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2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시 139:1-6, 13-18; 삼상 3:1-10 고후 4:5-12; 막 2:23-3:6
왕눈이 라고 할만큼 큰 눈망울을 가진 죽음 직전의 송아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속눈썹은 또 얼마나 긴지, 정말 아름다운 눈을 가진 송아지입니다. 언젠가 누나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가 자기를 야단친다며 도망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기르던 고양이마저 매섭게 쏘아붙여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심리적 압박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심리적 압박이 심한지 주변인까지 예민해 져가는 상황입니다. 혹시나 도움을 청해볼까 하고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이런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회고합니다.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살 때 새아버지 눈치에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갓 난 동생으로 인해 콩쥐·팥쥐의 주인공처럼 죽어라 일만 하면서도 구박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전교 1등 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리라 생각했는데, 단숨에 아궁이에 던져버리는 아버지를 봅니다. 2살 언니마저 위로는커녕 구박을 일삼습니다. 평생을 우울증과 시름 하면서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린 시절 자신과 유사한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근처 새로운 커피숍을 찾았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환경을 익히며 창밖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 희미하게 조그만 배가 보이듯, 너른 성주의 들녘은 온통 하얀 비닐이 마치 바다를 보는 듯합니다. 그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나뭇가지가 춤을 춥니다. 저 나뭇가지는 쉼 없이 바람을 타며 손짓합니다. 드디어 눈에 들어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스쳐 지나간 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 거야”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왜 그의 향을 느낀 것일까요? 보이는 것은 그냥 사람들뿐인데, 그것은 그만큼 그의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이 묘사되어있습니다. 사무엘이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그의 스승이 부르는 줄 알고 선생님을 찾지만,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된 후에 스승은 하나님의 부름인 줄 알고,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무언가 느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쉼 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그런 느낌, 들림이 있다면, 대답해 보십시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왜 부르셨을까요? 부름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어제도 쉼 없는 주님의 부름이 우리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흔들리는 꽃들처럼 온통 우리의 생각으로 가득 찬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말씀해보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더이상 우리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일상입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고귀하고 존엄합니다. 존귀한 저와 여러분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음서 본문은 안식일 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열거되어있습니다. 첫 이야기는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의 손을 치료한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안식일 법에 어긋나다는 지적입니다. 법과 유전, 장로들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법을 어기면 죄인입니다.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수괴인 예수를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 예수는 즉시 잡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파급력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망설임 없이 처단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예수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밥이 중요할까 법이 중요할까? 안식일의 주인이 사람일까, 법일까? 안식일에 선 한 일을 하는 것이 옳을까,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을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을까? 죽이는 것이 옳을까?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없다면 법이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위해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사람 위에 존재합니다. 사람을 위해 돈을 만들었는데, 어느덧 돈이 우선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 주님의 향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의 부름, 그 이유를 묵상합시다.
240602 시 139:1-6, 13-18; 삼상 3:1-10 고후 4:5-12; 막 2:23-3:6
시 139:1-6, 13-18
1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2)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삼상 3:1-10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를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 때에는 주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이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4 주께서 1)"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서,
5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6 주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7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를 알지 못하였고, 주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8 주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 그런 뒤에 주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고후 4:5-12
5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므로, 우리를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1)"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여러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9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를 위하여 늘 몸을 죽음에 내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2 그래서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힘을 떨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힘을 떨칩니다.
막 2:23-3:6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지 못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조차도 주인이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