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에 시내 5일장을 다녀오려고 차비를 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뭐하느냐고? 참 묻기는 뭐하려 묻나? 생활의 우선순위를 항상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처지에 있는 나에게는 새삼스런 애기다.
사연인즉은 산을 가자는 것이었다. 아니 어제도 같이 다녀왔는데 오늘 또? 그렇지만 산을 가자는데 마다할 내가 아니다. 자다가도 가야 직성이 풀리지...
그렇지만 갑작스레 가는 경우엔 높은 산을 오르지 않는다. 높은 산을 가려면 먹을 것도 준비해야하고 코스도 점검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친구와 산을 오르면서도 5일장에 대한 미련은 있었다. 어떻게 한다? 산을 다녀와서 가볼까? 특별히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휴일이면 시골 5일장을 다니기를 즐겼다. 그런데 요즘 시골장은 별로 재미가 없다. 예전처럼 지역별로 특별한 여러가지 풍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재래시장이나 시골 5일장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요즘은 해외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에 가면 우리상품이 있고, 시골행사장에서도 새까맣고 옷 걸치다만 것 같은 차림의 아프리카나 체구작은 동남아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 나라 상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나는 시골장은 가면 어릴적 친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는 학교를 파하면 거쳐오는 시장통에서 항상 걸음을 멈추곤 하였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오는 길이라 그가 멈추어선 가계앞에서 우리도 함께 발걸음을 멈추었었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양철동이를 땜질하는 아저씨의 가계였다.
처음 한두번 같이 구경을 하다 다음부턴 그가 발걸음을 멈추면 우린 뭐 볼게 있느냐?고 그의 팔을 잡아 당기다 그를 두고 와버렸는데 그래도 그 친구는 얼이 빠진 것처럼 물끄러미 아저씨의 땜질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었다.
화로에 달군 인두로 철사같이 생긴 납을 녹여 양동이 테두리를 땜질하는...그 친구는 그게 그렇게도 신기했을까? 우리는 그러한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름산은 높지 않아도 상당히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더위가 사람들의 갈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비온 뒤라 그런지 습도는 높고 바람 한점 없는 날씨다. 시간이라면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들이기에 가급적 적당히 쉬어감을 자주 하기로 하였다.
발아래 강물을 내랴다 보기도 하고, 길목의 사찰에도 들려 잠자는 개를 깨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스님은 새벽예불에 고단한지 기척이 었었다. 하긴 깨어있어도 시주준비를 하지못한 우리들이었으니 어차피 서로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는...
시장을 가면 내가 들러는 곳이 있다. 이곳 저곳의 시장 동향을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강냉이 틔운 것을 파는 할아버지의 가계를 들런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얼굴을 아는 듯 가격조정을 하셔서 물건 값을 받으신다.
그게 주간행사가 되지 않으려고 생각해보지만 그까짓 것에 목숨을 거는 것도 한편으론 한심스러운 일이다.
산을 오르며 뒤따라 오는 친구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이 있을까?'하고 나에게 말머리를 던졌다. 더운데 웬 쌩뚱맞은 소리를...
그러나나는 기다렷다는 듯 잽싸게 '그거 싶지. 우리가 내일 당장 죽을 병이 걸려 병원에 가야한다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겠니? 그냥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거야.' 명답일까? 사실 나도 궁금하다.
12시가 넘어 점심먹을 장소를 찾는데 앞의 쉼터에 두 남여가 있었다. 높은 산이라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한다. 우리가 다가가도 여자는 의자에 반듯하게 누워있고, 남자는 다른 의자에 앉아 있다. 우리는 구석진 의자에 자리를 잡고 가져간 김밥을 먹으며 내가 속삭였다.
"부부가 아닌가 보다. 여자가 나이 많아 보이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누가 그러는데 배낭을 각자 메고오면 부부가 아니라데."
"그럼 부부 아니네. 이런 곳에 오면서 배낭을 따로 메고 온것 보니. 차타고 좀 먼데로 가지 이런델 뭐하려 왔을까?"
"여기가 어때서?"
"좀 그렇잖아. 가까운 곳이고..."
"별 걱정 다해준다. 지들 알아서 행세하겠지."
하긴 그렇다. 부부건 아니건 지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배낭을 메고 떠나더니 우리가 점심을 먹고 조금 쉬려고 땀에 젖은 상의를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있는데 다시 나타났다.
친구 왈 "좀 쉬어 갈려고 했더니 또 온다. 가자."
우린 그들의 아름다운 하루를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 왔었는데, 그들을 뒤에 종점에서 다시 만났는데 같은 차를 타고 떠났었다. ㅎㅎㅎ
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푸르름, 맑은 공기, 바람소리 새소리, 용기와 인내, 기다림, 그리움, 고마움, 건강,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는 법...
우리는 느린 거북이처럼 느긋하게 산을 오르고 내렸다.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마누라들에게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남들에게는 소중한 촌음의 시간이 우리를 비켜감을 즐거워했다.
산을 오르는 기쁨도 이것이고, 인생을 어떻게 즐겁게 사느냐?에 대한 대답도 지금의 이 순간이란 답변을 서슴치 않고 할 우리들이다.
당장은 시장에 대한 생각도 잊어버렸다. 참! 그 대장장이를 존경하던 친구는 서울로 가서 우체국엔가 근무를 하였는데 바쁜 세월에 서로를 잊고산지 오래다. 전화번호라도 알면 좋으련만,.. 그건 그렇고, 그 친군 서울에서도 대장장이를 가끔은 보며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