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의 봄을 5월의 등에 태워 저 서산너머로 이제 떠나 보내면서, “나는 행복한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에 실어 보낸다.
이 영화는 프랑수아 를로르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실화소설을, 오유란이 번역한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영화화한 것이다, 나는 10년 전에 이 책을 읽어보고 행복에
대한 잔잔한 기억이 남아있던 중, 얼마 전 영화를 보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영화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면서 찾아 본다.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행복하지 않은 정신과 의사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원작은 프랑스 정신과 전문의 프랑수아 를로르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주인공의 이름은 ‘꾸뻬’가 아닌 ‘헥토르’다 우리나라 번역자가
주인공의 이름을 프랑스 느낌으로 바꾼 것이다. 겉으로는 그는 좋은 직장과 결혼을
전재로 사귀는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삶이 따분하다. 환자의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대화는 하지만 손으로는 엉뚱한 그림을
그린다. 일상은 그야말로 권태롭다. 이에 그는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행복한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 헥토르는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 출발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안고
돌아오는 형식을 취한다.
첫 여행지는 중국 상하이. 여기서 헥토르는 백만장자를 만나 그가 말하는 행복을 들여다
본다. 돈 많은 그에게 위축된 헥토르는 이렇게 기록한다. “남과의 비교는 행복을 망친다.”
비교와 동시에 열등의식이 마음을 정복하고 영혼을 더 얻기 위한 욕망이나 얻는 것을
포기하는 절망으로 떨어진다. 헥토르는 일에 중독된 이혼남인 백만장자와 잠시 동행하며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돈이 행복이라고 믿는 삶은 당연히 소비와 연결된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리고 ‘성적 쾌락’으로…. 헥토르에게 이런 행복을 가르쳐준 그는 항상
무표정하다. 감각적인 삶이 반복되는 것이 곧 권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계속 움지여라’ 그게 나의 모토야. 행복하게 은퇴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은퇴하지
않는 것이야.”
무거운 마음을 안고 헥토르는 티벳으로 가는 칭칭열차를 탄다. 티벳에서 승려를 만난
그는 “불행을 피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나누는 순간 마음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헥토르는 티벳 사찰에서 여자친구와 인터넷
화상대화를 나누는 특이한 경험을 하지만 바람이 부는 바람에 접시안테나가 지붕에서
떨어져 인터넷 연결이 중단된다. 대화를 나눌 때는 행복했지만 바람 때문에 대화가
강제로 종료되니 불행했다. 이 ‘불행’때문에 우울했지만 티벳의 승려들은 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한다.
티벳을 떠난 그는 아프리카로 간다. 대학시절 친구였던 의사 마이클이 그곳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도와 하루의 긴 일과를 마친 헥토르는 마이클로
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내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 사랑 받고
있기 때문이지” 아프리카에서 헥토르는 갱단에 잡혀 생명의 위협을 받고 그 두목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정의를 듣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그러면 누군가 불행
해져야 한다. 이들의 힘에서 벗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헥토르는 밤거리를
뛰어가며 깨닫는다. “행복은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헥토르는 혼자만의
긴 여행에서 행복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얻어내고 있었지만, 홀로 있는 애인과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러면서 한쪽 마음이 무거워지며 여행을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프리카를 떠난 헥토르는 옛 애인이 살고 있는 미국의 LA로 향한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뇌종양 말기환자 아멜라를 만난다. 비행기 고도가 높아짐에 뇌압이 증가하여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기장에게 고도를 좀 낮춰달라 부탁하며 헥토르는
그 환자의 곁에서 그녀의 마음의 소리를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준다.
“수술을 받을 때 꿈을 꾸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회전목마를 타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같이 타자고 했어요. 죽을 힘을 다해 그들에게 달려갔어요. 그들과 다시
목마를 탈 수 없겠죠? 웃는 얼굴들, 따뜻한 마음들, 나는 행복한 여자였어요.”
죽음을 앞두고 고통스러워하는 말기암 환자의 말이다. 행복은 물질적 쾌락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모두의 도움으로 무사히 LA에 도착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섭지 않아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삶도 두려워하죠. 당신은 훌륭한 의사
에요. 귀를 기울려 주는 것이 사랑이니까요.”
LA에 도착한 헥토르는 세 아이를 둔 옛 애인을 만난다. 같은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녀는
말한다. “너는 마음 속의 환상과 현실을 구분 못해. 왜 불편한줄 알아? 나는 현실이니까.
결혼도 하고 애도 있어. 네가 지금 누굴 사랑하고 있는지 몰라도, 그건 내가 아니야.”
사람의 심리는 6살까지의 상처와 경험으로 결정된다고 한다.영화의 중간중간 헥토르가
키웠던 강아지가 등장하고 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나타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헥토르는 옛 연인 아그네스와 정신과 의사의 행복에 관한 강연을 듣는다. 어릴 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곧 존재 자체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그 어린 시절의 것을 되찾으려고 한다고 한다.
“우리가 집중하거나 몰입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춤을 출 때,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
그는 미국에서 옛 연인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를 기억해낸다.
사실 있는 그대로 행복했었다. 권태로운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문제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행복의 능력”이 있으며 더 깊게 들어가 “우린 다 행복할 의무가
있다.” 무엇을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답을 얻은 헥토르는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