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Ryn - Prologue -
Writer 이븐
가을 하늘은,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씻겨주고도 파란 물감을 들인 것처럼 높게 떠있었다. 그런 하늘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청명하고 시원한 가을을 가리켜 축복의 계절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도, 어쩌면 하늘이 가져다주는 기분 좋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린은, 길을 걷고 있다.
지평선까지 죽 뻗은 중앙대로를, 나름대로의 박자에 맞추어 사뿐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손에 낀 피스트와 머리에 살짝 드리워진 꽃무늬의 챙모자는, 부조화하게 보이는 모습에서도 린의 시원한 미소와 어울려 이질적이고도 자유로운 영혼의 분위기를 마음껏 풍기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정확하고 자로 잰듯한 걸음걸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중앙로를 활보하는 그녀는 피오리나의 자태를 쏙 빼닮았다.
"아, 따분한 걸..."
얇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지루한 목소리가 중앙대로를 울렸다. 아직,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그녀의 청명(淸明)한 목소리를 청음(聽音)할 절호의 기회를 맞지 못했으나, 만약 사람이 지나갔다면, 곱상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다고 한마디 던져줄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루하다고 외치면서도 입이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루하다는 말은 괜히 해본 말이었고, 사실은 굉장히 기대되거나 흥미로운 일이 예정되어 있음을 짐작케 해주었다.
"이제 얼마나 가면 될까나?"
린은 손목을 들어서 피스트 아래 감추어져 있는 메탈 재질의 패널을 들쳐보았다. 회색빛을 띠고 있지만, 표면에 휘감친 고급스러운 문양을 가진 손목 패널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녹색의 화면에 나열되어 있었다.
린이 가장자리에 있는 파란 부분을 손가락의 끝으로 살짝 건드리자, 복잡했던 숫자들은 녹색의 화면에서 사라지고, 누가 보았다면 전혀 해석하지 못할 숫자와 문자의 나열들이 화면에 보였다. 그리고는 패널의 어딘가에서 청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듣기에는 나쁘지 않은 중성적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잔여거리는 396 아덴입니다.
"웅, 아직도 먼걸. 난 이제 지루해 죽겠단 말야."
- 앞으로 30분 동안 중앙대로를 걸으시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린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패널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린은 잠시 396아덴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사실, 그녀가 고향인 바이렌 국에 돌아온지는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야 하는 이유는, 패널이 국경을 넘어 완전하게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는 데에는 꼬박 24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녀의 손목패널은, 우선적으로 1시간 안에 국가마다 판이한 도량형을 자동으로 바꾸어주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도량형을 힘들게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역시 기계가 수치를 도량 단위로 변환해서 간단하게 보여주는 기능까지는 갖추기 않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음... 내 걸음걸이로 30분정도 걸리니까... 한 190 렌치쯤 가면 될라나?"
1아덴은 2렌치로서, 1렌치는 센터니얼 국의 1미터와 같았다. 원래 린의 조국에서, 그러니까 바이렌 국에서, 상업으로 번창한 센터니얼 국의 1미터를 표준 도량형으로 삼자는 상원의원들의 발의가 잇따랐으나, 바이렌 3세 국왕은 자주권의 확립을 명분으로 독자적인 도량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다수의 의원들이 효율성에 반한다는 재발의를 시도했으나, 바이렌 국왕의 긴급 명령권에 굴복하여, 오늘날까지 바이렌국의 도량형은 1렌치 당 1미터로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민들도 이런 바이렌 국왕의 뜻을 존중하여 렌치 도량형을 각 국에 전하기 시작하였고, 바이렌국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소국(小國)들은 모두 렌치 도량형을 표준으로 정하고 있었다.
물론, 린도 바이렌 국의 어엿한 시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렌치 도량형 변환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막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를 만나려면, 1시 까지는 도착해야 하니까 속력을 높이지 않으면, 아빠가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르겠어. 그 분은 참 괴상한 성격을 가지셨다고 했으니까. 후훗."
나지막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열변을 토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는 린의 모습은 장난기가 가득한 청순가련의 소녀였다. 이윽고, 린은 손목패널을 자신의 소매로 감싼후에, 피스트의 측면에 달린 붉은 버튼을 지긋이 누른 채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창공에 휘날리는 매의 깃털처럼 나를 바람에 실어다오, 헤이스트 Heist !"
순간, 회색빛을 띠고 있었던 피스트가 약간 불투명하게 변하면서 붉은 색으로 달아올랐고, 린은 피스트에 이어져 있는 자신의 팔에 힘이 전해지면서 가느다랗던 핏줄들이 조금씩 선명한 붉은 색을 띠는 것을 느끼며, 그 홍염의 선들이 팔을 거쳐 온 몸에 퍼지는 감각을 짜릿하게 느꼈다.
‘언제나 이 감각은 나를 황홀하게 한단 말이야...’ 라는 약간 마조히즘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중앙대로에서 적막한 바람만을 남긴 채 리한(Rihan)수도가 어렴풋이 보이는 북서쪽으로 사라져 갔다.
예전에 다른 카페에서 연재하던 소설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쓴 것이라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반응이 그래도 나쁘지 않다면 비축분을 올려볼 장대한 계획 도사리고 있....답니다 ㅎ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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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우와 비축분빵빵터뜨려주세요!!너무재밌어요막막끌려요!!무슨 내용일지 막궁금해지네요!!꺄악 이런스타일을 남몰래기다리고 있었던거에요!이렇게 글틀로 연재하시는분들은 대개 다 잘쓰시는 실력자들이시더라구요ㅠㅠ 아,저는언제이렇게 잘쓸수있을까나요ㅠㅠ 우으우으부럽네요!열심히건필해주세요 열심히 지켜보고 있을테니깐요!+_+!
열광적인 반응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_+//
우.......와!!!!!!!!!!! 님 짱이에요~~ 빨리빨리 올려주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틀에 한편씩은 꼭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ㅎ
오오...마구마구 재밌을 것 같은 예감!!!!다음편 기대할께요~
이러다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죠?ㅠ 쨋든 댓글달고 다음편 올릴게용~ ㅎ
재밌어요!!... 잘쓰셔서 너무 쑥스러운 나머지 아래있던 제 소설을 사라졌담니다..ㅎㅎ 지축분 빵빵!! 기대할께요,ㅎ
감사합니다~ㅎ 비축분 얼마 안돼서 계속 써야 겠네용 ㅠ
저 이 소설 몇년전에 다른 곳에서 본 것 같은데요? ... 어디서였지? 기억이 가물가물... 정말 신기해요. 우연히 보게 된 글인데 예전에 봤던 글이라니! 지금 시간이 늦어서 제대로 못 읽었지만 시간 나는 틈틈이 읽도록 할게요. ^^ 건필하세요!!!!!!!!
예전에 "판타지월드"라는 곳의 카페에서 운영자로 활동하며 소설을 연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_^// 그때로부터 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ㅎㅎ 이번에 약간 수정을 하고, 이제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도 특별장르 게시판에서 연재를 하게 될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