2500만원 나온다는 답을 들었다. 반면 강씨가 15년 뒤쯤 사망할 때 아파트가 현재 가격에 상속된다면 상속세는 1억5500만원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상속세가 싸지만, 만약 사망 시점에 아파트 공시가격이 1.5배(15억원)로 오르면 상속세는 4억원가량으로 훌쩍 뛰게 된다고 한다. 세금 전문가들은 “당장은 증여세가 비싸 보여도, 부동산 가격 상승 가능성을 고려하면 증여가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많은 은퇴 자산가들이 상속과 증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특히 수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일수록 고민이 깊은데, 공제 한도나 자산가액의 계산 시점(세금 부과 시점)에 따라 내야 하는 세금 규모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재산을 생전에 증여하는 것과 사후에 상속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절세에 유리할까.
그래픽=이지원
◇공제금액 큰 상속세… 배우자 최대 30억원
일반적으로 볼 때, 세금 부담액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상속이 유리하다. 상속의 공제 한도가 증여보다 크기 때문이다. 증여의 경우 배우자는 6억원, 성년 자녀는 5000만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까지는 공제 대상이라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또 증여가 이뤄진 후 10년이 지나면 이 공제 한도가 복원돼, 이후 증여에 대해선 또 공제받을 수 있다.
반면, 상속은 모든 자녀에 대해 일괄적으로 5억원이 공제된다. 배우자도 기본적으로 5억원이 공제되고, 상속금이 5억원이 넘을 경우엔 법정상속지분(법적으로 보장된 상속분)까지 30억원을 한도로 공제해준다. 위의 사례에서 강씨 배우자는 약 21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일생의 한 번뿐인 사망을 전제로 재산의 권리나 의무의 일체가 승계되기 때문에 증여에 비해 공제 한도가 큰 것이다.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한 명이 사망하는 경우에도 ‘상속세 이중 부담’의 우려는 작다. 상속이 발생한 후 10년 이내에 다시 상속이 발생할 경우 상속세로 납부해야 하는 금액 중 일부를 빼주기 때문이다. 상속과 재상속 사이 기간이 1년 이내면 100%를 공제해주고, 1년이 경과할 때마다 10%씩 차감한다.
◇부동산 가치 상승 예상될 땐 증여 유리
이처럼 증여보다는 상속이 유리해 보이지만, 잘 따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여가 유리한 경우도 있다. 첫째로 당장은 가치가 높지 않은 부동산이라도 향후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면 증여가 유리할 수 있다. 위의 강씨 사례에서처럼, 본인 사망 시점에 가치가 크게 높아져 있으면 상속세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로,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와 양도세가 높기 때문에, 수년간 보유세를 부담하고 이후 상속세를 부담하는 것보다 증여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증여로 본인과 자녀가 각각 1주택자가 되면 보유세 부담이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로 임대소득이 있는 부동산을 증여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에게 집중된 소득을 자녀에게 분산함으로써 소득세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자녀의 자금 출처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녀 간 상속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전 증여를 할 수 있다. 부동산이 여럿 있는 경우, 자녀들은 그중 값나가는 부동산을 차지하려 다툴 확률이 높다. 그런데 부동산을 생전에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해 둔다면 이런 분쟁의 빌미를 애초에 제거할 수 있다.
◇‘증여·상속 10년 합산’도 변수
다만 증여·상속세를 계산할 때, 일반적으로 10년 치를 합산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금 증여를 했는데 5년 뒤에 본인이 사망한다면, 이미 증여한 재산도 상속 재산에 포함돼 상속세 대상이라는 얘기다. 다만 이때도 이미 낸 증여세만큼은 과세액에서 빼준다. 얼마 전 한 자산가가 “자녀들에게 증여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말한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속·증여에 대한 결정은 부모의 의지와 자녀의 상황,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종류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결정이다. 모든 고민에 앞서 과연 자녀가 부동산을 넘겨받았을 때 잘 관리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증여를 실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럴 경우 해당 부동산을 모두 넘겨주기보다는 구분등기가 되어 있다면 건물의 특정 층이나 상가만을 넘겨주거나, 창고의 경우 토지는 부모가 소유하고 건물만 넘겨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꼬마빌딩의 경우 두 자녀에게 40%씩 이전하고, 여전히 20%를 부모가 소유함으로써 건물의 처분을 부모 사망 시까지 막는 방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