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ing away - Chris de burgh
오후가 되면 옆집 윗집 아이들과 소 한 마리씩 끌고 산등성에 올라
맘껏 뜯어먹으라 풀어놓고 해가지면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라가는 길은 수월한데 내리막길에 갑자기 뛰어가는 소를 놓쳐서 동네가 발칵 뒤집힌 일이 종종 있었다
소들에게는 하늘과 가까운 산 정상에 펼쳐진 풀밭에서 마음껏 뜯어 먹는 그 시간이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 돼지, 토끼를 키웠었는데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한글을 모르는 맹모(명모)는 토끼를 키우는 재주가 남달라
빨간 눈을 한 토실토실한 토끼가 몇 마리 있었다
그 집은 유전자 탓인지 모두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을 깨우치지 못하고
국졸 아니면 중퇴의 학력을 가졌지만 온순하고 힘이 장사였다
내가 일학년 때 육학년이었던 맹모 누나가 반에서 꼴등을 했다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벌칙으로 교실마다 손을 들고 돌아다녔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누나가 언니의 동창이라서 나를 업고 자주 놀러 간 모양이다
맹모 집 마루에 두면 ddong을 얼마나 싸대는지(그때 붙여진 별명이 똥순이)
조그만 점빵을 한 우리 집에서 훔친 앙꼬방을 건네주는 것으로 치우는 일은 친구 몫이었다고 한다
언니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똥순이는 항상 배가 뽈록한데 밥을 원했고
뭐든 잘 먹는 먹성 좋은 아이였다고 말한다
무정을 지은 이광수가 아닌 여관집 아들 이광수 이야기다
건넛마을 뒤에 버티고 있는 큰 산을 넘어가면
지금은 해수탕이 딸린 숙박업소에 식당이 즐비하고 관광지로 변해있지만
그때는 소나무 몇 그루 밖에 없어서 썰렁하기까지한 꼬막으로 유명한 뻘밭 바닷가였다
시골이지만 꼬막을 팔아 현찰이 팡팡 돌아가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고 폐인이 된 사람도 있다 했다
10여년 전 그 바닷가 앞을 지나는데
갯벌 앞에 조그만 여관을 하는 여관집 아들 중학교 동창 이광수가 생각났다
소풍을 가서 송창식의 맨처음 고백을 늘어지게 부르면서
여학생들의 마음을 훔쳤던 피부가 하얗고 들기름을 발랐는지 반질반질해서 능글맞게 보인 이광수
여관을 해서인지 친구들과는 뭔가 달랐다
졸업 후 오선화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결혼을 하여
갯벌 앞에서 식당을 차렸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오선화는 야들야들한 미소에 수학여행을 가서 최헌의 오동잎 한잎 두잎을 부르면서
개다리 춤을 추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름철 한때 장사로 전락한 횟집인데 그 갯벌 해수욕장은 바가지 씌우기로 알려져서
인심을 잃어 한낮에도 파장한 오일장처럼 한산한 해수욕장으로
식당들은 파리채로 파리를 날리는 것이 일이라했다
냉장고가 뭔 줄도 모르고 급한 일이 있으면 전보로 연락을 하고
없이 살아도 이웃집 챙기고 한겨울 내리는 눈을 받아먹고 겨울이지만 참 포근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추억을 먹고 산다
유년 시절, 아스팔트에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자랐다면 한 여름 정자나무 아래에서 땅따먹기 하면서
고막이 찢어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입술이 시퍼레질 때까지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잡아봤자 고무신짝에서 며칠 살다가 죽일 놈의 붕어를 잡았던 그 논둑과 뒤 동산을 어찌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태어난 곳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자!~ 지금부터 율포 해수욕장을 소개 합니다
주소 도로명 - 전남 보성군 회천면 우암길 24구(지번)
주소 -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678 (지번)
이제는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바가지도 없어지고 철마다 이런저런 이벤트 행사로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에 피서지를 어디로 할까 고민 중이시다면
보성 차밭에서 바람 사이로 풍겨오는 삼나무 향기도 맡아불고
10여 분 구불거리는 길을 달려서 율포 해수욕장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바닷물을 끌어올려 만든 해수탕이 두 군데나 있당께요
물론 숙박도 가능하고요잉
율포가 고향인 5670에게 이광수와 오선화를 아느냐고 물으면
98프로는 안다고 할 것입니다
쌓인 피로를 개안하게(시원하게의 전라도 방언) 풀어불고 싶으시다면
올여름 피서지로 우째 괜찮것지롸?
