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렇게 말하는 딸의 맘이
진심인 줄 아셨을까.
입학금을 낼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진짜 중학교 안 갈 거야?"
재차 묻는 엄마의 슬픈 표정이
희미한 호롱불빛에 아른거린다.
"안 간다니까"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친구인 선녀의 엄마가
뜨개질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다.
믿는 도끼가 있으니
중학교 안 가도 된다는 내 답은
당당하기 까지 했다.
노랑 빨강 파랑 좋아하는 색깔의 털실로 예쁜 옷짜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에 밀려 중학교는 뒷전이었다.
새벽기도 가시는 엄마에게
두터운 털실로 쉐타를 짜드리고
또 돈도 벌어 효도할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사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엄마나이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중학교를 갈 수는 없다.
"넌 왜 늦게 태어나서
엄마를 고생시키냐"
입빠른 길우엄마의 말이
자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기도 하고.
"너네 엄마가 우리집에 돈꾸러 오셨더라.
딸 중학교 보내야 한다고"
친구들앞에서 효숙이가 자랑삼아 큰 소리로 떠든다.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중학교 입학금 냈으니 학교에
다니도록 해라"
분홍빛 털쉐타도 빨간 목도리도
다 물건너 가고 이제 곧 중학생이 된다.
.
.
.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던
우리 모녀.
중학교가 무슨 5분 거리도 아니고
한 시간 거리도 아니고
열 세 살 소녀의 걸음으로 두 시간 거리다.
거인같은 높은 재를 몇 개나 넘어야 하고
아흔 아홉 구비의 꼬부랑 길과
개울은 또 몇 갠지.
화장터딸린 공동묘지는 어떡하라고.
어쩌다 지나가는 차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쓰게 해도
그저 반갑기만 한 적막하고
외로운 혼자만의 산길.
그래도 씩씩하게 다녔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개근상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통리재에서 딸을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그 시절이
가장 게으르게 살고 있는 지금에사
전설의 고향처럼 그리워진다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나 중학교 안 가도 돼"
베리꽃
추천 7
조회 393
24.07.19 12:10
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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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국민학교 졸업하고
뜨게질이나 홀치기라는걸 많이 했더랬어요
홀치기는 또 얼마나 오묘하던지요
아무 생각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이
돌아보면 감사함 투성입니다
여전한 글솜씨 동심의 세계 자주 좀 봅세요
홀치기.
저보다 더 잘 아시네요.
홀치기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는데.
홀치기하는 장면도 이제 떠오르는군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중학교가지 않고 그런 기술을 배웠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ㅎ
하늘아래 그무엇이 높다하리오
어머니,이세글자는 그뒤에 동사나형용사가 필요없습니다.
베리꽃님도 이제는 어머니...
어머니의 희생과 교육열이 없었으면
아마 삶방에서 추억의 글을 쓰지도 못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암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그 사랑이 하늘같은 어머니들이지요.
글 솜씨가 빼어나시니
늘 댓글도 어마무시 하네요^^ 아침동화 한 편이 고마와 도장 찍고 갑니다. 😉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