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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풍운(風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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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백은 호위 하나 없이 십자성이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 올라
있었다. 이미 삼백 년 동안 무한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있
는 십자성을 굽어보고 있었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서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장포 자락이 펄럭
였다. 살을 엘 듯한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파고 들어왔지만 그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이 정도 추위를 느끼기에는 그의 몸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의 대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인간
의 감정 따위는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영백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
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의 눈을 보고 감정을 알아낸다는 것은 그야
말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문득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삼백 년의 적이 다가오는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만
큼 그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칠흑같은 어둠이 하늘을 잠식하고 있었다. 별들은 암흑에 묻혀 빛
을 잃고, 천기는 유동을 멈추었다. 하지만 마영백은 웃었다.
"후후! 천기가 이몸을 거부하는 것인가?'
그가 양팔을 펼쳤다. 그러자 어두운 밤하늘이 크게 요동을 쳤다.
하늘의 기운마저 일개 인간에 불과한 그를 두려워했다.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구경 다했으면 그만 나오지, 땡중."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향한 채였다. 하지만 이미 느끼고 있
었다. 자신만이 서 있던 공간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굳이 눈으로 직
접 봐야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미타불! 알고 계셨소이까?"
"땡중이 반 각 전에 올라와 숨어 있었다는 것 말인가? 후후!"
"역시 명불허진이외다."
염불을 외우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왜소한 신형, 파르스름하게 깎
은 머리가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였다.
"중이면서도 이 정도의 기운을 풍기는 자라...... 자네가바로 소
림의 신승이라는 견오인가 보군."
"아미타불! 성주의 혜안에 감탄하외다. 이몸이 바로 소림의 견오이
외다."
견오대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마영백이 뒤를 돌아봤다. 그 순
간 견오대사는 마치 거대한 산악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견
오대사의 등에 소름이 일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는 연신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견오대사는 소림에서 출발한 이후 한시도 쉬지 않고 이곳 무한으
로 향했다. 무한에 도착한 뒤 그는 십자성에 들어가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비상령이 내려진 십자성의 경계망은 철통같아 잠입
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익힌 무공 중에는 은신술같이 잠입
을 위한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
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며칠, 견오대사는 답답한 마음에 산책을 나
왔다가 이곳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파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산봉
우리까지 올라오고 말았다. 그리고 보았다. 천기마저 가려 버릴 정도
의 거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그의 앞에서 천기가 유동을
멈추고 별들마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견오대사는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이제까지 십자
성이라는 거대한 장벽 뒤에 존재하고 있었던 십자성주 마영백이라는
것을. 그 이외에 존재감만으로 주위를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
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미타불! 십자성의 성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땡중이 무슨 일로 이곳 무한까지 온 것인가?"
"성주를 뵈러 왔소이다."
"호~오! 나를?"
마영백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견오대사는 합장을 한 채 그
에게 다가갔다.
소림의 신승과 십자성의 절대자가 처음으로 조우를 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두 거인의 만남을 알지 못했다.
합장을 하고 있던 견오대사가 마영백을 똑바로 바라봤다. 혜안이
일렁이고 있는 노승의 눈에는 한 가닥 긴장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비록 그가 소림에서 최고의 배분을 가진 고승이었지만 마영백은 삼
백 년 내 제일 세력인 십자성의 주인이었다. 대대로 십자성의 주인
은 천하제일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수많은 천하의 무인들 중 제일 강
하다는 평가를 받는 무인, 그런 자를 만났는데 천하의 견오대사라 하
더라도 긴장되지 않을 리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보러 온 것인가? 소림과 상극인 이곳까지?"
"단 한 가지를 물어보기 위해서이외다."
"아주 비싼 질문이겠군. 목숨을 건 것을 보니."
마영백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싹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의 웃음에 견오대사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
내 본래의 신색을 회복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미타불! 시주께선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무슨 의미이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당신께서 이와 같은 일을 벌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소이다."
"재밌군! 알고 질문하는 건가?"
"아미타불! 천기를 엿봤소이다."
견오대사의 말에 마영백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가? 뜻밖이군."
