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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베드로전서1장13~25절
제목 :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는 문안 인사와 찬송의 이유를 설명한 뒤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개인적인 권면을 합니다. 개인적 생활을 위한 권면은 1:13에서 2:10까지입니다.
베드로는 세 가지의 권면을 하고 있는데
A. 성결한 생활을 힘쓸 것(1:13~21)
B. 형제 사랑을 힘쓸 것(1:22~25)
C.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할 것(2:1~10)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성결한 생활을 힘쓸 것]과 두 번째 [형제 사랑을 힘쓸 것]을 권면하는 것에 대해서 묵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성결한 신앙생활(13~21절)
성도가 성도로서의 삶을 올바로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 까요?
이것이 성도의 고민이요 기도 제목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 다른 사람의 신앙에 귀감이 되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1:13~21절까지에서 3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3절).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중동지방의 사람이 입는 옷은 하얀 통옷입니다.
달려가거나 일을 하려면 먼저 허리를 동여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생도를 보낼 때도 허리를 동이고 가라고 합니다. (왕하9: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일을 하려면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일을 하려면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만 할 수 있습니다.
결단(決斷), 각오(覺悟), 헌신(獻身), 준비태세(準備態勢) 등을 말합니다.
언제 주인이 불러도 출동 준비할 수 있는 군대의 오분 대기조 같이 행하라는 뜻입니다.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성도가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겸손히 절제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➀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를 말합니다(벧전5:5).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 앞엔 누구나 겸손해야 합니다.
②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입니다(출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급한 일이 발생 할 때에 먼저 허리부터 단단히 매야 합니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Lenski).
③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종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입니다(눅12:35).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5]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36]절에서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는 가운데 긴장된 자세로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Michaels).
④ 허리를 동이는 것은 나그네의 복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에도 이와 같은 모습을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도 역시 허리를 동이고 겸손의 모습,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은 세상적인 마음, 하나님이 원치 않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조이는 것이며 겸손하고, 절제하고,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을 쾌락이나 방탕함에 내놓지 않는 모습입니다.
(2) 근신하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➀ '온전히 근신하여'로 해석합니다(Michaels, Bigg).
이 경우 '온전히 근신하여'는 '인내'를 강조합니다.
②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번역하며 '소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봅니다(Selwyn, Lenski).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가져다 줄 은혜를 소망(所望)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언어(言語)나 행동(行動)에 있어서 조심하며 인내(忍耐)가운데 살아야 합니다(Blum, Stibbs).
또한 근신하는 것은 음주나 방탕 등을 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수군거리거나 죄를 지을 만한 것들을 자제하는 행동입니다.
근신하는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받을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근신하여 경건한 삶을 산 성도가 하나님의 선물과 상급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근신하는 성도는 바로 하나님의 선물, 은혜를 소망합니다.
2)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14~17절)
(1) 순종하는 자식처럼 살아야 합니다(14절)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형적인 셈어적 표현입니다(막2:19;눅10:6).
특별히 셈족 언어에서 '자식'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➀ '상속자'라는 뜻으로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닙니다.
② '부모의 인격이나 성품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일 경우 누구의 자녀이냐에 따라 자녀의 인격이 결정됩니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향해 '불순종의 자녀'(엡 2:2)가 아니라 '순종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서(롬1:5;16:26), 복음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마음을 보이고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 성품을 배워가기 때문입니다(Michaels).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말합니다.
이는 이방인이었든 유대인 이었든 간에 진정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나타냅니다(Stibbs).
이러한 자는 사욕(邪慾) 즉 자연적인 충동에 사로 잡혀(Michaels, Stibbs) 충동 대로 방종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삶 즉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합니다(15~16절).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한 자'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칭호로서
'거룩한 자' 혹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나타납니다(LXX시70:22; 77:41; 88:19;사1:4;5:16;12:6;17:7; 29:23; 30:12,15; 31:1;41:20;45:11;55:5).
이것은 하나님의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함을 시사합니다(Blum).
이러한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과거에 처했던 어둠에서 광명한 빛으로 부르셨으며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2:9;5:10).
