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석
|
[기자수첩] 고 윤종하 장로를 추모하며
지난 27일 오후, 한국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평소 자신을 드러내기를 즐겨하지 않아 그 족적의 주인공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영적 거인’의 소천을 추모하는 예배가 방배동의 한 교회에서 조용히 드려졌다.
이 ‘영적 거인’은 성서유니온선교회 초대총무 및 에스라성경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후, 남은 생을 강의ㆍ집필ㆍ선교ㆍ교회섬김 사역에 몰두하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25일 오전 6시 향년 73세의 나이로 육신의 장막을 벗은 윤종하 장로(광야교회)다.
윤종하 장로의 소천 소식을 접한 기자는 그의 소천 소식만 단신으로 처리했을 뿐, 27일의 추모예배에 참석은 했으나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고 윤종하 장로가 원하는 바였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자는 그가 이렇게 자신의 얘기를 기사화하는 것 역시 그다지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해 이 한가지 사실만이라도 알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 나오는 신하처럼 날마다 산으로 올라가야 하겠기에 기자수첩을 통해서라도 이를 알리고자 한다.
35년 전, 이 땅에‘큐티’를 태동시킨 ‘큐티’의 산 증인
기자가 그를 ‘영적 거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러나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던 큰 발자국을 한국 기독교계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큐티(Q.T.), 곧 성경묵상이다.
한국성서유니온이 설립된 1972년부터 1986년까지 성서유니온선교회 총무로 재직한 그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큐티’란 단어가 생소했던 이 땅에 ‘큐티’를 태동시켰고, 14년간 ‘큐티’를 보급하는 일에 온 열정을 바쳤다.
그리하여 1973년 3월 첫 발행시 그 부수가 4천부에 불과했던 <매일성경>이, 지금은 22만부나 발행되고 있으며, <매일성경>의 성공에 힘입어 타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큐티/묵상지만도 무려 30여 종이 넘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매일성경>의 출판 및 판매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서점에 <매일성경>을 입점시키기 위해 책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전국의 서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초창기엔 서점에서 책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뿐만 아니라 큐티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큐티모임을 인도했으며, 전국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강의했다. 성서유니온을 그만둔 후에는 총무였던 때보다 더 열심히 큐티를 확산시키는 일에, 어쩌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내던졌다.
‘큐티’ 통해 인도받고, 순종하는 삶으로써 ‘큐티의 본질’ 가르쳐
특히 그는 자신이 먼저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순종하는 삶을 보임으로써 큐티의 본질을 가르치려 애썼다.
그는 1997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김북경 총장)의 전신인 에스라성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초대원장이 됐다. 그는 4년간 원장으로 재직한 뒤, 돌연 5년차를 앞둔 2001년 원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당시 연구원은 한창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고, 연구원에 오는 이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듬해에는 대학원대학교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었기에 초대총장 자리는 ‘맡아 놓은 것’이었고, 그가 원하는 한 정년퇴임시까지 총장직이 보장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수진과 이사진, 졸업생, 재학생 등 모두가 그의 사임의사 철회를 위해 동원 가능한 방법들을 다 동원하던 상황이라 사임의사를 끝까지 고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도 그는 ‘성경묵상을 통해 자신의 진퇴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명히 받았다’며 끝까지 자신의 뜻, 아니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조기은퇴한 그는 이후,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대로 그의 말씀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몇 명이 모인 곳이든, 세계 어느 곳이든 상관하지 않고 노구를 이끌고 찾아가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묵상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지난 25일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도 고국이 아닌 이국땅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교회에 더욱 큐티가 확산돼,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자기부정을 통해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참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글로써 대신한다.
출처:꿈나무 |
첫댓글 처음 듣는분이시네요. 그런데 " 영적거장 "이라는 표현이 옳을까요?
어떤 사람의 영적인 깊이와 성숙도가 명성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특히 자기PR이 오히려 장려되는 현대의 기독교계에서는 오히려 반비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글을 읽어보니 영적거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고... 성서유니온을 일구시면서 말씀운동을 묵묵히 펴가셨고, 신학과 철학으로 부폐해버린 신학교계에... 오직 성경만을 가르치는 에스라 성경대학대학원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정도라면 거장중에 거장이라 여겨집니다만요...^^
그렇군요
큐티를 정착시키신 것은 정말 큰 공로이시나, 오늘날 큐티나 제멋대로 성경보기로 전락한 느낌도 듭니다. 말씀묵상은 성령님의 인도로 해야지, 자기 관심사를 결부시킨 생각떠오름이나 스스로 묵상공부여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큐티를 하느냐 안하느냐로 영성을 평가하는 어리석음 또한 없어야 합니다. 부흥회식-성경공부-큐티..는 하나의 단계입니다. 누적일수도 있구요. 허나 큐티 그 이상, 또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큐티가 아니면 안함만 못합니다. 특히 CCC나 네비게이토,UBF같은 선교회에서 하는 큐티는 재고의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공부에 있어 성령의 인도에 의한 말씀묵상과, 자기 관심사를 결부시킨 생각떠오름이나 스스로 말씀묵상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성경을 아는 '지식'이 개인의 삶을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면 어떠한 방식이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도 오늘날 신학이나 목사들의 설교나 '제멋대로 성경보기'라는 것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네요.
마디사이/말씀을 있는 그대로 봐도 해석의 여지나 논란의 여지는 남고 각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다르겠지요. 허나 제가 교회에서 나누는 큐티나눔을 돌아보았을 때 '제자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현실에 말씀을 억지로 끼워맞춰 자기뜻을 정당화시키거나 말씀을 지나치게 문제해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말씀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제맛에 맛는대로 세태적으로 말씀을 보니까 큐티가 왜곡되는 것이지요. 말씀하신대로 목사님들의 제멋대로 문맥무시하고 원하는 구절,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구절만 따서 설교하는거나 자기식 큐티나 별 다른 점은 없을 것입니다. 다양성은 본질이 유지될때 아름답습니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귀한 분이 가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