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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송년회
어제 12월 17일은 부산 교대 3기 등산모임에서
황령산 등산을 마치고 남천동의 어느 오리고기 집에서 송년회를 하였다.
참가 회원 11명 중에서 3명이 41년 생으로 올해 7순이다.
인생 70 고래희 (人生 七十 古來稀) - 古稀) 라고
70 까지 사는 사람은 예부터 아주 드물었기에 큰 잔치로 축하해주곤 하였다.
송년회 겸해서 우리도 깜짝 7순 축하연 해주자. 그래서 늘 가던 순두부집이나 돼지 국밥집 대신 오리 고기 집을 택한 것이다. 세 분을 가운데 자리로 모시고 오늘은 맥주, 소주 대신 100세까지 오래 오래 살라고 좀 비싼 백세주를 시켜 잔을 가득 채우고
총무의 선창 “세 친구의 장수를!” 에 이어 “위하여!” 를 크게 외쳤다.
오리 고기들이 불판 위에서 익는 동안에 세 사람에게 한 마디씩 7순 소감을 듣기로 하였다.
먼저 혜종 (우리들은 몇 년 전부터 이름 대신 호를 부른다.) 선생.
- 나 정말 기분 좋아요. 여러분이 이런 자리를 우리 모르게 계획하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 우리 며느리가 남매 쌍둥이를 나았죠. 결혼한 지 4년 만에.
나이 70 에야 겨우 할아버지가 되었죠. 솔직히 온 천하를 얻은 기분이요. 아들 나았을 때 보다 더 기분이 좋으니 별일이죠.
더욱이나 한꺼번에 둘이나 얻었으니. 이게 바로
한 방의 블루스라는 거 아니겠소.
그 기분으로 내가 점심을 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 다음 산행 때로 미룰 수 밖에 없군요. -
우리는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요즘 얼마나 귀한 아이들인가.
고령화 속도 세계 제일, 저출산율 세계 제일 - 이렇게 되면 2 ,30년 후의 대한민국은 어찌 되겠는가.
그런데 한꺼번에 두 아이를 나았다하니 친구의 손자, 손녀를 떠나서 국가적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은 태화 선생 한 말씀
- 바로 오늘 아침 이야기요. 새벽에 거시기가 빳빳해서 오줌기운인가 싶어 화장실에 가서
한 줄기 뽑았는데도 수그러들지 않아 자는 마누라를 깨워서 며칠 만에 이불 속 등산 한 번 하고 말았소. -
야, 태화 선생 거시기 아직도 건재하구나. 세다. 울산 태화강처럼 마르지 않구나.
그것도 몇 달만이 아니고 며칠 만이라니 대단하다.
테니스로 등산으로 단련한 몸이 아니더냐. 그리고 본처를 먼저 보내고 한 참 연하의 후처를
데리고 사니 그렇게 안 할 수도 없겠지만 7순에 며칠 만이라니 부러움을 곁들인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국은 선생. 교직을 정년퇴임한 후 시인으로 등단한 분이다.
등산 배낭 속에서 시집 10 권을 꺼내 한 권 씩 나누어 주고
- 내가 명색이 시인으로 데뷔한지 2년 아니요. 그래서 7순 기념 겸 그 동안 써 온 시 70 여 편을 상재해서 이번에 자비로 시집 1,000 권을 냈소. 한 번 읽어 보시고 다음 등산 때 한 마디씩 해 주소. -
시집 제목은 “은빛 소묘” - 나이 든 시인의 시집임을 제목이 암시하고 있다.
역시 감동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한 두 살 아래인 42년, 43 년생들이 오늘의 오리값을 추렴해 냄으로서 세 친구를 축하해주었다.
세 사람 정말 멋진 노인들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65 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한다.
65 세가 되는 바로 그날부터 지하철은 공짜다. 박물관 무료입장. 극장은 50 % 할인.
사직 야구장은 노인 좌석을 따로 마련해서 역시 공짜다. 경로 연금도 나온다.
복지관에 가면 회원권을 끊어주고 온갖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점심은 1,500 원이다.
곳곳에서 경로 우대를 한다.
호칭도 아저씨에서 어르신 혹은 아버님으로 바뀐다.
아직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데 65 세 이상이라고 일자리를 아예 주질 않는다.
아파트 경비도 65 세 이하만 쓴다. 학원 강사는 50 만 넘어도 잘 안 받아준다.
손이 모자란다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 - 귀향해서 농사짓는 것 말고는 도시에서는 할 일이 없다. 돈을 안 벌고 쓰기만 하니 집에서도 별로 환영받지 못 한 존재다.
여자 노인은 손자도 봐주고 며느리 아프면 대신 밥도 해 주고 살림을 살아주지만 남자 노인은 정말 귀찮기만 한 존재일 수 있다.
