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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 1968년
송 기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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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한테 엉덩이라도 물린 돼지새끼처럼 째지는 기적 소리를 지르며 기차가 역 구내로 쏠려들었다. 수은등마저 조을조을하던 구내가 일시에 잠이 깬 듯 역원들과 지쳐빠진 승객들이 수런거렸다. 기적소리는 구내를 날려버릴 듯 요란했고, 기관차의 숨소리 또한 목구멍에 꺽꺽 막혔다.
“두 시간이나 늦은 주제에 허겁은 되게 떠네.”
가슴팍에 훵 구멍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기적 소리에 몸을 웅크리고 나자 곁에 섰던 사람 누구 들으라는 듯 뇌까렸다. 고개를 돌려 웃어주었다. 아까 대합실에서부터 괜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실없는 농담으로 지친 손님들의 웃음을 청하던 사내였다. 차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너무 썰렁해서 한 칸을 더 건네보았다. 마찬가지다. 한 칸에 기껏 여남은 남짓한 승객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 귀하던 자리가 이건 너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여기서 탔던 사람들은 괜히 자리를 기웃거리고 다닐 뿐, 얼른 앉을 생각을 안 했다. 아무리 골라보아야 삼등 완행, 더구나 험하기로 이름난, 이 호남선 야간열차에 별나게 알뜰한 자리가 있을 턱 이 없겠는데, 모두들 실없이 서성거리고만 다녔다.
먼 데서 타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잠이 들어 있었다. 새우등을 하고 고양이처럼 웅크려 자고 있는 늙은이, 입을 벌리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젊은이, 젖통을 까젖힌 채 펑하게 퍼질러 누운 아낙네. 그의 가슴팍에는 어린애가 개구리처럼 엎어져 있고, 그 건너편에는 또 올망졸망한 어린애들이 강아지새끼들처럼 서로 껴안고 있었다. 사내들은 신 신은 발을 그대로 건너편 의자에 던져 놓기도 했고 더 극성스런 친구들은 다른 자리의 시트를 서너 장씩 뜯어다가 숫제 침대를 만들어 눕기도 했다. 이런 극성스런 친구들은, 되도록이면 편히 가보자는 것이라기보다 이렇게 지천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한꺼번에 전부 향락하지 못해 속이 상한다는 식이다. 콩나물시루같이 숨이 막히는 속에서 두 시간, 세 시간씩 그냥 서서 끙끙 앓던 억울함을 분풀이하고 싶고, 양껏 벌충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좀 서성거리다가 자리를 잡아 앉았다. 막 앉아 있으려니 바로 내 앞 한 자리 건너에 한복으로 성장(盛裝)한 젊은 여인이 자리를 정하고 앉을 채비를 했다. 아까 같이 차를 기다렸던 여인이다. 이런 완행의 승객으로는 보기 드문, 말하자면 고급 손님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인이 나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고 앉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내 시야에 사람이 하나 끼어드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나도 그 침대를 만들어 누워 가는 친구들만큼이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 자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주위에 그만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인은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주었다.
이 여인은 아까도 눈을 끌었던 대로 여간 품위가 있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방금도 자리에 앉는 자태가 꼭 논에 내리는 학(鶴)이었다. 자리를 정해놓고 조심스레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몸무게를 치올리듯 치맛자락을 한쪽으로 쓸어올리며 살프시 자리에 몸을 내려놓았다. 학이 앉을 자리를 어름잡아 놓고 허공을 날아 한바퀴 주위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미끄러 내리다가 날개를 할딱여 몸무게를 질끈 치올리며 모포기 사이에 다리를 내려놓듯……
기차는 들어닥쳤던 기세와는 달리 한번 멈추더니 얼른 떠날 기미가 없었다. 11시 정각, 제대로 달려도 종착역인 목포까지 두 시간 반, 그러니까 새벽 1시 반에야 담을 것인데 따분했다.
건너편 유리창 곁에 또 누가 자리를 잡아 앉았다. 통로 저편 두 자리 건너 대각선으로 나와 마주보는 자리다. 역시 아까 대합실에서 같이 차를 기다렸던 사십대의 건장한 사내였다. 요사이는 좀 구경하기 어려운 염색한 미군잠바를 입었고, 또 그 허름한 잠바에 어울리게 땟국이 흐르는 운동모를 쓰고 있었다, 내 시야에 맞바로 끼어든 것이 달갑지 않았으나, 그는 아까 대합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 편에서 먼저 시야를 가려버렸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운동모를 벗어 그걸 무슨 뚜껑처럼 얼굴에 씌우고 잠잘 채비를 한 것이다. 자는 것인지 그냥 그러고만 있는 것인지 팔짱을 끼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하여간, 제편에서 먼저 시선을 가려주니 적이 안심이었다.
한참만에 차가 움직였다.
“제기랄 놈의 새끼들!”
건너편 사내였다. 얼굴에 얹었던 운동모를 뚜껑처럼 벗어들고, 기관차 쪽을 잔뜩 흘겼다. 기관사라도 곁에 있다면 한 대 쥐어박을 듯, 속힘이 꼬인 소리였다. 그는 흘겼던 눈을 걷어들이고 다시 운동모를 뚜껑처럼 닿으며 ‘으응’ 신음하듯 화를 삭였다. 그러니까 그는 자는 것이 아니라 그 뚜껑 밑에서 울화가 끓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같이 무뚝한 욕설에 속이 후련했다. 그리나 그는 누구를 의식하고 공감을 정한 표정이나 목소리는 아니었다. 주윗사람은 도무지 안중에 없었다. 아까 대합실에서도 자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저렇게 모자 밑에서 혼자였을 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그 욕설로 하여 그는 나의 의식 속에 깊숙이 끼어들고 었었다. 그것은 그가 내 시야에 있어도 좋은, 말하자면 동료 의식 같은 그런 것이었다. 이 세상에 떳떳하게 한자리를 차지할 만한 자격을 지녔다고, 그래서 어떤 때는 나 같은 사람이 못 하는 일을 가로맡아 해줄 것 같은 신뢰까지도 느껴졌다.
나는 그의 사람값을 매겨보기 시작했다. 백 원, 2백 원, 5백 원, 얼른 값이 나지 않았으나 백 원 대(臺)라는 어림만은 잡혔다.
나는 걸ㅍᅟᅵᆺ하면 이렇게 사람을 놓고 그 값을 매겨보는 버릇이 있다. 이것은 도무지 귀찮은 버릇이었으나, 이제는 영 고칠 수 없는 고질이 되다시피했다. 그런데 그 사람값이라는 것이 또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것이어서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억울한 일로 죽게 되는데, 내가 아무도 모르게 돈 얼마만 치러주면 살아난다고 할 때, 내가 선뜻 치를 수 있는 금액이다.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모르게 말이다.
그 액수는 몇십 원이나, 혹은 1원에서 몇십만 원, 내가 가족이나 어떤 사람은 내 전재산, 전재산이라야 40만 원짜리 오막살이뿐이지만……그리고 내 명예나 직업까지도 내놓을 때가 있었다.
