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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산행기
지난 1월 2일 새해 첫 올라온 가리왕산 산행공지를 보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바로 신청을 했다. 작년 말에 인준된 박사학위 논문 마무리로 긴박한 기간이었지만 산행일이 제출 기한인 12일 이후라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두어 달가량 오르지 못해서 산이 그리웠다. 가리왕산은 초행이지만 깊고 큰 산으로 인식되어 있다. 홀가분하게 태초 같은 자연의 심원한 품에 빠져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산행일이 다가오며 일기예보를 주시하게 되었다. 폭설이 예상된다는 기상 예보가 있었다. 긴장이 되었다. 단톡방에도 몇몇 회원이 걱정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전날 가리왕산휴양림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직원이 통재는 하지 많지만 가급적 자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6시 25분 출발장소인 교대역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아무도 와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차가 도착해 올라탔다. 자리가 아주 넓었다. 28인승인데 2자리가 비었다. 아침에 두 분이 불참 연락을 해 왔다고 했다.
예정된 7시에 출발했다. 가면서 안회장이 새해 첫 산행의 감회를 이야기했다. 무탈하고 더 발전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사무총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 박사논문이 인준되어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했다. 이득우 건축사도 이번에 박사 인준이 되어 먼저 하라고 하니 나가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서 황대장이 오늘 산행에 대해 안내를 했다.
9시 25분 횡성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이중섭화가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의 대표작 황소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시 36분 들머리인 장구목이에 도착했다. 둘러 보이는 산에 안개가 가리어서 산수화 같은 풍경이 되었다.
등산로 입구 가리왕산 표지판에 산행지도는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위쪽으로 “산불에 설마 없고 처벌에 예외없다.” 는 현수막이 보였다. 실수도 봐주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봄철에 간혹 산불이 발생되어 엄청난 피해가 생길 때가 있다. 하루아침에 너른 산지가 황폐화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고, 정말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입구로 들어서 산행을 시작했다. 낙엽이 덮인 길은 눈이 녹고 없었다. 개울에는 눈이 쌓여 얼어붙은 곳이 보였다. 어제 가리왕산휴양림 사무소 직원 말을 듣고 긴장을 했었는데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이끼가 보였다. 가리왕산은 이끼산이라고 불릴 만큼 이끼가 많다고 했다. 습한 지대인 것 같았다.
10시 6분 3.2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계곡물이 많았다. 2분후 나타난 이정표에는 어찌된 일인지 남은 거리가 조금 더 길게 나타나 있었다. 10시 54분 임도에 도착했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정상까지 1.6 km가 남아 있었다. 조금 오르다 보니 바위틈 위에 고드름이 열주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드름이 서릿발처럼 보였다.
들머리부터 계속해서 오름길이었다. 11시 11분 나무에 걸린 통화가능장소 표지판이 눈에 띠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곳은 통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오르다 11시 17분 좌측에 1.2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끝까지 오름길이라고 했다. 해발 고도가 1500m가 넘는 산이 정상까지 오름길로 이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산은 처음이었다.
가리왕산은 백두대간으로부터 독립된 위치에 있는 높은 산이다. 여기서 동측에 놓인 백두대간이 백복령 – 석병산(1055.3)- 삽당령 –석두봉(995) – 고루포기산(1238.3)- 능경봉(1121.9) – 대관령 옛길 휴게소 – 선자령(1157)- 황병산(1408.1) 오대산(1563)으로 이어지고 그와 직각방향 서쪽으로 고루포기산(1238.3)- 노추산(1322)- 가리왕산(1561.85) - 백덕산(1350.1)- 치악산(1282)으로 이어지며 큰 산줄기를 이룬다. 그런데 그 큰 기세다운 산맥 이름은 얻지 못했다.
11시 22분 정상이 1.1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100m 진행하는데 5분이 걸렸다. 백두다간 종주때 높낮이가 없는 구간에서는 1km를 6분 안에 지날 때도 있었다. 오늘은 눈길이라 진행이 더디었다. 수북이 쌓인 눈이 비에 녹아 다져져 있었다. 아이젠은 차지 않았다. 시골에서 겨울을 맞을 때는 그런 등산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나는 산행에서 가급적 도구를 쓰지 않으려 한다. 자연 환경에 적응해 몸의 균형감각을 갖춰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산이 패여 나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스틱도 사용하지 않는다.
