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
[이태형의 생활천문학] 이태형의 생활천문학 31
2015.12.16 17:54 이태형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장
얼마 전 생활천문학을 즐겨 읽는 후배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골프장의 마지막 예약 시간이 12월 초순에 12시 10분 정도로 가장 빠른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당연히 골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골프장 예약 시간은 일몰 시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후배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일반인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때가 12월 22일 경인 동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가 해가 가장 늦게 뜨고 일찍 지기 때문에 골프장 예약 시간도 가장 늦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는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큰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은 없다. 오늘은 우리가 동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알아보기로 하자.
골프장 마지막 티업 시간, 12월초에 가장 빨라
자, 다음은 우리가 동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기본적인 상식들이다. 다음 중 동지에 대한 잘못된 설명은 어느 것일까?
1) 동지는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2) 동지는 일 년 중 해가 가장 남쪽으로 치우쳐 뜨는 날이다.
3) 동지는 일 년 중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날이다.
4) 동지는 일 년 중 해가 가장 일찍 지는 날이다.
같은 시각, 같은 위치에서 일 년 동안 해를 촬영하면 8자 모양으로 해의 위치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이런 현상을 아날렘마(analemma)라고 한다. 아날렘마는 받침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당시 해시계의 그림자가 받침대에 만드는 모양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오전과 오후에 촬영한 아날렘마를 보면 해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곳은 동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출을 기준으로 하면 해가 가장 낮게 떠 있을 때는 동지가 아니라 1월 초순이다. 일몰을 기준으로 하면 해가 가장 낮게 떠 있을 때도 동지가 아니라 12월 초순이다.
물론 이 현상은 위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자,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아날렘마. 같은 시각, 같은 위치에서 일 년 동안 찍은 해의 위치 변화로 8자 모양을 그린다. ⓒ 위키백과
일출과 일몰 시간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축의 기울기로 인한 태양의 고도 변화이다. 두 번째는 지구가 타원인 공전 궤도를 돌면서 나타나는 공전 속도의 변화이다.
먼저 지축의 기울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 궤도면에 대해 약 23.4도 기울어져 있다. 이 기울기로 인해 여름에는 북반구가 태양 쪽으로 23.4도 기울고, 겨울에는 남반구가 태양 쪽으로 23.4도 기운다. 그 결과 태양은 춘분과 추분에는 정확히 동쪽에서 떠서 정확히 서쪽으로 지지만 하지에는 북쪽으로 치우쳐 뜨고, 동지에는 남쪽으로 치우쳐 뜨게 된다.
태양이 남쪽으로 치우쳐 뜨게 되면 뜨는 시간, 즉 일출 시간이 느려지고 반대로 지는 시간, 즉 일몰 시간은 빨라지게 된다. 즉, 태양의 고도 변화로 인한 효과는 일출을 느리게 하고, 일몰을 빠르게 한다. 다만 태양의 고도 변화에 따른 효과는 위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그 효과는 적도에 가까울수록 작고, 고위도로 갈수록 늘어난다.
자, 이제 두 번째 요소인 지구의 공전 속도 변화를 생각해보자. 지구는 태양 둘레를 타원 궤도로 돌고 있다.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1월 3일 경이고, 반대로 가장 멀어지는 때는 7월 초순경이다. 즉, 북반구의 겨울에 지구와 태양이 가장 가까워진다. 이 효과로 인해 실제로 북반구의 여름보다는 남반구 여름의 평균 기온이 조금 더 높다.
지구가 태양에 가까이가게 되면 태양의 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 중력에 맞서기 위해 지구의 공전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지구는 태양이 당기는 중력과 공전 속도에 의한 원심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태양을 도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는 여름에는 태양의 중력이 조금 약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지구의 공전 속도는 약간 느려진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근일점일 때 공전속도가 가장 빠르다. ⓒ 천문우주기획
평균적으로 지구는 매일 약 1도씩 태양을 돌기 때문에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다시 원래의 위치에 오기 위해서는 약 1도 더 자전을 해야 한다. 즉 하루(태양일)가 24시간이라는 것은 지구가 360도+1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실제로 지구가 별들을 기준으로 360도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항성일)은 23시간 56분 4초이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에 가까이 가는 1월 초순까지는 지구가 도는 각도가 1도를 넘어선다.
즉 태양이 다시 원래의 위치에 오는 시간이 평균 시간보다 더 소요된다. 이 효과는 일출 시간뿐만 아니라 일몰 시간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즉 지구의 공전 속도가 빨라져서 생기는 효과는 일출과 일몰 시간 모두를 느리게 한다.
결국 앞에서 말한 두 가지 효과가 모두 합쳐져서 매일 매일의 일출·일몰 시간이 결정된다.
일년 중 해가 가장 일찍 지는 때는 12월 초
태양의 고도는 추분을 전후로 빠르게 바뀌다가 동지 무렵이 되면 그 변화가 매우 느려진다. 결국 추분 근처에서는 태양 고도 변화로 인해 일출 시간이 느려지고, 일몰 시간이 빨라지는 효과가 무척 크다. 하지만 동지가 가까워지면서 태양의 고도 변화는 매우 작아진다. 태양의 고도는 동지나 그 보름 전후나 큰 차이가 없다.
즉, 태양 고도 변화로 인해 일출 시간이 느려지고, 일몰 시간이 빨라지는 효과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구의 공전 속도는 1월 초순을 전후로 가장 빨라진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12월 초순과 1월 초순 사이에 약 30만 km 차이가 난다.
결국 12월 초순부터는 태양 고도가 낮아짐으로써 일몰 시간이 빨라지는 효과가 지구의 공전 속도가 빨라져서 일몰 시간이 느려지는 효과보다 작아지기 때문에 이 무렵부터 서서히 일몰 시간은 다시 늦어진다. 결국 일몰 시간이 가장 빠른 때는 동지가 아니라 그보다 약 2주 정도 전인 12월 초순이다.
일출·일몰 시간과 낮의 길이 그래프. ⓒ 천문우주기획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때는 1월 초다
이에 반해 일출 시간은 계속 느려진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서 생기는 일출 시간의 지연 효과에 공전 속도가 빨라져서 생기는 지연 효과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동지 이후에도 1월 초순까지는 공전 속도로 인한 지연 효과가 태양 고도가 높아져서 생기는 단축 효과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일출 시간은 계속 느려진다. 결국, 일출 시간이 가장 늦은 때는 동지가 아니라 1월 초순이다.
결론적으로 해의 고도가 가장 낮아져서 낮 시간이 가장 짧아지는 것은 동지지만, 일출 시간이 가장 늦는 때는 1월 초순이고 일몰 시간이 가장 이른 때는 12월 초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