내 친구나 존경하는 사람.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 그리고 전혀 얼굴도 모르는 불량배, 죄수, 혹은 아프리카 토인이나, 북극의 에스키모, 이런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놓고 그 값을 메기기에 고심하는 것이다. 러셀 같은 사람은 천 원대고,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는 나중에 깎기는 했지만 선뜻 만 원을 걸었다. 낯모르는 사람은 백 원이나 10원, 그러나 그도 한둘이 아니고 한꺼번에 몇만 명이 죽는다면 10원도 벅찼고 1원? 그도 수에 따라 합계가 만 원, 20만 원…… 그러나 내가 어째서 그들의 생명에 이토록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하느냐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거리에라도 나가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흘겨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그들이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나를 쫓아왔다. 강도한테 칼을 맞은 사람, 총 맞고 신음하는 병사, 억울한 누명의 사형수, 공사판의 바위 밑에 깔린 노동자, 차에 치인 어린애, 호랑이한톄 덜미를 물려가는 놈, 물에 빠진 놈, 문둥이, 거지, 미국놈, 소련놈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피가 낭자한 모습으로 고함을 치고 애걸하고 물어뜯고 할퀴면서 쫓아오는 것이고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쳐 다니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깨는 것이다.
언제부텨 생긴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값 때문에 어처구니 없이 심각할 때가 있다. 요사이는 생활이 쪼들리다보니 그 액수는 차츰 내려가기만 했다. 나의 어떤 친구가 자기에게 매겨진 액수를 안다면 당장 내 따귀를 갈기면서 절교를 하고 말 것이다. 나는 그들한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껌껌한 차창에다 망연히 눈을 대고 있는데, 누가 바로 내 앞자리에 털썩 몸뚱이를 던져 놓았다. 예쁘고, 한눈에 교양이 있어 보이는, 여대생 타입의 말쑥한 아가씨였다.
“거지 같은 새끼들!”
그는 앉자마자 책을 펴들며 욕부터 했다. 나에 대한 무례함을 그런 식으로 변명하는 모양이다. 왜 저런 아가씨가 험한 밤차를 탔을까? 하여간 나는 모처럼 좀 혼자 가는가 했더니, 운동모와 또 이 아가씨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묘하게 그 두 사람이 다 첫마디가 욕설이었다.
그는 불안한 듯 뒤를 돌아봤다. 그 거지 같다는 새끼들이 쫓아올 모양인가?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이 아가씨가 나에게 끼어든 것이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거꾸로 내가 이 아가씨 사정에 끼어들 것 같았다. 그 새끼들이 쫓아와서 아가씨에게 수작을 걸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험한 야간열차에서, 더구나 이 밤중까지 숫기를 피우며 놀아날 녀석들이란, 아가씨 말이 아니더라도 거지같이 지저분한 똘만이들이 아니면 촌티가 설벗은 휴가병 녀석들일 것이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제지할 위세도 배짱도 없다. 그래도 남자의 그늘이라고 찾아든 것인데, 그런 깡패막이의 그늘로는 당초에 아가씨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암담한 일이었다. 지 운동모처럼 얼굴에 씌워버릴 뚜껑도 없고, 거기다가 놈들이 한술 더 떠서, 아가씨에게 호기를 보일 배짱으로 괜히 나한테 찍자를 붙여 오는 날이면, 그러지 않아도 후줄근한 내 몰골은 도무지 참담할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아가씨를 두고, 이런 찻간에서 있음직한 신파조의 상상에 야릇한 긴장을 느끼기도 했으나, 놈들의 억센 주먹에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나가떨어질 환상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갑자기 아가씨가 무슨 요물처럼 끔찍하게 느껴졌다.
건너편 운동모의 우람하게 발그라진 어깨판이 새삼 부려웠다.
一쌍놈의 새끼들, 이것들은 사회의 독충이다. 돈을 채워서 된다면 그저 당장 천, 아니 5백 원, 그렇다, 지금 당장 탁 죽어진다면 천 원이다. 천 원!
주먹까지 불끈 쥐며 이렇게 어르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죽기는커녕 그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는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것이 틀림없이 그놈들이다. 나는 차창으로 얼굴을 치워버렸다.
“아가씨, 여기 계셨군요? 오해 마십시오. 우리는 절대로 깡패가 아닙니다. 우리 얘길 들어보세요.”
키가 작고 똥똥한 녀석이 넉살좋게 씨부리며 아가씨 곁에 앉았다. 나는 가만히 눈을 돌려, 혹 흘겨보는 눈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그들을 살폈다. 넥타이랑 멘 것이 얼풋 깡패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스물두셋, 슬기가 있는 것이 좀 불안했으나 자기들 말대로 깡패는 아닐 것 같았다.
“아저씨, 여기 좀 앉읍시다.”
키 큰 놈이었다. 나는 우선 이만한 것이 다행이다 싶어 적이 안심이 된 다음이라, 내 엉덩이를 한쪽으로 치워 차리를 넓게 내주며 고개까지 한번 주억거렀다. 아가씨는 새침한 표정을 그대로 책에다 눈만 대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뭘 하나 연구 중입니다. 그래 이 차에 탄 손님들을 상대로 개별 인터뷰를 하고 다니는 참인데, 그만 아가씨가 오핼 했어요.”
똥똥한 녀석이 아가씨의 눈치를 살피며 변명하듯 말했다.
“술 한잔 드십시오.”
내 곁에 앉은 키 큰 녀석이 여행 백에서 소줏병을 꺼내 잔을 권했다. 나는 초면에 이거 미안하지 않느냐고 인사치레를 하면서 잔을 받았다.
“우리 연구에 협조만 해주신다면 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똥똥한 녀석이 오징어 발을 찢어 내밀며 웃었다. 나는 출출하던 김이라 단숨에 잔을 비웠다. 잔을 건네려 했으나 마저 한잔 더 들라고 했다.
“첫잔은 우리를 여기서 내쫓지 말아달라는 잔이고, 이 잔은 협조를 구하는 잔입니다.”
똥똥한 녀석이 껄껄 웃고 나서, 아가씨 쪽을 살피며 눈을 한번 찡긋했다. 그저 틈만 보이면 넉살좋게 말을 걸고 들어갈 판이다. 어지간히 무안을 당해도 어디 한 군데 구겨질 구석이 없을 것같이 빤드르한 얼굴이다.
나는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무슨 연굽니까?”
“좀 괴상스럽습니다. 명년에 대학을 졸업하는데, 졸업 논문 테마가 ‘한국인의 해학적 발상(諧謔的發想)’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람의 우스갯소리 방법이나 소재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지요.”
“거 '참 기발한 착상입니다.”
나는 잔을 들고 턱없이 큰 소리로 탄성을 발했다.
속담, 음담패설, 소설 등을 자료로 하다가 직접 사람들을 상대로 자료를 구해보자고 나섰다는 것이다.
“서울서부터 가능한 모든 승객을 상대로 일생 동안 직접 겪은 일이나, 남한테 들은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우스운 것이 무어냐 이건데, 남의 입벌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나는 그럴 거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어지간히 비윗장이 좋고, 능청스러워 망정이지, 이건 도무지 문전축객이 아니라 자칫하다가는 뺨맞기 알맞겠어요.”
