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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잎 하나를 손에 올려두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작은 행위가 오래된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어제 아침이다.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는데 머리 위에서 손바닥보다 큰 잎 하나가 툭 떨어져 내렸다. 물을 주다 말고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떡갈고무나무 잎이다. 색이 노랗다. 다른 잎들은 모두 다 초록색으로 꽉 차 있는데 떨어진 잎만 그렇다. 혹시나 병이 든 건 아닌지 걱정되어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노화로 인한 자연적 현상이란다. 그래서일까. 사그라드는 마지막 모습이어서인지 표면에 남은 노란색은 유달리 깊고도 선명했다.
계절이 바뀌는 사소한 일쯤으로 여기기엔 그 색이 너무 아름다워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잎을 주워 들곤 햇빛이 스며드는 베란다 창가에 기대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빛의 각도에 따라 황금빛도 되었다가 하얗게 반짝거리기도 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도 여러 번 찍었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하고 결국 거실까지 들고 들어왔다. 한낱 낙엽일 뿐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얘기가 들어있을 것만 같아 아무렇게나 팽개칠 수가 없었다.
꺼져있는 TV 화면의 가장자리에 조심스레 걸쳐두었다. 그런데 눈이 간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이 간다. 아예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집안의 모든 색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그 노란 잎만 새까만 화면 위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머릿속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다. 그때 갑자기 생각하나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마치 바다 위로 태양이 불쑥 솟아오르듯 그렇게 환하게. 그래! 이 잎의 노란색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까만 화면을 배경 삼아 노랗게 반짝이고 있는 잎을 바라보며 네덜란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린다. 노란색을 즐겨 썼던 화가이다. 그의 작품인 <노란 해바라기> <노란 하늘> <노란 밀밭> 등만 봐도 그 색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표현한 화가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작품들에서 그가 사용한 노란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과 열망이 한꺼번에 표면으로 밀려오던 순간의 기록이었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생이 시작되는 초록보다 잎이 지는 순간의 노란색에서 생의 진심을 본다.”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잎이 색을 바꾸는 마지막 짧은 순간의 그 노란색은 생의 절정이자 끝을 향한 몸짓이고, 소멸임과 동시에 확장의 뜻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 여기 이곳에 떨어진 생이 끝난 저 노란 잎의 숨결도 고흐의 숨결과 맞닿아 있음이 분명하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또한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드러내는 농도 짙은 침묵 같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인 <‘너도밤나무 숲’이나 ‘너도밤나무 숲길’ 속에서처럼 그림 속 황금빛 낙엽은 죽음이나 사라짐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빛이 또 다른 형식으로 머무는 순간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금빛은 완전한 생의 정점에도, 조용한 쇠락의 문턱에도 속하지 않는 그 둘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황금색은 ‘마지막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빛’이라고 한다면 그 순간만은 고흐의 노란색과 접점을 이루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나무에서 떨어진 떡갈나무잎은 더 이상 나무의 일부가 아니었다. 나무에서 분리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히 자기 색을 드러낼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불현듯 ‘잎이 떨어지는 순간에 오히려 시작을 읽었다’라는 클림트의 말이 떠올랐다. TV 앞에 걸려있는 노란 잎을 다시 한번 살며시 만져보았다. 마치 생이 소진되고 있는 혹은 소진된 자리에 새롭게 시작될 어떤 내밀한 열기라도 느껴보려는 듯,
나는 40여 년간 서양화를 그려왔다. 수많은 색을 섞고 수많은 형상을 그렸다. 색은 대개 화가의 손을 거쳐 캔버스로 옮겨지지만, 운수 좋은 날은 색이 작가의 손을 직접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색이 스스로 말을 건네는 순간은 흔치 않다. 그런데 오늘, 바로 오늘, 눈앞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내린 이 노란 잎 하나가 마치 꿈꾸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문장 하나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소멸의 언어로, 마지막 남은 색으로, 빛의 잔상으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나는 사라지려는 것이 아니야. 마지막 빛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왔어” 이 한마디가 전환의 문턱을 넘어 새로움을 열어주는 기적과도 같은 나만의 작은 서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조만간에 이 잎을 그림으로 옮길 것이다. 배경은 고흐의 거친 노란색으로 그 깊이를 열어갈 것이고, 잎맥은 클림트의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도 해 볼 참이다. 아마도 그 색들이 나의 손을 거쳐 캔버스로 옮겨지겠지만, 그리하여 당연히 결과가 허술하거나 빈약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욕심내어 꿈꿔본다. 부디 색이 내 손을 이끌어 주어 비록 떨어진 노란 잎 하나지만 생에서 그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