"나름대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소이
다."
"훌륭하군. 이 몸도 아직 천기를 읽지 못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천기가 이 몸에게 자신을 엿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겠
지."
"아미타불! 그것이 하늘의 법도이기 때문이외다."
"하늘의 법도라... 후후!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땡중."
마영백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이제껏 수많은 세월을 살아
온 노승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조소가 담겨 있었다.
그런 시선을 알면서도 견오대사는 다시 한 번 마영백에게 물었다.
"아미타불!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시주께서는 이런 일을 벌이시
는 것이오?"
"후후! 땡중, 넌 삼생(三生)을 다시 살아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이다"
"무엇이 시주를 이렇게까지....."
"복수지."
"복수라니?"
마영백의 얼굴에 진득한 살기가 떠올랐다.
"후후! 잊었는가?"
"설마?"
"그래! 설마가 사실이다."
"그것이 언제 적 일이거늘...... 역천의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하늘도 이 모을 간섭할 수 없다. 내 의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
다, 땡중!"
푸화학!
마영백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엄청난 기세에
천하의 고승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에게 있어 단 하나의 심마는 바로 그날, 그 순간이었다."
마영백의 살기 어린 눈이 견오대사의 두 눈에 투영되었다.
"아미타불! 고작 그 이유 하나로 역천을 저지르다니. 내가 본 천기
가 진정 사실이었구나."
"땡중, 넌 이곳에 잘못 왔다. 겨우 그따위 사실을 알기 위해 이곳
에 왔다면 헛되이 목숨만 버리게 될 것이다."
"난 후회하지 않소이다."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감히 나의 치부를 엿본 것을!"
"아미타불!"
견오대사가 두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는 이미 역근경의 공력이
운기되고 있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마영백의 얼굴에 살기가 넘실
거렸다.
호북성에는 중원의 젖줄인 장강이 관통하고 있었다. 동서에 걸쳐
길게 관통하는 장강 덕분에 호북성에는 농업이 발달하였고, 다른 성
에 비해 훨신 풍요로웠다. 또한 장강의 수많은 지류가 호북성 곳곳
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어 해상 교통이 발달되었다. 때문에 장강을 오
가는 배만 탄다면 호북성 어디로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십자성이 존재하는 무한은 장강의 주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무한으로 편하게 가기 위해서는 뱃길을 이용하는 게 제일이었
다. 하지만 십자성의 비상령이 내려진 이후 장강을 오가는 배편은 반
으로 줄어들었다. 십자성은 무한을 통과하는 모든 배를 수색하기 시
작했고, 과도한 검문검색에 무인들은 죄다 십자성으로 잡혀갔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물론 상인까지 배편으로 이동하는 것을 꺼리게 되
었다. 물론 그것은 십자성이 의도한 바였다. 그렇게 그들은 장강의
움직임을 장악했다.
청강(靑江)은 장강의 지류로 장강과 호북의 동북쪽을 연결하는 중
요한 경로였다. 그래서 이곳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며 호북성에
서 나는 특산물을 장강을 통해 중원 곳곳으로 날랐다.
정곡(貞曲)은 청강 지류에서 가장 큰 부두가 있는 곳으로 항시 많
은 상인들로 북적였다. 비록 십자성에서 장강을 통제하는 바람에 이
용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한만 통과하면 가장 빠르게 물건을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곡의 부둣가에는 여러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배의 대부분은
상단이나 표국에 속해 있어 그들과 관계없는 외인들은 함부로 탈 수
도, 접근할 수도 없었다.
삼남일녀의 일행 중 여인은 누가 봐도 눈에 번쩍 뜨이는 미인이었
다. 그리고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기른 장대한 체구의 장한, 그 옆
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남자,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평범한 남자.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일행은 부둣가를 거닐고 있었다.
천하에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가진 일행은 오직 하나, 적
무강 일행밖에 없었다.