앞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길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런 때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소리였다. 녹음을 하며 갔다. 11시 35분 정상까지 0.7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서걱서걱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계속 눈 밟는 소리가 났다. 11시 39분 조형미가 느껴지는 주목을 보고 사진을 찍고 지났다. 고목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묵묵히 오르다 보니 산마루가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정상 200m 전 삼거리에 도착해 우측으로 올라갔다. 눈보라가 쳤다.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다져지지 않은 길옆을 밟아보니 신발이 푹 빠졌다.
11시 58분 정상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 몇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 한 분에게 나도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이 산은 100대 명산으로 꼽힌다. 그동안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의식하지 않은 가운데 100대 명산을 꽤 많이 오른 것 같았다.
가리왕산(1561.85m)은 평창 정선에 걸쳐 있다. 강원도 특유의 깊고 너른 산지가 넓게 펼쳐지는 지역이다. 그런 큰 풍광에서는 국토를 장엄하게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동해바다도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안개가 짙게 끼어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싸락눈이 바람을 타고 세차게 휘날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추위를 느끼며 옷을 더 껴입고 일행을 기다리며 식사를 했다. 보온병을 꺼내 차를 마셨다. 차가 따뜻했다. 호호 불며 마시는 맛을 맛보려고 보온병을 몇 겹 칭칭 감아 왔다. 나름 정성을 들이니 생각대로 되었다.
잠시 후 키가 큰 젊은 두 분이 올라왔다. 한분씩 번갈아 사진을 찍고 있어서 함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사양했다.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았다. 정상 1.1km 전이라고 했다. 아까 지나온 위치가 가늠되었다. 다시 그리 내려가겠다고 하고 하산을 했다.
뒤돌아보면 박사과정 수료 후 논문을 쓸 시기에 산을 가장 많이 다녔다. 우선 학업에 억눌린 기분을 대자연의 품에서 맑게 회복하고 싶었다. 그 때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단독 종주를 했다. 백두대간은 강남건축사회 회원들과 함께 했다. 그 때 함께 걸었던 회원들 몇 분이 오늘 산행에 참가했다.
산을 여럿이 함께 가다 보면 인솔자가 가는데로 따라가게 되어 각자 스스로 국토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혼자 걸을 때 지도와 산세를 견주어 가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 길을 찾아가게 되고 그만큼 국토 지리를 많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백두대간 종주 때도 혼자 걸을 때가 있었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매요리 구간에 이어 땜빵 구간인 덕산재 부근 일부를 지방 출장을 갔다가 업무 복장으로 걸은 때도 있었다. 그 때 날머리에서 나오며 나제통문을 처음 지났다.
나는 가꿈 산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고립무원 상태로 문명을 벗어나 태초에 생성된 자연의 시원의 체취를 대하면서 원초적 감각이 다시 내 안에 차오르기를 바랄 때가 있다.
나는 여기서 동쪽 방향 부근의 백복령- 삽당령- 대관령 옛 휴게소까지 하루에 50km 넘게 걷던 때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백두대간 종주 때 연휴를 맞아 일행이 1박 무박 3일 일정으로 대간 길에 나섰다. 이틀에 걸쳐 백복령-삽당령, 삽당령-대관령 두 구간을 걷기로 했었다. 그런데 백복령에서부터 올라가야 하지만 구간별 길이를 감안해 걷겠다고 했다. 삽당령을 경계로 구간 거리가 긴 삽당령에서 대관령 구간(27.1km)을 먼저 걷고, 거리가 짧은 백복령에서 삽당령까지(18.6km)는 서울로 올라올 시간을 감안해 다음날 걷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체거리가 45.6km나 되는 긴 여정이었다. 나는 한 방향에서 연속적으로 국토를 온전히 걷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에 두 구간을 혼자 걸어보갰다고 했다. 그러자 내려가던 도중 나를 백복령에 먼저 내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 날 두 구간을 하루에 혼자 걷게 되었다. 백복령에서 시작할 때는 석병산에서 예기치 않게 되돌이를 당했다. 하필 긴장감속에 먼거리를 나선 그날이었다. 백병산에서 이정표를 보고 앞으로 간다는 것이 원점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 줄 모르고 중간에 어정표가 거꾸로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백복령에서 출발할 때 만났던 사람들이 오다가 마주치며 왜 되돌아오느내고 해서 알았다.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을 내가 갈 길이 멀고 걸음이 빠르니 혼자 가겠다고 했었다. 낭패다 싶어 다시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백병산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그들을 만났다. 그런 중에 날이 서서히 밝았다. 원래 그렇게 되돌아오기 쉽게 되어 있다고 했다. 도상거리는 45.6km지만 되돌아 구간을 더하면 50km가 훨씬 넘었다.