키 큰 친구도 말을 마치며 아가씨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들은 나에게라기보다 아가씨에게 변명하는 셈이었다. 똥똥한 친구가 백을 부스럭거리더니 과자를 한 움큼 꺼냈다.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이것 좀 드세요.”
“괜찮아요.'
아가씨는 적이 누그러진 눈치였으나 그대로 눈쌀을 내리깐 채였다. 얼른 감정을 풀어놓기가 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거 손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 앞에 손을 내밀고 벋대었다. 나는 사태의 진전이 좀 위태로워 눈을 피하느라고 남은 술을 꼴깍 들이켰다.
“어디 수집한 얘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재미있는 걸로.”
그때 아가씨를 건너다보고 있던 키 큰 친구의 입이 벙그러졌다. 아가씨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그걸 함부로 합니까?”
그제서야 유쾌하게들 웃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럼 아가씨하고 사과한 결 자축할 겸 하나 헤라. 그 부처님 삼봉 친 이야기.”
키 큰 친구의 말에 그들은 지레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내용이 우스운 모양이었다.
“아저싸도 이따 하나 해야 합니다. 아가씨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다짐을 두고 나서 똥똥한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절간에 부처님 있지 않아요? 어째서 한 손은 이렇게 무얼 퉁기는 시늉을 하고 있고, 뚜 한 손은 무얼 내놓으라는 듯이 이렇게 내밀고 있는 줄 아세요?”
두 손을 내밀어 부처님이 하고 있는 시늉을 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다 옛날 이야깁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심심해서 절간으로 부처님한테 놀러 갔어요. 이 사람 여전하시군. 맨날 그렇게 근엄해 보았자 별수없네. 요새 세상놈들이란 원체 약아빠져 놓으니, 도무지 말아 먹혀들어가야 쟈네나 나나 장사가 되지, 빌어먹을 것. 우리도 이러지만 말고 여가 이용삼아서 이마빡 맞기 삼봉이나 한번 치세. 이러고 화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와, 웃음이 터졌다. 아가씨는 손수건으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는 어찌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났다.
“하, 저 아저씨도 안 주무셨군!”
저 건너편 운동모가 뚜껑을 벗어 머리에 얹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키 큰 친구가 술잔을 들고 가서 몇 마디 건네자 운동모는 벙긋 웃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일어섰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누가 삼봉을 쳤다고요? 그거면 나도 자신 있습니다.”
키 큰 친구 곁에 비집고 앉으머 한바탕 자리를 웃겼다. 차가 어느 역에 멈췄을 때라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잔이 갔다.
“술은 공짭니다만 이야기는 공짜가 아닙니다.”
운동모는 소웃음같이 후후, 크게 웃으며 사양하는 기색도 없이 잔을 들이켰다.
“심심해서 부처님과 예수님이 삼봉을 쳤어요.”
똥똥한 친구의 말에 운동모는 또 크게 한번 웃고 거푸 잔을 받았다.
“열전이 벌어졌는데, 예수님이 칠띠로 간단히 이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처님 이마빼기를 사정없이 퉁겨버렸어요. 부처님 이마에 콩만한 검은 점이 하나 있지 않아요? 그게 그래서 생긴 거래요.”
와, 웃었다.
“이번에는 부처님도 화가 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쳤습니다. 고전 끝에 이번에는 부처님이 이겼어요.”
“옳제!”
운동모가 오징어 발을 뜯으며 장단을 쳤다.
“네 이놈! 아까는 나를 서정없이 퉁겼겠다! 이제 맛 한번 봐라. 이렇게 어르며 손톱에 호호 독을 넣어 가지고 덤비니까, 예수님이 겁이 나서 도망을 치려고 했습니다. 가만있어, 그러지 말고 신사적으로 하자. 그럼 이마빼기를 맞겠나? 그 대신 돈을 내겠나,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라. 그래서 두 손을 이러고 있는 겁니다.
폭소가 터졌다.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들 웃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빙그레 웃는 것도 다 속이 있구나!”
내 말에 또 한바탕 웃었다.
“거 참 누가 잘 지어냈다!”
운동모가 감탄을 했다.
“하나 더 하슈. 참 재밌습니다.”
내가 또 청했다.
“이건 다 아는 얘기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운동모가 알아듣도록 ‘부활’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제자들한테 가서 첫마디가 뭔 줄 아십니까?”
“뭡니까?”
“놀랐지이? 으웅? 놀랐을 거다!”
와 웃었다.
“그러니까 제자 한 놈이 ‘웃기네?’ 또 한 놈은 ‘놀란 것 사랑하네.”
나는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건 한 예순 살쯤 나 보이는 노인의 경험담입니다.”
잔이 오가고 아가씨는 과자를 하나씩 돌렸다.
“감사합니다. 이거 한잔?”
뚱뚱한 친구가 과자에 사례한다는 식으로 아가씨에게 잔을 내밀며 장난스레 웃었다.
“웃기지 마세요.”
그동안 기차는 역을 여럿 지나 밤 들판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모두 발그레 술기가 돌았고, 분위기도 그 술기처럼 훈훈했다.
“이 노인이 이북서 피난 올 때 이야긴데, 피난민 수용소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부싯돌을 찰칵찰칵 켜고 있으려니까, 키가 껑충한 미군 한 놈이 다가오더래요.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 싶어, 부싯돌을 슬그머니 감추며 겁먹은 얼굴로 멀뚱거리고 있는데, 이놈이 잠바 호주머니를 부시럭거리더니, 첫눈에도 썩 값져 보이는 라이터를 불쑥 내밀며 부싯돌과 바꾸자는 시늉을 하더란 겁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냥 멀뚱거리고만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만년필까지 쑥 빼서 덤으로 얹으며 사뭇 은근하게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 슬그머니 부싯돌을 내밀었더니 땡큐를 연발하며 무슨 보물이나 얻은 듯이 그걸 쳐다보며 좋아하더라는 거예요. 그 노인은 나중에 그걸 처분해서 쌀을 두 말이나 팔았다는 횡재담인데, 이 노인 그 다음 이야기가 걸작입니다.”
그는 노인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들 키만 떨렁 컸지 생판 빙충이들이라, 그래 온전한 놈치고야, 보면 그 부싯돌을 모를 거여? 나도 그때 미국놈 상대로 장사나 한번 했더라면 톡톡히 한밑천 잡는 건데……”
이러면서 사뭇 애석해 하니까 같이 앉았던 다른 노인이 받았다.
“그놈들 생기기도 안 미련하게 생겼더라고? 지까진 놈들이 부싯돌에서 불나는 이치를 알았을 것이여? 그놈들 우리 짚새기(짚신)를 찬찬히 디려다보더니 이걸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마무리를 했느냐고 탄복을 하더라여. 그놈들 머리로야 참 귀신이 곡할 노롯이제.”
이렇게 득의에 찬 표정이자, 부싯돌 노인이 또 받았다.
“하기야 감쪽같제. 왜 거 우리 수숫대빗자루 안 있다고? 묶어논 끈을 보고 조선 사람은 기운도 시다고 쌔바닥을 널름기리더라여, 허허.”