이러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저는 뭣이라요?
인생이란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이광수와 오선화
율포에선 유명인사로군요
어린시절의 추억들은
머릿 속에서 언제 꺼집어내든 아름답고 그리웁지요..
정이 깃든 고장
율포에 함 가보도록 해야겠습니다! ㅎ
모렌도님
이광수와 오선화는 학교 다닐 때 껄렁껄렁으로 유명했지요
저는 얌전한 것 같으면서 개구쟁이로 유명했고요 ㅎㅎ
지금 더웅께 겨울 바닷가 ~~어떠세요?
멋진 시골 출신이라서 그렇게나 정서가 풍부하시군요 글에서 건강미가 뿜뿜뿜~ 뿜어져 나옵니다
보성은 벌교~고흥까지만 가봤어요 스치듯이
벌교에 가면 조정래의 아리랑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그담은 꼬막
타국에서 건강하세요^^
앗 !~ 몸부림님이시닷~ 수그리 ㅎㅎ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었는데
몸부림님은 혹시 가위바위보 하고 오신 건 아니시지요?
판소리의 영화 촬영지가 바로 우리 고향입니다
네~
건강하게 잘 지내겠습니다
옴마야, 이 출석부 넘 좋아요. 명품입니다^^
구구절절 가리님표 고향의 향기가 이 아침에 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네요.
늘씬하고 이목구비 또렷하고 총기가 느껴지는 소녀 가리나무님, 예쁘고 또 예쁘십니다.
제게는 서울 강북의 광화문 서대문 일대 구 도심이 유년기의 추억의 요람이예요.
율포 같은 대자연의 품 속은 아니어도
그 시절 그 동네 그 골목 골목을 떠올리노라면 그리워 눈물이 핑 돕니다.
지금은 옛 모습 다 사라진 그 동네가 그리워 지금도 울적할 때는 그 흔적을 마음으로라도 다시 찾느라 그 일대를 혼자 돌아다니곤 해요.
아름다운 글에 감동 하며 출석합니다. ^^
복잡한 여름 지난 뒤 율포에 꼭! 가보겠습니다.
달항아리님 ~
서울도 고향이고 첩첩산골 시골도 고향이고
어머니 품 속 같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요
서울이고 시골이고 모두 변해버려 알아볼 수 없습니다
서대문은 저도 사연이 있습니다
연탄재가 널브러진 골목의 파란 대문집에서 철부지 사랑으로 셋방살이를 했는데
그 연탄재를 뿌려 감시롱 골목에서 싸움을 하고 파란만장한 몇 개월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효자동으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앞 방에는 버려진 두 손자를 늙으신 할머니가 거두면서 사는데 손자들이 얼마나 싸가지가 없던지 ㅎㅎ
그 옛날 골목과 그 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 합니다
여름 지나서 겨울에 가 보세요
눈 내리는 날 벙어리장갑 끼고 호호~~
이 쯤 되면 율포광고가 30프로는 성공을 한 것 같아요
세월이 훌쩍 지나가고 70 이넘어가고
나에옛추억인양 푹 빠져봅니다
산골소녀가 흰카라 교복을입고 영어단어카드 손에쥐고 산길을 넘나들던 아련하게 참그리운 그시절입니다
집에오면 공부보다 부모님 일도와 드려야 했지만
학교가지못한 친구들에겐 부러움에 대상이였지요
가리나무님
이아침 옛추억 속으로 빠지게 해주심 고맙습니다
가끔 추억 속으로 빠져 드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동생들 돌보느라 국민학교를 포기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지요
영어 카드 ~ 생각납니다
힘들다 생각한 적 없이 지금은 숲으로 변한 그 산길을 가고 오고
참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율포를 간적이 있었는데
율포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반갑게 느껴집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마치 또래 친구가 하는 말 처럼
어쩌면 그리도 추억이 나와 같은지 덕분에 저도 동심으로 돌아 가 봅니다.
