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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다헌(송은애)
윤동주 시 함께 읽기―《자화상》, 《간》, 《눈 오는 지도》
석화 (시인,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1. 《자화상》 ― 가을이 비낀 우물속의 추억 같은 사나이
용정에서 륙도하를 따라 동쪽으로 한 20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추켜든 억센 주먹 같이 하늘가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과 만나게 된다. 항일전적지로 유서 깊은 이 선바위라는 이름의 바위산을 끼고 《산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올라가면 길 아래편에 명동촌이라는 조선족마을이 하나 있다. 이 마을 한편에는 《외딴 우물》이 있고 그 옆에 아담한 농가 한 채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집이 바로 시인의 생가이다.
1917년 12월 30일, 시인은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외딴 우물》의 맑은 물을 마시며 자랐다. 시인은 소학교를 마을 근처에서 다니고 중학교는 용정에서 다녔으며 그 후부터는 조선의 평양과 서울 그리고 일본에 까지 건너가 학업의 길을 걸었고 최후에는 끝내 적지 일본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다시 나서 자란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시인이 나서 자란 명동촌과 용정은 시인의 시적 령감이 샘솟는 무궁한 원천이었으며 고향의 마을과 논벌과 강과 산 그리고 하늘은 시인의 영원한 시적 모티브로서 그가 남겨놓은 시작품의 행과 연속에서 그대로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시인은 1938년 2월, 용정의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고종 사촌 송몽규와 같이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 시가 씌어진 1939년 9월은 연전을 다니던 시인이 여름방학으로 고향에 다녀온 시기로서 작품에는 고향과 고국을 넘나들며 받아 안은 나젊은 식민지지식인의 아픈 고뇌와 깊은 갈등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시행으로 쓰인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가을의 달밤이고 시적 장소는 외딴 우물과 그 주변이다. 시는 우물 밖의 캄캄한 어둠의 세계와 우물속의 달빛이 환히 비친 밝은 세계와의 대비를 통하여 내면의식의 갈등을 암시하고 있다. 시적화자는 캄캄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달빛이 비낀 우물속이라는 빛의 공간에서 다시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어둠에 휩싸인 우물 밖의 캄캄한 세계와는 정반대로 우물속의 세계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밝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색채어의 시각적 심상이 돋보이는 《파아란 바람》이 부는 우물 속에 투영된 것은 순수하고 맑고 밝고 아름다운 세계이다.
시에서 《우물》은 거울모티브에 속하며 이 거울모티브는 대체로 자아성찰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우물에 비껴 《추억처럼 서있는 사나이》는 이상적인 자아, 본래적인 자아를 표현하며 그 대립 면에 서있는 우물밖에 찾아와서 《가만히 들여다 보》는 자아는 부정적인 자아, 현재적인 자아를 표현한다. 이와 같은 우물 속과 우물 밖의 대립은 우물 속에 비치는 이상적인 자아와 우물 밖에서 들여다보는 현실적인 자아와의 첨예한 대립을 형성하면서 긍정과 부정의 심각한 갈등을 제시한다.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보다- 미워져 돌아가다- 가엾어져서 도로 가 들여다 보다- 다시 미워져 돌아가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리워지다》라는 끊임없는 갈등과 방황의 상태는 결국 시적 화자라는 우물 밖의 현실적 자아가 《우물속의 사나이》 즉 《추억처럼》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자아,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이상적인 자아에 대한 갈망과 그것의 복구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그리고 시적화자의 이와 같은 미움과 가여움, 증오와 연민이 엇갈리는 심정적 대립을 통하여 우물 밖의 자아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밤 즉 밝은 이상의 대립 면에 펼쳐져 있는 암흑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강렬한 부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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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단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2. 《간》 ―불타오르는 지성과 침전하는 맷돌
시인은 아홉 살 때인 1925년 4월 4일,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2~14살이 되는 4학년 무렵부터 서울에서 간행되는 간행물인 《어린이》, 《아이생활》등 잡지를 구독하였고 5학년 때는 급우들과 함께 《새 명동》이란 잡지를 만들었다. 1931년 3월 25일, 이 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선물로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을 받았다. 이어 명동에서 동남쪽으로 약 10여리 상거한 달라재(大拉子 ― 현재의 용정시 지신향)의 중국인 관립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공부하였다.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패(佩), 경(鏡), 옥(玉) 등 이름의 《이국소녀》들과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이는 그의 중국어(漢語)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으로 여기에는 북경유학까지 하고 온 아버지의 영향과 함께 한학자집안인 외가의 영향이 컸다. 특히 외삼촌인 규암 김약연선생의 가르침이 많았던 것으로 그분은 1900년대 초에 손수 명동학교의 전신인 규암서숙(圭巖書塾)을 일떠세우고 수많은 애국지사를 길러내어 《간도의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던 분이다.