아기를 보나, 밥을 하나, 청소를 하나 - 집에 있으면 끼니 챙겨주어야지 용돈 줘야지 - 그러니 연탄재만도 못 하다.
연탄재는 멀리 던져 버리거나 차 버릴 수도 있지만 영감은 그럴 수도 없으니.
용돈이 두둑한 영감들은 돈의 힘으로 그나마 체면 유지를 한다. 여자들을 귀찮게 안 하려고 밥도 주로 외식으로 때운다. 아침에 밥 안 먹고 커피 한 잔 손수 끓여먹고는 나가서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영감님이 최고다.
아침은 집에서 먹고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밖에서 때우고 들어오는 영감도 괜찮다.
겨우 점심이나 때우고 들어오는 영감탱이는 별로다.
삼 세끼 꼬박 꼬박 집에서 챙겨 먹으려 들고 커피 심부름까지 시키는 영감은 웬수다.
할매가 동창회 갔다 와서 하는 말
- 에이 씨. 재수 없어. 영감 살아있는 년은 내 뿐이다. -
그래서 그 많은 영감들이
아침을 먹으면 경로당을 간다, 복지관을 간다, 등산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용두산 공원, 성지곡 공원에 가면 노인들이 태반이다.
두 공원에는 11시 반 쯤 되면 무료 급식이 있다.
성지곡에는 권경업 시인이, 용두산 공원에는 적십자 부녀 회원들이 스폰서를 한다.
공원뿐이 아니고 서면이나 남포동의 지하 휴게 장소, 각 지하철역의 만남의 장소 의자는 노인들차지다.
어딜 가나 노인, 노인들뿐이다.
부산엔 큰 직장들이 별로 없어 젊은이들은 서울, 김해, 울산, 양산으로 다 가버리고 부산은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 만 보인다.
몇 년 전 우리들이 정년퇴임할 즈음에 이런 말들이 많이 퍼졌다.
정년을 하고 나면 다섯 개 대학을 거치게 된다.
하바드 대학 - 정년퇴임을 한 직후 몇 년은 하루하루 바쁘게 놀러 다닌다.
하와이 대학 - 자력으로 놀러 다니지 못하고 하루 종일 와이프만 따라 다닌다.
동경대학 - 와이프 따라 다닐 힘도 없어 동네에 있는 경로당에 겨우 나간다.
방콕 대학 - 경로당에 갈 힘도 없어 방에 콕 박혀 지낸다.
영산 대학 - 죽어서 영원히 산에 간다.
우리들은 등산을 다니면서
가운데 세 개 대학은 다니지 말고 하바드 대학 다니다가 바로 영산 대학 가자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건배사는 주로
9988 234 !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가 죽자!
오늘 한 친구는 부산 대학 다니다가 바로 영산 대학 가자고 한다.
부지런히 산에 다니다가 바로 영산 대학 가잔다.
좋다, 제발 그렇게 돼야 될 터인데.
다행히 우리 교사출신들은 연금을 많이 받는 편이다.
40 년 정도 공무원을 했으니 그간 넣은 기여금이며 국가의 보조금까지 월 300 만원 이상을 받아 노후 보장이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오히려 자식들 도와주는 형편들이라 자식이나 며느리가 싫어 할 리가 없다.
용돈 잘 주는 할아버지로 손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거기다가 온갖 건강 정보들을 알아가지고 운동하고 몸에 좋은 것 가려먹고
때때로 건강 검진 받고 하니 도무지 이 영감들이 죽을 생각을 안 한다.
불치의 병, 교통사고 등만 피하면 어지간한 노인들은 남자는 80 넘기고 여자는 90을 넘긴다.
법정 노인 연령인 65 세는 노인 취급도 안 받고 심지어 70 이 돼도 별로 노인이란 실감이 안 난다.
내가 7순 가까이 되고보니 옛날 젊을 때는 70 쯤 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솔직히 여자 생각은 별로 안 나지만 맛있는 거 여전히 맛있고
삼 세끼가 꿀 맛 같고 산에 가서 맑은 공기 마시면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고
시나 소설 여전히 재미가 있어 책과 신문을 놓지 않고 있다.
영자 신문 Korea Times 를 사서 20 페이지를 이틀만에 모든 기사를 다 읽고 버린다.
몇 시간을 계속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내용이 지루하지 않다.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서 영자 신문을 턱 펴놓고 읽으면 옆에 노인이 묻는다.
글자가 보이는교?
- 네 부모님 덕에 눈이 좋아요.
이렇게 좋고 재미있는 세상에 좀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친구들이 안타깝다.
통계에 의하면
60 대 (60~69) 에는 동년배 중에서 20 %가 죽는다. (5명 당 1명이 간다.)
70 대 (70~79) 에는 40%
80대는 80%
90대 (90~99)는 100 % 가 죽는다 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의 총무만 하는 사람이라 이 통계가 거의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때는 실감을 못 했는데 내가 나이 들수록 그들이 너무 일찍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 불쌍하다. 아깝다.