글을 참 사실적으로 잘 쓰시는군요. 올해 문학상에 꼭 응모 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산애님
아휴 별말씀을요
지나간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 나오는데
책을 읽지 않은 탓인지 지식이 박식하여 어려운 글은 못 씁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을 엿보고 꿰뚫어서 인사성이 좋다는 말은 좀 들었습니다 ㅎㅎ
사실 율포의 길거리는 깔끔하지 않고
정리가 안 된 길이지만 나름대로 인상에 남을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율포를 가셨다니 많이 반갑습니다
@가리나무
제 개인적인 의견 입니다만
글은 한눈에 줄줄 읽어 내려 갈 만큼
읽기 쉽게 쓰는 것이 좋은 글 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려운 단어를 나열하거나 미사여구가 많은 글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화순에 머물고 있는데 율포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 입니다.
밤에 갔다가 1박을 하려 했는데, 숙박업소가 마땅치 않아 조금 돌아보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산애 화순이라면 광주로 가는 완행열차의 중간쯤입니다
화순에도 몇 번 갔었지요
화순ㅡ 이양 ㅡ입교ㅡ 석정리로 연결되는 역이름입니다만
유독 화순이 생각납니다
단발머리시절...분명 있었습죠.
어린시절의 향수를 어찌 잊나요.
우리 살아온 날들에 자양분이었는데요.
고향추억에 홍보까지 하시니
자부심이 대단하십니다.
보성 차밭에 갓을 때 이 글을 읽었었으면
"광수야~~~"
"선화야~~~"불러봤을 것을요.
다음 기회엔 꼭 그렇게 소릴 질러볼께요.
제 남동생들도 소몰이 출신들입니다^^
전라남도 보성이라하면 차밭을 빼놓을 수 없지요
몽연님도 가셨군요
수학여행때 광수랑 선화는 만 볼트 주파수를 주고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졸업 후 바로 결혼 이야기가 오갔겠어요?
저는 지금 생각하니 좋아하는 남학생은 하나도 없었고
선생님도 맨날 놀려먹을 궁리만 하는 개구쟁이였네요
저도 남동생과 번갈아가며 산에 올랐습니다
2017년 9월초 남도기행때 광주 518국립묘지와 장흥 제암산 자연휴양림과
보성차밭을 거쳐 율포해수욕장을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한적하고 아늑한 느낌의 평화로운 바닷가가 가리나무님의 고향이군요
소녀시절 참 똘망똘망하고 예쁘십니다
제가 다녀온곳이 위 사진과 같은 장소로 보입니다
그산님
518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같은 반 박금희가 쓰러지고 50여 구 관이 놓여있는 상무관에서 장례식에 갔었지요
꿈인가 생시인가 눈물도 나오지 않고 애국가를 부르는데 목이 메었습니다
518ㅡ보성차밭 ㅡ 율포 바닷가
보성에 가시면 꼭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녀오셨다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마음은 아직 똘망 똘망인데 저 소녀는 온데간데없습니다
1979년에 율포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해수욕장이라기 보다는 뻘이 많은 곳이라고
기억합니다.
사내들 7 명이 놀러가서 옆에 여자들 8 명이
놀러온 팀과 캠프파이어를 하고 놀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
1980년 여름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놀러 갔었는데
그때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는 광주에서 온 남학생들과 빙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
그런데 키가 큰 영선이는 광주에 올라와 그 남학생이랑 연락을 해서 사귄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두 청년이 비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 준다기에 몇 장 찍은 게 있습니다
사내들 7, 여자들 8 ~~짝수가 안 맞는디요? ㅎ
서울 총각이 찍어 준 사진 찾았습니다
@가리나무 앗 멋짐 폭발 ^^
그때 짝은 대충 맞춰서 놀았는데, 서너팀은
편지도 오가고 만나기도 했어요.
@가리나무 어머나~~
가리나무님
넘 이쁘시네요.
세련되셨구요.
이렇게 얼떨결에 출석 하고 갑니다.
ㅎ
@페이지 아이고 페이지님만 할라고요
지금도 유지하고 계시고요
저는 많이 변했습니다
관리 소홀 ㅎㅎ
출석부르러 와서 한 보따리의 감동을 받습니다.
조금씩 뒤돌아볼 나이에 사진도 글도 모두 그리운 추억덩이리네요.
저 교복사진에 제가 있나 한참을 찾아보았어요.
