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INSIDE OUT / 이승만
이승만은 미국에 건너가서 수 십 년동안 미국의 학자 정치인 외교관 언론인 군인들을 만나 한결같은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 내용으로 강연회에서 연설하고 그 내용으로 책을 썼다. 그 책의 제목은
<JAPAN INSIDE OUT>,
일본의 속내를 폭로한다!
그 내용은 일본이 조선 반도를 집어 삼켰으니 그 다음은 만주를 먹고 중국을 침략하고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그리고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쳐들어올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팽창을 막고 일본을 다시 일본 본토로 돌아가게 하려면 조선을 독립시켜라!
그러자 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은 아무도 이승만의 외침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은 좋은 관계였고 그 넓은 태평양을 넘어 일본이 공격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JAPAN INSIDE OUT>이 출간 된 지 채 반 년도 못되어서 하와이 진주만 공습이 터진다!
이승만의 책 <JAPAN INSIDE OUT>은 단숨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유럽에서도 학자들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이 책을 구해 읽었다.
21세기 오늘날까지 한국인이 쓴 책으로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유일한 책이다.
<JAPAN INSIDE OUT> 앞에 미국 학자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수 십 년에 걸쳐 일본의 침략을 예언한 인물을 우리가 못 알아보았구나...
그러면서 이승만을 하나님이 그 시대에 세운 선지자로 알고 존경했다.
그 후 태평양전쟁에서 이승만의 절친 더글라스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군은 일본군을 몰아냈고 일본은 패망했다.
우리나라는 큰 피흘리는 전쟁 없이 독립을 얻었다.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중국 조선족 부대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민족의 비극 6.25 !
3년 간의 혈전 끝에 휴전협정이 맺어지려 할 때 이승만은 휴전을 극렬 반대했고 북진통일을 외쳤다.
하지만 미군도 소모전에 지쳐갔고 미국 내 여론도 휴전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그때 유독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의 조건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이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조인, 1954년 11월 18일 발효되었다. 이 조약을 전후해서 미국 앞에 이승만은 거의 날강도였다.
거제도 반공포로(포로로 잡힌 인민군들 가운데 반공 사상을 가진 사람들)를 맥아더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석방시킨 사건을 듣고 맥아더는 친구 이승만을 "오~ 나의 십자가"라고 불렀다.
그때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 조건을 볼 것 같으면 미국이 6.25 전쟁 휴전을 하려면...
1. 경제 지원해달라!
그래서 결국 당시 한국의 1년 수출액의 34배 되는 돈을 받았다. 그래서 전쟁 후 잿더미 위에서 굶어죽지
않고 다시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다.
2. "in and around Korea에 미군을 주둔 시킨다고 약속해라!"
그래서 오늘까지 미군이 이 나라 지켜준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함으로 인해 북한 인민군 복무기간이 10년이 넘어가는데 비해 제대한 내 아들 군 복무기간 1년 6개월!
주한미군주둔은 한국 경제발전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만약 한국 군대 의무복무 기간이 5년이라면 이 나라 경제는 결코 오늘과 같지 않을것이다
게다가 이승만은 고약한 정치 코미디언이었다.
3. "너희 미국이 침략을 받으면 그 때는 우리가 가서 싸워주겠다"
"뭐라고?
잘 못들을 것 맞지요? "
"아뇨~ 잘 들었습니다."
태평양 건너갈 배 한 척도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가서 미국을 도와줘?
태평양을 헤엄쳐 건너가?
노 저어 건너가?
돛단배 타고... ㅎㅎㅎ
이렇게 미국과 한국 사이에
<상호방위(相互防卫)조약>
을 맺자, "상호 조약이니까 평등한 조약 맞지?
여기 싸인 하셔!" 이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이다.
미국이 외국에게 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약속을 해주면 휴전할 때 내가 큰 인심 써서 입 다물고 있어줄 게...!"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그렇게도 못 된 사람이었다.
40년 지기 평생 친구 맥아더 뒤통수를 사정 없이 후려치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나라 6.25에 참전해서 3만 6천 여 명이 죽은 미군...
그렇게 남의 나라 위해 싸워서 미국이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이승만은 그 미국에게 더 내놓으라고 큰 소리 땅땅 치는 뻔뻔스런 이 나라의 아버지였다!
당시 미국 트루먼 전 대통령 왈(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후) "이승만 그 날강도에 또 당했어! 도대체 한국이 무슨 힘이 있다고 미국에 전쟁 나면 한국이 도와줄 테니 한반도에 전쟁 나면 한국 병력의 9배 이상을 의무적 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또 인계철선은 뭐야.
우리 청년들을 북한이 내려오는 길목에 박아 놓고 공격 받으면 미국이 자동 참전해야 된다니.
그리고 한국이 제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 국방비를 미국이 전액 대라는데 아무리 스탈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이런 조약에 사인을 하고 온 거야?"
이쯤되면 이승만은 날강도였다!
미군이 없었으면...
김구가 김원봉(좌파 세력 부하 10여 명 이끌고 광복군으로 들어왔음 )이 제일 많았을 때 겨우 300 여 명이었던 광복군 이끌고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수 백만 일본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일본군의 규모를 보자면 중국 본토에 관동군 125만, 만주국군이 40만, 일본 본토에 200만 이상의 일본군, 필리핀 버마 베트남 태평양에... 어마어마 한 일본군, 항공모함이 십 여 척, 항공기, 탱크, 대포...
그에 비해 제일 많았을 때 300 여 명에 불과했던 광복군이 그 엄청난 일본군을 무찌르고 독립할 수 있었을까?
1940년에 창설된 광복군은 1945년 일본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과 단 한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았다.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군대에 예속되어 국민당에서 군복도 주고 국민당에서 총도 주고 국민당 군대가 훈련도 시켜주고 국민당이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고 월급주고 지휘권은 당연히 장졔스에게 있었고 독자적인 작전권한은 없었다.
미군이 없었으면...
그 큰 쏘련 그 큰 중국을 등에 없고 쏘련제 탱크 앞세워 조선족 중공군 앞세워 김일성과 박헌영과 공산당이 선전포고 없이 기습남침으로 처내려온 6.25!
그 피눈물 나는 비극의 전쟁을 이만큼이나마 막아내고 이만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미군이 없었으면...
북한군 10년 넘게 군생활 할 때, 60된 우리 나이 때 30개월, 지금 전방 간 울 아들 18개월로 병역을 필할 수 있었을까?
미군이 없었으면...
벌써 뙤놈들 세상, 로스깨(소련) 세상 되었고 미군이 없었으면... 김가왕조 치하에서 굶어 죽었든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이 부끄러운 역사 이 부끄러운 현실이 우리 민족의 팩트이다.
근데 이승만이 독재자란다.
세계 3대 독재자였단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우리는 김가왕조 치하에서 위대하신 수령 찬양하다 밥 굶어 죽었든지 영양실조 펠라그라로 빌빌거리며 살고 있을거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폰은 꿈 속에 나타날 수나 있었을까?
님들이시여!
선지자이시면서 날강도이신 이승만 덕에 이만큼 살고 있는 줄 알고 감사하십시요.
*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
(JAPAN INSIDE OUT)
https://naver.me/G1Ic1y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