구덕 초등 (아마 73년돈가) 5학년 담임 할 때
1반의 이성두 선생님 - 5년전인가 중앙동에서 뵈었을 때 건강이 안 좋아서 보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조문 선생이 울먹이며 선생을 부축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지 알 수 없다. 1 반 학생들 알면 댓글에 달아주세요.
안필원 선생님은 진작 돌아가셨다. 아마 여러분 보다 더 젊은 나이인 40 대 중반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모님이 범일동에서 여관도 하시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이었는데.
신경진 선생님도 벌써 돌아가셨다. 날렵하고 깔끔한 성격 같아 멋진 분이었는데.
4반은 나고 5반은 여선생님이었는데 성만 김이라는 기억이 있고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남편이 중앙부서에 재직해서 아마 서울로 갔다고 들었다. 정년 퇴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교장 선생님 정낙천 - 키 크고 멋쟁이 교장 선생님도 장수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교감 선생님 강태룡 님은 양정 로터리에 3층 빌딩을 가지고 계셨고 두구동인가에 땅도 많이 가지신 부자 - 9순이 넘은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키는 작지만 가슴이 떡 벌어져서 두꺼비란 별명이 있었다. 말씀도 느리시고 행동도 점잖으셔서 장수형이었다.
제일 힘 좋은 박인태 선생님, 야구도 잘 하시고 운동을 좋아하셨는데 그 분도 진작 돌아가셨다.
예쁜 여선생님들도 이제 다 할머니 급이 되어 정년퇴임하고 손자들 보러 다니실 거다.
노들 강변 봄 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 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도 세월은 붙들지 못하는 거
상환이 아버님은 교무주임을 하셨는데 안부가 궁금하다.
나보다 열 살 쯤 위셨으니 교장을 하시다가 정년 하시고 테니스 등산 등으로 건강을 다졌을 것이니 건강하시리라 믿는다.
말씀도 재미있게 잘 하시고 키도 훤칠한 멋쟁이 차종수 선생님,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상환이 이 글 보면 아버님께 안부 전해주거라.
그런데 늬가 요즘 구7 카페에 안 들어오니 이 글을 보기나 하겠나
네 딸도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여고생이가 여대생이가?
요새 언론에서 베이비 붐 세대들이 곧 직장에서 정년들을 하고 나오면 700만 명이 별 대책 없이 사회로 나오게 되니
큰 문제가 된다고 하며 떠든다.
그런데 그 베이비 붐 세대라는게 55년생부터 63 년 생 사이라고 하니 여러분도 베이비 붐 세대의 막내인 셈이다.
여러분도 5~6 년 후면 제 2의 인생을 살아야 할 나이란 뜻이다.
햐아 구 7들이 벌써 그렇게 되셨어요?
세월은 무지 빠르다.
생각해 보라. 지난 10 년이 얼마나 빨랐는가.
앞으로 남은 10년도 금방 지나가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노후 대책들을 세우겠지만 새해에는 배우자와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나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균 수명이 (아마 여러분 세대는 100 세 노인들도 많이 나올 거다.) 해마다 느니 그만큼 노후 자금이 많이 든다.
노후는 버는 때가 아니라 신나게 써야할 때니라.
여러분은 적어도 3~40 년 가까이.
가난한 노인은 서럽다. 자식들에게 짐 되기 쉽고 친구들에게 냉대받기 쉽고 사회적으로도 환영 받지 못한다.
큰 병이 들면 몇 백 만원씩 깨지고 치아라도 갈라치면 목돈이 사정없이 들어간다.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야지 그것 내 줄 자식 흔치 않느니라.
내가 왜 이런 여러분이 잘 아는, 영양가 없는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누?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이야기들이 갈짓자로 나와버렸네요.
양해하시게들.
몸 건강하고 마음 성실하면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좌우튼 건강하고 착하게 사세나.
첫댓글 역시 선생님은지존이십니다 항상 저를 부끄럽게만드시네요 은사님들중 항상 존경스러우신 류근모 선생님
건강 조심하시고 ....
영원아 잘있나... 가끔 글 좀 올려라...
반갑다, 영원아. 언제 한 번 만나 밥이나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는데 이렇게 세월만 가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나이 먹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나이를 잘먹는것"이다 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이룩하신 분인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사모님과 함께 오래오래 함께 하세요.....
그래서 옛말에 곱게 늙기가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네. 세월을 잘 보낸 사람만이 잘 늙는 것. 가버린 세월에 연연해하지 말고 6학년으로 졸업할 것이 아니라 7학년 8학년 9학년이 돼도 계속 공부하고 운동하는 학생이어야지. 그래서 비석의 글들도 대개 "학생 문화 류공지묘" 이런 식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