베리꽃님의 글은 수학 공식을 술술 풀어가듯이
쉽게 읽혀지면서 부드러운 흐름으로 참 잘 쓰십니다
감동이시라니 고맙습니다
저도 교복 입은 저 사진을 보고 있으니 꿈만 같습니다
저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직장 따라 도시에서 자랐지만 단편적인 시골의 그 추억은 흐릿하지만 가지고 있어요.
영주라는 소도시가 아버지 첫 부임지라. 초등 3학년까지 동네 아이들과 메뚜기 잡으러 갔던 기억은 나는데, 그 후로 서울로 이사와서 쭉~~~
이렇게 시골이 고향인 분들의 어릴 적의 친구들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보면 참 부럽곤 하지요. 서울친구나 동창들도 기억나는 친구는 다 흩어져 그 기억조차 희미해서요.
풋풋했던 가리나무님의 학창시절을 보니 저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잠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추억할 만한 기억이 있지요
지금은 없어지고 변해버린 도시나 시골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국민학교 동창들을 몇십 년 만에 만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그냥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리진님의 교복 입은 모습이 참 예쁘실 것 같습니다
반세시 오십년을 넘게 웃동네 수도곡지 붙들고 사는 촌뇬
유년시절 아부지 따라서 지리산 산동네 읍에서 살았음
그래두 표준 말 안 쓰고 삽니더
급하몬 더 쌩짜배기 사투리 마구 쏟아 집니더
막내 시동생 시골서 올라 와 같이 사는데
시동생헌티 밥솥에 밥 퍼 무라 했다꼬
시어머님 노발대발 ㅡ 모래봤자 지는 죄 없어예
울동네 깡촌 말은 본시 그래예 ㅋ
내두마 ~~~ 깡촌 고무신 씬고 자랐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헙니더
하늘과 호수길님
사투리가 구수하고 좋지요~
경상도 사투리인가요? ㅎ
보성 차밭도 아직 한번도
안갔네요.
수국 14억원어치 산
윤제림 사장님 방송 보고
윤제림에서 하루 잤네요.
출석하고 갑니다~~
처음 들어 본 이야기라서 동영상 봤어요
돈도 돈이지만 대단한 열정입니다
https://youtu.be/jnT4c-GVGRw
PLAY
@가리나무 수국은 졌지만 캠핑장에서 차박하고
아침에 방송 나온 사장님도 만났지요.
나중에 가시면 정상은
헹글라이더도 하는지
멋지게 잔디조성 되어 있어요~~
처음 인사드릴께요
글도 음악도 사진도
너무 맛깔나게 구성해주시고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올려봅니다
자주 글 올려주세요
출석합니다
드가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제가 팝송 명곡방에 아주 가끔 올리는데 보셨다면 고맙고요
요근래 올린 곡 들어 보실래요?
매력적인 레디가가입니다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
https://cafe.daum.net/beautiful5060/NjUk/1321
@가리나무 네네 ^^
저는 커피방으로 올리는데
서로 오고가면서 눈인사하기로해요 ❤️
차 한잔 맛있게 서비스 해드릴께요 ㅎㅎ
센스있으신 가리나무님 감사해요
아 좋은 글. 옛날 생각이 납니다.
출석합니다
자연이다님도
많은 추억이 있지요 ?
출석 고맙습니다
미숙,귀남,옥자,순옥,순자,영숙...
모두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부르면 하나 정도는 얻어 걸릴 수 있을 것 같아서리...ㅎ)
아니 이럴수가
딱 항개 맞추셨는데
그게 제 이름입니다
아휴 ㅋㅋ
흑백사진의 추억
참 좋아 보입니다 ㅎ
가리나무님 공부도 잘 하셨을듯~
뭇별님
오랜만입니다
공부를 했으면 잘했을 건데 노는 걸 좋아해서 그냥 그랬습니다
국어는 거의 일등인데 그 외에는 빵점에서 달랑달랑 ㅎ
가리나무님의 어린시절 고향 풍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네요.
푸른 산과 바닷가, 뻘밭, 꼬막, 그리고 소박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사람들의 모습들까지.
특히, 이광수와 오선화님 등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 시절 청춘의 설렘과 순수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율포 해수욕장 소개글에서도 가리나무님의 고향사랑이 느껴집니다.
비온뒤님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을 함축해 주셨군요
제가 이유 없이 두 달을 걷지도 못하고 앓았을 때 고향산천이 사무치게 그립더군요
결국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마음이 가나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