“그 그럴 거라.”
소줏잔에 거나해진 노인들의 한국인 우월론은 끝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선생님 하나 하세요.”
내 차래가 됐˙다. 나는 오징어 발을 뜯으며 잠깐 망설였다. 한두 가지가 있었으나 얼른 내키지가 않아서였다.
하나는, 나의 시골 마을에서 있었던 일로, 딸 시집보내다가 쌀 서너 가마니 색갈아진 것이, 삼사 년 굴러 새끼를 치고 보니 열 가마니가 넘어바렸는데, 산전(山田) 몇 마지기로는 우선 목구멍 깜냥에도 못 당하는 판이라 도무지 헤어나지를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해버린 내동양반이란 택호(宅號)를 가진 이의 이야기였다. 그가 양잿물을 마실 때, 거기다가 사카린을 타서 마셨다는 것이다. 원체 가난해서 여름이면 냉수에다 사카린을 타서 시원하게 한 사발씩 마셔보기가 늘 소원이었다는데, 그 소원이던 사카린을 죽을 때 양잿물에다 타서 마신 그 역설적인 감각적 호사(豪奢)에 쨔릿한 맛에 있었으나 별로 우습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하나는 왜정 때, 징병에 끌려가서 폭격에 한 눈을 잃고 온, 국민학교 사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 이야기인데, 그것은 그분한테 좀 미안했다. 그분은 체조시간이면 옆으로 팔펴기운동 할 때 늘 말썽이었다. 자기는 팔을 평평하게 편다고 펴는 모양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쪽 팔은 훨씬 아래로 쳐졌다. 우리도 그렇게 따라 하면, 이렇게l 반듯하게 펴지 못하느냐고, 그 삐딱하게 편 팔에 한껏 힘을 주어 되펴면서 호령이었다.
눈을 부라리며 사뭇 호령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펐던 놈들도 급회전하는 비행기의 날개 모양 아래위로 삐딱하게 고쳐폈다. 지금 생각하면, 부상을 당하면서 어디 신경을 한 군데 크게 다쳐 평형감각이 잘못된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우리는 그것이 늘상 심심찮은 우스갯거리였고, 그 선생의 아들까지 사뭇 놀려주었던 것이다.
“빨리 하세요.”
“네.”
‘다방 논쟁’ 이야기를 할까 했으나, 아까 아들을 깡패로 오인했던 일이 퍼뜩 떠올랐. 그래 ‘다방 논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 다방 논쟁은 어느 해 추석이던가 역시 고향에 가서 겪은 일이다.
열너댓 살짜리들이 서울로 돈벌이를 갔다가 고향에 다니러 와서 저마다 서울자랑이 시퍼랬다. 잘해야 변두리 이발소 견습으로나 지내던 놈들이 그래도 서울물을 좀 마셨다고 우선 말씨부터 숫제 서울놈 행세로 아는 채했다. 그러다가 제놈들끼리 아주 맹랑한 논쟁이 벌어져 내가 그 심판이 됐던 일이 있었다.
“야 임마! 다방이 똥 누는 변소라고? 웃기지 마! 변소는 화장실이라고 하는 거야. 다방이 전화하는 데지 뭐 똥 누는데? 짜식 정말 웃기네.”
“저런 깡통, 전화 좋아하네! 전화는 공중전화 있지 않아? 종로에서 말야, 어떤 신사가 변소에 가고 싶단께는 쩌그 다방 있지 않아, 이러든다 그래?”
이런 식으로 논쟁˙이 치열했던 모양으로 이놈들이 나한태 우 몰려와 다방이 용변 보는 데냐, 전화하는 데냐고 심판을 청해온 것이다. 그 가운데는 서울서 이삼 년씩이나 굴러먹은 놈도 있었는데, 나는 다방이 뭔지 납득시키는 데 진땀을 뺏다.
다방에는 전화도 있고, 변소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걸 사용할 수는 있지만, 원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더니, 한 놈이 불쑥 차가 뭐냐는 것이다.
“차라고 하는 것은 일톄면 숭늉과도 비슷하고 술과도 비슷한 것인데, 옳지, 저 길가에 냉차 장수 있지?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또 한 놈이,
“서울서 살아봤어요?”
서울서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토록 잘 아느냐고 신용이 안 간다는 투다.
“이놈아! 다방은 읍내만 나가도 셋이나 있다.”
놈들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물러갔다.
“뭘하고 계십니까?”
“네, 이것은 아직 아무한테도 안 한 이야긴데, 나는 묘한 버릇이 하나 있어요.”
먼저 사람값을 돈으로 매겨 보는 버릇을 대충 설명하고, 아까 이 아가씨가 쫓겨왔을때 잘못하다가는 그 깡패들한테 큰 봉변을 당략 것 같아 암담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런 깡패들이 돈을 채워서 된다면 5백 원? 아니 지금 당장 탁 없어진다면 천원이다 하고 천 원을 걸었습니다.”
“우하하.”
모두 허리를 쥐며 웃었다. 유독 아가씨가 웃음을 걷잡지 못했다.
“잘못했더라면 이거 깨끗이 갈 뻔했구나!”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5백 원으로 할까, 천 원으로 할까 하다가 막 천 원으로 결정했는데 바로 그때 그 깡패들이 나타났어요. 솔직히 말해서 간이 덜렁합디다.”
폭소가 터졌다.
“내 속셈이 꼭 들킨 것 같아 더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얼른 얼굴을 돌리며 속으로 그 돈 결었던 것을 슬쩍 취소해버렸지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들 살아 있는 겁니다.”
아가씨는 몸을 비꼬며 웃었다.
한참들 웃고 나서 똥똥한 친구가,
“그럼 이번엔 우리가 아까 말씀대로 억울히 죽게 된다면 얼마쯤 치러주시겠습니까?”
자못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아직 값을 매겨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충?”
“그럼 반대로 내가 죽는다면 얼마 내주시겠어요?”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글쎄요”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여간 한 잔 더 드시고 우리한테는 값을 좀 높이 매겨주십시오.”
키 큰 친구가, 술 한 병을 다시 꺼내서, 내 앞에 잔을 내밀었다.
“허허, 와이로를 쓰는구나.”
운동모의 시새운 듯한 말에 모두 또 웃었다.
아가씨까지도 자기 값에 흥미를 느끼는 눈치였다. 나는 그들의 생명을 내 손아귀에 쥔 것 같은 득의를 느끼며 술잔을 기울이고 나서 엉뚱한 열변을 토했다.