예상치 않은 되돌이를 경험하면서 마음이 매우 급해졌다. 오늘 두 구간을 다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결심을 했다. 그리고 1차 구간인 삽당령을 목표로 전력으로 나아갔다.
삽당령 가는 길
김석환
마타리 꽃도 지고
가을이 대신 향내를 피워내는
백두대간 길
첩첩한 산중을
바듯이 걷다보면
살아온 도시가 아득해지고
내 숨결로
걷는 길만이
맥박처럼 박동한다.
햇살 느릿하게 번져가는
정선 아라리처럼
에두른 산천
삽당령 가는 길은
아직 멀다.
(2008. 8. 20)
1차 목적지로 정한 삽당령을 지나고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해가 저물고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2시경 시작했을 때는 얼마후 동이 틀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런대 낮에서 밤으로 바뀔 때에는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없다. 거기서 다시 산길을 15km 정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소낙비가 세차게 내려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깜깜한 밤 빗속에 2-3m 앞도 잘 분간 할 수 없었다.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밥도 제대로 먹을수가 없었다. 허기를 느끼고 먹다 남은 밥을 먹으려고 하니 밥통으로 빗물이 들어가서 차가운 물발은 밥이 되었다. 제대로 길을 찾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정말 위기에 처할수 있을 것 같았다. 결기로 신경이 곤두섰다. 땅을 더듬듯이 빗물에 씻겨나간 희미한 길을 이어갔다.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깊은 산지라 소통이 안될 것 같았다. 스스로 의지를 북돋우며 한참을 나아가다보니 능경봉 표지판이 나타났다. 종착지 2km 전방이었다.
능경봉 표지석이 보이니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온 방향에서 직진과 좌우 방향을 2km 씩 오가며 길을 찾는다 해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걸었다. 다시 길을 더듬거리며 나아갔다. 저만치 대관령옛길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그 곳을 향해 다가가 막바지 주차장으로 접어드는 길을 빠져 나왔다. 안도감이 들었다. 사전에 연락한 택시 기사가 왔다. 택시가 짙은 안개에 나갈길을 찾지 못하고 빙빙 돌다 겨우 빠져 나왔다.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빗속에 산에서 밤길을 헤쳐 나왔느냐고 했다. 온몸이 비에 젖어 오한이 느껴졌다. 강릉으로 가서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쪽 방향을 보며 다시 그 때 생각에 잠기다보니 눈가에 눈물이 핑 감돌았다.
가리왕산은 높이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높다. 우리나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2750m)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산을 10개 꼽자면 1.한라산(1915m) 2.지리산(1915m) 3.설악산(1708m) 4.덕유산(1614m) 5.계방산(1577m) 6.태백산(1567m) 7.오대산(1565m) 8.가리왕산(1561m) 9.화약산(1468m) 10.소백산(1439m)이다.
가리왕산은 이 일대 너른 산지를 이루는 토대가 되고 있다. 평창과 정선군은 깊은 산지 고을이다. 정선 아우라지, 영월로 이어지는 동강, 동강의 청령포 등이 다 깊은 곳이다. 가리왕산 북쪽은 더 깊어서 알펜시아 같은 특별히 건설된 곳들이 두엇 있을 뿐이다.
최총장에게 전화를 거니 올라오는 도중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나온 곳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곳으로 내려가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일행을 보았느냐고 하니 저 아래에서 보았다고 했다. 13시 일행이 식사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아까 오를 때 보았던 정상 1.1km 전 이정표가 옆에 있었다. 정상에서 추위에 떨며 마시고 싶었던 술한잔 남았는냐고 묻자 다 떨어졌다고 했다. 잠시 후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방풍 비닐막을 걷었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서다 2시 6분 주목 앞에 멈춰 앉아 그림을 그렸다. 얼어서 먹물이 제대로 묻혀지지 않았다. 잠시 후 화구를 챙기고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아까 오르면서 지났던 표지판이 다시 눈에 띠었다.
2시 26분 다시 정상에 도착했다. 찬바람이 더세차게 불고 있었다. 권 고문 사진을 찍어주고 바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평지길 주변에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고원의 설원 풍광이 펼쳐졌다. 말라버린 꽃 위에 결빙이 되어 꽃 형태 그대로 보이는 곳도 있었다.