*2:9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거룩한 자가 되라'는 명령의 의미보다 '거룩한 존재이니 거룩함을 나타내라'라는 의미입니다(2: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한편 '행실'은 본서에서 '선한 행실'(2:12), '선한 양심'(3:16), '정결한 행위'(3:2)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이것은 '거룩'이 하나님께로의 분리를 의미하나 일상적인 삶의 행동과 연관된 것으로서 세상에서 윤리를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Blum, Michaels).
왜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까?
“거룩”이란 말은 바로 '구별한다, 갈라낸다'는 것입니다.
더러움과 죄악으로부터 구별지은 사람이 바로 성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당연히 거룩해야 합니다(16절).
16절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여기서 '기록되었으되'는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은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으로(레11:44;19:2;20:26),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말씀입니다.
*레11:44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하고”20:7, 26, 21:8
*레19:2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20:7,26 “[7]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26]너희는 나에게 거룩할 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21:8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닮아가도록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이 말씀을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복음 안에 산다 할지라도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완성한 사랑의 원리를 따라 윤리적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마치 요셉처럼 "어찌 내가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요"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거룩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성도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갖고 두려움으로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십시오.
(3)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경외해야 합니다(17절)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는 편견에 사로잡혀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편견(偏見)이나 불공평(不公平)에 빠지지 아니하시고,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의(公義)로운 심판자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구약시대에서는 생소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마 6:9; 눅11:2).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보살피시는 분'과(마 6:32) '재판장으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눅 18:1-7)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리스도인을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여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나그네로 있을 때'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지내는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본향이 이 세상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세상은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이전에 잠시 거쳐 지나가는 삶에 불과한 것입니다(Stibbs).
그러므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거할 것처럼 안일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하나님이 원하는 악에서 떠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목적입니다.
“악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경건하게 신뢰하는 것”을 경외라고 합니다
(잠14:26~27).“[26]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2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시147:11)
긍휼히 여겨주십니다(시103:13),
다 받으십니다(행10:35),
하나님의 인자하심 받게 됩니다(시103:17),
복을 받게 됩니다(시112:1),
견고한 의뢰가 있습니다(잠14:26),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잠16:6),
기념책에 기록합니다(말3:16),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사8:12~13),
소원을 이루십니다(시145:19),
장수를 누리게 됩니다(잠10:27),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잠22:4).
3)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18~21절)
(1)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18절).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너희가 알거니와 - 앞에서 명령한 구절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를 보충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구속받기 위해 치른 대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과 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힘으로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구속 사역이 완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막10:45).
(2)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19절).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어린양 같은'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킬 때 이미 사용한 표현입니다(요1:29,36).
*요1:29,36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본문은 유월절 어린양이 지닌 구원과 해방에 대비된 예수의 사역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양과 같이 죄와 허물이 없으신 유일한 분으로서 그의 구속은 보다 완전하고 귀한 것입니다(출12:46; 요19:36;고전 5:7).
(3)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된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20절).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본절은 전형적인 비교 구문인 '멘...데'('한편...또 다른 한편')로서 베드로는 이 구문을 통해 '창세 전'과 '말세'를 비교하여 네 가지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창세 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진실하게 진행되었습니다(Michaels).
② 동사 시제에 있어서 '미리 알리신 바'는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에 대해 '미리 알리신' 내용이 완전했음을 시사하며, '나타내신 바'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이 일회적으로 완전했음을 시사합니다(Lenski).
③ 내용상 '창세 전'은 메시야의 신성과 사역을 나타내며,
'말세'는 구속과 부활의 증거를 보여줍니다(Stibbs).
④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인간의 타락이나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파기시킬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Michaels).
(4)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21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요 1:18),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켰기 때문입니다(고후 5:19, Blum, Kelly).
베드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를 이룬 하나님에 대해 두가지로 진술합니다.
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분이십니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거가 됨을 시사합니다.
②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에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증해 줍니다(롬8:17-30; 히2:10).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로 그리스도인들을 안위하기 위함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기 때문에(Michaels) '결과문'으로 봅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은 병렬적으로 이해됩니다(Bigg).
