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사려면 먼저 발 사이즈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265mm를 신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도량형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여기 식으로는 9.5인치 정도가 적당하고, 11인치는 너무 큽니다. 아무튼 어떤 도량형을 쓰든지 발에 맞춰 신발을 사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신발“에 “발”을 맞추고, 심지어 신발에 맞추려고 발의 일부를 깎아 내려는 태도를 갖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기준이 흔들리면 사회든 교회든 조만간 혼란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래 본문은 교회 안에서 좋은 질서를 세우는 여러 방법들 중 첫 번째로 장로들을 세우는 범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발’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이유는,
내가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내가 지시한 대로
각 도시에 장로들을 세우게(appoint elders in every city)
하려는 것입니다”(딛 1:5).
신약 성경에서 디모데전후서와 위 본문이 담긴 디도서는 목회 서신이라 불립니다. 자료에 따르면,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세 서신은 하나같이 목회 규칙을 취급하고 있다"라고 말한 데서 기인하고, 핸리 알포드가 "목회 서신"이라는 명칭으로 공식사용할 것을 주창함으로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세 서신만이 지역 교회 담당자인 개인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이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지역을, 디도는 크레타 섬을 책임 맡고 있었습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1차 사역 여행 중 자신이 복음을 전해 생겨난 지역 교회들 안에 직접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그들은 각 교회(in every church)에 장로들을 선택하여 세우고 … 그들이 믿은 주님께 장로들을 맡겼다.”라고 적고 있습니다(행 14:23). 그런데 이처럼 ‘각 교회’에 장로를 세우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실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과 위 본문은 사실 같은 내용인데도 후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생경하게 느낄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계가 총체적으로 위기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성경과 ”다른 가르침”과 실행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딤전 1:3). 따라서 위 본문 혹은 아퀴나스가 말한 “목회 규칙”을 따라 <각 도시별로 장로들을 세우는 실행>으로 돌아가는 것이 교회 하락을 회복하는 한 작은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하여 다음의 추가 설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각 도시 별 지역 교회에 장로들을 세움: 성경은 교회를 다음 두 방면으로 말씀합니다. 1) 거듭난 모든 이들로 구성된 주님의 몸인 교회입니다(엡 1:23). 2) 그 몸의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도시 단위로 나타난 지역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을 에베소,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등 각 도시별로 나타난 각각의 한 금등잔대로 묘사했습니다(계 1:11, 20). 최초의 신약 교회인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 당시 수 만 명의 성도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모였지만, 성령은 이 교회를 단수로 표현했습니다(행 8:1). 이것은 거기에 예루살렘 교회를 총괄하는 장로들로 이뤄진, 단 하나의 교회 행정 체계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8장은 한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그 당사자가, 그 후로는 한두 사람이 더 가세하여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게 말하라”(tell it to the church)고 말씀합니다(15-17절). 여기서 언급된 교회는 그 죄를 지은 이가 사는 도시 전체를 범위로 하는 지역 교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 지역 교회의 장로들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한 마리 길 잃어버린 양’(12절)을 대하는 주 예수님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교통 하여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장로와 감독(혹은 목사):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성령께서 여러분을 온 양 떼의 감독들로 세우셨다”라고 말합니다(행 20:28) 이것은 감독이 장로와 동일인이며, 감독은 장로들의 감독하는 기능을 가리킴을 말해 줍니다. 참고로 목사(pastor)는 영어 성경에 단 한번 나오는데(엡 4:11, KJV) 그 원문은 “나는 선한 목자입니다”라고 할 때의 ‘목자’와 같은 포이멘(4166)입니다(따라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이것을 초판에서는 목사로 번역했다가 후에 목자로 수정함).
참고로 장로교단 헌법은 “항존직” 항목에서, “장로(감독)”이라고 하여 둘을 동일시했고, 목사도 “두 가지 장로”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 인도하는 장로는 두 배로 존대를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딤전 5:17)라는 말씀에 따른, 미국 장로교의 전통에서 온 것입니다(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목사는 성직자이고, 장로는 평신도라는 생각이 지배적임).
몸 된 교회의 건축은 늘 “음부의 문들”의 공격을 받습니다(마 16:18). 따라서 위 본문대로 장로들을 세우는 실행을 하더라도 교회가 당면한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목회 규칙”을 존중하여 위 본문 말씀대로 실행하여,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으려는 노력은 존중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누구든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치려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의 교회 안에 합당한 질서가 세워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진리의 빛으로 다스려 주옵소서!
https://www.btmk.org/board/view.php?m=23&b=65&i=8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