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고(苦)에서 건져 내려면
“내가 이 세상에 나왔기에 일체 만법이
나로 인해서 들고나며 상대성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
내가 없다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참나·주인공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한다.
자기로부터 우주의 근본이 비롯되었으므로 자기를 알아야 한다.
우주의 작용이 광대하다 할지라도 자기의 마음의 근본보다 더 한 것은 없다.”
내가 지금, 여기에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게 무엇이랴.
기쁨은 무엇이고 슬픔은 무엇이랴.
내가 없다면 성공이든 실패든 내 몫이 아니고,
세상의 만물 만사가 다 내 일은 아닐 것이다.
고로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다.
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세상도 존재하고 우주도 존재한다.
그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것이다.
나 하나 있음으로써 천상천하가 있고
나 하나 없음으로써 천상천하가 없다.
내가 가장 잘난 존재라서가 아니라
나는 곧 우주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일체 만법의 비밀이 풀리고
천상천하를 알고 우주를 섭렵케 된다. 내가 누구인지만 알면….
내 집에 문패 붙여놓고 내 재산을 등기하고
내 이름을 주민등록에 올려놓고 있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이 물건 저 물건에, 이 일 저 일에
‘나’라는 존재를 다 보증처리해놓고 산다.
나로서 주인행세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제 마음에다
‘내가 주인’이라는 등기를 못하고 산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지와는 달리 불안할 때도 많다. 한결같지도 않다.
내가 분명 주인일 터인데 자재롭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 집에선 틀림없이 내가 주인인데
내 마음에선 내가 주인이라고 자신할 수가 없다.
나의 진정한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의 근본 성품은 누구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믿지도 못한다.
자신이 유아독존의 존재임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우리는 진정으로 아는 게 없다. 스스로를 모르는데 무엇을 안다고 하랴.
스스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안다.
내가 내게서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나를 우주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내가 나를 구원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게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발견하지 못함이 나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를 불안케 할 것이다.
주인노릇을 할 수 없으니 삶에는 간혹 기쁨이 있을지라도
대체로 괴로움이 더 많게 될 것이다.
하인의 고달픈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게서 나를 발견하자면 먼저 자아가 참나임을 믿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지금의 나는 참나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그 나로 돌아갈 때에 지금의 나는 참나가 된다.
유아독존의 그 나가 된다.
고로 지금의 나는 오로지 내 속에서 나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우주의 주인으로 살려면 그것밖에 없다.
마음 편하게, 자재롭게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내 속의 참나를 믿고 일체의 살림살이에서,
하인이 주인을 믿고 따르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믿고 맡겨야 한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일거수 일투족에서 나의 참 주인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내게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구원해야 한다.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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