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의 톰 아저씨 오두막집
헤리엇 비쳐 소토아 여사(1811-1896)가 1852년에 초판을 발행한 미국 소설이다. 미국 소설로서는 처음으로 100만 셀러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문학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한다.
1850년에 도망노예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였다. 도망노예는 재판을 받은 권리도 박탈당하고 노예를 도와준 사람도 처벌하는 법이었다. 이 법이 의회를 통과하자 스토오는 큰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시인 랭스턴 유고는 ‘이 소설은 미국의 저항 소설이다.’라고 하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켄터키 주의 지주 셸비 부부는 마음씨 좋은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셸비는 사업에 실패하고 막대한 빚을 져 농장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충실하였던 노예 톰과, 혼혈 노예 엘리저의 다섯 살난 아들 해리를 노예상인에게 판다. 아들 해리와 헤어질 것을 알게 된 엘리저는 해리와 함께 도망치고, 해리의 아버지인 조지 해리스를 만나 평화주의 교회인의 도움으로 무사 카나다에 당도한다. 한편 톰은 팔려가는 도중, 배가 강을 따라 내려갈 때, 같은 배의 승객인 에바의 생명을 구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의 아버지 오거스틴 세인트 클레어에게 팔려가고, 그곳에서 한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나 에바와 오거스틴이 사망하고 냉혹한 시몬 레글리에게 다시 팔려가서 레글리의 목화밭에서 심한 학대를 받는다. 톰은 목화밭에서 하루 종일 채찍에 시달리면서 힘들게 이란다. 다른 노예를 도와주다 죽지 않을 만큼의 심한 채찍질을 당한다. 톰은 레글리의 다른 노예인 캐시와 에믈린의 탈출을 도와주고 그로 인해 레글리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이 사건은 다른 노예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톰이 죽기 직전 톰의 원래 주인인 셸비 부부의 아들 조지는 톰을 다시 사들이려고 찾아오지만, 톰은 결국 사망한다. 조지는 켄터키 본가로 돌아가 노예들에게 톰의 희생에 대해 알리고, 모든 노예를 풀어준다.
작가는 1811년 미국 코네티컷 주 리치필드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맏언니 캐서린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캐서린이 설립한 하트퍼드 여학교에 다녔으며,훗날 그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노예 농장주와 결혼한 이모 메리에게 처음으로 노예제의 참상을 전해 들으며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눈떴다.
하트퍼드의 학교에서 공부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832년 신학교를 설립하려는 아버지를 따라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로 이주했고, 1836년에는 목사이며 신학교 교수, 노예해방론자인 캘빈 엘리스 스토와 결혼했다. 노예제도를 유지한 남부와 인접한 신시내티에서 18년간 살면서 그녀는 노예들의 실상을 잘 알게 되었다.가난한 신학 교수 캘빈 스토와 결혼한 후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결코 윤택하지 못하였다. 처음 7년간에 5남매를 낳았으니, 칼빈의 박봉으로 생활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할 수 있다. 부부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해리엣은 거동이 느리고 관용한 데가 있었으나 칼빈은 꼼꼼하고 신경질적이었다.칼빈은 아침 기도나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싶었으나 해리엣은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았다. 칼빈은 집안의 모든 것이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해리엣은 모든 것을 여기 저기로 옮기기를 좋아하였다. 칼빈은 신문도 읽은 다음에는 제대로 접어 놓기를 바랐으나 해리엣은 펼쳐 놓은 채였다.
이렇게 해서 결혼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해리엣은 약1년간 전지요양을 하게 된다. 1850년에 도망노예법이 반포되자 노예제에 항의하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북부에서 활동하던 흑인 목사 조시아 헨슨을 모델로‘톰 아저씨’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노예제 반대 신문<내셔널 이러>에『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1852년 두 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된『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북부에서는 뜨거운 찬사를,남부에서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금서로 지정되었다.이후 노예제에 반대하는 두번째 소설『드레드』를 비롯하며,『목사의 구애』『오어 섬의 진주』『정든 마을 사람들』『샘 로슨의 옛 고향 노변정담』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미국 국민들의 양심에 호소한 엉클 톰스 캐빈』은 출간 첫해에만30만 부가 팔렸다.이 소설은 대중의 노예제 반대감정을 고취시키며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남북전쟁을 촉발시킨 항의 소설『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그 강렬한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소설로서의 매력을 여전히 잃지 않으며 오늘날 미국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남북 전쟁 이후에는 플로리다 주에 살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1896년에85세를 일기로 하트퍼드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연재 중에도 뜨거웠던 반응은 출간 후에는 불타올랐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미국 소설 역사상 첫 밀리언셀러가 된다. 영국에서 출판된 해에 130만 부가 팔리는 등 해외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9년 후 남북전쟁이 발발할 즈음에는 16개 언어로 번역된다.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책을 안 읽은 사람들도 톰 아저씨에 대해 알게 된다. 이제 노예제도에 대한 논쟁은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대한 논쟁이 되어 버린다.
이 소설이 이룩한 경이적인 성공으로 스토우는 그녀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뒤이어 일어날 남북전쟁에서 결정저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을 미국사에서는 내전(Civil War)이라고 부른다. 세계사를 보면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내전을 겪은 나라들이 많다. 특이하게도 미국은 노예제 존속 여부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사실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노예제가 아니었다. 근본 원인은 노예를 부려야만 하는 남부와 노예제가 필요 없는 북부 간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갈등이었다. 남부인들은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 기반인 것은 물론, 남부의 전통이라고 생각했기에 북부의 노예해방주의자들에게 극렬히 반응했다. 대부분의 남부인들은 흑인 노예들이 백인 주인의 보호 아래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소설에 대한 반박이, 아니 반격도 있었다. 혹독한 서평이 연달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남부의 현실을 왜곡하고 편견으로 가득 찼기에 문학성이 떨어지며, 작가 스토는 남부에 살았던 경험이 없기에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주 내용이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비꼬고 반박하는 소설도 등장했다. 3년 동안 14권이나 출간되어, 미국 문학사에 '안티 톰(Anti-Tom) 문학'이란 장르까지 있을 정도였다.
북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남부의 농장을 평화로운 낙원으로 묘사했다. 작가는 거의 남부의 백인이었다
작가로서 스토는 성공했다. 미국은 물론 영국에까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홍보하는 행사 여행을 다니며 노예해방 캠페인을 펼쳤다. 이렇게 영향력 있는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는 청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연설할 수 없었다. 여성은 남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지됐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남편 캘빈이나 스토의 남자형제가 연설문을 대신 낭독했다. 궁금하다. 스토는 이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 밤새워 소설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페미니스트 적인 글도 많지만 ---, 여기서는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