겨울산
김석환
산새 지저귐 소리
눈밭에 묻혀
적막을 이루고
늦가을
누그러진 햇살에 피어나던
구절초 향기도
얼어붙은 산천
높게 솟은 나무들은
번성하던 세월을
잊은 듯
앙상한 몰골로
찬바람을 견디고
시린 개울에서
수런대던 열목어떼
꿈결 따라
가고 없네
(20230114)
2시 42분 정상에서 800m 내려온 지점의 삼거리에 도착했다. 휴양림 휴게소까지 5.9km 였다. 길을 내려서다 2시 54분 휴양림휴게소가 5.0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인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고 보니 임도까지 수직으로 낙하하는 듯한 급경사 구간이 이어졌다. 작은 편석이 깔려 있는 너널길이었다. 3시 16분 어은골 임도에 도착해 휴양림휴게소 4.3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임도에서 계곡까지도 마찬가지로 직하하듯 한 급경사 구간이었다. 아까 지나온 삼거리에서 연속적으로 900m 정도를 급경사 길로 내려서는 위험구간이었다.
잠시 후 계곡 옆으로 난 완만해진 길로 접어들었다. 겨울철인데도 계곡물이 많았다. 엊그제 많은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난 것 같았다. 요새 기온이 높아서 얼지 않고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3시 45분 휴양림휴게소 2.2 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그리고 다시 산을 오르내리다 4시 10분 개울 징검다리를 지났다. 가까이 지나던 몇몇 일행이 조심스레 건너기 수월한 곳을 찾고 있었다. 산이 큰 만큼 오가는 거리가 멀었다. 가리왕산에는 산삼을 비롯한 약초와 산나물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4시 11분 심마니교가 0.1 km 남은 이정표 앞을 지났다. 정상을 5.2 km 지나온 지점이었다. 주변에 휴양시설도 보였다. 포장도로를 내려와 4시 18분 휴양림휴게소 매표소에 도착했다. 깊은 산지라 그런지 주변이 매우 청정하게 느껴졌다. 직원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에게 얼굴에 피가 난다고 해서 의약품이 있느냐고 물으니 후시딘연고와 밴드를 주었다. 아까 정상에서 다시 일행을 만나러 내려갈 때 나뭇가지가 스쳤던 곳에서 피자국이 보였다.
주차장에 타고 온 차가 보이지 않아서 올라오는 사람에게 물으니 저 아래서 버스를 보았다고 했다. 계곡 너머로 야영지가 보였다. 한참 걸어내려가다 보니 길가에 버스가 서 있었다. 그림이 젖어 화판에 붙인채로 차에 올라 후미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차 안에서 쉬다보니 내가 보내드린 논문을 받고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던 원로 건축 교수님이다. 어떻게 보셨을까 머리가 쭈뼜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갖고 있던 논문을 다시 꺼내보았다. 막바지 시간에 쫓기며 촉박히 인쇄단계로 넘어가기 쉽다. 이번에 함께 박사 논문을 마친 옆자리 회원과 진행 과정에 관한 예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평소 손이 빨라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빨리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집중력이 평소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해 온 밑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설계하는 사람인줄만 알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 주말에 산에서 그림을 그리다 만나는 사람들은 직업이 화가인줄만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를 가까이서 보아온 사람들은 내가 순간 순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활용해서 여러가지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을 이해할것 같다. 글 쓰기도 그 중 한가지이다.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이기도 하다. 20세때 우연히 책을 접하며 건축가 도시계획가, 화가, 저술가, 시인으로 불렸던 그의 삶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건축이 그림이라는 운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림 그리기를 조형감각을 연마하는 일상적 수련으로 삼고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후미 일행이 오지 않았다. 차에 있던 일행이 걱정을 하며 점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백인철 부회장이 마중을 나갔다. 송재무가 식당에 연락을 하면서 늦게 온다고 궁시렁댄다고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니 6시 25분 후미 일행이 도착해 차에 올라왔다.
7시 뒤풀이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상차림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늦어져 시장했던지 일행이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소문난 맛집 같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주인들도 인상이 좋았다. 잠시 후 안회장이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며 건배제의를 했다.
7시 45분 식당을 출발해 10시 25분 서울 양재역에서 내려 귀가했다. 큰 산을 오르내린 기운이 몸 안에 감돌고 있는 듯 했다.
(20230114)
첫댓글 김석환 건축사님 산행후기 잘읽었습니다.
다시한번 리뷰할수 있었습니다.
날로 필력이 늘어가시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명산을 함께 오르면서 회원님들과 인사나누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새해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읍니다.
내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짜맀함을 느끼네요.
무사히 산행 마치심을 감사드립니다.
고생들 많이하셨읍니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