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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300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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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우리 나라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오래 된 절에 있다. 이는 그만큼 긴 세월 동안 불교문화가 우리 민족의 가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어디 그뿐이랴. 외침으로 우리 나라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절은 우리 나라를 구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 으뜸 가는 문화유산이 아마도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는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일 것이다.
근데, 우리 나라 절 곳곳에 있는 문화유산을 눈여겨 살펴보다 보면 가끔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때가 있다. 안내 표지판에 적힌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과 실제 바라보는 모습이 다를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도 온통 한문투성이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의 문화유산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만큼 처음의 모습과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중 재난이나 전쟁 등에 의해 잃어버린 것이나 거의 다 부서진 것을 새롭게 다듬은 것도 있을 것이고, 어떤 문화유산은 처음 있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화유산도 제법 있다. 즉,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시달려 여기 저기 깨어지긴 했으나 전체적인 모습은 옛 모습을 그대로 띤 문화유산도 꽤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문화유산에 대한 안내표지판의 설명이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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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화엄사 일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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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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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경내에서 퐁퐁 솟아나는 감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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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저게 사자야? 원숭이야? 내가 보기에는 원숭이 같구먼." "표지판에 사자석탑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저 돌짐승을 사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아야겠지요." "그건 그렇다치고 왜 두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고, 두 마리는 입을 꽉 다물고 있지? 안내표지판에 일반 사람들이 알아먹지도 못하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적어놓지 말고 그런 이야기를 적어놓으면 좀 좋아." "우리 문화유산을 그만큼 꼼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아니, 내 말은 우리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글이라도 제발 우리 말로 좀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지."
지난해 시월 마지막 날 아침, 나의 지리산 길라잡이 조경국 선생과 함께 바라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석탑 앞에 서 있는 안내 표지판에도 이 사자석탑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꼼꼼한 설명은커녕 수박 겉핥기식의 한자말만 잔뜩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이 석탑의 이름 또한 '화엄사 원통전전 사자석탑'으로 되어 있다.
근데, 갑자기 내 눈이 잘못된 것일까. 그날 내가 바라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은 분명 사자가 아니라 원숭이로 보였다. 그 중 이빨을 잔뜩 드러낸 채 두 손과 두 발로 앉아 있는 돌짐승의 이빨은 마치 사람니처럼 쪽 골랐다. 만약 사자였다면 이빨이 날카로운 송곳니로 조각되어야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입을 벌린 돌짐승의 이빨 그 어디에도 날카로운 송곳니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을 짚고 있는 돌짐승의 두 손과 두 발에도 사람의 손과 발처럼 네 개의 손가락 모양과 네 개의 발가락 모양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살펴보아도 사자 발가락과는 그리 닮지 않았다는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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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은 마치 돌짐승 네 마리가 물동이를 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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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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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마리의 돌짐승은 입을 벌리고 있고 두 마리의 돌짐승은 입을 다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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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근데, 저 돌짐승 네 마리가 머리에 이고 있는 저 네모 난 돌은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스님들은 저렇게 네모 난 돌을 노주(露柱)라고 부른다는구먼. 어떤 스님은 저 노주에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스님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양대(拱養臺)라고 하기도 하지." "문화재청 자료에도 저 노주가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적혀 있네요." "하여튼 독특한 돌탑임에는 틀림없어."
보물 제300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은 각황전 앞에 우담바라처럼 피어난 국보 제12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어깨를 겨루며 원통전 앞에 우뚝 서 있다. 처음 나는 이 석탑이 국보 제35호로 지정된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인 줄 알았다. 근데, 자세히 바라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석탑은 삼 층이 아니라 한 층뿐이었다.
눈대중으로 대략 높이 3m쯤 되어 보이는 이 사자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네 마리의 돌짐승이 힘을 합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동서남북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러니까 네 마리의 돌짐승이 마치 돌탑의 기동돌처럼 몸돌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다는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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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露柱)라고 부르는 몸돌에는 신장(神將)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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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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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일까? 원숭이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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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이 희한한 모습의 돌탑을 받치고 있는 2층의 받침돌에는 별다른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네 마리의 돌짐승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꽃받침 위에 네 발을 모으고 앉아 연꽃이 새겨진 동그란 돌을 물동이 받침대처럼 머리에 올려놓고 있다. 그 위에 다시 넓직한 사각형 돌이 얹혀있고, 그 돌 위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노주)이 올려져 있다.
몸돌의 네 귀퉁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고, 그 테두리 안에는 네 면마다 신장상(神將像)이 제법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몸돌 위 아래에는 몸돌보다 약간 큰 사각형의 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돌 위에도 넓직한 사각형의 돌이 반듯하게 올려져 있다. 그 사각형의 돌 위에는 반달 모양의 돌이 마치 상투처럼 볼록하게 솟아나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근데, 이 돌탑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선생님은 왜 저 탑을 세웠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연꽃 속에 서 있는 저 네 마리의 사자가 신장상이 그려진 물동이를 이고 있으니, 저 노주가 곧 부처님의 감로(甘露)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스님들도 저 몸돌을 노주(露柱)라고 부르는 거고." "하여튼 선생님의 상상력은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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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노주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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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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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석탑은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과 어깨를 겨루며 나란히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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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안타깝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괴상한 낱말을 내세워 우리 나라의 역사를 송두리째 왜곡시키고 있는 이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우리 말로 이름 짓고, 우리말로 꼼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그날은 대체 언제쯤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