“도대체 나는 인류애니 하는 말에 신용이 안 갑니다. 남 앞에서 그 따위 무슨 애를 찾는 놈치고 위선자 아닌 놈 없고 도적놈 아닌 놈 없습니다. 그런 놈들이야말로, 그것도 세상이 다 좋아진다고 해도, 남이 안 보는 데서는, 제 잔털 하나 안 뽑을 놈들이에요. 또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여인들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제가 큰 자선을 베푼다는 자기 만족과 허영일 뿐입니다. 구두닦기는 또 어떻습니까? 제놈은 변변히 먹지도 못하면서 2천원, 3천원을 무슨 의연금으로 내는 놈이 있어요. 저도 남을 도와주는 위치에 놓고 싶은 눈물겨운 허영이 아니면 무슨 진실을 행하고 있다는 감상적 허위입니다. 썩어빠진 매스콤은 또 그런 허영을 조장하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 아는 사람이 죽어간다 하더래도, 아까 한 말대로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그의 결혼식에 냈을 축하금 정도도 안 내질 것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돈으로 계산해보는 것은 그 인류애니 우정이니 하는 것을 구첵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기차가 어느 시골 역에 멈추었다. 기차 소리가 죽자, 그 속에서 내 딸 소리만 유난히 크게 튀어올라 차 안을 울렸다. 나는 그때서야 턱없이 흥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달팽이가 몸뚱이를 웅크리듯 말꼬리를 숙여 이야기를 얼버무려버렸다. 술김에 어이없이 큰 소리로 객쩍은 열변을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투른 연기를 하고 난 배우처럼 열쩍어 혼자 얼굴을 붉혔다. 똥똥한 친구가 잔을 디밀면서 일리 있는 말씀아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바람에 거기다 겨우 마음을 기댈 수 있었다.
앞에 앉았던 아까 그 한복으로 성장한 여인이 짐을 챙겨 들고 내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요.”
“한 시간쯤 더 가면 될 거예요.”
키 큰 친구의 몰음에 아가씨가 대답했다:
“목포는 처음입니까?”
“네.”
그 사이, 운동모는 내리는 여인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그가 밖으로 사라지자 몸을 일으켜 차창에 서린 성애를 쓱쓱 묻지르고 거기 바싹 눈을 댔다. 우리들의 눈도 밖으로 쏠렸다. 두세 사람이 출찰구를 빠져나가고 그 여인의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나와 있다가 반갑게 맞았다.
운동모는 아까부터 아따금 여인의 자려를 심상치 않게 넘겨보았었다.
“무얼 그렇게 보십니까?”
똥뚱한 친구가 핀잔올 주듯 물었다. 운동모는 먹쩍재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혹시 50만 원짜리가 아닌가 싶어 아까부터 감시를 했는데 허탕이구먼!”
그는 좀 비굴하게 웃으며 운동모를 벗어서 모표 붙이는 부분을 가리켰다. 거기!에 새끼손가락 드나들 요량의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는 아까 의자에 고개를 기대고 누워 있을 떼처럼 모자를 얼굴에 얹어 보이며, 그 구멍으로 환히 보인다는 시늉을 했다. 그는 무슨 신기한 요술이라두 가르쳐주는 득의의 표정이었다.
“예끼! 여보슈!”
똥똥한 친구가 흘기며 웃었다.
“그럼 끝까지 따라가 보시지?”
“아이들이 마중나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점이 수상하게 보였습니까?”
“저런 멋진 여자가 이런 차를 탄 것이 수상했지라우.”
좀 헤프게 웃었다.
“그럼 이 아가씨도?”
아가씨가 눈을 들어 운동모를 보았다. 곱지 않은 눈초리였다.
“에헤.”
운동모는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 선생님은 돈을 내고 사람을 살리려고 고민인데, 아저씨는 거꾸로 잡아서 돈을 벌 궁립니다그려.”
키 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잡는 것은 간첩인데요?”
“하긴 그렇지만……”
아가씨는 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손수건 네 귀를 가지런히 맞추어 반듯하게 접어 가지고, 무릎 위에서 다지고 있었다.
“아가씨 차렙니다.”
키 큰 친구가 심상찮은 아가씨의 감정을 넌지시 떠보았다.
“제가 왜 이 차를 탄 줄 아세요? 까닭이 있어요. 이 이야기는 아까 그 연구 테마에는 맞지 않을 거예요. 물론 우습지도 않고요. 그리고 뭐 이 차를 탄 것을 변명하자는 것도 아니예요.”
아가씨는 눈을 밑으로 깐 채 말을 이었다. 그때 열차 공안원 둘이 저 쪽으로 몰려갔다.
“대학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좀 앓았거던요. 집에서 요양을 하려고 내려오게 되었어요. 그때 태극호를 탔거던요.”
졸다가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병 사 마셨다는 거다.
마시고 나서 무심결에 빈 병을 창 밖으로 내던져 버렸는데, 막 던져놓고 나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가 초여름이라 들판에는 벼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혹 논 매는 사람이 맞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다행히 농부들은 없었지만 병이 하필 논 귀퉁이에 있는 바위에 맞아 파삭 깨지더라는 것이다.
“순간 저는 아찔했어요. 농부들이 맨발로 논을 맬 게 아니예요. 유리 조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막 휘저을 것인데, 그러면 물 부른 손발이 어떻게 되겠어요? 저는 식은땀을 흘렸어요.”
그는 몸서리 쳤다.
집에 오자 병(病)이 더쳐 오래도록 앓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장 기차를 타고 거기를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벼가 키대로 자라서 편 다음이라 그 조그마한 바위는 벼 속에 묻혔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거기가 어디쯤이었던가도, 심지어는 어느 역사이였던가도 알 수 없었다. 어림잡아 강경(江景)과 정읍(井邑) 사이를 다시 한번 왔다갔다 했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내려오다가 그 바위 생각이 났어요.”
“찾았나요?”
키 큰 친구가 성급하게 물었다.
“네, 강경 금방이 아니고 훨씬 아래 장성(長城)역을 조금 지나서였어요. 되돌아서 논임자를 찾았더니 아주 조그마한 오막살이에서 늙은 할머니가 나오셨어요.
그는 속죄하듯 차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할머니 내외가 자식도 없이 살다가 할아버지는 바로 지난 달에 세상을 뜨고 지금은 할머니 혼자 사신다더군요.”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몇 푼 안 되는 돈만 쥐어주고 집을 나와버렸어요.”
“그 상처로 죽었나요?”
키 큰 친구였다.
“그건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잦아들어가는 소리 였다.
“참 여성 다운 미담입 니다.”
키 큰 친구가 감탄을 했다.
“뭐라구요? 그럼 남성 들이면 어쩐단 말씀이에요?”
아가씨가 발끈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키 큰 친구는 손을 내저으며 당황했다.
“이것은 참 신나는 이야깁니다.”
운동모는 이제 내 차례란 듯 불쑥 입을 열며, 자기 이야기에 미리 취해 빙그레 웃었다. 아가씨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별 흥미가 없었던지 자기 차례를 그만큼 조급하게 기다리고 있었던지, 아가씨의 날카로운 감정 같은 것은 도무지 아랑곳 없는 태도였다.
“이걸 보십시오:”
잠바 지퍼를 직 그어, 한쪽 옷섶을 크게 벌리며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잠바 안섶 윗 포켓 부분에 무슨 큼직한 훈장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아가씨의 이야기에 좀 숙연했던 눈들이 그리 쏠려 둥그래겼다. 비닐봉지로 한 겹 소중히 싼 훈장을 조심스럽게 따내더니, 그걸 손바닥 위에 얹어 일일이 눈앞에 갖다 댔다. 아가씨의 눈앞에까지 들이댔다. 아가씨는 건성으로 눈길을 스쳤다.
