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종교시설 투표소 입구. 선거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홍보물이 그대로 부착돼 있다. |
시민들이 투표할 때 부담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상징물을 가리도록 규정하는 '선거관리지침'을 스스로 어긴 결과여서 논란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이 속출함에 따라 ‘부득이한 경우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예외규정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선거 당일 특정종교시설 투표소를 찾은 결과 교회 행사를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잇따라 걸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포구 서교동의 한 투표소의 경우 시설 별관식당이었지만 본관 건물 지하와 연결돼 있어 교회를 지나치지 않고서는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건물 정면에 예배일정과 가을행사를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서교동에 위치한 한 종교시설 투표소. 별관식당에 투표소가 마련됐지만 교회를 지나치지 않고서는 투표를 하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정작 투표소 장소임을 나타내는 설치물은 약 20여m 떨어진 가로수에 붙어있었다.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이 봤을 때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상황이었다. 예외조항을 들어 지속적으로 특정종교시설을 투표소로 설치를 하는 것도 모자라 관리지침도 철저히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관련 지침을 전국에 배송하고 구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도록 하고 있지만 (지침 하나만으로) 모든 부분을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상능 서울시선관위 선거1계장은 ‘어디서부터 어느 부분까지 상징물을 표시하지 않도록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관리지침만 들뿐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어 “구선거관리위원회에 연락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소 문제가 알려지자 불교계는 예외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사회국장 묘장스님은 “원칙대로 실시한다며 예외규정을 따지는 담당부서에서 오히려 무원칙대로 추진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결사추진본부 사무총장 혜일스님도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강동구 천호동의 한 종교시설 투표소 입구에서 '○○교회'라는 어깨 띠를 두른 한 여성이 차를 나눠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 종교자유정책연구원 |
종자연은 논평을 통해 “심지어 해당 종교시설 신도가 홍보용 어깨띠를 두르고 음료를 제공하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 위법한 사례들이 드러났다”며 “서울시 선관위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선거 평일 실시에 따른 해당 시설의 정상수업으로 인한 사용불가’, ‘기존시설의 공사’등의 사유는 선관위가 해야 할 책임 있는 답변이 아니다”며 “공간을 만들어 평소에는 쉼터로 활용하고 선거 때는 투표장소로 사용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공직선거법 단서조항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는 만큼 선관위가 주목받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