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러니까
저의 집은, 누나하고
나하고 단둘이
자랐읍니다
유복한 집 이었다고
말씀을 드립지요
어린시절에 부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ᆢ
하지만 ᆢ
저는 그때 가장 부러운 것은
형제들이 많은 친구의 집이
나 에게는 삶의 정겨움 이있고요
사는것은 가족이 많은 곳을
선호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7공주의 마지를 택 했읍니다
처제가 6명이라고 말씀을
드렷드랬지요ᆢ
그중에서도 저는
막내처제가, 가장 애틋하고
아직도 느낌은 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인어른이, 내가 결혼을 하자 마자
바로 세상을 떠났드랬어요
막내처제가, 초등 1학년 때였으니까
얼마나, 막내처제 충격이 컷겠어요.
울고 있는 막내처제를
꼭 안아 주었읍니다
그 순간부터도
저는 맹세를 했읍니다
막내처제는, 큰 형부가 꼭 지켜주겠다고요
집사람의 많은 배려가 컷지요
마치 엄마처럼, 막내처제 한테
많은 사랑을 주었던 것이죠
어제 ᆢ
호주 시드니에세, 싱글로 살고 있는
막내처제가, 안부를 전해 왔더라고요
큰 형부하고, 큰 언니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는 그 말이 ᆢ
고맙기도 하고요
잘 자라 주었던, 막내처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요ᆢ
살아 간다는 것 ᆢ
인생이란 것이 ᆢㅎ
기쁨도 있고요
슬픔도 있는 것이지요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막내처제~~!!
산사나이3
추천 0
조회 292
24.07.16 07:17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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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막내 처제를 살뜰히 보살펴 주신 큰형부시로군요.
베푼 만큼 다 복으로 되돌려 받으실 겝니다. ^^~
네에엡 ᆢ
감사합니다
네에엡 ᆢ
감사합니다
그게 그럽디다
형제많은 처가가그립고 나는 남자많은집에태어나 참 오래비덜 등쌀에 참 힘들엇는데~
형제 적은 집에갓드만 제사 차례가 넘 36개나되서 힘든게 아니라 중노동이엿습니다~
아이고~~!
제사가 36개요 ᆢ
휴~~!
고생 많이 하셧읍니다
공은 닦은 대루예~~
어떠한. 형태이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몬은 할아버지 인심이 손자때까지 간다는 것 임당
넵 ᆢ
잘 알겠읍니다
꾸우벅~~!!
막내 처제에게는 산 님이
아버지 같았을 것 같아요.
산 님은 품이 넓어서
맏사위가 되셨나 봅니다.
칠공주 집 맏사위 아무나 못하지요.
오늘도 삶의 한장면을 보는
구수한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ᆢ
딸 녀석도 글더라고요
막내이모는 언니 같다 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혼을 내키지요 ᆢ
막내이모는 엄마하고
동격이란다
잘해야 한다고 말 입지요
저도 막내처제는
어린시절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딸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ᆢㅎ
저도 외롭게 자라
식구많은 집에 시집가고 싶었는데
뜻을 못 이뤘네요.
처제많은 형부가 남자들의 로망이겠지요.
넵 ᆢ
처제들이 많아서
저는 좋아요 ᆢㅎ
산님의 막내처제 이야기에 애뜻한 마음에서인지
콧등이 찡하면서 눈에 눈물이 고이네요
당시 상황을 잘 모르지만 이야기만으로도 그당시 상황을 알겠습니다
지금은 멀리 호주에 계시지만 부모님 같은 언니와 형부가 얼마나 보고싶겠습니까
멀리 강원도에서 막대처제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막내처제가 아프시군요
저도 ᆢ
빠른 회복을 바라겠읍니다
딸같은 처제의 안부인사에
뿌듯하고 기쁜 마음 이해가 갑니다.
넵 ᆢ
그러합니다 ᆢㅎ
처제가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니 맏사위로 부모같이 느꺼지는 책임감은 어쩔수 없겠어요.
많이 아끼시고 사랑을 주었으니 잘 자랐을것 같아요.
네네 ᆢ
크게 어려움이 없이
착하게 자라 주어서
항상 ᆢ
감사함을 가지고 있답니다
아빠 같의 형부 정말 멋져요
감사합니다
참 잘살아오셨습니다
나이들어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것
행복중 하나래요
감사합니다
암튼 ᆢ
막내처제가 힘도 들었을거 같은데요
그래도 ᆢ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다고 봅니다
호주에서도 ᆢ
전문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잘사셨군요 그 많은 처제들 잘 보살피신 형부가 어린처제에겐 아버지 맡잡이지요
암튼요 ᆢ
좋은면으로 보아주시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결혼을 두번 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세 자매중 막내였어요.
지금도 마친가지 지만 여동생이나 처제가 있는 사람이 부러웠어요.
형부가 그만큼 했으니 처제도 형부에게 잘 하는게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먼 그러케
잘 하지는 못 했는데
지금의 처제들은
너무 잘 해주어서
감사할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