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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력에 의한 인권과 민주화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하심 같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존재하셨던 것은 거룩한 뜻과 의지와 능력을 갖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부터 우주만물과 각종 생물들이 창조되었고 맨 나중에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들을 만들어 이들로 하여금 땅과 생물들을 정복해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뵐 때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하셨고,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하심 같이, 말(영)은 그 사람의 주인이기 때문에 신령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이며, 진정은 사람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이성(理性)과 이치(理致)에 합당한 말을 뜻합니다.
이성과 이치라는 사유력(思惟力)은 양심을 존중하는 영(천사, 사람)들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이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자식(子息)된 사람의 분수와 도리가 어떠하여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조성된 사람의 육신은 양심을 존중하는 사유력보다 육감(肉感) 위주의 물리력(物理力)을 더욱 존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육감 위주의 짐승 같은 자들과 사유력 위주의 양심인들 간에는 항상 극심한 견해 차이로 싸웁니다. 양심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관계가 부자지간임을 알고 이웃들 간의 관계가 형제지간임을 깨달으나, 육감 위주의 짐승들은 육적인 것으로 숫자가 많고 덩치와 힘만 강하면 그것이 세상의 신(神)이고 왕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심인들은 이성과 이치에 합당한 진리로 무장하고, 짐승 같은 자들은 육적인 다수와 부강으로 무장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관계가 부자지간과 형제지간임을 깨들은 양심인들은 비록 혼자서라도 육적인 다수와 부강만을 좇는 짐승 떼들과 세상 끝날까지 싸웁니다. 그래서 양심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숭고한 이성과 이치에 어긋난 그 어떤 물리력에 의한 인권과 민주화도 죄악으로 취급하나, 잡혀 죽어야 할 짐승 떼들은 그 어떠한 고명한 이성과 이치와 진리를 좇아 태어난 존재라도 육적인 것으로 숫자가 적고 덩치가 외소하고 물리력이 약하면, 비과학적인 반인권, 반민주주의적인 적으로 취급해 의법 처리하려 합니다. 이성과 이치에 근거한 사유력을 지닌 양심인들은 자기 내면에 하나 뿐인 양심을 존중하나, 육적인 다수와 덩치와 부강을 좇는 짐승들은 양심을 들여다 보고 계신 한 분 하나님은 무시하고 오직 육적인 다수와 덩치와 부강만 탐하여 갖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지라도 자신과 같은 거룩한 영(천사,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본성인 숭고한 이성과 이치를 주어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하신 까닭은,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가공하고도 전지전능한 능력 때문에 마지 못해 글종하는 건, 마치 사람이 자생력과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 같은 인형들을 만들어 두고 그것들로부터 강제적인 존대를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저들 피조물들에게 무조건 과시해 김일성 일가들 같이 차디찬 기계적인 존대(절)만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일들이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성과 이치를 주어 지기(知己) 차원에서 존중받으려 하십니다.
사유력을 지닌 거룩한 영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면목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최상의 인격 지식인 이성과 이치를 주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존중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이웃들을 형제자매로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유력을 지닌 거룩한 영들에게만 자신의 진면목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물리력만 좇는 무지한 육신들에게도 그 같은 인정을 받아 그들로부터도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받고자 하십니다. 이런 계획의 일환으로 창조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유일하게 닮은 사람들의 육신입니다. 그러나 흙으로 조성된 사람들의 육신은 하나님의 이러한 배려에 대해 크게 감사해 따르려 하지 않고, 오직 육적인 것들로 다수가 되고 또 육적인 부강으로 뛰어난 자가 눈 앞에 등장하기만 하면 그가 어떤 성향의 존재이든 존중해 따르려는 지조 없는 창기들이 되었습니다.
물리력을 지닌 육신에게 자활할 수 있는 생기와 사고력을 주어도,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생각는 죽음의 흙으로만 돌아가려 할 뿐, 만물의 근본이 되시고 영원한 희락이 되신 원천적인 고향, 곧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안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지조 없는 철부지 육신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주야장천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 육신의 뜻과 습성과 기호를 좇을 때에는 죽음과 동시에 지옥 형벌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과 성품이 담긴 말씀을 좇을 때에는 죽음 이후에 영원한 기쁨을 천국에서 누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육신의 뜻과 성질과 기호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믿음으로 실행해 따르기만 하면, 그게 바로 육신이 뜻하고 바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을 펼쳐보였습니다.