1932년 4월, 용정의 기독교계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1935년 9월 1일 이 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편입하였다. 1936년 말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거부로 폐교되자 다시 용정에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였다. 이때 연길에서 간행하던 《카톨릭소년》지 1935년 11월호, 12월호에 연속 《병아리》《빗자루》등 동시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1936년 1월호, 3월호, 10월호에 또 《오줌싸개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등 동시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 그는 외가에 와있던 동요시인 강소천선생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신문과 잡지들에서 이상 등 문인들의 작품을 스크랩하였고 《정지용 시집》을 정독하였다. 또한 1937년 8월에는 당시 1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된 백석의 시집 《사슴》 한 책을 완전히 필사하였다. 1938년 2월 17일, 룡정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그는 최현배선생에게서 조선어를 배우고 리양하교수에게서 영시(英詩)를 배웠으며 당시 문단의 대시인 정지용 시인과 동요시인 윤석중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방학기간 용정에 돌아와서는 또 외삼촌 김약연선생에게서 《시전(詩傳)》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시기 《문장(文章)》, 《인문평론(人文評論)》등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구독하였고 교내잡지인《문우(文友)》에 《자화상》, 《새로운 길》등 시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키에르케고르, 도스토예프스키, 발레리, 지드, 장 콕토 등의 외국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연전졸업기념 자선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준비를 하며 1941년 11월 5일에 쓴 시 《별 헤는 밤》의 《프랜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여기서 온 것이다.
시인의 아우 윤일주씨가 보존한 시인의 유품 중에 42권의 도서가 있다. 우리는 그 도서목록에서 시인의 문학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정지용, 서정주, 김영랑 등 조선시인과 다찌하라(立原)등 일본시인의 시집 그리고 잠의 시집 《밤의 노래》와 《릴케시집》, 《말테의 수기》를 비롯한 여러 나라 시인, 작가의 작품집과 서구문학이론서들인《문학론》, 《시론서설》, 《소설의 미학》, 《근세미학사》, 《전조와 우화》, 《체험과 문학》 및 《고호서간집》과 같은 다양한 내용의 도서들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 조선어, 중국어(漢語), 일본어 등 3 개 국어는 기본이었고 영어는 전공과목이었던 그가 문학원서를 읽기 위해 또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였는데 이는 시인의 독서범위와 독서량을 짐작하고도 남는 부분이다.
시 《간》은 시인의 이런 문학적 깊이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서 서구적 독서체험과 한국적설화의 접점을 보인 작품이다.
시는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 즉 우리민담의《토끼전》과 그리스로마신화의 《프로메테우스》란 동서양의 두 고전을 혼합하여 시적 변용을 이루어 내었다. 이 둘은 《간》이라는 공통요소를 중심으로 결합되었다. 토끼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환상에 잠기는 인간성의 전형》이다.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억압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용궁으로 찾아갔으나 오히려 삶의 포기를 요구 받고 그 꿈은 한낱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2연에서 《토끼전》의 귀토설화맥락에 프로메테우스이야기가 접속되며 간은 의미심장한 상징이 된다. 간은 뇌나 심장과 더불어 인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그것은 영혼과 깊게 관련지어지며 힘과 용기의 수용체이기도 하다. 《간도 쓸개도 없다》는 말,《간이 부었다》, 《간도 크다》는 말은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다. 코카서스의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는 힘과 권력의 속박을 벗어난 토끼라는 점에서 용궁에서 도망한 것과 다름없다. 힘과 권력에 의한 속박의 세계라는 점에서 코카서스산은 용궁과 동일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질적인 두 고전의 접합이 이루어지며 3연으로의 무리 없는 연결을 가져온다. 토끼전에는 독수리가 출현하지 않기 때문에 3연의 독수리의 등장은 2연의 코카서스 산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는 힘의 상징으로 오래 기르던 독수리를 살찌우고 나는 여위겠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은 예리하게 지니겠다는 뜻이다. 《너》는 정신적 자아요, 《나》는 육체적 자아이다. 육체적 자아의 희생은 감수하려하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아니다. 4연의 《그러나》는 여위어 힘은 없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 뜯어 먹히더라도 간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이어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한다. 천상의 불을 훔쳐와 인간들에게 나눠 주고 집 짓는 법, 글 쓰는 법을 배워준 그는 《인류문화의 정신, 지성의 상징》이다. 인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죄로 바위에 묶어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는 밤마다 새로 간이 돋아나기에 그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이것은 《인간적 고통의 핵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맷돌은 이 고통에 상응 하는 것이며 우리 조선민속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목에 맷돌을 단 프로메테우스, 그는 시인 자신이고 시인은 자기 동일성으로 이 프로메테우스를 택하였다. 자기희생적 인간, 고통을 감내하며 제우스에 대항하는 저항적 인간으로 시인은 이 프로메테우스를 본받자고 한 것이다.