“이것이 보통 훈장인 줄 아요? 이래 봬도 화랑 무공훈장입니다.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서 한꺼번에 빨갱이 열 놈을 잡았지라우.”
그는 훈장 꼬투리를 쳐들어 보이며 한 놈을 생포하고 두 놈을 사살한 무공으로 탄 것입니다. 꼭 둘이 나가서 열두 놈을 사살했다고 할 때에는 손가락으로 방아쇠까지 당겨 총 쏘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손가락총을 얼른 걷어들이며 이야기를 딱 멈추었다. 눈들이 운동모의 놀란 눈길을 따라갔다. 아까 몰려갔던 열차 공안원들이 웬 사람들을 서넛 묶어서 끌고 왔다. 뒤에는 묶이지 않은 사람이 하나 따라오며 공안원에게 무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까 송정리역에서 기차 보고 허겁떤다고 하던 친구였다.
“저 새끼들 결국 걸려들었구나.”
운동모가 뇌까렸다.
“뭡니까?”
“사기 도박단입니다. 저 뒤에 따라간 새끼가 털린 모양입니다. 개새끼, 씨언 하다.”
“아는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저 새끼, 형제들이 군대 가서 죽는 바람에 먹고 사는 새낍니다. 6·25때 죽은 두 형님 연금으로 먹고 살다가 이번에는 동생까지 월남 가서 죽었는디, 쌍놈의 새끼가 동생 죽어서 나온 돈을 노름판에서 홀랑 날렸어라우. 인자 놀음 않는다고 손꾸락까지 자른 새끼가 또 지랄했구만. 장사한다고 껍죽거리더니, 지 버릇 개 못준다고…… 끌끌.”
그들이 사라진 쪽을 흘기고 나서 술을 한 모금 꼴깍 마셨다.
“조심하쇼!”
훈장을 만지고 있는 똥똥한 친구에게 그게 무슨 부서질 물건이기나 한 듯이 한 마디 주의를 주었다.
다시 벙그레 웃으며 그쳤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지리산 전투가 치열할 땝니다. 둘이 척후를 나갔어요. 경상도 놈인디 그 새끼도 되게 날쌘 놈이었지라우. 살금살금 기어서 쬐깐한 능성을 하나 넘어선께는……”
눈을 부릅뜨고 술잔을 든 손까지 놀려 살금살금 기는 시늉을 했다.
“하, 요놈의 새끼들이 그 밑 골짜기에 수십 명이 우굴우굴 모여 있습디다. 무슨 지시를 하는가 한 놈이 무얼 설명하고. 간이 덜렁합디다. 저 새끼들을 생포하자고, 둘이 아이스를 탁 하고는 제일 포복을 기어서 옆으로 뽀짝 붙었지라우. 그래갖고는 번개같이 일어나서 에무왕을 콱 들이댐시롱, 손들엇 한께는, 어어!”
‘에무왕을 콱’하다가 들고 있던 종이잔을 폭삭 쥐어버렸다. 쏟아지는 술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냉큼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손바닥의 술까지 핥고 나서 구겨진 잔을 거북하게 건너다보았다. 우리는 배를 움켜쥐었다.
“버리십시오. 여기 또 있습니다.”
똥똥한 친구가 백에서 새 잔을 꺼내 다시 술을 채웠다.
그는 다시 입을 앙다물고 총을 들이대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종이 잔이 또 위태로워 조마조마했다.
“꼼짝만 하면 쏜다잉, 이람시롱 대든께는 새끼들 손을 들고 야코가 팩 죽습디다. 나는 총을 들이대고 있고 갱상도 치가 전선줄을 줏어 갖고 요놈의 새끼들을 괴기두름 영끄대끼, 한 놈씩 꽝꽝 때려문껏지라우.”
사투리는 완전히 원색으로 변했다.
“거지반 문꺼간디, 언뜻 본께는 한 놈의 새끼가 어느 새끼(사이에) 손 하나를 내리고 안 있소? 겁 짐에 빵 해부렀지라우. 권총을 뺀지 알았단 말이요. 그란디, 허허 나참.”
어이없다는 듯 혼자 웃고 나서,
“이새끼가 그 주제에 대장인디, 그 새끼 첨부텀 손이 하나빼끼 없는 외팔이더 란 말이오, 외팔이! 어허허.”
그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웃었다. 모두 따라 웃긴 했으나 그의 웃음만큼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란디, 문끄다가 본께는 전선줄은 다 됐는디, 한 놈의 새끼가 남았더란 말이오. 그냥 데리고 갈 수는 없고 마음은 급하고, 에라 너도 한 방 묵어라, 쾅 지저대부렀지라우. 허어엉.”
그의 허겁스런 웃음 속에 아가씨의 ‘어머’ 소리가 깔려버렸다.
2
내가 다시 그 운동모를 만난 것은 그때부터 두어 주일 지나서였다. 방학중이라 집에 박혀 있다가 모처럼 시내를 나갔었다.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 아니십니까? 나를 모르겠습니까?”
“아 네, 네.”
실은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려다가 고삐를 낚아 채이듯 붙잡힌 다음이라 멋쩍게 웃으며 엉거주춤 손을 내맡겼다.
그는 내 조그마한 손을 위아래로 사뭇 요란스럽게 흔들어대면서, 이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고 못내 반가워했다.
“한잔 합시다.”
그는 내 사정 같은 것은 묻지도 않고 내 팔을, 그것이 무슨 강아지 목줄이기나 한 것 같이, 훌쩍 잡아끌고 곁에 있는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한잔 걸친 모양으로 상당히 술기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술을 얻어먹게 된다는 것이 미안했다. 사실, 아까 그에게 눈을 피해버렸던 것도,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그에게 매긴 사람값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들 사람값이나 많이 매겨주십시오.”
그날 저녁, 무슨 감명 깊은 영화라도 보고 나오는 기분으로 출찰구를 빠져나와 그야말로 석별의 인사를 나누면서 이런 부탁을 했던 것이고 나는 정말 집에 돌아오며, 그들이 무고히 죽어갈 때 얼마쯤 치러줄 것인가를 생각했었다. 아가씨와 두 청년은 선뜻 천 원대를 넘어서는 것이었으나 그 운동모는 백 원대에서 오르락내리락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운동모한톄, 내가 그에게 매겼던 사람값 이상으로 술을 얻어먹게 된다면 나는 그의 목숨에 대해서, 그가 나에게 베푸는 술 한 자리만큼의 호의도 못 가진 셈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가난과 인생이 새삼 야속하게 느껴지며 씁쓸한 환멸의 비감이 들었다.
술청 안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사람이 봄비고 있었다. 잠깐 어물어물하려니까 나가는 사람이 있어 긴 테이블의 한쪽 끝에 맞보고 자리를 잡았다.
“여! 아주머니!”
큰 소리로 불렀다. 저쪽에서 주문을 받고 있던 주모가 고개를 돌려 알았다는 눈짓을 해놓고는, 다시 그들과 이야기를 하려 했다.
