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로역정을 보고
지난 2014년 6월 CTS아트홀에서 천로역정이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그때 나는 짧은 소감을 정리했다: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99
그리고 오늘 2022년 8월 7일 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천로역정을 집에서 감상했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2019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오늘 내가 본 영화는 우리말로 더빙된 것이다.
천로역정은 본래 영국의 기독교인 존 번연이 1678년에 감옥에서 집필한 우화소설이다. 이 소설은 기독교인의 신앙 여정을 우화로 그려낸 것이다.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시험과 고난, 그리고 도움 등을 의인화하여 설명하기에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천국을 향해 길을 나선 사람의 이름은 크리스찬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은혜를 모름(Graceless)이다. 그에게 순례의 길을 떠나도록 자극을 준 사람은 믿음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떠난 후에 고집쟁이나 변덕쟁이, 그리고 세상 잘난이 등을 만나서 어려움에 빠진다. 그런데 그에게 도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곤경에서 건져낸다. 그후로 크리스찬은 해석자의 가르침을 받고 율법산을 지나 마침내 천성에 도착한다.
지금부터 344년 전에 기록된 천로역정은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줄거리는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떠나 죽음의 강 너머에 있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우여곡절을 담은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동원 목사의 강연을 들어보니 천로역정은 성경보다 먼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성경이 전달된 나라에는 천로역정도 소개되어 신앙인들에게 교훈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어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 번연의 간절한 소원을 나누고 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기독교회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천로역정의 눈으로 성경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천로역정에 따르면 이 세상은 멸망도시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이 도시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있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로마가톨릭의 신부들로 묘사된다. 이것은 존 번연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은 로마가톨릭에 반기를 들어 국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국교회는 또다른 가톨릭교회처럼 순수한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을 박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존 번연이 투옥되었으니 그가 악을 기존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으로 그린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 전체 이야기가 담고 있는 큰 주제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비교해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으며 그것을 회복하고 새롭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일하신다고 들려준다. 하나님이 아담 부부를 지으시고, 노아를 부르시며, 또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이 세상을 바로잡아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을 건져내어 천상의 나라로 데려가는데 있지 않고, 이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을 불러내어 자신을 보이신 후에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내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나라인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담 부부에게는 에덴동산을 돌보는 임무가 주어졌고,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땅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열국을 위하여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려는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도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제 천국에 갈 때가 되었다!’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더 밝고 맑게 하는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려는 목적을 지향한다. 만약 천로역정에서처럼 이 세상이 멸망도시이며 악한 자 곧 마왕이 다스리고 있어서 파괴될 것이라면 왜 그렇게 가르치시겠는가?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을 보면,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는 천성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 세상을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계 21:5).
성경 이야기가 이렇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회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지만 천로역정 같은 이야기에 인이 박이고 나면 그런 그림과 꿈을 가지기는 어렵게 된다. 오늘날에 기독교회에 나타나는 거의 모든 사이비 이단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오는 점을 보더라도 천로역정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천로역정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나는 오늘날 21세기에 존 번연이 다시 일어나 천로역정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쓸까에 대해서 상상해 본다. 그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구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옥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대적 한계 때문에 344년 전에 기록된 그의 천로역정은 멸망도시를 벗어나 천상의 나라로 들어가는 여정을 기록했지만 오늘날 새로운 정신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하나님의 꿈이 펼쳐지는 세상임을 잘 드러내는 소설을 쓰지 않을까?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의 유일한 관심사를 ‘이 세상이라는 멸망도시에서 벗어나 죽음 이후에 들어갈 천국’에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런데 21세기의 존 번연은 아마 그의 천로역정을 기록할 때 이 땅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을까? 아마 그것은 또 하나의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삶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도피주의적 크리스찬의 모습과는 매우 많이 다르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찬의 여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우화로 표현했다. 그것은 결단, 신중함, 인내, 온유, 절제, 용기 그리고 순결함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성품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천로역정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다.
다만 크리스찬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존 번연의 설명은 300년 전의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찬의 목적을 도피주의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사후에 천상에서 누릴 영혼의 안식 정도로 치환해버리는 큰 잘못이다. 오늘날 지구촌에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인간이 지상낙원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인간이 서로 협력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지혜를 교회가 제시할 수 없다면 교회는 더 이상 이 세상의 빛도 아니며 소금도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우리 시대의 과제와 비추어 보고 동시에 성경의 전체 이야기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 우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으로부터 우리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될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