이 시는 간을 말리고 그 간을 지켜 지배층 세계와 대응하는 자세를 취하려는 토끼의 저항정신과 고통을 당하며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정신을 나타내었다. 또한 우리민담의《토끼전》과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란 두 고전을 차용하여 저항과 희생이라는 이질적인 정신적 지향을 무리 없이 담아냈다. 특히 《코카서의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란 표현을 써서 두 고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해나간 수법은 놀랄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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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1941년 11월 29일
3. 《눈 오는 지도》 ―― 아픈 이별은 기약 없고 슬픈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시인이 태어나고 자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용정의 명동촌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북국의 시골마을이다. 시월 하순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눈은 한겨울 내내 펑펑 쏟아져 온 누리를 하얗게 뒤덮고 이 눈은 이듬해 삼, 사월까지 마저 녹지 않고 산기슭의 밭과 논에 그대로 쌓여 있다. 이렇게 시인은 고향에서 일 년 중의 거의 삼분의 일의 시간을 눈을 보며 눈과 함께 눈 속에서 성장하였다.
하얀 눈 즉 백설의 보편적 상징은 순결이며 한 겨울, 하늘 한 자락이 무너져 내리듯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은 풍요로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또 기쁨과 환희의 분위기에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눈은 이와 같은 보편적 상징이나 보편적인 이미지가 아닌 시인의 개인적 상징성과 이미저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바로 눈이 가지고 있는 흰색의 상징과 이미지이다. 여기서 흰색은 막연하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상징과 텅 빈 공간의 공백이미지로 나타나 《방안에까지 내리》어 《벽과 천정이 하얗》게 쌓인다. 그리고 한 가슴 무너지게 내리는 이 눈은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버려 리별의 아쉬움만 가득 안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등장하는 《순이》는 시인의 다른 시 《소년》과 《사랑의 전당》 등에 나오는 《순이》, 《순》과 같은 이름이며 이는 한룡운의 시에서의 《님》이나 이상화의 시에서의 《마돈나》가 그렇듯이 시인이 동경하는 보편적인 녀성이미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순이》가 함박눈이 내리는 아침에 떠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가는 곳이 어딘지 시적 화자는 전혀 몰라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조차 편지로 써서 보낼 수 없다.
따라서 이 리별의 순간은 시인이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운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며 시인의 모든 희망이 한꺼번에 사라져가는 순간이다. 함박눈이 내리듯이 그의 가슴에 쌓이는 슬픔은 두께를 더해가고 또한 떠나가 버린 《순이》와 함께 그의 가슴은 허무하게 텅 비어 버린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아침의 이 모든 것들이 한 장의 《지도》에 담겨있다. 지도는 기호나 선으로 지형지물을 표시하고 강이거나 길의 갈래를 그려놓아 그 위치와 방향을 찾아가게 하는 추상적인 도형이다. 그런데 시인의 눈앞에 펼쳐진 이 지도는 수시로 변하는 현재형의 《눈 오는 지도》이며 함박눈은 지도 우에 《자꾸 내려 덮어》 모든 것을 새하얗게 지워버린다. 이와 같은 막연하고 처절한 리별의 순간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백지 한 장처럼 모든 것이 지워져 버린 《눈 오는 지도》를 마주하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의 염원을 빌고 또 비는 것뿐일 것이다. 그것은 함박눈이 내려 지도를 덮어버려도 또 그 내린 눈이 모두 녹아버린다 하여도(아픈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도) 순이의 발자국은 남을 것이고(사랑의 흔적은 내 가슴에 남을 것이고) 그 발자국마다에(그 흔적 우에) 꽃이 피어나리라(기억은 새겨지리라)는 최후의 한 갈래 희망사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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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들여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것이냐. 네가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꼬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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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중국 용정 출생.
중국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부, 한국 배재대학교 인문대학원 졸업.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 주임, 월간《연변문학》 한국서울지사장 역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대학 조문학부 겸임교수.
시집: 《나의 고백》, 《꽃의 의미》, 《세월의 귀》, 《연변》 외.
문학평론집 : 《시와 삶의 대화》, 《윤동주대표시 해설과 감상》 외.
수상: 《천지문학상》, 《지용시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외.
E-mail: shih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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