“아주머니! 아, 아주머니!”
너무 큰 소리에 나는 주윗사람들이 미안했으나, 그는 기어코 여인의 주목을 가로챘다.
“여그 막걸리 한 되 하고, 저 문저리 있소?”
주모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모치는? 응, 그것 뜸뿍 한 접시!’'
그는 담배를 꺼내서 나한테 한 가치 권하고 성냥을 직 그어 불을 붙였다.
“선생님! 여그가 공산당 세상이오? 민주주의 세상이오?”
홍두깨 같은 소리를 들이대며 흥분부터 했다.
“지난번에 지리산에서 빨갱이 잡았다는 이야기 했었지라우.”
잠바의 지퍼를 칙 그어 옷섶을 펼쳤다. 예의 훈장이 비닐봉지에 싸여 매달려 있었다. 곁에 앉은 사람들도 다 보라는 듯이 옷섶을 크게 펼쳐 양쪽으로 내둘렀다.
“이것이 그래 보통 훈장인지 아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싸운 무공으로 탄 훈장입니다.”
마치 내가 그렇지 않다고나 했던 것처럼 한바탕 대들 기세였다.
술이 왔다. 잔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모치 대가리에 된장을 듬뿍 찍어 와삭와삭 씹었다.
“그란디, ×할 이런 사람 환장할 일이 있소? 그때 잡은 빨갱이 한 놈의 새끼가 시방 시퍼렇게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단 말이오. 나는 그때 그 새끼들을 담박에 드르륵드르륵 해분 줄만 알았단 말이오.”
그는 이를 앙다물고 두 손으로 드르륵 총 갈기는 시늉을 했다. 여러 놈을 한꺼번에 갈기느라고 손가락총의 반원을 너무 크게 그리는 바람에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내 곁에 앉은 사람들까지 빈총일망정 사정없이 난사를 당해버렸다. 손님들은 총뿌리에서 몸을 피하면서 잠깐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의 부릅뜬 눈을 보자 얼른 눈길을 걷어가버렸다.
“그란디, 그 중에 한 놈의 새끼를 길바닥에서 만났단 말이오. 그 새끼 요짝 볼딱지에 이만한 붉은 점이 있은께 담박 알겠습디다.”
엄지손가락 한 매듭을 내보였다. 나는 우리 학교 양 선생같이 붉은 점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번뜩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저 새끼가 그때 튀어가지고 월북했다가 간첩으로 내려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 틀림없다. 저 새끼도 나를 알아보고 놀라는 것을 봐라. 오냐 너는 죽었다.
“50만 원짜리 생각한께 워매 두 다리가 달달달 떨립디다. 솔직히 50만 원이면 얼마요, 융? 한밑천 아이오, 찹것. 정말 눈에 뵈는 것이 없습디다.”
신고할 것도 없이 혼자 때려잡기로 작정을 했다. 살금살금 뒤를 밟다가 생각하니, 요놈의 새끼가 틀림없이 칼이나 권총을 가졌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몽둥이로 댓바람에 대갈통을 까버릴까? 그러나 시내 복판이라 얼른 마땅한 몽둥이도 없고, 또 그러다가 영 뻗어버리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셔 골목 안을 돌아갈 때 뽀짝 뒤로 붙었습니다. 그래갖고는 왁 사정 없이 더수기를 챘지라우.”
두 손을 벌리고 왁하며 느닷없이 술상 너머로 달겨드는 바람에, 나는 찔끔 상체를 제끼다가 하마터면 뒤로 나가 떨어질 뻔했다.
“그래갖고는 요놈의 새끼를 뽈깡 치켜들었습니다. 땅바닥에다 꺼꿀로 콱 박어분께 깨구락지같이 찍 뻗음시롱 워매 합디다. 대가리를 땅바닥에 한 번 쥐어박고는 무릎팍으로 등짝을 콱 한 번 제게뿐께 영 맥 못춥디다. 파출소로 끌고 갔지라우.”
그는 메어꼰지는 시늉이며 등짝을 제기는 시늉을 반쯤 일어서서 입을 앙다물고 실연했다.
‘팍’ 할 때는 그의 입에서 씹던 생선 조각이 튀어나와 내 이마에 붙었다. 다시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요 새끼, 여그가 어딘지 알고 내려왔어?”
간첩은 깨진 이마에 피를 흘리며 왜 이러느냐고 고함을 질렀지만, 그 따위 수작에는 안 속는다고, 의기양양하게 파출소로 끌고 가 간첩 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경들은 한동안 멍 했다가 달겨들어 수갑을 채운다, 몸수색을 한다,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간첩은 무어라고 변명을 하고 한쪽에서는 전화를 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순경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으며, 간첩의 수갑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허허, 이런 환장할 일이 있소? 그 새끼가 간첩이 아니고 시내 무슨 중학교 선생이라고 안 하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중학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틀림없이 양 선생일 것 같은데, 내가 그와 같은 학교에 있다면 단박 운동모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설마 양 선생이야 아니겠지. 그가 그런 경력이야 가지고 있을라고? 나는 운동모가 벌컥벌컥 잔을 들이켜는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뭐 중학교 선생? 당신들 지금 장난하고 있소? 아니 요 새끼는 분명 내가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서 잡은 빨갱인디 뭣이 어쩐다고?”
수갑이 풀린 간첩이 도망칠까봐 문을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이 훈장을 보시오. 이 훈장을, 엉! 내가 이 새끼를 잡아서 탄 훈장이란 말이여!”
이렇게 대드니까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자수라니? 아니 내가 저 새끼를 이 두 눈으로 잡아가지고 왔는디 그것이 자수여?”
그놈한테 속지 말라고 쾅쾅 고함을 치며 쥐어박을 듯이 대드니까, 그때 탈출했다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그 학교 교장이라는 자가 달려오고 야단이 났는데 아무리 보아도 결국 허탕이었라.
“허허 그때, 그 ×같은 새끼들이 잡아다준 괴기도 못 지키고 놓쳤던 것이란 말이오. 그 ×을 헐 놈의 새끼들이!”
그런데 그 교장이라는 자가 이렇게 생사람을 조져놓았으니 치료비를 내야 할 것 아니냐고, 사뭇 근엄하게 따지고 나섰다.
“뭣? 이 새끼, 치료비? 이 훈장을 봐라, 내가 치료비를 내?”
그러지 않아도 억울한 판에 속을 쑤셔오니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나 치료비? 의자를 들어서 교장이란 자를 사정없이 갈겨버리고, 말리는 순경까지도 닥치는 대로 후려쳐버렸다.
그러고도 화가 덜 풀려 한쪽에 멍하니 서 있는 가짜 간첩까지도 몇 대 더 쥐알려버렸다. 간첩은 날벼락을 맞고 정신이 나갔는지 때리는 대로 펑펑 얻어맞기만 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자 이번에는 거꾸로 이쪽 손에 수갑이 채워져 본서까지 넘겨졌다. 그러나 그 투철한 반공정신이 좋다고 곧 풀려나왔다고 했다. 실은, 말과는 다른 모양인지 그 부분은 말꼬리를 흐리며, 또 벌컥벌컥 잔을 들이켰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틀려먹었어요. 그런 숭악한 빨갱이새끼를 살려준 것만도 어딘디, 중학교 선생을 시켜요, 선생을?”