왜냐하면 베드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실의 두 가지 의미를 반복적으로 기술하여 강조 적 효과를 나타내며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서 배경적 설명을(3-9절) 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시고 영광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22~25절)
1) 뜨겁게 사랑합시다(22절).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본절을 보면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는가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형제 사랑의 근거로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깨끗하게 하여'는 완료 시상으로 회개로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이러한 정결(淨潔)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진리'는 두가지를 의미합니다(Selwyn).
➀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합니다.
②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합니다.
본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집니다.
이렇게 진리를 통해 죄로부터 온전히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형제애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한편 '깨끗하게 하여' 세례를 암시합니다(Blum).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反目)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임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합니다(요일 3:14-18).
*요일3:14~18 “[14]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7]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 우리가 무엇으로 거듭났는지를 알려 줍니다(23절)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난'는 완료 분사로 앞절의 '깨끗하게 하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회심된 상태를 시사합니다.
한편 '씨'는 '말씀'을 가리킵니다(Blum, Cranfield, stibbs).
왜냐하면 신약성경 중 다른 곳에서도 '씨'는 '말씀'에 비유되고 있으며(막 4: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눅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문맥상 이어지는 설명에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진술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시33:9; 사55:10,11; 히 4:12).
*시33: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사55:10,11 “[10]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3) 육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24절).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본절은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인 사 40: 6-8의 인용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 본문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에게(1절) 위로될 뿐만 아니라(Blum) 모든 육체의 영광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하며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Selwyn, Stibbs, Blum).
4) 주의 말씀은 영원하여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25절)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본절은 사40:8(LXX)의 인용입니다.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께서 전한 말씀인 복음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됨을 진술하고 있습니다(Selwyn).
말씀을 맺겠습니다.
베드로는 선택 받은 자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자들, 피뿌림을 위해 택함 받은 자들에게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
성결한 신앙생활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합니다.
근신하는 삶, 거룩한 삶, 깨끗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또한 형제를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성결한 신앙생활과 형제를 뜨겁게 피차 사랑하므로 성도의 도리를 다하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산 소망에 합당하게]
본문의 중심내용 : 사도는 ‘산 소망’(3절)에 어울리는 ‘거룩한 삶’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의 삶은 거듭나기 전과 달라야 하고, 이 땅이 전부인 줄 아는 세상과도 달라야 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장차 임할 구원의 은혜(10절)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요한 태도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 주님을 맞이할 심령의 채비를 하되, 아직 멀었다 할 만큼 긴장을 늦추거나, 이젠 됐다 할 만큼 조급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 오시든 놀라지 않을 만큼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삽시다.
14-16절 거듭나게 하신(3절) 목적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불순종과 사욕에 경도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허리를 동여(13절)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단호히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름에 부응하는 삶입니다. 자기 과시와 과욕의 신앙은 거북하여 혐오만 가져올 뿐, 자기 부인의 삶만이 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17-21절 고난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대상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박해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믿어야 할 것도 아들의 피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붙잡아야 할 것도 아들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만이 세상의 헛된 위세, 헛된 희망,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건져줄 것입니다.
22,23절 거듭남의 증거는 ‘순종’이고, 그 순종의 핵심은 ‘거짓 없는 사랑’입니다. 가식적인 사랑이 아닌, 가시적인 사랑입니다. 자신을 버려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18,19절)처럼, 우리도 자격 없는 자로서 받은 과분한 사랑을 기억하며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22-25절 거듭남과 거룩함, 거짓 없는 사랑은 모두 진리에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영원한 말씀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세상의 헛됨(18절)과 인생의 덧없음(24절)에서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말씀만이 어떤 환난 속에서도 공동체 안에 생명과 사랑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떠나서는 거듭날 수도, 거룩할 수도, 영원한 본향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기도]
공동체-산 소망에 어울리게,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거룩한 삶, 거짓 없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열방-최근 말라위 헌법재판소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선거 부정 행위를 인정하여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말라위에 국민을 위하는 정권이 세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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