흙으로 조성된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으로는 에덴 동산의 선악과가 심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온 우주만물과 영들과 생물들과 사람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것을 먹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된 예수님의 언행을 육신이 믿고 생명과를 따먹을 때에는 죄사함 받고 부활하여 영생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만들어진 천사들은 하나님의 이성과 이치를 지닌 사유력으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대체적으로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지키지만, 하나님의 이성과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사유력이 없는 무지한 흙으로 조성된 인간 육신만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천사들처럼 곧바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목숨 걸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 아이가 자신이 지금 지니고 있는 능력과 처지로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고 숭고한 경지에 놓인 말씀에 쉽게 동화될 수 없습니다. 이럴 때에 자기 육신의 능력이나 처지나 기호나 신분을 다 접어 버리고 오로지 부모님의 지시와 명령만 신뢰해 따라야 합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이런 믿음을 자식들이 지니도록 힘써 가르쳐야만 비로소 자녀들이 세상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선각자들과 선생들 또한 이런 믿음을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전하여 자신들과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들의 자녀와 후배와 제자들에게는 철석 같은 믿음으로 자신들을 따라야만 안전할 수 있다는 건 알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지금의 현실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고 넓고 깊고 영원불변한 미래의 하나님의 생명 세계(천국)에 대해서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보다 무지하고 빈약하고 천박한 자녀급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언행을 김일성 일가들 같이 강압적으로 믿게 하여도, 정작 자신들보다 천만배나 더 뛰어나고 전지전능하고 부강하고 거룩한 하나님(예수님)의 언행에 대해서는 한사코 목숨 걸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들이 자신의 언행을 믿고 따를 때입니다. 애완동물은 주인의 말을 잘 들을 때 가장 귀여움을 받으며, 또 만들어진 기계들 또한 제작자의 의도대로 잘 작동될 때에만 사랑받습니다. 그런 일들은 인간 육신이 버젓이 알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오장육부와 머리털과 땀구멍까지도 헤아리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만은 믿고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 반역자 짓 버젓이 하면서도 민족 반역자 김일성 일가들만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짓들을 보십시오.
5쳔여 년의 인류 역사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펼쳐 보인 설명서와도 같습니다. 즉 "너희들이 낳은 자녀들과 제작한 기계들에게 그렇게 생각하고 작동되길 바란 것 같이, 너희들도 너희 아버지 되신 창조주 하나님께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바로 인류 5천여 년간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펼쳐보인 설명서입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지적 존재는 없고 오직 자신들 뿐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이 만든 자식 같은 기계들로만 행복하려 합니다. 사람들의 영은 천사들과 같아서 하나님의 이성과 이치를 지닌 사유력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만든 자가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육적인 이치로도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고 또 영적인 이성과 이치로도 하나님의 개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하여 잡혀 먹힐 짐승 같은 자들은 그러한 이성과 이치도 자기 육신의 육감이 닿고 미치는 범위(팩트) 안에서만 적용되는 사유력과 법칙으로만 취급할 뿐, 육신의 육감이 닿지 않고 미치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리 이성과 이치에 맞는 생각과 법칙이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마치 우릿간에 갇힌 가축들이 간단한 열쇠로 울타리 문을 열 수 있다는 이치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취급해 버리고, 오직 무딘 육신의 힘으로 밀어부쳐 문을 깨뜨려 부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하는 것처럼, 짐승 같은 폭군들 또한 강력한 핵무기나 권력이나 재물들로만 모든 난제들을 해결하려 할 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인생 열쇠인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간 세상의 장금 장치인 모든 불행과 재앙과 환란을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이사야 22:22) 하심 같이, 온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평안은 오직 만물과 생물들과 사람들을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열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으로만 취할 수 있을 뿐, 이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육적인 방법과 신학의 믿음으로 행복과 평안을 얻고자 하여 열쇠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두들겨 부수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발생된 모든 문제는 사람들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는 게 바로 우릿간에 갇힌 가축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모든 문제들은 자신들만의 지혜와 능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인되신 분들의 모든 언행을 무시해 짓밟고 자신들의 숫자와 덩치와 힘으로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뛰쳐나가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말과 글과 법은, 말하고 기록된 법을 믿음으로 지키고 따를 것을 요구하고 제정되고 반포되고 시행됩니다. 그런데 말 중의 말이 되시며 글 중의 글이 되시고 법 중의 법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치 않고 다만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도들과 뭇 성도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따르고 실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는데, 이들 신학자들만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예수님처럼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죄악)을 책망치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세상 만민에게 부모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교훈과 국법은 지키고 따르지 말고 그저 부모님과 선생님과 국법이 자신들을 마냥 지켜 준다는 것만 믿게 합니다.