홍안에서 문수영을 죽인 후 그들은 다음 날 바로 이곳 정곡으로 왔
다. 그리고 며칠 동안 쉬면서 체력을 회복했다. 그동안 적무강은 일
행의 외출을 만류하고 혼자서만 밖에 나갔다 왔다. 답답한 실내에만
있는 것이 못마땅한 철홍이 그냥 무작정 십자성으로 쳐들어가자고
우겼으나 그의 말을 외면한 채 적무강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객잔에 머문 지 삼 일 만에 일행은 처음으로 밖에 나왔다.
"휴~! 배가 정말 많은데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가 탈 배가 있다는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용추가 쭉 늘어서 있는 배들을 바라보다 적무강에게 말했다. 그러
자 적무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중으로 준비를 해 놓는다고 했으니 아마 어딘가에 정박해 있
을 것이다."
이미 적무강은 이곳에 배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 그
배가 이곳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나온 것이다.
철홍이 잠시 배를 둘러보다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너도 참 용하다. 언제 이곳 사람들을 알고 지낸 거야? 상
인들이나 표국에서 자신들의 소중한 자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주
지는 않았을 텐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했다."
"아는 사람?"
"후후! 그런 사람이 있다."
"뭐야, 그 웃음은? 속 시원하게 말 안 할래?"
철홍의 다그침에 적무강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이 사람을 구할 때 인연이 닿은 사람이 있다. 그땐 정보
상인이었는데 요즘 제법 돈을 번 모양이더군. 그가 배 한 척을 내주
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좋은 사람이 있단 말이야?"
순진한 철홍의 말에 적무강이 그저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을까? 그들에게 배를 내주기로 한 사람은
만형통과 곽부종이었다. 그들은 모두 적무강이 서문아를 구하기 위
해 움직였을 때 인연이 닿은 정보 상인들로 이번 전란으로 인해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덕에 호북과 인근의 다른 성에서 급속히 기
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그들이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적무강과의 친분 덕이었다. 그들은 적
무강과의 친분을 내세워 다른 성의 정보 상인들과 교류를 맺어서 커
다란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배 한 척쯤은 전혀 아
깝지 않았다. 그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더욱 큰 도약을 할 수 있기 때
문이었다.
적무강은 만형통과 곽부종을 탓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는 것이 있
으면 받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교류가 정으로 움직이
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여깁니다."
적무강의 상념을 깨우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부둣가에 세워진 중간 크기의 배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
였다.
'곽부종.'
적무강은 그가 누군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일행을 끌고 배
위로 올라갔다.
곽부종이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적 대협."
"오랜만이군요. 그런데 직접 배를 끌고 나온 겁니까?"
"하하하! 적 대협이 사용하시는 것인데 당연히 제가 나와야지요.
물론 같이 가지야 못하겠지만."
"후후!"
"일단 선부들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이들이 적 대협 일행을 무한
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고맙소."
적무강의 말에 곽부종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감사는 무슨...... 적 대협 덕택에 답답한 등봉현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야....."
"잘 사용하겠소."
"적 대협의 장도에 무운을 빌겠습니다."
곽부종이 적무강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총총이 밑으로 내려갔
다. 그의 모습은 금세 사라졌다.
"뭐 급한 일이 있다고 인사도 안 하고 저렇게 빨리 가는 거야?'
"이렇게 직접 모습을 보인 것만 해도 무리한 거다.'
"에? 그게 무슨 말이야?"
"후후!"
철홍이 어찌 알까? 곽부종의 정체가 정보 상인이라는 것을. 그런
곽부종에게 있어 신분이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적무강을 만난 것
은 큰 무리인 것이다.
"모두 출발한다.'
적무강이 외치자 선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장의
지휘 아래 배는 금세 출항 준비를 마치고 육지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 순간 창노한 음성이 허공에 울려 퍼지며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적대협, 잠시만 멈춰 주십시오!"
"응?"
적무강이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일단의 승려가 이곳을 향해 질풍처
럼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배를 멈추게 하자 승려들은 경공을 펼쳐 배 위에 올라탔다.
"아미타불! 적 대협, 오랜만입니다."
"대사께서는?"
적무강보다 서문아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
이 번졌다.
첫댓글 단체로갈건가
즐감합니다.. ~~~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여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잘~감상~~~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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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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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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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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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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