그는 다시 한번 술상을 쳤다. 이러니 나라꼴이 잘 될 게 무어며, 그 밑에서 교육을 받고 았는 제 이세 국민이 불쌍하지 않느냐, 사뭇 개탄조로 우국론 일설을 피력한 다음, 틀림없이 그 교장놈의 새끼가 돈을 처먹고 선생으로 썼을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뭐? 대한민국의 따뜻한 품안으로 돌아왔은께 용서를 했다고 염벵.”
한바탕 욕을 하며 코를 씩씩거렸다.
“그 쌍놈의 새끼가 간첩이기만 했더라면…….”
50만 원의 화려했던 꿈이 깨진 것이 지금도 사뭇 애석한지 혼자 뇌까리며 남은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예상했던 대로 간첩으로 오인되어 봉변을 당한 사람은 우리 학교 양 선생이었다. 다음날 나는 양 선생을 만난 것이다.
전직하는 어떤 선생의 송별회가 있어 선생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일찌감치 나가 화투치는 선생들 사이에 끼어 양 선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사건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모르고 있다면 괜한 소문을 퍼뜨리게 될 것 같아서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항용 하는 버릇대로, 그게 양 선생이 아니었기를 돈을 걸고 바라고 있었다. 3천 원을 걸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액수였다.
이내 양 선생이 나타났다. 이마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아니 다치셨습니까?”
누가 놀라 묻는 말에 선생들의 시선이 양 선생한테 쏠렸다.
“네 조금.”
그는 매수롭지 않다는 듯 빙긋 웃으며 상차로 잠깐 손이 갔다. 가볍게 입언저리를 스쳐가는 미소에는 전혀 이렇다 할 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미소 밑에 담기기 쉬운 감정의 굴곡을 놓치지 않으려 했으나, 전혀 그런 것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선생들은 양 선생의 상처에 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술에 어우러졌다. 아무도 그 사건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술이 여러 순배 돌아, 모두 발그레 술기가 올랐다. 양 선생은 평소에 조용했던 대로, 그리고 항상 웃는 얼굴인 그대로 그저 웃고 마실 뿐, 술자리의 분위기에 조금도 층이 진 구석이 없었다.
나는, 그의 구겨졌을 마음의 어느 가닥에선가 한번쯤 희뜩일 감정의 음예(陰弱)를 붙잡으려 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조금도 감정을 조작하려는 눈치도 없었고 아무리 보아도 마음속의 감정을 얼굴에 나타난 꼭 그만 치뿐인 것 같았다. 연기라면,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연기였으나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감정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여기 있는 선생들은 아무도 그 사건을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교장의 술잔이 두어 번 양 선생에게 갔을 뿐,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야릇한 감정의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불행을 가로맡아, 돈을 치르려고 했던 내 호의가 멋없게 된 것이다. 그의 표정은 담담하게 내 호의를 거부하고 있었다. 여태 구의 표정을 살핀 것은, 말하자면 돈을 들고, 그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인데 불과 닷새밖에 안 된 일을 그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봉변당한 장본인이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갈 지경이었으나 저 희귀한 붉은 점이며, 상처로 봐서 도무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돈을 가지고 벌여온 관념의 조작에 제법 만인을 구하는 것 같은 비장한 감개를 느껴왔던 것인데 양 선생은 그런 나를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남의 불행에 지레 눈물을 흘리다가 왜 이러냐고 저편에서 되려 위안을 하며 껄껄 웃고 나올 때, 느낌직한 무안을 느꼈다. 양 선생과 나는 돌아가는 길이 잠깐 같은 방향이었다. 서넛이 떠들며 걷는 속에서 나는 야릇한 낭패감과 고독감을 느끼고 있었다.
“양 선생, 어디서 그런 훈장을 달았소, 그 이마에?”
술이 곤르레가 된 친구가 농조로 물였다.
-끝-
2016년 7월 19일 읽음
<줄거리 요약>
목포행 야간열차가 두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나는 조용한 자리를 찾아 앉
었다. 내 시선에 아무도 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성장한 부인과 잠바 입은 남자, 여대생이 각각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가씨는 누구에게 쫓겨 화가 나 있었다. 낙는 사람의 색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가씨를 노하게 만든 자를 깡패로 생각하고 그들이 죽으면 천 원을 내겠다고 섕각하는데, 깡패 아닌 대학생 둘이 아가씨를 찾아왔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가라앉았다. 대학생들은 논문 자료를 얻으러 다녔던 것이다. 논문의 테마는 ‘한국인의 해학적 발상’이었다. 저쪽의 잠바까지 끼어 술자리가 베풀어지고 각자 우스운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해야 했다. 나는 내 버릇과 조금 전의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모두 크게 웃었다. 목포에서 내려 헤어질 때 그들은 자기네 값을 잘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어느 날 길에서 잠바를 만났다. 그는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그에게 백 원을 매겼기 때문에 그의 술을 얻어먹기가 미안했지만 결국 끌려가고 말았다. 그는 간첩을 신고하여 오십만 원을 벌려다 헛된 꿈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몹시 홍분해서 말했다. 간첩으로 오인되어 그에게 봉변을 당한 이는 우리 학교 양 선생이었다. 다음날, 나는 그것을 확인하려고 양 선생을 만났다. 나는 ‘양 선생이 아니었기를 바라고’ 3천원이란 큰 돈을 걸었다. 그런데 양 선생은 봉변당한 장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갈 만큼 너무나 예사스러웠다. 그의 불행을 도맡아 돈을 치르려고 했던 호의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야릇한 낭패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곁에 있던 동료가 물었다. “양 선생, 어디서 그런 훈장을 달았소, 그 이마에?”하는 것이 아닌가.
<해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데학 졸업생의 연구 논문 주제인 ‘한국인의 해학적 발상’처럼 이 작품 역시 해학적 발상을 모티부루 하고 있다. 작중 화자인 ‘나’가 사람값을 매기는 행위 자체도 해학적이다. 이 작품은 지난날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제값으로 매겨지지 않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제기된 사람의 제값 매기기의 한 동의(動議)라 하겠다. ‘이 세상에 떳떳하게 한자리를 차지할 만한 자격을 지녔고, 그래서 어떤 때는 나 같은 사람이 못하는 일을 가로맡아 해줄 것 같은 신뢰까지도 느껴져 백 원대로 사람값을 매겼던 ‘운동모’가 현상금 50만 원의 횡재를 탐해 양 선생을 덮치는 해프닝에서 ‘백의민족’의 60년대적인 서글픈 해학을 보게 된다. 또 간첩으로 오인되어 얻어터지고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도 내색을 비치지 않는 양 선생 앞에 두고 ‘나’가 느끼는 낭패감과 고독감 역시 그러하다. ‘나’는 여기에서 양 선생의 사람값을 다시 어떻게 조정할까.
이 소설의 주제는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제자리릏 찾아본 일이 없는 한국적 상황의 서글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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