이 시대의 자식들이 "일찍 들어오너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어 순종치 않고 "일찍 들어오너라!"는 부모님의 말씀 뜻도, 자신들이 술마시고 음란방탕할 수 있는 돈이 있으면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버리고 지키지 않습니다. 또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숙제를 내어 주면, 제자들은 "선생님이 이 숙제를 낸 것은 자신들로 하여금 컴퓨터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잔꾀야!"라고 해석하는 짓과도 같습니다. 또 정치인들 대다수가 나라의 국법을 있는 그대로 지켜 따를 생각은 하지 않고, 저마다의 이기주의 생각으로 해석하기만 합니다. 이 모든 악습들을 누구로부터 배웠겠습니까? 신학자들이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지키고 따르고 실행치 않고, 저마다의 이기주의 생각으로 해석하는 데서 배운 짓입니다.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잠언 10:29) 하심 같이, 아무리 하나님의 거룩하고 진실한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키고 따르는 정직한 이성과 이치에 의해서만 난공불락의 산성이 될 수 있을 뿐, 그 말씀을 사단처럼 자기 육신의 뜻으로 해석해 놓은 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행악자들에게는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멸망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자기 뜻으로 해석해 불순종하는 패역한 자식들과, 또 나라의 국법을 제 임의대로 해석해 반역하는 이적행위자들과, 또 부정부패로 치부하려는 탐관오리 정치인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심판당할 하늘 공직자들, 곧 신학자들로부터 그 악습을 배웠습니다.
이들은 예수 믿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믿는 일들을 방해하기 위해 태어난 적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키기에 힘썼건만, 이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만 그의 말씀을 자의적인 뜻으로 해석한 신학만 개발해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악행으로부터 벗어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참되게 구원받으십시오. 그리하여야만 여러분들의 자녀와, 또 만나고 태어나는 처와 자식들과 제자와 부하직원들과, 또 공직자들과 국군 장병들이 더 이상 부모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말씀과 남편과 아버지의 말씀과 여러가지 사설법과 국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불순종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곧바로 순종해 따르는 충효의 자식들과 지조 있는 아내들과 또 회사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군경들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님이 시키시는 일들은 팽개치고 악한 친구들과 어울려 온갖 죄악을 즐깁니다. 이성적이고 이치적인 상식으로는 불효막심한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이성적이고 이치적인 상식을 가장 하찮은 지식으로 하대해 버리고 사람들의 육신의 육감(肉感)을 자극시키는 선악과적인 일들만 물불 가리지 않고 개발해 즐기는 짓들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취급합니다. 애국선열들의 피땀으로 일군 나라에 태어나 이만큼 발달하여 산해진미를 즐기는 국민들이 되었으면, 이제는 자기 나라의 평안과 안위를 지키는 일들은 자신들의 몫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를 삼키고자 하는 적들의 핵공격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기 지역에 방어 무기 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적들의 집중 포화를 당하는 일들로 취급해 방해합니다.
국민으로서 나라를 사수해 지키는 일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이치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이고 이치적인 상식을 이기주의적인 인권과 민주화라는 이름을 앞세워 무시해 버리고 이 시대는 개인의 인권과 지역 주민들의 이기주의 사상을 존중하는 민주화 시대라 하여 자기 지역이 적들의 집중 포화를 당할 위험에 처하였을 때에는 비록 나라 전체가 적에게 짓밟히는 참변이 있을지라도 국가의 그런 방침을 대적해 싸워야 한다는 반역 사상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하늘의 명령으로 취급하는 것과 국민이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한 목숨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지역주민의 목숨까지라도 즐거히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이치적인 인간의 숭고한 상식입니다.
피조물의 대변인인 사람은 어느 피조물보다 모범적으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사수해 지켜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으로서의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교황 같고 교주 같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죽는 일이기 때문에 다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모든 신앙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효불충한 자식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과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과 지역 주민이 국가의 안위를 거역하는 짓들을 인권이라 민주화로 생각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준 이성과 이치를 거역해 항명하는 패륜 행위입니다. 사람은 진리에 의한 인권과 민주화로만 생존할 수 있고, 짐승은 물리력에 의한 인권과 민주화로 패망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진리는 하나님께 대한 자녀된 분수와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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